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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처형됐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조선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을 체포한지 4일 만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은 장성택의 죄에 대한 특별군사재판 소식을 전하면서 그가 정변을 일으키려고 했다며 그가 처형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로써 그간 봇물처럼 쏟아진 ‘소식통’을 인용한 추측성 보도들에도 종지부가 찍히게 됐다. 물론 그런 보도들이 계속 나오기야 하겠지만 북한이 장성택의 신병처리와 범법행위까지 전부 공개한 이상 ‘추측’의 범위는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장성택 처형을 보도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노동신문의 13일 보도. (연합뉴스)


장성택 처형 이후의 북한은 특별군사재판에서 다뤄진 장성택의 죄목을 들여다보면 전망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북한의 관영언론들이 전하는 장성택의 죄는 체제를 전복하려 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실행 경로는 우선 경제개발정책에 대한 의도적인 사보타주로 내각을 무력화해 인민들의 생활을 더욱 더 악화시킨 후, 불만이 극에 달하면 자신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군 인맥을 동원해 정변을 일으키고, 이후에는 ‘개혁가’로 알려진 자신의 위상을 이용해 강대국들의 인정을 받는 정부를 수립하고 자신은 총리를 맡는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는 장성택이 특별군사재판에서 직접 자백을 했다는 내용이다. 꽤 그럴듯한 시나리오인데, 장성택이 진심으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이 시나리오가 나타내는 바를 따로 판단할 여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첫째로 판단해볼 수 있는 것은 장성택이 개혁개방정책이라는 노선을 추종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각의 경제개발정책을 방해하고 교란한 게 문제라는 점이 부각됐다는 것이다. 당과 내각은 올바른 노선을 견지했는데 장성택이 이를 방해해서 인민의 생활이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즉, 당과 내각이 하자는 대로만 잘하면 인민의 생활은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장성택에게 경제 파탄의 책임을 뒤집어씌우면서도 그간 김정은 정권이 추진해왔던 경제개발정책을 되돌릴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전제한 특구 설치 등 제한적인 개방정책을 추진해왔다. 장성택 숙청으로 인한 당과 내각의 공백이 이러한 정책의 완급을 조절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겠지만 전체적인 큰 방향은 일단 유지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특히 과거 장성택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박봉주 내각 총리가 아직까지 무사하다는 점은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다. 박봉주가 중심이 돼 수립된 경제정책은 특히 농업분야에서 식량 증산 등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박봉주의 존재는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위기가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북한 지도층에 준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박봉주는 개혁개방정책을 지지하는 관료로 알려져 있다. 물론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에서 개별 관료의 성향이 정책 변화의 큰 요소로 작용할 수는 없겠으나 일단 그렇다는 점은 북한이 ‘개혁파’인 장성택 숙청을 계기로 폐쇄적인 경제정책을 고집하게 될 것이라는 추측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낸다.


  
▲ 양 손을 포승줄에 묶인 장성택이 국가안전보위부원들에게 잡힌 채 법정에 서 있다. (연합뉴스)


둘째로 판단해볼 수 있는 것은 장성택이 군을 설득해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했다는 바가 강조됐다는 것이다. 장성택은 특별군사재판에서 현 체제에서 승진한 인사들은 잘 모르지만 김정일 시대의 군 간부들과는 인연이 있다는 점을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죽은 장성택의 형 장성우가 인민군 차수였고 또 다른 형인 장성길 역시 인민군 중장이었으므로 장성택은 이와 관계된 인맥을 통해 군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놨다는 게 그동안의 분석이었다.


따라서 김정은 체제에서 그간 진행됐던 숙군 작업이 더욱 강도높게 진행될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일부 언론 등에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장성택의 갈등설을 언급하며 앞으로 군부의 힘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으나,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군부의 힘이 커지기보다는 오히려 군에 대한 당의 통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전망해볼 수밖에 없다.


물론 숙군이 진행되면 군 내부의 혼란이 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단기적인 단결 효과를 노린 군사 도발 행위 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항상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군사 도발 행위를 통해 일종의 준전시상태를 선언하고 군의 단결을 모색하는 것은 군사독재 국가의 전형적인 수법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장성택의 처형으로 북한 김정은 정권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 자체는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정권이 그간 추진해온 것은 김정일 시기 당·군·정의 관계에서 군이 우위가 되는 ‘선군정치’를 상당 부분 해소하고 당이 우위를 갖는 전통적인 형태의 공산주의 국가의 형태로 변화시키는 것과 경제개발 등의 실무는 내각이 상당한 권한을 갖는 형태로 체제를 재편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김정일 사망 직전부터 군의 권력 약화와 당 내부 통제기구들의 비대화가 추진돼왔다. 장성택의 조선노동당 행정부 역시 이 과정에서 큰 권한을 갖게 됐으나 이제는 이 역할을 다시 조직지도부가 행사하게 될 전망이다. 이를 감안하면 체제와 조직이라는 측면에서 장성택 처형으로 인한 혼란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다만, 장성택의 처형과 이와 관련된 인맥의 숙청으로 인해 발생할 인적 공백이 가져올 수밖에 없는 돌발변수들은 문제다. 이 과정에서 예측되지 않은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우리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긴밀한 연계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 외교안보정책의 추진이 필요한 시점이다.


* 이 글은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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