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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탄핵취하론에 대하여

조회 수 1110 추천 수 0 2004.04.17 18:21:00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와 노회찬 의원의 부적절한 발언을 비판하면서, 탄핵반대 촛불시위의 너무 많이 나간 지점까지 비판하고 있는 글이다. <남자의 탄생>의 저자인 정치학자 전인권의 분석에 따르면, 탄핵에서 총선에 이르는 기간까지 심지어 조중동의 사설에서도 촛불시위에 대한 비판은 (가령 야간집회가 허용되니 마니 문제와 같은) 지엽적이고 법리적인 부분에 집중되어 있었다. 헌법정신에 의거한 비판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한편 노무현 지지자측에선, 도올 김용옥의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과 같은 글을 찬양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나는 이글루스 블로그에서 김용옥의 글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지금 남아있지는 않다.
 
이 글의 네번째 문단의 팩트는 틀렸다. 나는 "직접민주주의가 가장 융성했던 고대 아테네에서도 장군만은 시민의 선거로 뽑지 않았다 한다."라고 적었는데, "장군만은 시민의 선거로 뽑았다."가 맞는 말이다. 나머지 공직은 시민들끼리 뺑뺑이로 돌렸다. 페리클레스는 그렇게 선출된 '장군'이었다. 머리속에서 뭔가 혼동이 있었던 모양인데, 결과적으로 '그리스 사례'는 적합한 인용이 아니었다. 그 점을 감안하고 보면 나머지 부분은 다 그럭저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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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대표와 노회찬 의원이 "대통령 사과, 정치권의 탄핵 취하"를 주장한 모양이다. 이러한 정치적 선택은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잘못된 부분이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원 대부분의 관심은 그 선택의 잘못이 아니라 그 선택이 지향하는 방향일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선명한 좌파정당의 색깔을 드러내느냐, 아니면 보수정치권의 중재 역할까지 떠맡아야 하느냐를 두고 말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에서 절충적인 입장인 편이므로, 일단 그 논쟁에선 빠지기로 한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이 정치적 선택의 잘못된 부분이다. 대다수가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잘못된 일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권영길과 노회찬의 잘못이 양적인 면에서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잘못이 그들의 정치적 선택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잘못의 질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 부분을 말하고자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애용하지만, 다수결만의 체제는 아니다. 다수결이 다수의 폭력으로 전화될 경우 소수자들은 타율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되며, 이는 민주주의의 이념에 대한 부정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원칙적인 부분을 남겨둔다. 그리고 우리의 헌법은 바로 그 원칙의 내용과 작동하는 방식을 서술하고 있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 이외에도 다수결을 제약하는 부분은 있다. 직접민주주의가 가장 융성했던 고대 아테네에서도 장군만은 시민의 선거로 뽑지 않았다 한다. 장군직을 수행하려면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업화가 진행된 현대에선 물론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가 훨씬 많을 것이다.


탄핵반대 촛불시위는 주권재민의 원리를 천명하는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이 점에 대한 감각이 없어 보인다. 검찰에 연행된 노사모-국민의힘 회원들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민의를 탄압하느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들의 행동이 헌법정신에 입각해 있으므로, 검찰이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옳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옳지 않다. 검찰은 원래가 선출될 수 없는 권력이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과는 좀 다른 존재이다. 그들의 주장은 다수결의 절대화, 한국적으로 말하면 '국민정서'에 대한 부화뇌동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탄핵반대 시위가 지나치게 오랜 시일동안 계속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것은 말하자면 월드컵 끝나고 난 뒤에도 붉은악마가 광화문에서 진치고 있는 격이다. 수구세력과의 싸움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그럼 한-이태리 경기 끝나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광화문에서 이탈리아 욕하는 격이라고 치자. 이미 국민의 여론은 국회에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과 정당은 자신의 행위의 일관성을 지킬 권리가 있다. 탄핵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고수할 권리가 있다. 그걸 물리적으로 두들겨패서 바꿀 수는 없다. 게다가 그 권리를 지킨 덕에 총선에서 참패했으니, 실질적으로는 두들겨팬 거나 다름없다. 한편 이미 헌법재판소에선 이 문제를 두고 심리가 열리고 있으며, 아무리 늦어도 몇 달 안엔 판단을 내릴 것처럼 보인다. 이 마당에 탄핵반대 시위를 계속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좋지 않다.


헌법재판소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그러나 그들은 선출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들은 다수결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명 한명이 헌법정신의 현현이다. 현실적으로 그들이 여론에 의해 좌우되는 부분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들에게 여론의 압박을 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서는 곤란하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달리, 그들은 여론과 별개의 존재(로 보여져야 한)다. 그러나 일부 노무현 지지자들은 헌재판사들의 성향을 지적하면서, 가열찬 시위로 그들의 판결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올바르지 않다.


만약 헌재가 탄핵안에 가결 판정을 내린다면, 그들은 헌법정신의 현현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이 경우엔 전국민적인 저항이 정당화된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들의 권위를 부정할 어떠한 명분도 없다. 헌재가 헌법정신의 수호자로서 부당한 탄핵안 사유에 대해 부결 판정을 내리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땐 심상정 의원의 발언이 가장 정치적으로 적절하다. 즉,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미 헌재로 넘어가 있다. 하지만 17대 국회의 활동을 위해 헌재가 조속한 시일내에 부결 판정을 내려주길 희망한다." 이것은 흠잡을 데가 없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헌재판정을 기다리자."는 말도 원칙적으로 비난할 바는 못된다. 물론 기다리자는 선택과 별개로 "탄핵이 아직도 올바르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던질 수 있고, 이에 대해 "그렇다."라고 대답한다면 비판할 수 있지만 말이다.


정치영역에서 언제나 원칙에 100% 합치하는 선택을 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그 선택이 어떤 원칙의 어떤 부분을 어느 정도 일탈하고 있는지는 명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중대한 원칙을 전면적으로 거스르는 큰 실수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에겐 이런 식의 비판이 필요하다.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유감이 많다. 나는 보수주의자들이야말로 제도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그 분야에 있어서 낙제점이다. 한나라당쪽 사람들은 실정법을 엄정히 수행하는 것을 제도 수호로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상위원칙과 하위원칙의 구별이 없다. 그래서 헌법을 버젓이 어기면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 주장하고, 집시법 위반자를 잡아가두면서 그게 민주수호라고 한다. 한심한 일이다.


열린우리당쪽은 실정법에 크게 얽매이지는 않는데, 제도상의 상위원칙에 근거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당파의 지향에 의해 행위에 대한 판정을 내리는 것 같다. 사실 그것은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 정도가 해야 할 일이다. 그게 잘한다는 일도 아니고, 제도의 수호자들이 피식 웃으면서 "뭐 좋은 짓하려고 그랬으니 그 정도는 이 정도로 용서해주지." 할 일이다. 발전된 사회일수록 가치지향적 행위에 대해선 관용성이 커진다. 그러나 그렇다하여 행위자가 범법행위를 하면서 "이 행위에 대해선 이 정도론 관용해야돼!"라고 요구하는 것은 쪽팔린 일이다. 본인이 처벌받으면서 악법을 개정하겠다는 자세가 제도와 가치지향에 대한 절충안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나는 이러이러했으니 처벌받지 않겠다고 한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에서 흔히 범하는 오류일 텐데, 사회 전체적으로 제도에 대한 감각이 길러지기 전까진 그런 자의적인 행동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범법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겐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고 교육하는 것이 옳다.


누군가의 말대로, 사회는 철든 보수가 철없는 진보를 다독다독이며 나아갈 때 안정된다. 진보가 철까지 들어 철없는 보수를 견인해야 하는 사회는, 너무 힘겹다. 민주노동당에게 제도적 감각을 갖출 것을 요구해야 하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p.s 서프라이즈 사람들이 "너희들은 공무원 노조 옹호하면서 왜 대통령보곤 사과하려고 하냐"라고 한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래서 "왜 대통령에게 되는 일이 공무원에게 안되냐?"는 식의 논법이 안 좋다고 하지 않았나. 어차피 노무현 잘했다고 할 것도 아니면서. 물론 캐고 들어가면 서프 사람들 말은 안 맞다. 민주노동당 공식 입장은 유럽의 기준에 준하여, 정치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는 7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자이다. 일관성이 없는게 아니라, 아주 논리정연한 입장이다. (대통령의 행위에 대해선 무입장이거나, 아직 정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진보누리의 담론조성 방식이 상대방의 부메랑 논증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매우 취약한 것이었다는 점은 유감이다. 이전에 이 문제로 글도 한번 썼는데 왜 아무도 못 알아들었는지 나로선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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