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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시민'이라는 이데올로기

조회 수 1736 추천 수 0 2004.03.22 17:48:00
이 글은 진보누리에 아흐리만이란 아이디로 올린 것인데, 진중권이 리얼타임으로 쪽글로 '매우 잘 쓴 글'이라고 칭찬한 글이다. 그때는 아직 (덧붙임)은 쓰지 않은 상태였다. (덧붙임)은 글을 완성한 직후 수정본에서 추가했다. (덧붙임)을 보면 내 취향이 '해체'에서 끝나는 것을 안 좋아하고, 뭔가 더 합리적인 무언가를 구성하는 쪽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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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지지자들의 민주노동당 비판이 100% 틀린 것은 아니다. 가끔은 적절한 것도 있고, 감정이 너무 섞여있어서 그렇지 논점이 될 만한 것들도 있다. 나는 노지지자들의 민주노동당 비판을 전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비판의 수단으로써 '시민'이라는 용어가 대단히 부적절한 방식으로 사용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일차적으로 시민은 사회 내에서 어떤 특정한 집단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 권리를 가진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이론의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시민'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종 노무현 지지자들이 "시민의 관점에 서라!"고 말할 때는, 그 시민에 '민주노동당 지지자'나 '노동자'가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어법은 매우 듣기 거슬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해 노무현 지지자들은 다른 설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시민'이 그러한 정치적 권리자의 의미가 아니라, 비록 약간 두리뭉실할 지라도 '일반시민', '평범한 대중'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치에 대해 별 관심이 없거나, 특정한 정당/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 '일반인'들을 일컫는 말이라는 것이다.


첫째로, 정말로 그러한 의미라면 '시민'이란 말보다는 '정치적 무관심층', 혹은 '부동층'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좋겠다. 시민이란 노무현 지지자들이 큰 의미를 둘 '공화주의'를 위해 매우 중요한 개념일 텐데, 이 개념을 이렇게 두리뭉실하게 "우리가 설득해야 할 대상" (왜 '우리'에 '노무현 지지자'와 '민주노동당원'을 함께 포함시키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정도로 활용하는 것이 다음을 위해서라도 좋은 일은 아닐 것 같다.


둘째로, 이러한 의미로 봐준다 하더라도 노무현 지지자들의 어법은 모순될 경우가 많다. 가령 그들은 "민노당식의 양비론은 시민의 관점, 대중의 관점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여러 사람에게 얘기를 들어본 바로는, 민노당식 양비론(?) -그러니까, 탄핵의 일차적 책임은 한민당이지만 탄핵 정국엔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도 일부 있다고 주장하는- 에 동의하지 않는 '정치적 무관심층'을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노무현과 여당의 잘못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태도에서 편향을 느낀다고 한다. 이것이 양비론이라고 '크게' 분노하는 사람들은 대개 노무현 지지자들이며, 내 생각엔 그 중에서도 다수는 아닌 것 같다. 이 부분만 따진다면 오히려 민노당의 주장이야말로 (그들이 말하는 식의) '시민의 관점', '대중의 관점'에 가까운 것이 아니겠는가.


셋째로,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할 경우 많은 극렬 노무현 지지자들은 "그 시민들은 조중동의 이데올로기에 세뇌당해 있으니까!"라고 반응할 것 같다. 여기서 '시민'이란 개념은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하고 부유하게 된다. 요리조리 도망가다가, 흔적도 형체도 사라져버린 '시민'.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그 개념을 포기하지 않으며 민노당에 '시민'의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할 것이다.


비판의 (그것도 아주 온건한) 어법에 대해서 "조중동의 이데올로기"를 핑계로 들이대는 순간, 노무현 지지자들은 노무현 지지자들과 조중동 독자, 그리고 민주노동당원을 넘어서(혹은 제외하고) 사태에 대한 견해를 가진 '시민'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시민은 없기 때문이다. 아니, 기준이 너무나 두리뭉실해서 언제나 (노무현 지지자들이 원할 때는) 생겼다가 (노무현 지지자들이 원하지 않을 때는)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시민'이란 말이 지니는 진짜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정치적 무관심층이나 부동층을 향한 관심? 그건 아니다. 조중동 독자 설득하기? 그것도 아니다. (조중동 독자들의 관점에 대한 노무현 지지자들의 적개심은 아주 살벌하지 않은가.) 그 용어는 오직 민주노동당 지지자에게 노무현 지지자의 '감정'을 거스르지 말 것을 강제하는 데에만 사용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묻게 된다. 노무현 지지자'만' 시민인가?


**********
(덧붙임)
나는 '시민적인 관점'이란 것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 모든 시민의 이득에 부합하는 부분을 칭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정치적 무당파층은 실존할 필요는 없지만, 이론적으로 '요청'될 수 있다. 나의 정치적 입장을 떠나 '시민'의 입장에서 판단하면 '시민적인 관점'을 취할 수 있다고 보자는 것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시민적인 관점'은 보편적인 것으로 보이나, 사실 많은 부분이 역사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민주노동당적인 입장의 상당수는 정치적 무당파층을 상정하더라도 전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파와 우파의 논쟁은 시민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을 넘어선 것이다. 이 논쟁의 결과물이 다음 세대의 '시민적인 관점'을 구성해 낼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 지지자들이 말하는 '시민적인 관점'은 흔히 자신들의 모든 정치적 견해를 포장하는 데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좌파들의 주장이 그 견해를 먼저 받아들인 이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증을 위해 사용된다. 그러나 '시민적인 관점'이 좌우파 논쟁의 '토대'라면, 그것은 결코 단계론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토대란 지금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토대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의도하지 않게 우리의 싸움이 다음 세대의 토대를 (결과적으로) 구성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것 이후에 이것을 해라."고 주문할 때, 사실 노무현 지지자들은 '시민적인 관점'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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