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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싸우는 M들이여 국가로 총구 돌려라
가산점은 사회 압력에 따른 개인 희생을 타인 차별로 보상
진짜 책임은 필수 인프라 투자 외면해온 국가와 기업의 몫


새로운 논란거리가 등장했다. 이른바 ‘엄마 가산점’ 제도다. 법안의 정식 명칭은 ‘남녀 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법’이다. 간단히 말해 여성이 임신·출산·육아 등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뒀다가 재취업할 때 가산점을 주는 제도다. 대표 발의한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말하는 법안의 취지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인해 자기 취업을 포기하고, 다시 취업하려는 열망이 생겼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제도가 없” 으므로 “숙련된 여성인력의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장 소란이 벌어졌다. “자녀를 갖지 않은 혹은 갖지 못한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형평성에 관한 문제제기가 당연히 튀어나왔다. 가장 ‘뜨거운’ 지점은 따로 있다. 의도했든 아니든 군 가산점 제도와 맞물려 논란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엄마 가산점’은 이름에서부터 ‘군 가산점’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위헌 결정으로 폐지된 군 가산점제는 최근 다시 부활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한기호 의원 등의 발의로 국회 계류 중).

논란은 일종의 ‘성대결’로 번지기도 했다. 특히 군필 남성들의 반발이 거셌다. 남성에 대한 역차별임은 물론이고, 과거에 “군 가산 점은 여성 등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라 목소리 높였던 여성 및 여성단체가 이제 와서 ‘군 가산점’은 안되고 ‘엄마 가산점’은 된다고 하는 건 명백한 모순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신의진 의원은 이런 항의를 가볍게 받아넘긴다. “저는 ‘엄마 가산점’뿐 아니라 ‘군 가산점’ 에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사회에 기여를 한 사람들에게 반드시 보상이 가는, 그런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생각한다.”

신 의원의 답변은 지금 벌어지는 ‘엠(M)의 전쟁’(머더와 밀리터리)을 해소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둘 다 하면 되지!” 그렇게 쿨하게 넘어가면 되는 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엄마 가산점’과 ‘군 가산점’은 서로 다른 제도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측면을 갖고 있다. 사회적 압력에 따른 희생을 다른 사회 구성원을 차별하는 형태로 보상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시민들이 서로의 몫을 두고 악다구니를 쓰게 된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국가의 ‘직무유기’와 ‘기능부전’이다.

제아무리 ‘신성한 의무’로 포장해도 젊은 남성에게만 지워진 군역은 국가가 시민에게 강요한 희생이다. 남성들이 군대에서 실질적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대가는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 등으로 절반 이상의 여성들이 직업적 자기실현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 또한 분명하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열악한 직장 내 보육시설 등의 노동환경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누구 책임인가. 국가와 기업의 책임이다. 당연히 갖춰야 할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엄마 가산점과 군 가산점 모두 문제의 이런 본질을 회피하는 미봉책이다. 군필과 엄마가 왜 서로 싸워야 하나. 우리는 국가와 싸워야 한다.

박권일 계간 편집위원


» ‘엄마 가산점’과 ‘군 가산점’은 서로 다른 제도지만, 사회적 압력에 따른 개인적 희생을 다른 사회 구성원을 차별하는 형태로 보상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군 가산점 문제를 예비역 군인에 대한 혜택의 문제로만 접근해온 보수 정당에서 ‘엄마 가산점’ 문제를 제기했다는 사실은 어쨌든 고무적이다. 한겨레 자료, 한겨레 박종식 기자

저급한 10년 논쟁 전환점 마련 되길
가산점보다 기존 제도 강제 시행이 경력 단절 여성에게 도움
소수자 배려와 국민 형평성 보장 논의에 기여하는 건 사실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임신·출산·육아 등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뒀으나 재취업 의사가 있는 ‘경력 단절 여성’에게 공공기관 채용시 이른바 ‘엄마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입법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새누리당 일각에서 추진하는 ‘군 가산점’ 부활 이슈와 연계돼 성 대결 양상으로까지 번지는 상황이다.

나는 군 가산점과 엄마 가산점제를 묶어서 입법하는 것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런 조치가 출산휴가·육아휴직 등 이미 존재하는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뽑아봐야 어차피 중간에 그만두게 된다’는 생각을 공공연히 내뱉는 ‘사장’이 아직도 많다. 그래서 가산점을 주기보다는 이미 있는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도록 강제하는 게 경력 단절 여성에게는 좀더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엄마 가산점 제도 논의를 좀더 전향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군 가산점 제도의 폐지와 부활을 두고 10년 넘게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 인사들이 군 가산점 제도의 부활을 주장하고 진보적 인사들이 폐지를 주장해온 것이 사실이다. 논쟁이 ‘된다, 안 된다’의 문제를 따지는 것으로 고착화되면서 진보가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무조건 철회하려는 것처럼 비친 면도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군 가산점제 논의는 언제나 유치한 감정싸움으로 귀결됐다. 군 가산점을 없앨 거면 여자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둥, 대신 여성이 출산과 육아, 가사 등을 담당하지 않느냐는 둥, 그래도 출산은 자유 의사로 거부할 수 있지 않느냐는 둥 상식을 벗어난 논쟁이 인터넷 공간 곳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엄마 가산점 제도 논의는 가능성이 높지 않겠지만 이런 답답한 논의의 지형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군 가산점의 부활과 폐지만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다양한 가산점 등의 제도를 말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를 통해 국가와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소수자를 배려하고 국민 간의 형평성을 보장할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제시될 수도 있다.

이런 논의가 그동안 군 가산점 문제를 예비역 군인에 대한 혜택 문제로만 접근해온 보수정당을 중심으로 제기됐다는 사실도 어떤 면에서 보면 고무적이다.

군 가산점에 대한 찬성·반대를 넘어 가산점제 자체의 합리적 설계에 초점을 맞춘 생산적 논의가 정치권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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