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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2013년 국정감사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다. 아직 국감 일정이 모두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대략의 정치적 쟁점들은 충분히 다뤄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국정감사 정국 자체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국정감사는 각 기관의 업무 적절성 등에 대한 논의보다는 이전까지 형성된 정국에 국정감사 자체가 빨려들어가는 모습으로 진행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은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 등을 고리로 정부와 여당을 압박해갔으나 새누리당은 나름대로 노련한(?) 대처로 정국의 주도권을 지켜가는 모습이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지난 3일 국회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국정감사의 성과에 대해 “민주당의 일방적인 퍼펙트게임이었다”고 자평한 바 있다. 그러면서 전병헌 원내대표는 현오석 경제부총리, 남재준 국정원장, 황교안 법무부장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을 ‘철면피 5인방’으로 지칭하며 물러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국 전체를 조망해보자면 전병헌 원내대표가 주장하는 바처럼 이번 국감이 민주당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민주당의 ‘펀치’ 역시 매서웠지만 새누리당의 ‘방어’가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권력기관의 선거 개입 논란이다.

‘대선불복론’으로 부정선거 논란 방어

민주당은 국정감사 시작 직후부터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논란에 적극적으로 불을 붙였다. 특히 국정원에 이어 국군 사이버사령부와 국가보훈처의 선거개입 의혹을 터뜨린 것은 나름의 성과로 자평할만하다. 이로인해 2012년 대통령선거에 정권이 개입한 상당한 규모의 부정이 저질러졌다는 점이 국민 여론 사이에서도 강조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러한 공세는 정부와 새누리당이 설정한 세 가지 프레임에 의해 위력이 반감되게 됐다. 그 첫 번째는 ‘대선 불복’ 프레임이다. 민주당이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을 말할 때마다 새누리당은 일관되게 대선 결과에 불복하지 말라는 식의 반격을 가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대선에 불복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라는 구질구질한 설명을 덧붙이며 나름의 수위 조절을 해야만 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경쟁했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의 행보도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크게 긍정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될 필요도 있다. 문재인 의원은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 등의 선거개입 의혹이 제기되던 지난달 23일 성명을 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대선을 치렀던 당사자로서는 당연히 내놓을 수 있는 반응일 것이나 정치적 기술이라는 관점에서는 다소 부적절했던 반응이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즉, 아예 사이버사령부 관련 의혹이 터져나온 직후에 분위기를 몰아 각을 세우던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면 대선불복 논란을 의식하고 성명의 내용을 다듬었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문재인 의원의 성명으로 새누리당은 ‘대선불복론’을 본격적으로 꺼내들 수 있게 됐다.

공무원노조의 예 등 ‘피장파장’ 프레임으로 선거개입 논란 진화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공세를 방어하기 위해 설정한 두 번째 프레임은 공무원노조에 대한 공격이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의혹이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국면이 되자 “공무원노조가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며 공정한 수사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선 당시 공무원노조가 문재인 후보 측과 정책협약을 맺고 SNS 등을 통한 선거지원 행위 등을 한 것은 공직선거법,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등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문재인 후보 측이 공무원노조 측에 공무원의 정치활동 허용과 해고자 복직 등을 약속한 것도 문제가 됐다.


▲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안탄압 규탄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앞으로 정부는 모든 선거에서 국가기관은 물론이고 공무원 단체나 개별 공무원이 혹시라도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엄중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발언한 이후 새누리당 정치인들의 주요한 ‘레퍼토리’가 되다시피 했다.

일반 국민의 관점에서 이런 식의 ‘피장파장’ 프레임은 정치적 냉소주의를 다시 상기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정권을 누가 잡으나 똑같았을 것”이라는 식의 여론이 횡행할 가능성에 대해 염려해볼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 정권이었어도 새누리당 못지 않은 선거 개입을 했을 것인데 이제 와서 저러는 건 대선에 졌기 때문이다”라는 게 이런 주장의 정리된 버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민주당의 날카로운 펀치가 빗맞게 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발목잡기’ 프레임으로 연말까지 정국 주도권 확보 시도

정부와 새누리당의 세 번째 프레임은 ‘정쟁을 그만두고 경제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다. 이는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달 28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철젛나 수사를 촉구하면서 정치권에서 경제활성화 법안 등의 처리에 집중해야 경기회복의 불씨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홍원 총리의 담화 이전인 지난달 23일과 24일에도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국회에서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지 않아 곤란하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정부와 여당은 민주당 측을 향해 국회가 싸우기만 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은 국회가 임무를 방기하기 때문이며, 임무를 방기하게 된 핵심적인 원인은 민주당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 때문에 정쟁에 몰두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연말 국회에는 ‘예산 전쟁’이 예정돼있고, 이와 관련해 예산이 통과되지 않아 정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식의 여론몰이가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이 프레임에 섬세하기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됐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야당이 발목잡기를 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도처에서 제기될 것이고 이러한 상황을 길게 가져가는 것은 2014년 지방선거를 대비해서도 결코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새누리당의 나름 효과적인 방어로 민주당 측이 국정감사 기간 동안 전면적으로 내세운 있는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공약 후퇴, 역사교과서 등 이념 논란 등 전략의 효과가 상당부분 차감되게 된 셈이다. 애초에 민주당 측의 국정감사 전략이 유효했던 것인지를 잘 살피고 이후 전략을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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