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도박사의 위기론

조회 수 1093 추천 수 0 2004.04.13 18:07:00
유시민 의원이 2004년 총선 직전에 제기한 '죽은 표' 논쟁에 대한 글들 중 하나. 글 참 많이도 썼지만, 내적으로 완결된 글만 두편 뽑아서 올리도록 한다. 진보누리에 아흐리만이란 아이디로 올린 글.
---------------------------------------------------------------------------------------------
일단 유시민 의원은 나와 가치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인데, 민주노동당의 표를 뺏어오는 것이 무엇이 잘못된 일이냐고 묻는다. 민주노동당도 열린우리당 표 뺏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건 잘못된 일이 아니다.


문제는 표를 뺏는 방식이다. 개혁당 시절 유의원은 노동당 당직자 최병천 씨와의 논쟁에서 노동당은 구사회주의 정당에 가깝고, 오히려 개혁당이 사회민주주의 (유의원이 예시로 드는 사민주의는 내가 생각하는 사민주의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제3의 길 노선 정도인 듯 하지만) 노선으로 나아갈 수 있거나, 혹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와 같은 논쟁으로 표를 뺏으려 한다면, 그건 매우 정당한 것이다. 유의원이 민주노동당을 경쟁상대로 생각한다면, 그런 식으로 해야 한다. 노선과 정책을 문제삼거나, 실책을 문제삼아야 한다. 과거 대선 때 권영길 대표의 발언 중 일부 내용을 비판한 적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상대방의 표를 사표로 몰아붙이는 행위는 민주노동당을 경쟁상대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종속변수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비윤리적인 것이다. 나는 그것이 선거운동원들의 지역감정 유포와 양적으로는 차이가 있을 지 몰라도 질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유의원이 열린우리당 선거운동 '조직'의 전략가로써, 운동원들에게 그런 지침을 내렸다면, 들키지 않는한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숨어서 활동하는 도둑은 적어도 도둑질이 나쁘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유의원처럼 열린우리당의 지지자에게 그런 지침을 내리는 것이 정당하다고 믿으면 문제는 매우 복잡해진다.  


유시민 의원의 억울한 심경을 고려하여, 그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해 보자.

1. (팩트)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2. (팩트)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당수 지지자들이 민주노동당으로 이탈했다. 혹은, 과거처럼 열심히 선거운동 안하고 부동층의 노동당 흡수를 방치하고 있다.
3. (예상) 지지율 추이를 알게 된다면 그들의 선택은 달라질 것이다.
4. (가치판단) 유권자들에겐 전략적 투표의 권리가 있고, 지지율 추이에 대한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5. (결론) 나는 지지율 추이를 알려서 유권자들이 응당 행했어야 할 행위를 실현시키겠다.


사실 그의 생각은 결론을 제외하고는 내 생각과 별 차이가 없다. 2000년 총선 당시 그는 동아일보에서 (내가 그의 글을 이렇게 많이 기억하는 이유는 집에서 동아일보를 구독했기 때문이다.) 선거운동기간 중 여론조사공표 금지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전략적 투표(비판적 지지)의 권리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유권자의 전략적 투표가 전혀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지식인 유시민은 당시 여론조사의 내용을 몰랐기 때문에 동아일보 칼럼에 "여론조사 공개해야 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유시민이 여론조사를 몰랐을까? 한때 정치권 언저리에 있던 그가 알려고 한다면 알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설령 그가 여론조사의 내용을 알았다 하더라도, 칼럼에는 "몰라서 답답하다."고 쓰는게 정답이다.


국회의원 유시민에겐 어떨까? 열린우리당의 지지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지지가 필요하다는 주장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유까지 자세히 지적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의 상황인식이 옳다면, 지지율하락을 말하기만 하면 유권자들의 표는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민주노동당의 표를 사표로 만드는 모험을 감수해야 할까? 그게 그에게 전혀 (윤리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무슨 글에 그렇게 군더더기가 많은가? 그에게 문제가 되는 제도가 여론조사 공표 금지라면, 과거처럼 그 제도에 대해서만 발언하거나, 국회의원으로써 그 내용에 대해서만 일부 발언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공론의 영역이다.


그의 지침은 그의 말대로, 중간 성향의 지지자에 대한 운동 전략으로 효과적일 것이다. 그래서 선거운동원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에까지 신경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유시민 의원은 대답해 보시라.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이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찾아가서 읍소하는 것이 그러한 선거운동이란 말인가? 그게 중간지지층에 대한 선거운동인가? 그런 행위에 대해 한마디 코멘트할 생각은 없는가?)


다만 그런 식의 선거운동이 사라지는 날이 오늘날보다 더 발전된 날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그 전략이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일종의 '버그'를 활용한 전략이란 점은 분명하다. 정치인으로서, 유의원이 '버그'에 문제를 느낀다면 버그를 해소할 수 있는 비례대표의원 확대나 결선투표제를 주장해야 마땅하다. 버그를 활용한 전략을 태연히 사용하면서도, 당연시하고, 거기에 피해를 보는 측에 그것이 정당한 선거운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차마 못할 짓이다.


윤리적인 얘기야 아무리 해봤자 입만 아프니 그 여론조사 추이에 대한 호들갑에 대해서도 조금 얘기해보자.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신문을 찾아보니 전문가들은 어느 쪽이 1당이 되든 130-140 석에서 결판이 나는 박빙승부를 예상하고 있다. 낙승에 대한 전망이 팽배하던 한달 전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위의 전망은 어느 쪽이 일당인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는 팽팽한 세력의 양당이 탄생한다는 전망이다. 여기서 1당이란 건 그야말로 하나의 상징일 터이고, 별다른 실질적인 효과는 없다. 민주노동당이 열석 정도는 무난히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현시점에선, 열린우리당이 개혁시책을 추진하려고 한다면 무난히 통과시킬 수 있는 의석이다. 지금보다 300%는 더 많은 의석이다.


그런데 '차떼기당 1당'을 두려워하는 수사는 어떠한가. 차떼기당 1당되면 헌재가 탄핵가결 시킬 거라느니, 경제공황이 올거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난무한다. 헌재 심판은 1당 놀음으로 판정나는게 아니다. 그건 정동영 의장이 재신임의 방식으로 좋아하는 것이고, 헌재의 심판관들은 그와 견해가 좀 다를 것이다. 또다시 탄핵사태가 오려면 국회 2/3 의석을 차지해야 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경제공황을 말한다면 도대체 '차떼기당'이 혜성처럼 나타나 오늘 갑자기 1당이 되었단 말인가?


의석이 적어 고난받았던 과거사를 눈물로 읆조린다. 하지만 이미 열린우리당은 도박에 성공했고, 배당금을 충분히 받았다. 자그마치 원금의 300%다. 앞으로 1당이 되든 못되든 돈없다고 설움받을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열린우리당이 1당 못되면 민주노동당에 책임을 묻겠다는 분들은 자중하시기 바란다. 현재와 같은 여론조사 추이에서는 누가 1당이 될지 예측하는 것은 점쟁이들의 게임이다. 오차범위내 접전이 모두 한나라당의 승리로 돌아가 한나라당이 과반수당이 되는 기적이 발생한들 그게 어찌 노동당의 책임이겠는가? 하지만 그런 기적은 쉽게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오차범위내 접전이 거의 없어 여러분의 의석을 투명하게 예상할 수 있는 그런 기적같은 일도 앞으론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탄핵정국이 비정상적인 정국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의 선거에 있어, 불확실성은 참여자들 누구나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열린우리당의 지지자들은 그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고 진보정당 지지자를 닥달하는 경향이 있다. 선거운동이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히스테리는 그들이 평소에도 지나치게 도박을 즐겨하는 데서 연유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스릴은 흥미있는 것이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은 스릴과 스트레스를 견뎌내며, 너무 많은 도박을 통해 지금 그 자리에 섰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위기론을 '도박사의 위기론'이라 부른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1 성두현-주대환/ 민주적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하뉴녕 2004-05-17 1795
120 주대환 밖에 없었다. (2/2) 하뉴녕 2004-05-14 1026
119 주대환 밖에 없었다. (1/2) 하뉴녕 2004-05-14 1107
118 김창현 비판, 어디까지 정당한가? 하뉴녕 2004-05-12 1385
117 권영길 대표님, 결단을 내리십시오. 하뉴녕 2004-05-05 927
116 개혁당 해산이라는 사기극 [1] 하뉴녕 2004-05-03 2280
115 심상정, 단병호 당선자가 민주노총 설득해야 하뉴녕 2004-05-01 975
114 민주노동당, 노회찬을 아껴라 하뉴녕 2004-04-28 910
113 교섭단체 요건 조정 요구는 민주노동당의 실수 하뉴녕 2004-04-21 1629
112 정치적 탄핵취하론에 대하여 하뉴녕 2004-04-17 1110
111 누더기 경전의 나라 하뉴녕 2004-04-14 941
110 유시민 사표 논쟁 재론 하뉴녕 2004-04-13 1475
» 도박사의 위기론 하뉴녕 2004-04-13 1093
108 “민주 대 반민주”에 대한 생각 하뉴녕 2004-03-23 1183
107 '시민'이라는 이데올로기 [1] 하뉴녕 2004-03-22 1736
106 노무현 지지자들, 웃기고 자빠졌다! 하뉴녕 2004-03-19 1219
105 노빠를 위해 열린 거리? 하뉴녕 2004-03-17 895
104 민주노동당, 노무현을 반면교사로 삼아라. 하뉴녕 2004-03-15 1276
103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행동은 윤리적이다. 하뉴녕 2004-03-13 1129
102 민주당은 정파적 이해 때문에 파병반대한다? 하뉴녕 2004-02-15 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