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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주변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과 같은 곳으로 태평양전쟁의 전범들이 합사돼있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군국주의를 인정한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므로 주변 국가들의 반발은 필연적이다.

한·미·일 동맹을 추진해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독주를 막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반발할만한 행위를 일본이 자처하는 데 대해 큰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이후 미국이 즉각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내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교적 재앙으로 귀결되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강행한 아베 신조 총리의 속내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한국 및 중국 간의 외교관계를 상당 기간 복구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일 정상회담은 성사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중국과의 영토분쟁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그 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야스쿠니 참배라도 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일본 국내 정치의 상황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군대를 갖지 못하도록 규정한 헌법 제9조를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내외에 천명해왔다. 개헌 발의에는 국회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는 집권 자민당 단독으로 채울 수 없는 숫자다. 따라서 일종의 ‘동맹’이 필요한데, 그간 개헌에 긍정적 입장을 피력해 온 정당은 ‘일본유신회’와 ‘모두의 당’이다. 이들을 모두 합하면 개헌선을 넘는다.

하지만 최근 아베 내각이 우리나라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같은 개념인 ‘4인 각료회의’를 출범시키고 이들이 지정한 기밀을 누설할 경우 처벌이 가능하도록 한 ‘특정비밀보호법안’ 가결을 밀어 붙이면서 이들의 동맹에 빛이 바랬다. 일본유신회는 이 법안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고 표결 과정에서 퇴장해버렸고 모두의 당은 야권재편을 주장하는 일부 계파가 탈당함으로써 쪼개졌다. 이 때문에 아베 신조 내각의 지지율은 10%가 하락해 40%대가 됐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최악의 경우 다음 총선에서 7개 야당이 반-자민당 연합을 구성해 연립 정권을 이뤘던 1993년 호소카와 내각의 사례가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아키히토 일왕이 80세 생일을 맞이한 자리에서 평화헌법에 대한 사실상의 옹호 발언을 내놓은 것도 아베 신조 총리에게는 부담이 됐다. 일본 정치에 개헌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져있는 상황에서 일왕의 발언이 그를 존중하고자 하는 보수적 지지층에 개헌 포기 여론을 조성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보수적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행보로 볼 수 있다. 당장 일본유신회가 아베 신조 총리의 참배에 환영 입장을 밝혔고 모두의 당 역시 개인의 신념 문제라며 아베 신조 총리를 옹호했다. 특정비밀보호법으로 잠시 흩어졌던 ‘동맹’이 군국주의 깃발을 중심으로 다시 결집하는 모양새다. 남수단에 파견된 한빛부대에 탄약을 지원한 것을 ‘적극적 평화주의’로 포장해 자위대의 역할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한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이 글은 '월간 한국노총 2013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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