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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민영화 논란, 대통령이 포기해야

조회 수 1154 추천 수 0 2013.12.18 15:12:30

박근혜 대통령은 일단 ‘고’를 불렀다.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누차 민영화를 안 한다고 발표했는데도 민영화를 반대하는 파업을 한다는 것은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국가 경제 동맥을 볼모로 불법파업을 하는 것은 안타깝다”고 발언한 것이다. 철도민영화 관련 여론이 심상찮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다소 품위없게 비유하자면 “못 먹어도 고”라고 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청와대 집현실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 정세와 철도파업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대통령의 발언은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나름 효율적으로 배치돼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에 철도민영화를 추진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철도노조의 파업을 정부의 공기업 혁신에 맞서는 내부 기득권의 반발로 규정짓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명분 없는 집단행동을 하는 건 잘못된 일이고 국가경제 불씨를 꺼뜨리는 일”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을 언급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 안보에 대한 발언을 한 것 역시 이와 연관지어 판단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북한이 우리 내부 분열을 꾀하고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으며 이럴수록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정부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면서 “군과 경찰은 특히 서해5도를 비롯한 북한과 인접한 지역의 감시 등 안보태세를 강화하고 다양한 유형의 도발에 대비해 치안유지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공직자들도 당분간 비상근무체계를 유지하는 등 추호의 소홀함이 없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말해 사실상 공무원들에 대한 비상경계령을 내리기도 했다.


북한의 장성택 처형으로 군사적 도발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대통령이 이에 대한 발언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이러한 발언을 연속으로 배치한 것에 아무런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보는 것 또한 어렵다. 일국의 대통령이 공개적인 발언을 하는데 당연히 그 정도의 고려는 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불확실성 우려로 지지층 결집…국정동력 확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이러한 발언의 정치적 고려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1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12월 둘째 주 주간집계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54.8%로 지난주보다 1.6%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5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0명을 대상으로 휴대·유선전화와 임의번호걸기(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다.


하지만 12월 둘째 주의 상황을 복기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을 불러올만한 직접적인 사건은 없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은 간접적인 요인에 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장하나 민주당 의원의 “대통령 사퇴 후 재선거” 발언과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의 “박정희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발언이 대표적이다.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연합뉴스)


여기에 결정적으로 북한 리스크도 불거졌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증거에 대한 규모가 커지고 점점 더 많은 국민들이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의 공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는 상황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의 불안정성이 부각되니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층이 결집했을 것이다.


무슨 이유로든 지지층이 결집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늘 자신감을 심어준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여론조사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는 순간이 되면 대통령이 위기 관리 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이것의 대표적인 예로 지난 7월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세제개편안이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휴지 조각이 된 사건을 들 수 있다. 이슈가 ‘월급쟁이 유리지갑론’으로 수렴되면서 중간층들의 지지가 야권으로 쏠릴 가능성이 커지던 시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통령의 북한 관련 발언은 지지층 결집을 보다 확실하게 유도해서 국정 수행 지지율을 뒷받침하게 하고 이를 동력으로 삼아 철도노조 파업에 원칙적인 대처를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대응은 길게 가봐야 소용이 없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번 주 들어 정부와 검·경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철도노조 파업에 대응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물론 철도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측면도 고려된 것이지만 이런 이유도 주요한 것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기관 선거개입-민영화 논란, 야권 지지층 하나로 묶어


하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대통령의 철도노조 파업 관련 발언은 다소 안이한 상황인식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소위 ‘민영화’ 프레임으로 야권 지지층을 최대치까지 결집하게 하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다.


국가기관의 부정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정부·여당의 강경한 태도는 민주당을 대정부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신세로 몰아가고 있다. 공공기관 혁신과 ‘투자활성화’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정책들은 철도민영화, 의료민영화, 학교사유화 논란으로 이어져 노동운동 등 전통적인 의미의 진보세력과 상대적으로 야권에 가까운 중간층들을 하나로 묶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그리고 철도노조의 파업은 이들이 대중적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제2의 촛불’이 되는 상황도 상상해볼 수 있을 정도다.


   
▲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수서 KTX 민영화 중단 및 철도 노동자 탄압 중단 촉구 각계 원탁회의' 기자회견에서 진보단체 참석자들이 철도 노조 탄압 중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여당은 반복해서 “민영화와는 관계가 없다”고 이야기 하지만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정부가 수서발KTX 법인 분리와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 허용 등 의료상업화 정책에 대해 “민영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설명하는 것은 오징어와 땅콩을 같이 구입하는 사람이 “아직 맥주는 안 샀다”고 얘기하는 것이나 똑같다.


정부의 정책은 단지 철도, 의료, 교육의 책임을 민간에 넘기는 것을 명시적으로 결정하지 않을 뿐이지, 그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전부 민영화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게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민영화론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금도 민영화 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민영화를 하자.” 이미 다수의 국민들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유례없는 호의적 여론이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대통령이 과감하게 포기해야


   
▲ 추운 겨울, 외로운 눈사람. (연합뉴스)

이쯤에서 각하께 충신의 입장에서 충심에서 우러나온 충언을 드린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현재 국면을 엄중한 것으로 인식하고 상황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다면 당장 해야 할 일은 국가기관의 선거개입과 각종 민영화 논란 중 최소한 하나 정도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권 1년 차에 위기를 맞고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던 지난 정권의 뼈아픈 경험을 되풀이하게 될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100%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던 것은 지난 정권의 과오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아마도 대통령은 이러한 정도의 결정도 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결단을 내리는 것은 자신의 정통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가 될 것이며 철도민영화 등의 논란에 대응하는 것 역시 정권 차원에서 선포한 공공기관 개혁과 서비스산업 선진화라는 대의를 스스로 거스르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정치적 결단이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제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주셔야 한다.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오로지 추운 날씨만이 대통령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 불행한 대통령에게 고독은 이제까지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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