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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Author: 이상한 모자

도시와 농촌

2020년 11월 13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은 미국 교수님 블로그를 보다가 또 그 전형적인 문제의 얘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도 여촌야도 뭐 이래가지고 옛날에 도시가 더 진보적이다 이런 개념이 있었다. 우리 뿐만이 아니고 세계가 다 마찬가지다. 경향적으로 대도시가 더 진보적 성향을 보인다.

이건 당연히 경제-학력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것은 사실 이게 단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는 아니란 거다. 전통적 진보 담론은 변화+대의라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거나, 도덕과 윤리를 따라야 한다거나, 심지어는 선진국은 이러저러한 기준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거나… (선거제도 타령도 담론의 성격으로만 보면 여기에 해당한다) ‘~해야 한다’는 것에 익숙한 고학력층이 수용하기 쉬운 논리 구성이다. 그래서 도시적 진보는 대의를 따르기 위해 변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끌린다.

반면 농촌의 저학력 저소득층에게는 이런 논리가 매력적이지 않다. 경제에 있어선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절실하고 당위를 추구하는 것에 있어선 전통적 가치 수호 이상의 맥락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1차산업 위주의 경제권이라면 더욱 전통적 가치가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전통을 지키거나 되살리고 이상보다는 현실을 택해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자는 담론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근데 트럼프의 담론은 복고적 변화+현실적 이득이라는 형태로 구성돼있다. MAKE AMERICA GREAT AGAIN! 그런 점에서 대도시의 중산층이 BLM 등의 정치적 올바름과 기후변화 이슈에, 농촌이나 쇠락한 지역의 저소득층이 트럼프식 속물주의에 상대적으로 더 끌리는 것은 뭐 당연하다.

이 정권들어 유행인 공정 담론은 ‘현상유지를 위한 변화’, ‘현실적 이득을 추구하기 위한 대의’라는 식의 포장에 성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맞서는 진보의 담론은 대의를 추구하기 위한 변화를 더 철저하게, 더 근본적으로, 더 완결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가령 대의의 추구가 또다른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하지만 현실은 진보의 담론조차도 ‘변화에 동참해야 나의 이익이 보장된다’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과거에는 그것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나의 이익이 훼손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변화해야 한다’는 걸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그건 날이 갈수록 어렵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단지 ‘착한 소비’에 동참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기존의 삶을 버려야 한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불가능에 도전하세요~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기후변화, 도널드 트럼프, 여촌야도, 진보정치

책을 써야

2020년 11월 9일 by 이상한 모자

얼마 전에 출판사 사장님을 만나 일본 라면과 커피를 대접 받았다. 책을 내자는 얘기를 한 게 어언 2년, 사장님은 최후통첩을 했다. 더 이상은 어렵다…

사실 나도 쉬운 상황은 아니다. 책은 사실 좀 쓰다가 몇 번 엎었다. 집중할 시간을 벌기 위해 다른 글을 좀 쉬기도 했었는데, 번번이 좀 쓰다가 처음부터 다시 쓰자는 생각이 들어 어쩔 수 없었다. 최근에는 다행스럽게도 일이 많다. 일이라는 건 많을 때 많은 거고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니까, 계약금이라는 돈의 문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계약금을 돌려주고 기약없는 출판의 희망고문은 끝내는 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왠지 이걸 마무리 해야만 한다는 그런 생각이 있다. 어쨌든 해야 할 말이 있지 않는가. 두 괴물 중 반드시 하나를 편들고 하나를 적대해야만 한다는 이 환상을 깨야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지 않느냐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려는 본격적인 시도를 뭔가 해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라는 이상한 소명의식에 사로잡혀…

마침 적당한 때인지도 모른다. 워싱턴 주류정치가 싫어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미국은, 다시 트럼프라는 아웃사이더가 싫어서 워싱턴 주류의 상징 조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다. 이건 과거에 쓴 조커라는 영화의 감상문을 한 번 찾아보시라. 귀찮지요? 링크입니다.

[월요칼럼] ‘조커’가 드러낸 엘리트 권력의 민낯

어찌됐건 책을 쓰는 일에는 다시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될지 안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살이 같은 생활 속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오해의 근거로만 착실히 쌓여가는 현실 속에 뭔가 숨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숨쉴 공간! 그렇다! 나는 내가 뭘 쓰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어쨌든 가보겠다는 것이다. 주류가 싫어서 비주류를 지지해놓고는 다시 비주류의 구호에 속았다며 주류를 지지하다가 다시 예정된 실망을 하는 이런 한심한 태도가 왜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그게 현대민주주의 정치의 본질이라는… 이런 팔릴리도 없고 내가 쓸 필요도 없고 비웃음이나 살 주제의 책을 쓰는 게 무슨 의미인가 고민하다가도… 살기 위해서는 책을 써야만 한다. 냉소사회는 읽어봤니?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민주주의, 엘리트주의, 책, 포퓰리즘

지난 주에 쓴 글

2020년 11월 5일 by 이상한 모자

종종 지금쯤 SNS에선 이런 얘기들 하겠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세상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다. 허수아비 때리기일까? 기자, 지식인, 그저 인플루언서(인플루언서가 뭐냐? 학위도 자격증도 필요 없는 평론가 같은 거냐? 세상엔 참 별 직업이 다 있다) 할 것 없이 내 상상과 별 다를 바도 없는 얘기들을 쓰고 거기에 반응을 하고 그랬을 거라는 데에 500원 건다.

방금 잡지에 넘긴 글은 미국 대선과 트럼프의 행태와 홍남기의 사퇴와 동학개미들에 대해 논한 것이다. 쓴 글이 혹시 SNS에 공유되고 또 뭐 만에 하나 혹시 화제가 된다면 얼마나 많은 되도 않는 소리들을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꼭 하게 된다. 그런 말들이 그나마 그럴 수도 있다 싶은 것들이면 괜찮다. 하지도 않은 생각, 갖지도 않은 의도, 심지어 하지도 않은 말을 갖고 무슨 말을 듣는 일을 상상하면 짜증이 난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방송을 하러 가는데 차가 너무 밀리는 거였다. 스튜디오 들어가기 15분 전에야 도착했다. 보통은 1시간 전까지 오라고 한다. 도착하지 않으면 30분 전부터 막 전화가 온다. 그런데 이 날은 아무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분장을 날림으로 하고 스튜디오에 갔는데 다들 너무 행복한 표정으로들 있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필요가 없는 사람인거냐 왜 아무도 전화를 안 하느냐 라고 했다. 다른 출연자 중 한 분이 “어련히 제 시간에 오시리라 한 거지요” 했다.

그런데 제작진 중 A라는 분이 그러는 거였다. “또 왜 그러세요, 대본 못 받으셨어요?” 대본은 B라는 사람이 전날 밤에 보냈다. 그러니 B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B가 날 보면서 말했다. “대본 못 보셨어요? 제가 메일로 보내고 확인 문자도 보내고 읽음 확인도 했는데…” 그만 집에 가고 싶었다. 내가 언제 뭐라고 했냐고, 도대체 왜 그러냐고 했으나 이미 난 대본을 받아서 읽기까지 해놓고 못 받았다고 하는 미친놈이 돼있었다. 이걸 어디부터 얘기를 해야 되나. 출연자가 몇 시에 왔는지도 전혀 관심이 없고… 자느라 안 와버렸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왜 출연자가 안 오는데 전화를 안 하냐구요! 차라리 지가 늦어 놓고 왜 전화를 안 한다고 뭐라고 하느냐 라고 하시라고! 그럼 내가 죄송하다 하지…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매주 수요일에 가는 방송이 있었다. 수요일 목요일 이틀 나오실 수 있겠냐고 하기에 그건 생각해보기로 하고 일단 다음주는 된다 라고 답했다. 그 다음주가 되자 갑자기 수요일 방송이 없어졌다고 목요일만 나오라는 거였다. 일단 알겠다고 했다.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다. 그런데 방송이 시작되니 진행자가 나를 ‘목요일의 남자’로 소개하는 것이었다. 매주 수요일 출연이 매주 목요일 출연으로 얼렁뚱땅 바뀐 거였다. 이런 게 어딨냐고 했더니 출연 날짜 바뀌는 건 늘 있는 일 아니냐, 당신이 목요일이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런다. 집에 가고 싶었다. 수요일 나오는 사람이 목요일로 바꾸는 거랑, 일단 한 주만 수목 둘다 가능하다고 한 거랑 같습니까?

아무튼 그 난리 끝에 화요일에 나가는 걸로 정리됐다. 제작진은 “다시는 출연일을 바꾸지 않을 게요!” 라고 했다. 내가 요일을 바꾸는 걸 갖고 뭐라고 했습니까??? 수요일에 가는 사람이 “일단 이번 주는 목요일도 된다”라고 한 게 왜 “수요일을 목요일로 바꾸는 게 가능하다”가 되냐고!! 그런 다음부터는 무슨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가령 대본에서 이 순서에 내가 나오는 게 맞느냐 이런 걸 물어 봐도 “화요일에 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라고 한다. 미쳐버린다.

내가 이러고 있잖아? 그럼 제작진 중 한 명이 SNS에 쓰는 거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갑질하는 출연자가 있다… 이런 식으로. 그럼 사람들이 줄줄이 위로 댓글 같은 걸 다는 거지. 알겠냐? 이게 SNS다(이 앞에 말이 서로 안 맞고 의도가 왜곡되고 이것까지 다 포함해서 SNS이다).

처음에는 그냥 지난 주에 쓴 글 두 개를 붙여 넣으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너무 흥분해서… SNS 두고봐라. SNS는 진짜 한심하다. SNS가 세상이야. 세상이 너무 한심. 바이든이 되든 트럼프가 되든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냐. 기득권이 싫어서 트럼프를 찍는 사람, 트럼프가 싫어서 지가 뭘 말하는지도 모르는 바이든을 찍는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예요. 트럼프는 맥거핀이다.

여튼 지난 주에 글… 무슨 글인지 설명하기엔 이미 지쳐버렸네.

한겨레21 / [뉴노멀] ‘김진숙 지도’가 복직한다면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9426.html

기자협회보 / 자본에 포섭된 주류 언론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48365

Posted in: 신변잡기, 잡감 Tagged: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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