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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실각설’의 진위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정원이 이 사실을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공개한데다가 국정원이 공개한 정보를 두고 정부 부처마다 해석이 다른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와 국방부가 장성택의 실각을 단정해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밝히면서 이 문제는 더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다.


민주당 측은 국정원이 국회에서 국정원 개혁특위 등을 합의한 사실에 물타기를 할 의도로 부적절한 방식을 통한 정보 공개를 하는 바람에 이 사단이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김정현 부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국정원은 첩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정보화시키고 그 정보를 대통령에게 보고해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고유한 업무인데 국정원이 직접 언론과 상대하면서 정보를 흘린다는 것은 정보관리업무의 기본 매뉴얼도 지키지 않는 것”이라면서 “국정원이 정치적 의혹을 살만한 원인제공을 자초한 것이며 딴 생각을 갖고 의도적으로 흘렸다는 비난을 받아도 싸다”고 반발했다.


국정원의 이상한 보고


민주당의 이러한 지적은 일리가 있는 것이다. 국정원은 통상 알려야 할 중요한 정보가 있을 경우 관련 정부 부처나 청와대에 정보를 보고해 그들의 입을 빌려 말하도록 한다. 이 외에 국정원이 직접 정보를 공개하는 경로가 있는데 그것이 국회 정보위원회이다. 때문에 국회 정보위는 대개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번의 경우는 국정원이 정보위 여야 간사에 따로 대면보고를 하면서 혼란이 빚어졌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정청래 민주당 의원에 먼저 대면보고를 했고 직후 언론에 국정원이 직접 보도자료를 배포했는데, 앞서 민주당의 지적은 이와 같은 업무 처리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정청래 민주당 국회의원. (연합뉴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여야 간사가 공동으로 브리핑하는 관례를 깨고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단독으로 해당 사실을 브리핑하면서 생긴 혼란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국정원 측도 자신들의 명의로 직접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에 대해 정보위 발(發) 보도가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설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청래 의원 측은 자신이 대면보도를 받던 시점에 이미 언론사 기자 등에게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면서 국정원이 언론플레이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맥락이야 어쨌든 국정원에 일정한 ‘의도’가 없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하필이면 여야가 국정원 개혁특위 구성을 논의하는 국면에서, 그것도 언론사 마감 시간에 근접한 시점에 이러한 중요한 정보를 대면보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정원의 보고 시점과 별개로 그들이 보고한 정보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한 번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소위 ‘국정원 음모론’(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은 그렇게 표현했다)에는 시점의 문제 말고도 국정원이 아직 정확한 것이 아닌 정보를 정치적 이유 때문에 공개했다는 비판도 포함돼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일단 ‘실각’이라는 표현이 나오게 된 맥락을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왜 ‘숙청’이나 ‘제거’가 아니고 실각인가? 북한과 같은 상황에서 숙청이나 제거라는 표현은 죽었거나 추방됐거나 영구적인 형벌을 받는 등 실질적으로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경우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를 통해 보고한 팩트는 단 하나다. 리용하 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공개처형됐다는 것, 오로지 그것뿐이다. 하지만 이 사실로부터 장성택의 권력에 상당한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추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에는 상당한 합리성이 있다. 따라서, 국정원의 입장에서는 장성택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뭔가 권력 구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점을 표현해야 했을 것이고 이를 ‘실각’으로 표현한 것일 게다.


그래도 장성택 ‘실각’ 추론은 근거 있어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이러한 상황은 쉽게 이해된다. 북한의 조선노동당 행정부는 사실상 장성택에 의한, 장성택을 위한, 장성택의 부서로 통칭된다. 장성택이 권력에서 얼마나 멀어졌느냐에 따라 부서의 운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장성택의 권력이 커지면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는 부서가 되고 장성택이 권력에서 멀어지면 조직지도부에 밀리거나 해체된다. 따라서 장성택의 양 팔이나 다름없는 부부장들이 처형됐다면 노동당 행정부의 기능이 정지됐을 것이고, 장성택은 행정부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그 권한도 상당히 저하됐을 것이라는 추론을 내리는 것은 상당한 합리성이 있다는 것이다.


  
▲ 김관진 국방부 장관(왼쪽)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4일 오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락가락 하고 있는 정부 부처 수장들의 발언도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장성택이) 실각했다고 단정하진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당연히 위의 상황을 고려한 발언이다. 김관진 국방부장관과 유승재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각각 국회에서 “장성택의 실각을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장성택의 측근이 처형됐다는 국정원의 보고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런 발언들이 이런 상황을 뒷받침 한다. 즉, 이들의 발언이 겉보기에는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국정원이 갖고 있는 정보의 범위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가 장성택의 실각을 단정하려면 장성택이 갖고 있는 북한의 당, 정, 군에서의 지위 중 하나라도 잃은 것이 확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 사회의 특성 상 북한의 관영언론을 통해 보도되지 않으면 이를 확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장성택은 조선노동당 정치국 위원, 중앙군사위원, 중앙위원, 행정부장을 비롯해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인민군 대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등의 최소 8개의 직책을 갖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인사의 사실을 조직 내부에서 공개하지 않으면 알 수 없거나 관련 회의 등이 개최되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지위를 모두 유지하고 있더라도 북한 사회의 특성 상 정치적, 외교적, 실무적으로 전면에 나서 책임을 맡지 않게 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실각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맥락도 있다.


소위 로열패밀리에 계속 남아있는지 여부도 실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다. 일부에서 오는 17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2주기에 장성택이 등장하는지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다. 김정일의 여동생이자 장성택의 부인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 겸 경공업부장의 건강 상태도 관건이다. 보수적인 북한 사회에서는 아무리 김경희와 장성택 사이가 나빠도 불화를 공식화할 수는 없다. 김정일이 사실상 아내를 4명이나 가졌으면서도 공식적인 부인이 1명인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는 것이다.


국정원에 부화뇌동하는 언론은 문제


때문에 김경희가 로열패밀리로 건재함을 과시하는 상황에서는 장성택이 ‘실각’할 수는 있어도 공식적으로 ‘숙청’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장성택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롤백할 수 있으니 실각으로 보긴 어려운 것 아닌가”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하지만, 그건 김경희 등의 영향으로 ‘숙청’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장성택이 실각이 됐다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김경희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 '대북 소식통'을 인용 보위부에 의한 장성택 가택연금설을 보도한 동아일보의 5일자 기사.


오히려 장성택 실각설의 진위 여부에 대한 혼란은 언론의 보도 태도로부터 가중되는 측면이 있다. 일부 보수언론 등은 이와 관련한 보도를 무분별하게 쏟아내고 있다. <동아일보>가 ‘정통한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보위부 주도로 장성택이 가택연금 됐다고 보도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만 하다. 같은 내용의 보도는 일본TBS가 <자유북한방송>을 인용한 것을 근거로 하기도 하는데, 일본을 한 번 거쳐서 돌아 들어오는 이러한 보도 방식은 오히려 한국 정보기관이 출처인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게 언론전문가들의 지적이다.


4일 MBC <뉴스데스크>는 ‘대북 소식통’이 중국 정부 고위관계자가 장성택의 숙청 사실을 지난 10월 북한으로부터 통보받았다고 밝혔다는 내용을 보도(北, 장성택 숙청계획 중국에 사전통보…반응은?)했는데 이러한 보도도 혼란을 부추기는 사례 중 하나다. 일각에서 국정원의 정보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가 미국과 중국 등에서 이러한 사실을 파악한 바 없다면서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보도들 자체가 국정원 책임론을 무너뜨리기 위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 것들이다.


  
▲ '대북 소식통'을 인용, 김정은과 장성택의 정면충돌설을 보도한 중앙일보의 5일자 지면.


앞에서 지적했듯이 애초에 사태가 이 지경이 된 이유는 국정원이 공식화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는 정보를 민감한 시점에 굳이 공개하려 했기 때문인 이유가 크다. 하지만 여기에 언론이 부화뇌동해서 사실상 한국의 관계기관이 출처인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불확실한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 함께 지적되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럴 때일수록 합리적 추론과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고 그것을 전담할 수 있는 주체는 언론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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