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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지금까지 미디어스에서 작성했던 기사 중, 최근 동향을 파악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글을 다시 게시한다.
이 글은 '경제부총리 재신임과 경제민주화 역행하는 대통령' 제하의 기사로 2013년 7월 24일 미디어스에 게재되었다.
( 링크 :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878 )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죽다 살아났다. 그간 교체설이 불거지던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현오석 부총리에 대한 재신임(?)의사를 밝힌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 출범이 늦어지면서 경제부총리가 제대로 일할 시간이 4개월도 채 되지 않았지만 열심히 해오셨다고 본다”며 “이제 하반기에는 국민이 성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경제 컨트롤 타워 역할을 더욱 열심히 해주시기 바란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 이혜훈 최고위원, 정몽준 의원, 김무성 의원 등 여권 전반이 현오석 경제팀의 현실인식을 문제삼아오던 상황을 대통령이 직접 정리한 셈이다.

 
 
▲ 현오석 부총리에 대한 공개적인 신임 의사를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한 조선일보의 24일자 기사.

하지만 따지고 보면 현오석 경제부총리에 대한 교체 여론 역시 대통령의 발언에서 시작된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사실은 이 사태의 핵심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에서 “부처별 협업과 관련해 한 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최근 주택 취득세 인하 문제를 놓고 국토부와 안행부 간에 논쟁이 있었다”라면서 “국민들과 밀접한 이런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 정부 부처들 간에 먼저 내부적인 협업과 토론이 이뤄져서 타당성 있는 결론이 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언론에 부처 간 이견만 노출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게 되면 국민들이 혼란스럽지 않겠는가”라며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경제부총리께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서 주무 부처들과 협의해 개선 대책을 수립하고 보고해주기 바란다”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권 전반의 현오석 부총리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는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 직후부터 커지기 시작했었다.

취득세 감면을 둘러싼 논쟁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현오석 부총리의 리더십을 질타한 9일과 23일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따져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사이의 변화가 대통령의 경제부총리에 대한 평가를 드라마틱하게 바꾸어 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자리 등에서 여러 문제를 지적하였지만 역시 핵심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취득세 영구 인하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취득세 영구 인하 문제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둘러싼 논란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제이다. 정부가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취득세를 한시적으로 감면해 시장을 활성화 시키고 감면 기간이 만료되면 다시 시장이 얼어붙는 악순환이 계속 반복돼왔다.

이번에도 지난해 9.10 부동산 대책으로 시작된 취득세 감면 혜택이 지난 6월 31일자로 종료된 이후 애초에도 좋지 않았던 부동산 경기가 더욱 얼어붙었다는 진단이 언론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지난 4월 야심차게 내놓았던 4.1 부동산 대책의 효과도 장담할 수 없는 것으로 되고 있다는 지적도 쏟아져 나왔다. 따라서 취득세 감면 혜택의 연장이나 영구 인하 문제가 주요한 이슈로 다뤄질 수밖에 없는 국면이 오게 된 것이다.

취득세를 인하하자는 쪽은 국제적인 기준을 놓고 봤을 때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취득세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미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우리나라의 취득세에 해당하는 세목에 평균 0.5%의 세율이 매겨지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부동산 가액 9억원을 기준으로 2%, 4%로 구분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결국 부동산 위해 서민에 고통 전가하는 셈

문제는 취득세가 국세가 아닌 지방세로 분류된다는 데에 있다. 지방세는 지방정부가 걷는 세금이다. 24일 YTN라디오 <전원책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전국시도지사협의회 김홍환 박사는 지방세에서 취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지방세 전체로 본다면 2011년 기준으로 26.5%를 차지한다”며 “다만 취득세가 (특별·광역)시도세이기 때문에 시도세에서는 36.5%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홍환 박사는 “원칙적 차원에서 지방세의 주인은 지방인데 중앙정부가 시도와 협의 없이 이것을 정책목적 과세로 활용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위기에 대한 지적은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돼왔다. 실제 올해 초 정부가 내놓은 ‘거시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채무는 2001년 17.8조원에서 2010년 28.9조원으로 61%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일부 지자체에서는 담배 구입을 자신들의 지자체에서 해달라는 캠페인을 벌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담배 1갑 2,500원 중 641원의 담배소비세가 지자체의 몫으로 걷힌다는 이야기다.


▲ 김관용 경북지사를 비롯한 전국시도지사들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정부의 취득세율 인하방침 발표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취득세율 인하 방침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는 주택경기부양 효과가 미미하고 부동산 시장을 왜곡시킨다고 주장했다. 왼쪽부터 안희정 충남지사, 김범일 대구시장, 허남식 부산시장, 송영길 인천시장, 김관용 경북지사, 김완주 전북지사, 유한식 세종시장 이시종 충북지사, 박맹우 울산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뉴스1)

때문에, 지금 취득세를 영구 인하하면 그렇잖아도 어려운 지방자치단체 재정 상황은 더욱 힘든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3일 17개 광역시·도 단체장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지방자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며 정부의 취득세 영구 인하 방침에 반발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지방자치단체 재정 상황이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복지정책이 축소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세입이 축소되면 결국 가장 줄이기 쉬운 부분부터 지출을 줄여나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로 인해 타격을 받는 것은 저소득층을 비롯한 서민계층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자체의 재정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안전행정부와 부동산 정책의 실효를 거둬야 하는 국토교통부가 취득세 인하를 놓고 충돌하는 것은 당연한 결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부총리에 대한 “각 부처 간 조율에 힘 써달라”는 주문은 결국 이 두 부처의 충돌에서 안전행정부의 양보를 끌어낸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 셈이다.

경제민주화 역행하는 박근혜 정부

정부가 24일 4.1 부동산 대책의 후속조치로 공공주택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미분양 공공주택을 임대주택으로 활용하겠다는 발표를 내놓은 것도 집값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맹점이 있다. 결국 대다수의 서민들이 부동산 문제 때문에 고통 받는 현실을 외면한 채 부동산으로 경기를 부양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이 2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수도권 지역의 주택공급물량을 줄이고, 미분양주택을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4.1부동산대책 실효성 제고를 위한 세부 실행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당선됐던 박근혜 대통령이 서민을 힘들게 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가 마치 선거용 슬로건에 불과했다는 인상을 받게 할 만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언론사 논설실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중요 법안이 7개였는데 6개가 이미 통과됐다.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발언했다는 사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세청이 23일 경기회복 속도가 느리고 재계가 크게 반발한다는 이유로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도 위와 같은 흐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달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국세청장, 관세청장, 공정거래위원장 등과 만난 자리에서 경제민주화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해달라는 주문을 한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재벌에 대한 규제와 서민에 대한 배려를 보여줄 것처럼 행동했던 박근혜 정부는 이제 노골적으로 국민들과 한 약속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고 하면 너무 가혹한 평가인가?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 행보를 평가하면 그렇게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인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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