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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논란이 엉뚱하게도 공무원노조와 전교조로 불똥이 튀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수차례에 걸쳐 “지방선거부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반드시 지키도록 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겉보기에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이기는 하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여당 지지하는 국정원 직원이나 야당 지지하는 공무원노조·전교조 소속 조합원들이나 선거에 개입한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라는 피장파장의 프레임이다.


이 때문에 차기 지방선거에서 주로 야권을 지지하는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소속 조합원들에 대한 밀착 감시와 강력한 처벌 기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 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이상 수사 및 사정기관 등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어떤 형태로든 개진한 공무원 및 교원들에 대해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수밖에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퇴행적이고 치졸한 피장파장 프레임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은 명백히 퇴행적인 것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하나는 이 ‘피장파장의 프레임’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치졸한 수준의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또 하나는 한국 사회에서 진행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또 그렇다.


  
▲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민주노총 등이 개최한 '국가기관 불법대선개입 물타기 시도, 공무원노조 억지 공안탄압 정치검찰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등이 '정부가 공무원 노조에 대해 공안탄압과 전교조에 대해 노동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며 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까지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두 가지 면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첫 번째는 국정원 직원이 갖고 있는 특수한 지위에 관한 것이다.


국정원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는 권력기관이며 개별 직원의 업무 내용도 민감한 국내 정치현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일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도 대다수의 활동이 비밀에 붙여지기 때문에 특히나 엄정한 정치적 중립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국가공무원법에서 규정한 정치 활동 금지 외에도 이와 관련한 특수한 조항(국정원법 제9조)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국정원 직원이 각종 인터넷 사이트 등에 특정 정치세력을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등의 의견개진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에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국정원 직원이라고 해서 모든 정치적 자유를 봉쇄당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한 모범해답은 공무원이 담당하는 업무의 영역에 따라 정치활동에 대한 제약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제한의 적절한 수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소속 공무원과 기초자치단체의 말단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동일한 수준에서 논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셈이다.


하지만 국정원 선거개입과 관련한 두 번째 지적을 보면 이러한 논의가 오히려 지금 상황과 동떨어진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의 문제는 국정원이 그 기관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하여 선거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앞의 논의는 오히려 이후에 다뤄야 할 문제가 된다. 이 경우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는 별 상관도 없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불법적인 활동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적 중립 문제로 둔갑한 정치공작


이를테면 국정원이 국정원 명의로 정부 정책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어떤 콘텐츠들을 만들고 유표했다면 정치적으로 비난은 받을 수 있을지언정 그 자체로 불법을 저지른 입장에 처하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국정원 소속 직원이 일반인을 가장하고 사실상 국정원이 제작한 콘텐츠를 유통하도록 하고 여론을 조성하였다면 이것은 ‘정치공작’의 영역에 놓인 행위이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것이 아니게 된다.


  
▲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오피스텔 출입문 앞에서 국정원 대변인이 대기 중인 민주당 관계자들과 기자들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앞서 서술하였듯이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들 양자의 경우를 동렬에 놓고 기계적인 대립구도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국민을 상대로 몰래 진행한 공작과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드러내놓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행위를 같다고 보는 이상한 관점이다. 즉, 이렇게 보면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공작을 한 행위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연관 짓는, 논리적으로 사실상 오류인 프레임을 정치적 이득 때문에 작동시키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른 바 ‘물타기’다.


여기서 우리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저 유명한 ‘국가의 왼손’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부르디외는 기득권에 속하거나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치인, 고위관료 등을 국가귀족으로 규정하며 그들을 ‘국가의 오른손’으로 호칭했다. 반대로 부르디외는 공무원이기는 하되 기득권에 직접적으로 속하지 못한 하급 공무원들은 ‘국가의 왼손’으로 칭했다.


부르디외가 본 것은 국가의 오른손이 신자유주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작은 정부와 행정 효율화를 명분으로 왼손을 잘라내려 한다는 것이지만, 2013년 한국의 상황은 부르디외가 본 것보다 좀 더 원초적이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하려는 일은 오른손의 잘못이 탄로 난 일을 빌미로 눈엣가시이던 왼손에 수갑을 채워 그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지켜져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엽관제의 폐해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행정의 안정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라는 얘기다. 이것은 공무원들이 정파적인 이유로 업무의 내용을 제멋대로 변경하거나 그 지위를 상실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지 일반적 차원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권리를 억압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한국사회에서 진행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논의도 이러한 방향으로 계속 발전해왔다. 공무원과 교원의 정당가입 등을 허용하는 법 개정이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온 것이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시절 정부와 여당은 공무원과 교원의 정당가입을 허용하고 정치활동을 보장하되 근무시간 및 근무장소에서의 개인적·집단적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법 개정을 추진했다.


물론 이러한 방안은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실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선진국 등에 비해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정치활동이 지나치게 제한되어 있다는 주장이 정치권 내외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미국, 일본, 영국의 경우 비교적 엄격한 정치활동 금지를 내세우고 있는 국가로 회자되지만 특정한 정치활동 등이 금지될 뿐 정당가입 등의 기본적인 정치행위는 금지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치활동에 대한 규제가 덜한 프랑스, 독일, 뉴질랜드, 캐나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의 국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 지난 4월 전국공무원노조와 민주통합당이 간담회를 열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비록 민주정부조차 공무원노조의 참정권을 완전히 보장해주지는 못했지만 이런 목소리들은 시민사회의 차원에서라도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이것마저도 짓밟히기 시작한 것은 공무원노조의 자주적 노조활동 마저도 불허하기 시작한 이명박 정부부터다.


이명박에서 박근혜까지, 15년 전 관점 고수


이전 정부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권리를 둘러싼 문제의 핵심은 공무원노조의 단체행동권 보장과 민주노총 등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상급단체 가입에 관한 문제였지만, 이명박 정부는 ‘복무규정’의 개정 등을 통해 공무원노조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근무시간 중에는 조끼, 완장, 머리띠도 착용해선 안되고 조합비 원천징수도 사실상 안된다. 해직자가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당시 공무원노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던 것은 박근혜 정부의 전교조에 대한 만행과 판에 박은듯 똑같다.


결국 공무원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이명박 정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1998년 이전 상태로 다시 돌아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2014년 지방선거는 이러한 부조리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국가의 오른손들은 국가의 왼손에 수갑을 채우고 끈을 묶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할 것이고. 이를 그대로 두면 국가의 오른손은 왼손을 언젠가 자를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일종의 신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심각한 고민을 해볼 수밖에 없다는 그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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