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세상
연휴에는 쉬었다. 오늘도 연휴지만 방송국 녀석들의 삶은 그렇게 안 돌아간다. 심한 경우 아예 연휴라는 개념이 없고, 있어도 연휴 마지막날은 씹는다. 물론 마지막날까지 꼼꼼히 쉬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아무튼 실질적으로 연휴는 오늘로 끝이 났다.
쉬는 동안에는 시사에 대한 생각을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이제 슬슬 워밍업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을 또 안 할 수가 없다. 뭘 위해서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가? 검색을 하는데 그런 입장문을 어떤 분들이 내놨다. 신모 변호사의 프로에 진보 성향 세 명이 앉아 윤통을 비난한 것은 편향적인 구성이라는 거다. 나는 그 중의 하나로 언급되었는데 진보당 출신이라고 써있더라. 지난주에 왜 어떤 진행자가 호구조사를 시도해왔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내가 웬만하면 그냥 두는데 이거는 아니지. 진보당 출신은 사실이 아니잖아. 그거 우리끼리의 세계에선 더블민주당 출신을 윤심의힘 출신이라고 하는 거랑 똑같다고. 씨파 메이저 세계에 사는 여러분들 입장에선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지만…
구성이 편향이다, 그래요 그럴 수 있어. 근데 뭐라고 얘기한 내용을 갖고 말씀들 하면 얼마나 더 좋겠느냐 이거다. 어떤 얘기를 한 게 문제인지는 없다. 그런 걸 보고 있으면 허무해진다. 사실 내가 뭐라고 말을 하든 다 소용이 없는 거 아닌가? 이쪽에서든 저쪽에서든 말이다. 사람들은 오로지 결론만 요구하고 결론만 듣는다. 중간에 무슨 논리로 접근하든 결론이 공격이나 쉴드냐만 보고 판단하고 거기에 맞춘 행동을 하는 거다. 이거 냉소사회에 있는 얘기임. 근데 그것도 처음 한 두 문장 딱 듣고 공격인지 쉴드인지 일단 판단. 그리고 공격이라고 판단하면 쉴드에 해당하는 자기세상의 논리를, 쉴드라고 판단하면 공격에 해당 하는 자기 논리를… 이미 주장에 그 논리에 대한 반박이 포함돼있든지 말든지 상관도 안함. 그래서 저 같은 놈이 떠들면 막 혼란스러워한다. 이게 무슨 얘기지? 어디로 가는 거지? 에휴…
민주주의란 게… 제가 책에서도 여러번 떠들었지만, 옛날에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시스템에 그대로 반영할 수 있으면 그게 민주주의적 실천이라고 믿었어요. 근데 그랬더니?? 트럼프가 당선되고 ‘혐오’가 일상이 되고 기성정치가 팬덤에 꼼짝을 못하는 척하고… 그런 현실에선 그냥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고 욕할 거리 찾아서 서로 욕하면 장땡인 그런 게 모든 곳에서 일상화 되는 거지.
이게 정치만 그런 게 아니다. 일전에도 썼듯이 요새는 언론 전반이 유튜브화 되었다. 가령 방송이라고 하면 과거에는 프로그램이 잘 되고 있는지 청취자 반응이 어떤지 즉각적으로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본의아니게 어떤 원칙이라든가 퀄리티에 대한 주장이 일부 가능했다. 물론 그때도 이게 메인은 아니었던 거 같지만… 그런데 요즘에는 유튜브를 통해 즉각적으로 청취자(로 규정되는 사람들)의 반응을 수치화해서 측정할 수 있다. 조회수든 뭐든… 때문에 유튜브의 어떤 수치로 성과가 나는 방향으로 방송이 끌려간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이 녀석들이 똑같이 하는 얘기가 있어요. 아무리 좋은 얘기를 써도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이야기다… 틀린 얘기냐? 그렇지는 않아. 민주주의가 기득권의 전유물이 되면 안 되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주자고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언론이 기득권에 의한 기득권에 대한 기득권의 것이 되면 안 되니(김만배한테 돈이나 받고 말야…) 더 일반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전해주자… 이렇게 생각하는 게 일리가 없는 건 아니라고.
그러나 그 결과물은? 그것이 바로 유튜브이다. 더군다나 돈까지 된다고. 내가 이렇게 쓰면, 일반화 하지 마세요 안 그런 언론인들도 많이 있어요… 막 이러는데, 그거 아냐? 내가 연휴 기간 동안에 한 생각이 그런 거야.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책의 경우는 민주주의라는 레토릭이 정파적 도구로만 활용당하는 매커니즘에 대해서 생각한 결과였거든. 근데 유튜브에 포섭된 언론은 뭐냐? 그거는 하나의 장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유튜브 비판조차도 그 장르 안에서의 얘기라니까. 진지한 언론인이라면 이런 저런 고민을 당연히 하겠지. 언론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내가(언론인이) 생각하는 중요한 의제에 대한 판단을 사람들에게 주입하는 것인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해주는 것인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얘기가 사실은 님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깁니다 라는 거를 설득하는 것인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얘깁니다 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인가?
장르에 충실한 언론인들이 무슨 각자의 답을 다 갖고 있겠지만, 결과물은 결국 그런 거라고. 공포영화가 공포영화답지 않으면 어떻게 돼? 0.1%는 불후의 명작, 99.9%는 B급… 비디오가게에서나 빌려볼 수 있는 것. 여기도 마찬가지야. 근대 어차피 시궁창에 살아야 한다면 포부라도 크게 갖자고. 그런 게 정말 대단한 거 아닌가? 장르에 충실한 것도 분명 미덕이지만 늘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가자는 것입니다. 유튜브와의 전쟁을 선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