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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으로 국내 안보태세에 대한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4일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북한 권력 재조정이 진행 중이며 군사능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김관진 장관은 “북한군 동향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전군 지휘관으로부터 각자 의견을 듣는 자리를 갖게 됐다”면서 이 날 회의의 주요 의제를 설명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인사들은 북한의 도발을 대비한 방법 등을 주요하게 논의됐다. 또, 같은 날 오전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수석실의 정례상황점검회의에서도 장성택 실각에 따른 급변사태 등에 대한 대응책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 김관진 국방장관이 4일 오전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하반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장성택의 실각이 곧바로 북한 내부의 급변사태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이 날 통일부는 “장성택이 모든 직책에서 해임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면서도 “현재까지 (장성택 실각에 관한 북한의) 공식적인 보도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서 앞으로 북한의 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브리핑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도 “북한에 큰 변화가 감지되지는 않고 있다”면서 별다른 군사적 행위의 징후가 포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국방부 등 안보를 책임지는 국가 기관이 북한의 대남도발 행위에 대한 대비책을 점검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며 긍정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내부의 혼란스러운 정황을 대남도발을 통해 수습할 가능성에 대해서 늘 우려를 갖고 대비해야 연평도 포격과 같은 비극적인 일을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언론 등이 군부 강경파 득세론 제기


하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일부 언론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는 ‘군부 강경파 득세론’이다. 보수언론 등은 장성택의 실각이 김정은의 1인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도 군부 강경파의 득세로 이어져 북한의 대남정책이 더욱 강경해질 수 있다는 식의 우려를 덧붙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관련 보도를 통해 ‘4차 핵실험 등 대남 강경도발 우려’라는 제목을 뽑아 경각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 장성택 실각 관련 4차 핵실험 가능성 등을 제목으로 뽑은 조선일보의 4일자 지면.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장성택의 실각은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과의 파워게임에서 진 때문인데, 최룡해는 군부 강경파를 대표하는 인사이므로 앞으로 김정은 체제의 대남정책에는 군부 강경파들의 입김이 거세질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그렇게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장성택의 실각으로 군부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이는 당(黨)-정(政)-군(軍)으로 구성된 북한의 통치체계와 최룡해, 장성택이 김정은 체제에서 나름대로 가졌던 역할배분을 고려하면 더욱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일부 언론은 최룡해를 군부 강경파의 대표선수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북한 군부는 야전지휘관 출신의 정통 군인들과 정치적 이유로 군부에 진출해있는 인사들로 구분해서 파악할 수 있다. 이 중 보통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대체로 야전지휘관 출신이고 후자의 경우는 상대적인 온건파로 분류된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군과 당, 정부의 관계가 각기 독립적으로 구성되었겠으나 항일유격대 등 ‘혁명적 군대’의 전통이나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 등으로 인해 북한의 당-정-군 인사는 군을 중심으로 사실상 뒤섞여버린 상황이다. 최룡해의 경우는 야전지휘관 출신이 아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당 출신으로 분류해야 한다. 최룡해의 군 경력은 사실상 2012년부터 시작됐다.


당이 중심이 되는 김정은 시대…최룡해는 당과 군 사이의 가교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정은 시대에 사실상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가 막을 내렸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 체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군 중심이 아닌, 당 중심의 국가운영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혁명적 사상을 당이 국가의 각 기관에 공급하며 따라서 국가의 모든 것을 당이 지도하는 체제가 일반적이다. 즉, 당 중심의 국가운영은 선군정치로 대표되는 일종의 ‘비상시기’를 마무리하겠다는 정치적 표현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군부에서 최룡해가 수행해야 했던 임무가 쉽게 이해된다. 즉, 최룡해는 김정일 시대에 득세했던 군부 인사들을 김정은이 통제할 수 있도록 당과 군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떠맡았던 것이다. 그가 ‘총정치국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점이 반영된 것이다. 총정치국장은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과 함께 북한군의 3대 요직으로 불리는데, 인민무력부장이 군정권을, 총참모장이 군령권을 가지지만 이러한 권한을 실질적으로 발동시키는데 필요한 정치적 결정은 총정치국장이 관여하게 돼있다. 그리고 이 정치적 결정은 당연히 혁명을 이끄는 당의 의지가 근거다.


  
▲ 북한 김정은 체제를 뒷받침해온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설이 제기된 가운데 지난 9월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북한 정권수립 65주년 기념일 행사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왼쪽),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왼쪽 둘째)이 함께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애초에 최룡해가 장성택의 측근으로 분류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이 애초에 그린 ‘당 중심의 김정은 체제’의 큰 그림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당-정-군의 체제에서 당·정의 실무를 장성택이 담당하고 군은 최룡해가 장악해서 최종적으로는 김정은 유일 지도체제를 공고하게 확립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이 점을 전제하고 장성택의 실각을 다시 돌아보면 군 강경파의 득세보다는 김정은 1인통치의 강화에 방점이 찍힐 수 밖에 없다는 점이 강조된다. 일부 전문가들이 종편 등의 특별편성 방송에 출연해 “장성택이 군부와의 파워게임에서 패배한 것이라면 최룡해도 위험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일부 언론에서는 장성택이 당·정에 상당한 권한과 인맥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실각할 경우 이 공백을 군이 채울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군의 권한 강화를 전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의 현 체제에서 일시적인 형태로라면 몰라도 명시적으로 장성택의 공백을 군이 메우는 형태의 체제개편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군 출신 아닌 당 출신 인사들이 장성택 공백 메울 가능성 높아


이는 최룡해 이후 북한군 내부 권력이동을 보면 어느 정도 해석된다. 그동안 언론은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에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장정남이 인민무력부장에, 리영길이 총참모장에 전격 발탁된 것은 군부 내 권력의 ‘물갈이’로 해석해왔다. 김정일 사망시 운구차를 호위했던 7인 중 2명이 남았다는 둥의 언론보도는 이와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만일 장성택이 실각했다면 당·정의 경우도 같은 프로세스로 김일성, 김정일 시대의 인사가 아닌 당 출신의 신진세력이 이 공백을 메우도록 하는 조치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장성택이 실권을 갖고 있었던 노동당 행정부가 무력화 될 경우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조연준 1부부장, 민병철 부부장 등이 주목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이를 뒷받침 한다. 이들은 김정은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직접 선발한 당료들이다.


이외에도 체제 운영의 패러다임이라는 측면에서 ‘고난의 행군’을 연상시키는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가 김정은 체제에서도 재현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점이 있다는 것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또, 군부가 자체 판단에 의해 장성택을 제거(?)했을 때 발생하는 정치적, 외교적, 실무적 공백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언론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김정은의 재가가 있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으나, 장성택의 실각이 정치적 기획에 따른 것이라면 김정은의 재가 정도가 아니라 김정은 본인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짚어볼 필요도 있다.


  
▲ 2012년 2월 평양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과 장성택 부위원장의 모습. 김정은 시대의 개막과 함께 민간인이던 장성택 부위원장은 '대장' 계급을 달아 군 내에도 영향력을 갖게 된 바 있다. (연합뉴스)


이런 모든 면을 종합해 봤을때 장성택이 실제로 실각했다면 이는 군부 강경파와의 파워게임에서 패배한 측면 보다는 김정은 1인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자연스러운 현상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대남도발 등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무슨 이유를 들어서든 그런 행위를 할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한 남북관계의 경색 등을 대비해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김정은의 1인지배 강화의 과정에서 장성택이 실각하게 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이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 김정은 본인의 입장에서도 장성택을 이 시점에서 무력화시킨 것이 잘한 결정인지 여부를 평가할 수 없다. 다만, 북한의 권력관계 이동을 핑계로 안보 불안을 부추기는 행태가 국내 정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언론이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글 대부분의 내용은 보수 언론의 기사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이 중에는 심지어 장성택 실각이 확실한 정보인지 의아해하는 목소리를 일부 인용한 기사도 있었다.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 이 글은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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