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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민주 대 반민주”에 대한 생각

조회 수 1183 추천 수 0 2004.03.23 17:52:00
주로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 지지자들의 세계관을 논파하는 글인데, 마지막 문단에서는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소박한 평가가 나온다. 좀 길지만 읽을 만한 글이다. 진보누리에 아흐리만이란 아이디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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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탄핵정국을 민주 vs 반민주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누리의 경우 일부는 그러한 규정에 찬성하고 다른 일부는 그러한 규정에 전혀 찬성하지 못하는 것 같다. 확실한 기억인지 모르겠으나 민주노동당의 경우 처음에는 민주 vs 반민주의 대립이라 볼 수 없다고 말했다가, 광화문 집회에 참석할 때는 "친노 vs 반노가 아니라 민주 vs 반민주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이러한 혼동이 일어나는 이유는 민주 대 반민주라는 말이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탄핵정국을 민주 대 반민주의 틀로 서술하는데, 기꺼이 동의한다. 이때에 '민주'란 헌법정신과 주권재민의 원리를 말한다. '반민주'는 그것에 어긋난 2野의 부적절한 행동이다. 그들의 탄핵 사유는 매우 부적절했고(헌법정신에 어긋남),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하지도 못했다(주권재민에 어긋남). 그런 점에서 그들의 행위는 '반민주적'이며, 그들의 행위를 비판하는 것은 '민주'에 해당한다.


헌법정신과 주권재민의 원리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이 "해야 할 일들"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규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일치하지 않는 경우란 "헌법정신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는 사안에 대해 국회의원이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의미할 것이다. 나의 경우 헌법정신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이 경우엔 다른 판단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헌법정신과 주권재민의 원리가 일치하는 부분에서 국회의원이 이에 반대되는 행위를 했다면, 그의 행위가 반민주적이라는 사실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민주 대 반민주'가 '민주세력 대 반민주세력'으로 치환되어 사용되는 경우이다. 이 때에 민주세력은 열린우리당이 되며, 반민주세력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된다. 민주노동당은 처음엔 통크게 민주세력으로 인정이 되다가, '양비론'을 펴는 것으로 판명될 시엔 금세 반민주세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누리 사람들이 치를 떨며 반대하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바로 '민주세력 대 반민주세력'의 구도다. 이 구도는 별다른 논증없이도 '개혁세력 대 수구세력'의 구도로 쉽게 이행하며, 수구세력과의 마지막 일전을 준비하는 개혁진영(?)의 통합 이데올로기로써 기능하게 된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몇몇 비판이 '적전분열'로 취급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민주세력, 수구세력의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역사적인 서술을 택한다. 4.19, 5.18, 그리고 87년 6월 항쟁 등이 언급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들은 반민주세력, 수구세력에 반대한 국민들의 투쟁으로 서술되며, 그런 점에서 탄핵반대 투쟁과 연결된다. 이게 광화문에 모인 25만의 시민들을 설명하는 열린우리당/ 노무현 지지자/ MBC/ 한겨레 등의 방식이다.  


이데올로기는 뜻이 모호하면서도 실질적으로 강력한 위력을 가지는 단어를 통해 기능하는 법이다. 지금 진보누리에 온 몇몇 이들이 "머리로 따지지 말고 가슴으로 느껴라!"고 주문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머리로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자신들 앞에 현현한 그 무엇을 부정하는 놈들은 나쁜 놈들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한번 '머리'로 따져보시기 바란다. 수구세력이란 무엇인가? 4.19, 5.18, 6.10이 언급되었다면, 그것은 군부독재세력과 동의어인가? 하지만 진중권이 적절히 지적했듯 탄핵안을 추진한 야당이 군부독재세력이라고 함은 삼분지 일의 진리치밖에 가지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현재 정치권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인가? 하지만 이 말은 너무 두루뭉실해서 정확히 두 개의 정당을 비판하고 하나의 정당을 구원할 근거로는 적절치 못하다.


'수구'라는 말에는 '(올바른 것이든 올바르지 않은 것이든 가리지 않고) 변화에 철저히 저항함' 정도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그렇다면 수구는 포지티브한 개념이 아니다. 네거티브한 개념이다. 말하자면 수구세력은 원래부터 한정지을 수 있는 세력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바꾸려는 '개혁세력'에 반대하는 세력으로서만 확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이 개혁적인 시책을 추진하는 만큼, 수구세력이라는 말도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이 개혁적인 시책을 추진했던가? 오히려 김대중 정권 때에는 정권과 야당의 싸움에 무언가 논점이 있었다. 나는 당시 이 싸움의 논점을 보지 못하고 양자를 싸잡아 비난했던 일부 좌파들에게, 지금 노무현 지지자들이 진보누리에 대해 하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비판을 한 바 있다. 가령 김대중 정권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희생당한 서민을 달래기 위해) 제한적으로 추진했던 복지정책에 '사회주의 정책'이란 딱지를 붙였던 한나라당의 김만제, 수구세력 아닌가? 또한 정권이 줄여놓은 교원 정년퇴직안을 아무 대안없이 교장 교감 반발만 듣고 떡하니 도로 늘여놓은 한나라당, 수구적이지 않은가? 수구란 어법은 이런 데에 쓰이는 것이다. 내가 노무현 지지자들의 좌파 비판을 인정할 수 없는 이유는, 지금 노무현 정권과 야당의 싸움에선 이러한 '논점'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무엇 때문에 탄핵을 추진했는가? 대통령의 선거개입 발언 때문이었다. 선거개입 발언이 개혁이라 이에 반대하는 행위가 수구인가? 혹자는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실제로는 노정권의 개혁시책을 저지시키려는 야당의 음모라고 주장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민주당 김경재 의원의 지적처럼 열린우리당이 국회에서 법률안을 통과시킬 때 야당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여야의 정쟁은 대선자금 수사 공방과 열린우리당 vs 민주당의 시소 게임에서 발생했을 뿐이다. 검찰 독립과 대선자금 수사를 노정권의 치적이라고 말하고 싶을 지는 모르나, 대선자금 수사를 중지시키려고 탄핵을 했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노대통령은 안 그래도 총선 이전엔 수사를 종결시키자고 말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앞서 말했듯 탄핵안 가결이 '반민주적'임은 분명하니 민주 대 반민주로 돌아가자면, 반민주적인 행위를 한번 했다하여 그 정당이 반민주 세력이 되는가?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정당은 민주세력이 되는가? 분당하기 전의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민주성을 비교해 보자. 물론 한나라당의 성원들 중 상당수는 군부독재세력에 해당한다. 그러나 정당의 민주성만으로 볼 땐 두 개의 거대 정당에 큰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몇몇 재야인사들이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댄 핑계는, "한나라당이 과거에 문제는 있지만, 현재로선 민주당보다 오히려 더욱 민주적이다.(한나라당 보스인 김영삼은 이미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당시 김대중은 아직 대통령이 되기 전이었으니까)"였다.


이건 나혼자 하는 얘기가 아니라 유시민이 하는 얘기다. 유시민은 나와 동일한 시각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동원형 정당"이라 규정한다. 동의할 수 있는 얘기다. (그래서 유시민이 강준만에게 '양비론자'라고 욕먹었던 거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하는 얘기, "반면 열린우리당은 참여형 정당"이란 얘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개혁당이라면 모를까, 그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진실이다. 물론 열린우리당이 제한적으로나마 상향식 공천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당 부분 그것이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진행된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열린우리당이 자신들의 민주성을 과도하게 포장해서 선전한다는 사실까지 지적한다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사이에 민주세력 대 반민주세력이란 규정이 통용될 만한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행위에 대한 공포는 과잉된 것이다. 그들에겐 몇몇 사람들이 패닉상태에 빠져 소문내고 다녔던 '향후 시나리오'라는 게 전혀 없었다. 그들은 그저 "노무현이 밉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그 감정에 몸을 맡기고 수렁으로 뛰어들었다. 이 사건은 야당이 반민주적인 행동을 한 사건이긴 한데, 그들은 그것을 통해 권력을 잡지 못했고 오히려 쇠락하는 중이다. 혹자는 개헌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대한민국 헌법에서 개헌은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된다. 야당의 음모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다. 이 모든 사실은 탄핵안이 가결된지 적어도 하루가 지난 순간부터는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세균전이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에선 빨간 세균과 파란 세균이 나오는데, 한 장소에 세균을 비치하면 그 주변 세균은 모조리 그 색깔에 동화되어 버린다. 민주세력 대 반민주세력, 개혁세력 대 수구세력이라는 레토릭을 보는 나의 감상은 세균전 게임을 볼 때의 감상과 동일하다. 한나라당이 군부독재세력이 잔존하고, 반호남연합인 삼당합당을 통해 탄생한 정당이란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에 입당한 재야인사들이 한나라당이 지니는 죄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 인사와는 연합하면서도 민주당 의원들에겐 부당한 비판을 가한다는 강준만의 사고방식은 그런 '세균전'에 기반해 있다. 이부영은 권노갑보다 나쁜 위인일까?


반면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연합해 탄핵했다고 곧바로 민주당에 한나라당의 퍼런색을 칠해 버리는 노무현 지지자들은 어떠한가? 비록 민주당이 호남지역주의를 부정적으로 활용한 지역주의 정당이고, 그 부분에서 비판받을 요소가 있다고는 하나, 한나라당과 연합했다고 해서 곧바로 한나라당 수준으로 추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지지율은 실질적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런 상징조작까지 해야 하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분당 과정에서 지역구의 당선가능성에 따라 줄서기한 의원이 숱하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 모모 의원이 민주당 모모 의원에 비해 더 개혁적이고, 민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을 존중한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이 "광화문엔 지금 길잃은 어린양들이 모여있다."고 했다는데,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노총장의 발언에는 그들의 바램을 민주노동당만이 대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있고, 나는 그 자신감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기득권세력, 반민주세력, 수구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항쟁으로 정립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광화문은 4.19, 5.18, 그리고 87년 6월 항쟁과는 전혀 다른 시대적 환경 안에 놓여있다. 그들은 그들의 선배들과 생각이 다르고, 정조가 다르다. 이 선량한 양들은 늑대와 비장하게 싸우기 위해 광화문에 모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최초로 여의도의 늑대들을 똥강아지로 취급하고, "이 똥강아지야, 왜 주인 말 안 듣니?"라고 외치는 세대다. 광화문에 울려퍼진 발랄한 멜로디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의 의미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은 한계일 수도 있지만, 변화된 한국사회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을 80년대의 시각으로 재단하고, 라그나 뢰크식의 선악결전의 세력싸움에 끌어들이려 한다면, 낭패를 볼 것이다. 단순히 지금 그들에게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또한 그들이 그 의미를 듣고 좋아한다고 해서 안심할 일이 아니다. 87년 이후 세대들이 월드컵과 탄핵사태를 거쳐 대중집회에 '맛들인' 사건을 우리는 그 사건 자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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