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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노빠를 위해 열린 거리?

조회 수 895 추천 수 0 2004.03.17 17:36:00
탄핵반대 시위에 냉소적인 좌파들에게 보내는 글이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은 그 시위에 나가지는 않았다. 진보누리의 아흐리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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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탄핵반대 시위를 두고 "시민혁명"이니 "87년의 재림"이니 과잉된 수사를 남발하는 노무현 지지자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논쟁 공간에서 이런 말할 수는 없지만) 솔직히 쟤들도 다른 시위대처럼 맞아봐야 대한민국의 '진실'을 알게 될텐데."


조금 지난 일이지만 부안사태가 악화된 원인에 대해 나는 사석에서 우스개소리(?)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정말 한심한 경찰들이야. 아니 세상에 지역주민 시위대를 운동권 때려잡듯이 두들겨 패? 그러니 사람들 열 확 받았지... 그런 일 당하고도 참거나 외면당하는 건 운동권 밖에 없다구!"


한국인들의 정서적인 감정이입의 범위는 참으로 한심할 정도다. 전경에게 얻어터지는 운동권에겐 감정이입을 할 줄 몰라도 부안주민들에겐 (어느 정도) 감정이입을 할 줄 알고, 같은 일을 당하는 사람이라도 국적이나 출신지역에 따라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와 안 되는 경우가 있다. 흔히 그 감정이입 범위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다 누리는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연대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꿈꾸는 사람 님의 "노동자에게 닫힌 거리, 노빠를 위해 열리다."의 내용을 선의적으로 해석하자면, 그러한 울분에 기반했다고 생각된다. 노무현 정부가 노동자 대회, 농민 대회와 부안 시위를 거치면서 개악한 집시법을, 탄핵반대 시위에 있어서만큼은 적용시키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예외적 해석을 적용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번 집회를 풀어준다는 사실이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다른 집회를 묶어놓았다는 것, 그리고 이번 집회를 풀어주는 예외 상황의 논리가 설득력이 없다는 것, 그 예외 상황의 논리를 볼 때 앞으로의 다른 집회를 풀어줄 전망도 안 보인다는 것 등이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꿈꾸는 사람 님은 거기서 너무 나아간다. 제목에서 확연히 드러나듯이, 탄핵반대 집회를 노무현과 열우당을 돕는 정치적 행위로 규정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노빠'라고 규정하며, 마침내 노무현 정부가 "노빠들을 위해" "거리를 열었다"고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언이 옳지 않음을 지적하기 이전에, 단언에 이르기까지의 논리 전개가 가진 무리함부터 지적해야겠다. 꿈꾸는 사람 님은 "문화집회이기 때문에 허가한다."는 정부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탄핵반대 집회는 문화집회가 아니라 정치집회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부가 허용한 문화집회의 예로 든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는 당리당략적 이해관계를 넘어 우리 사회 공통의 견해로 묶일 수 있는 성격의 것이므로, 이와 상황이 다르다고 말한다.


꿈꾸는 사람 님은 정부의 논점을 하나하나 비판하고 있기는 한데, 묶어놓고 생각하면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도대체 여중생 추모집회는 문화집회란 말인가, 아니란 말인가? 정치집회이긴 한데 좀 특수한 정치집회란 얘기인가? 이러한 혼동이 나온 까닭은 꿈꾸는 사람 님이 '문화집회'와 '정치집회'라는 정부의 어이없는 변별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집회의 성격은 정치적이며, 단지 문화적인 이슈와 정치적인 이슈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령, 대중음악개혁연대의 집회는 문화적인가, 정치적인가? 이런 질문은 우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치집회는 "중앙정치(혹은 거시정치)에 관련된 집회"일 뿐인 것이다.


따라서 "탄핵반대집회가 문화집회라는 정부의 말은 틀렸다", 라는 주장은, 그 '정부의 말'만큼이나 적절치 못하다. 문제의 핵심은 그런 식의 변별이 명료성도 없거니와 집회를 규제함에 있어 전혀 타당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와의 비교 역시 사뭇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당리당략적 이해 관계를 넘어선 집회"와 "당리적인 집회"가 따로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 모든 집회는 자신의 존재 근거를 "당리당략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찾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당파에게 이득을 주게 된다는 점에서 '당리당략적'이다. 가령 노동운동 집회는 노동자(만)을 위하는 당리당략적 이해관계에 빠져 있는 것으로 (흔히 사람들에게) 매도되지만, 실제로 집회참가자는 "(이) 노동자들에게 (이 정도의) 대우를 해주는 것이 사회의 형평성에 맞다."는 보편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탄핵반대 집회가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민주당에 해가 되고 열린우리당에게 이득이 될지라도, 그들의 내적 논리인 "민주주의 질서 수호, 국민의 뜻을 대변하지 못하는 국회 규탄" 등의 보편적인 주장은 엄연히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집회는 당리당략적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그 집회가 주장하는 '보편성'에 나는 동의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탄핵반대 집회는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에 버금가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탄핵반대 집회가 한나라당 민주당에게 해가 된다는 말은,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가 대선에서 한나라당에게 악재로 작용한다는 말처럼, 그 집회의 보편성에 대한 반박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  


설령 광화문에 집결한 사람들이 모조리 노무현 지지자이며, 그들이 열린우리당의 총선승리를 위해 복무함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집회의 구호의 보편성에 대한 평가는 있어야 한다. 그것을 거부하는 건 "동성애자는 아무리 동성애 옹호를 논리적으로 펼친다 해도, 자신의 이득을 위한 것이므로 인정할 수 없어."와 비슷한 사고방식의 발로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발생적 오류이며, 대인논증의 오류다.


게다가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을 '노빠'란 단어로 묶는 것은 팩트의 오류다. 노무현 대통령의 처신이 올바른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0%에 지나지 않는데,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은 70%다. 이 40%의 간극 사이에 놓여있는 시민들의 분노는 노무현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요,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의회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다. 주위에서 나이 많은 한나라당 지지자나, 무당파나, 혹은 민주노동당 지지자가 광화문 집회에 참가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민주노총과 전농 등이 그 집회에 참여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나는 비록 그 집회에 참가할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지만, 그들의 선택에 대해선 존중한다.


우리는 탄핵반대(정확히 표현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노무현 탄핵 반대') 운동의 근거를 인정하면서도, 그 운동의 결과가 열린우리당 지지로 귀착될 위험성에 대해선 비판적일 수 있다. 후자가 무섭다고 전자를 제거하는 것은 목욕물 버리려다 애까지 버리는 격이며, 논리적인 오류이며, 대중성의 상실이다. 우리는 이처럼 과정에서는 손쉬운, 하지만 결과로는 뼈아픈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꿈꾸는 사람 님의 글이 비록 커다란 시사점이 있다고는 하나 내가 언급한 부적절한 지점을 상기할 때, 진보누리에 메인화면에 올라가는 것은 적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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