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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회담 내내 '냉랭한 분위기'예고된 실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3자회담이 끝났다. 사실상 합의 결렬이라는 것이 민주당의 설명이고 그래도 만난 게 어디냐는 게 새누리당의 입장이다. 하지만 양쪽의 입장을 모두 돌아봐도 어쨌든 ‘만났다는 것’ 외에는 어떠한 성과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현장에 있었던 인사들의 전언으로는 회담 내내 냉랭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시종일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였으며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동문서답’을 반복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고 한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일방적인 대화를 하고 황우여 대표는 그 자리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표 수리를 거부하고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입장에 대해 “그렇게 할 만 하니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해 “이전 정부의 일인데 무슨 사과를 하느냐”고 반응한 것은 이러한 분위기의 정확한 반영일 것이다.


▲ 3자회담을 하고 나오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박근혜 대통령, 김한길 민주당 대표. (뉴스1)

일각에서는 회담의 형식에만 집중하고 내용에 대한 사전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이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의 만남은 최소한의 의제를 조율하는 그런 절차와 공감이 이루어져야 되는데 처음부터 아무런 의제 조율 없이 만나자고 했기 때문에 굉장히 리스크가 큰 회담이었는데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라고 발언했고 유기준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의제에 대해서 사전조율을 했다면 어느 것들이 이야기가 되는지에 대해서 서로 생각을 하고 만났을 텐데 그런 사전조율조차 없이 만난 것이 이런 결론을 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 평가할 수 있다. 의제에 대한 사전 조율을 하고 서로 어느 선까지 양보할 것인가를 정하고 이에 대한 후속조치는 어느 단위에서 논의를 하고 등등의 문제가 정리됐다면 3자회담은 좀 더 매끄럽게 진행됐을 것이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변함없는 대통령의 불통, 소 귀에 경 읽는 야당의 답답함 

하지만 핵심 문제는 그런 기술적 차원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일련의 발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종일관 야당이 제기하는 모든 쟁점에 대해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설명했다. 하지만 3자회담을 통해 추석을 앞두고 좋은 그림을 만들고 싶었다면 그렇게 할 필요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 간의 회담에서 꼭 구체적인 약속을 만들지 않더라도 원칙적 수준의 합의 정도를 이끌어 낸 후 이후 정국을 통해 다시 디테일을 논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정원 선거 개입 문제라고 한다면 “국내정치파트 존치 문제를 포함해서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를 국정원 자체 개혁안에 포함시키도록 하겠다. 다만, 대공수사권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얘기하면 그만이다. 국정원의 자체 개혁안이 먼저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국내정치파트 존치 문제에 대해 야당의 입장을 조금쯤은 배려해주는 정도의 제스처를 취하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국정원 자체 개혁안이 제출되면 그게 무엇이든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국회의 공으로 넘기고 대통령은 명분만 취해도 되기 때문이다.


▲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가 16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3자회담 직후 국회에서 개최된 의원총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민주주의의 밤이 길어질 것 같다"며 "저는 이제 천막으로 간다"고 밝혔다. (뉴스1)

채동욱 검찰총장 문제의 경우는 청와대가 검찰총장 문제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혼외 자식 문제는 공직자 기강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후임 검찰총장 인선은 중립적으로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검찰총장 인사와 관련해서는 또 청문회와 임명동의 등 국회가 해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에 이것도 공을 국회로 밀어버리면 되는 문제인 것이다.

대통령이 '하기 싫었던 3자 회담'을 한 이유는?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했다고 알려진 발언들은 최소한의 이러한 정치적 고려조차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민주당 측이 대통령의 상황 인식 수준이 절망적이라며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주장이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뿐만이 아니라 대통령이 그 어떤 명분도 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대체 왜 인가? 민주당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처음부터 대화 의지가 없었고 자신의 입장을 통보하기 위해 3자회담을 제의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이 해석은 70% 정도의 진실만을 보여준다고 본다. 왜냐면 원칙적 입장을 통보하기 위해서 굳이 3자회담이라는 방식을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 30%의 진실은 대통령이 ‘하기 싫었던 3자회담을 해야만 했던 이유’에서 찾아야 한다.

대통령이 하기 싫은 3자회담을 해야만 했던 이유는 이것을 새누리당 측이 강력히 요청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둘러싼 사건이 일단락(?)된 직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화 테이블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그 전부터 민주당이 받아들일 수 없는 ‘5자회담’의 형식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에 최경환 원내대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최경환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강력하게’ 무언가를 제기할 수 없는 신세라는 것은 정치권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얘기다.


▲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 도중 쪽지를 받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야당 대표가 대통령 앞에서 온갖 할말을 다하고 일방적 사과 요구하면서 민주주의 위기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며 "오히려 민주주의 과잉을 걱정하는 국민들이 많은 상황이다"고 밝혔다. (뉴스1)

하지만 결국 ‘3자회담’이라는 형식은 관철됐다. 이런 맥락을 보면 청와대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새누리당 지도부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새누리당 지도부의 ‘노력’이기도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새누리당의 지도부가 청와대와 대통령으로부터 타박을 맞을 각오를 하고 나름의 직언을 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여당 지도부의 체면을 살려줄 수 있도록 ‘3자회담’이라는 형식은 받되 내용에 있어서는 자신이 그간 표명했던 수준에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딜'에 들러리 선 민주당

결국 3자회담은 대통령과 여당이 나름의 리스크를 안고 합의한 것이며 자기들의 입장에서는 서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준 결과인 셈이다. 그리고 3자회담의 결과에 대해 민주당이 반발하며 더욱 강력한 장외투쟁을 선포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여당 지도부도 더 이상 청와대에 무언가를 요구할 수 없게 됐으며 청와대도 국회의 입장을 배려해줄 이유가 없어진 상황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즉, 결국 또 다시 전선이 교착되는 정국이 이어지게 된 셈이다. 국정감사와 내년 예산 심의 등 하반기 국회에서 다뤄야 할 굵직한 현안들이 있으나 당분간 국회에서 어떤 의미 있는 진전을 보기는 힘들어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예산을 심의하지 못해 내년에 준예산을 편성해 정부를 운영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정국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결코 민주당에 유리한 정국이 조성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민주당이 국회 파행의 책임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여론이 고개를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리한 국면이라고 볼 수도 없다. 일부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석기 사태 직후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하락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어쨌든 국민들도 청와대에 정국 경색의 책임 일부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신호인 것이다.

결국 ‘새 정치’를 외치고 있는 안철수 무소속 의원 정도가 이번 사태로 인해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큰 세력으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안철수 의원도 최근 10월 재보선 참여에 대한 부정적 의사를 피력해 ‘간철수’라는 오명을 다시 한 번 뒤집어쓰게 됐다는 점은 3자회담에서의 승자는 사실상 아무도 없다는 점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모두에게 있어서도 왜 했는지 모를 3자회담이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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