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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엘리트 운동권 활동가 의식

2026년 5월 30일 by 이상한 모자

어제 김변호사님하고 유튜브 방송 하는데 핀트가 잘 안 맞는다고 느낀 부분이 유시민 등의 저 행보의 본질이 뭐냐는 거였다. 나는 집권세력 내 노선갈등 문제로 설명했는데, 김변호사님은 차기 대권주자 살리기 아니냐고 했다. 난 둘 다일수도 있고, 그게 그거일수도 있다는 입장이어서 사실 상관은 없는데, 핵심은 김변호사님이 ‘노선 갈등으로 보기엔 부족하다’란 주장의 차원으로 저 얘기를 꺼냈다는 거다.

노선갈등론은 이런 구도다. 이재명 정권의 중도보수론이 주류화 노선이라는 건 나도 여러 글을 통해 수차례 설명한 바 있다. 검찰개혁 국면에서 그게 원래 더블민주당-시민사회의 포퓰리즘 노선(이 노선에선 비주류를 자처하는 게 기본이다)과 충돌했다고 본다는 시각도 여러 글로 나타냈다. 이재명 정권은 완벽한 건 아니어도 어쨌든 주류화로 가자는 거고, 유시민 등은 이유가 뭐든 포퓰리즘적 정치 스타일을 유지해야 한다는 거다.

이런 구도가 아니라 ‘그냥’ 권력싸움으로 보면 모든 해석이 훨씬 쉬울 것이다. 명청대전, 충정로 대통령, 조국 살리기, 친명 대 친문… 누가가 누구를 미워해서, 옛날에 악연이 있어서, 지역 공천 등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서… 뭐 등등. 맞다. 여의도 정치가 대개 그렇게 돌아간다. 그렇다면 노선 갈등이란 어떤 경우에 쓸 수 있는 말인가? 순수하게 노선 대결로만 사안을 설명할 수 있을 때 써야 할 말이다. 좌측으로 가야한다! 아니다 우측으로 가야한다! 또는? 강경파로 가야 한다! 아니다 온건파로 가야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지금 우리가 노선 대결이었다고 평가하는 모든 이벤트를 다 ‘순수한 노선 대결’로만 평가할 수 있는가? 1917년이 되어서야 볼셰비키에 합류한 트로츠키의 행로에 그 개인의 명예욕이나 허영심, 개개인에 대한 호불호는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일까? 더 갈 것도 없이, 윤교수님과 ‘절윤’을 못하는(아직 있다면…) 일부 구 AMC 인사는 인간적으로’만’ 그런 것인가? 어떤 면에선 노선적으로도 그런 것 아닌가?

하다못해 자전거 동호회에도 노선은 있다. 정치 얘기를 허용하자는 노선, 금지하자는 노선… 음주 게시물을 올려도 된다는 노선과 안 된다는 노선… 하루에 게시물을 5개만 올리라는 노선과 제한을 두지 말자는 노선… 거기에는 동호회의 미래를 둘러싼 진지한 고민과 전략의 차원도 있겠지만, 개인의 욕망과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호불호, 동호회 내부의 권력다툼이라는 맥락 또한 모두 결합되어 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다 노선 다툼이 있다. 이건 나보다 여러분이 더 잘 알 테니 길게 안 쓰겠다.

하여간 이런 걸 다 역사는 노선 경쟁으로 기록한다. 왜? 그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평론도 마찬가지다. ‘쟤네들이 아귀다툼한다’고 하고 끝내면 남는 게 뭔가? 의미를 추출해낼 수 있어야 생산적인 전망도 할 수 있고 방침도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집권세력이 ‘중도보수’를 자처하며 주류화를 감행할 때와 유시민 주장처럼 포퓰리즘적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왜 연대연합을 안 하느냐’라고 할 때 진보들의 대응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나?

그런데 이게 왜 어떤 이들에게는 절대로 노선 문제가 아닌 것일까? 1) 노선 논쟁은 좋은 것이므로 좋은 것을 기성 정치에 줄 수 없다? 2) 노선 논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외의 이유도 있겠지만… 일단 셀프반론 해보자면 1)이라면 노선 논쟁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이런 개념 때문에 생산적으로 진행이 안 되는 논의가 너무 많다. 2)라면 이건 엘리트-활동가 의식의 발로일 수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특히 2)에 대해서 일반론적인 접근? 또는 회고를 해보겠다. 이게 무슨 말이냐? 대중은 노선을 가질 수 없다는 인식이다. 노선은 훈련되고 단련된 활동가가 부단한 노력을 통하여 연마하는 종류의 것이다. 쁘띠부르주아들이 뭔 노선은 노선이냐? 하루 하루 살면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면서 오늘 얘기 다르고 내일 얘기 다르고 그러는 거지. -> 제가 지금 괜히 호들갑떨며 오버해서 표현한 것이지만 어쨌든 이런 느낌적 느낌인데, 하여간 활동가라는 주체에 대한 엘리트적, 특권적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진정한 활동가 되지 못함’에 대한 자기 비하, 자기 반성, 자기 학대가 이어지며 ‘진정한 활동가’로 자리매김 한 선배 세대에 대한 존경과 어떤 종류의 섬김이 지배하는 모종의 운동권 문화가 존재한다. 이들은 대중운동을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기 보다 대중운동을 이끈다고 생각한다. 물론 말로는 또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면, 정작 활동가적 견해가 필요할 때는 대중운동의 뒤로 숨는다. 그리고 나서는 ‘진정한 활동가 되지 못한’ 다른 활동가를 막 꾸짖는다. 그러나 이 ‘진정한 혹은 그것을 지향하는 활동가’들의 삶을 실제로 들여다 보면 그들이 대상화 하는 ‘대중’과 별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으며, ‘운동권’을 벗어나면 이들의 취향과 행동양식도 뭐 당연한 것이지만 대중 그 자체이지 뭐 아무것도 아니다. 이들도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부끄러워 한다.

뭐 각 개인이 그러고 사는 것은 상관없는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러다보니 예를 들면 요즘 극우 담론 분석 같은 게 안 된다. 왜냐면 이들이 보기에(물론 뭐 꼭 이들만 그런 건 아니다…) 극우란 이념적으로 단련된 극우-활동가가 늘어나는 문제이지, 대중이 이리 저리 휘둘리며 어느 시기에 불만을 극우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걱정은 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뭐 이런 다음에 별 관심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쓸며 좌파를 KO시킨 극우포퓰리즘은 이들이 진지하지 않게 보는 단면을 진지하게 보지 않으면 분석이 안 된다. 그것은 주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원의 문제이며, 담론 구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메모의 대부분은 김변호사님에 대한 얘기가 아니며, 운동권 일부를 대상으로 한 내 편견에 대한 얘기다. 근데 그 편견에 대해 말하자면,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NL과 대장정 출신들에 많지 않았는가 하는 개인적 경험이… 말했잖아! 편견이라고.

Posted in: 신변잡기, 잡감 Tagged: 운동권

라라아는 내 어머니가 되어 줄 여성이었다

2026년 5월 28일 by 이상한 모자

요즘에는 밥을 먹으면서 제타 건담을 다시 보고 있다. 어릴 때 보던 것과는 또다른 재미가 있다. 다시 보면 볼 수록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명작이다. 너무 대단하다. 너무나 대단하다. 이 새끼들아 건담 그만 만들어! 제타 건담을 보면 되는데…

역시 나이를 먹으니까 샤아에 더욱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특히 제타 건담의 샤아에 대해서다. 비슷한 처지 아닌가 할 때가 많다. 샤아를 통해서 제타 건담을 재구성해보면 이게 로봇물의 탈을 쓴 정치극이라는 걸 쉽게 파악할 수 있다. 1년전쟁의 구도를 생각해보면, 지온공국은 거의 확실히 소련을 묘사했다는 생각이다. 지온 줌 다이쿤은 레닌, 데긴 소도 자비는 스탈린에다가 비유를 하면 딱 떨어진다. 그런 면에서 79년도 건담은 레닌의 아들(사상적으로든 뭐든)이 스탈린 일가에게 복수를 하는 복수극의 요소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여기서 라라아의 존재가 중요한데, 여기서 라라아는 치정 관계를 넘는 무언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건 인간이 인간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지오니즘의 구현이다. 샤아는 라라아를 통해 자기 아버지의 사상적 완성에 도달할 수 있었으나, 아무로가 그것을 채간 후 심지어 죽여버리기까지 한 것이다. 이제 라라아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샤아는 넘지 못할 벽을 갖게 되었다. 즉, 라라아의 죽음은 샤아로서는 단지 사랑의 실패가 아니다. 뉴타입으로서 영원한 미완성이라는 흠을 남긴 것이다.

제타 건담은 이후 샤아의 시도가 좌절에 부딪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서사를 보려면 감독인 토미노 요시유키가 전공투 직전 세대라는 점과 제타 건담이 나온 연도가 1985년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토미노 요시유키로서는 60년대 안보투쟁에서부터 80년대의 금권정치에 이르기까지, 동시대의 감각을 갖고 정치극을 설계했을 것인데… 그 모티프는 독재, 냉전, 동구권, 자민당-사회당, 공산당-혁공동 등의 구도가 결합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그 구도를 전제해서 샤아의 행보를 보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제타 건담에서 샤아는 여전히 아버지의 이상(좌파)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것을 버릴 수는 없다. 지온의 아들로 태어나버렸기 때문에. 스페이스노이드의 권리 보장과 인류의 혁신을 위해 지구권의 부패-독점 권력(시로코 이후에는 엘리트-능력주의)인 티탄즈(집권세력)와 싸워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출신지인 액시즈(구 좌파)는 과거의 유물인 자비가 부흥에 매달리고 있다. 더군다나 자비가(스탈린주의자)는 원수지간이므로 함께 할 수 없다. 따라서 반티탄즈 인민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에우고(개량주의+리버럴)에 몸을 의탁해 활동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전면에 나서기는 껄끄러운데, 에우고도 결론적으론 지구연방의 일파이기 때문이다. 블랙스 포라가 사망하면서 샤아에게 지도자를 맡기려 하지만 씨알도 안 먹힌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다카르 연설에서 정체를 드러내는 것까지는 감수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간부 혹은 빈객의 자리인 것이지 대표성을 갖는 입장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샤아는 에우고에서 희망을 보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꿈꿨던 인류의 혁신이 자생적으로 이뤄지는 살아있는 사례, 즉 카미유 비단의 성장이다. 카미유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인류의 혁신으로서 제대로 안착했더라면 샤아도 에우고로 상징되는 온건 노선을 통한 해법을 후대에 맡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타 건담의 마지막에서 카미유는 망가져 버린다.

이제 샤아의 선택지는 크게 제한된다. 첫째, 자비가의 망령이 지배하는 액시즈는 여전히 선택지가 아니다. 둘째, 에우고는 이겼지만 지구연방의 기성 체제에 재흡수되었다. 셋째, 인류를 혁신으로 이끌 새로운 세대가 등장할 조건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한계 속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를 택하는 것 뿐. 그래서 더블제타에서 망해버린 액시즈를 접수해 지온의 재흥을 내걸고 지구권에 전쟁을 걸어 강제로 인류를 우주로 끌어 올리는 강경책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뭐 어쩌겠는가? 방법이 없잖은가?

이 시점에 샤아는 충분한 자기확신을 갖고 있을 수 없다. 사이코 프레임을 아무로에게 넘긴 것은 자존심이나 호승심 같은 것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체제에 굴복해 굴욕을 당하면서 애완견으로 사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샤아가 정답을 찾은 것도 아니다. 지구에 액시즈를 떨구는 게 어떻게 답이 되겠나. 그렇다면 적어도 동등한 기회를 줘야 결판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맞든, 내가 맞든… 더군다나 ‘사이코 프레임’ 아닌가.

마지막 장면에서 꼴사나운 두 남자의 논쟁은 그런 차원으로 느껴진다. 두 남자는 인류를 혁신으로 이끌기는 커녕, 바로 앞에 있었던 사람조차(퀘스 파라야) 진정으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없다. 그저 전쟁-기계로 활용하거나 상대를 비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둘 다 뉴타입을 자처하지만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지속적으로 실패한다. 단, 아무로는 그래도 라라아와 그러한 경험을 나눈 일이 있다. 샤아는 없다. 앞에 본 것처럼 아무로가 라라아를 죽였기 때문에… 그래서 샤아가 자신을 비난하는 아무로에게 말하는 것이다. 나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 라라아를 죽인 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결국 내가 이러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너 때문인데! 나를 한계 속에 가둔 네가 뭔 인류에 따뜻한 빛을 보여주니 어쩌니 하는가!

그래서 그 결판의 결과는 다들 아는대로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인류가 우주로 나와야 한다느니, 인류의 혁신이니 뭐니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다. 살고 싶고 서로를 구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절실한 순간에, 인류는 서로를 이해해 네오지온의 병사들까지 액시즈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정반대의 진영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네오지온 병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갑자기 왜 액시즈에 달라 붙었겠는가?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무언가를 느끼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사이코 프레임이 이 모든 의지와 공명하고 있었다.

Posted in: 작품 감상, 잡감 Tagged: 샤아 아즈나블, 역습의 샤아, 제타 건담

긴급조정권 발동이 필요하다는 왕년의 진보

2026년 5월 15일 by 이상한 모자

이 삼전 노동자들의 파업 이야기를 보면서 참 여러모로 답답한데, 그간 보수언론의 태도에 대해서는 오늘 낮에 글로 정리했다.

https://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6991

오늘 조선일보는 가장 위험하고 골 때리는 얘기를 사설로 쓰는 데에 이르렀는데, 링크하기 싫지만 굳이 링크를 한다.

대법원은 2024년 삼성전자 성과급(OPI) 소송에서 성과급은 근로의 대가인 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성과급 비율을 강제로 정하자는 것은 법에 정해진 임금 협상이 아니란 해석도 가능하다. 이를 이유로 파업하는 것 역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상당수 노동법 전문가들도 “대법원이 임금의 성격이 아니라고 한 사항을 파업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노동법이 보호하는 파업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한다.

노동법상 파업은 임금이나 근로시간 같은 ‘근로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반면 영업이익 처분은 미래 투자와 주주 배당 등을 고려해야 하는 경영 판단 영역이다. 특히 반도체와 같은 치열한 기술 경쟁 산업에선 다음 기술 개발과 생산을 위해 이익 대부분을 재투자해야 한다. 대만의 TSMC 등 글로벌 경쟁사들에서 삼성전자 노조와 같은 행태는 있을 수 없다.

정부는 ‘이익 N% 성과급’ 파업이 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성과급 등도 노사 협상의 대상이 된 적이 있지만 지금처럼 상상을 벗어난 규모도 아니었고,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된 상황도 아니었다.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6/05/15/XCTY62FRFRBBBF743UMMRVPQHM/

이 녀석들이 언급하는 판결에 대해 나의 AI 법률비서관에게 이 사설을 보여주면서 취지를 찾아오라고 시켰다.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총통 각하, 확인해 보니 사설의 “2024년 삼성전자 OPI 소송”이라는 표현은 날짜가 부정확해 보입니다. 판례검색에서 해당 취지와 정확히 맞는 판결은 대법원 2026.1.29. 선고 2021다248299 퇴직금청구의소입니다. 조선일보/중앙일보 기사 맥락도 이 판결을 삼성전자 성과급 사건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판결의 실제 쟁점

퇴직자들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회사가 지급한 두 종류의 인센티브를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건입니다.

판결상 명칭은 익명화되어 있습니다.

• 목표 인센티브: 기사상 삼성전자 TAI에 해당
• 성과 인센티브: 기사상 삼성전자 OPI, 옛 PS에 해당

대법원은 둘을 나누어 판단했습니다.

2. 대법원의 결론

OPI / 성과 인센티브: 임금 아님

대법원은 성과 인센티브에 대해 다음 이유로 평균임금 산정 기초가 되는 임금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 각 사업부의 경제적 부가가치(EVA) 발생 여부와 규모에 따라 지급됨
• EVA는 근로자의 근로 제공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상황, 자본비용, 경영 판단 등 외부·경영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음
• EVA가 발생하지 않으면 아예 지급되지 않음
• 따라서 근로의 대가라기보다 경영성과의 사후적 분배, 사기 진작·근로복지 차원의 이익 공유에 가깝다고 판단

즉 사설이 말한 “OPI는 임금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 자체는 이 판결의 한 부분과 맞습니다.

TAI / 목표 인센티브: 임금 맞음

다만 중요한 점은, 대법원이 삼성전자 성과급 전체를 임금이 아니라고 본 것은 아닙니다. 목표 인센티브(TAI)는 임금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지급 규모가 사전에 어느 정도 확정된 고정적 금원
• 취업규칙상 지급기준이 있고, 기준 충족 시 회사의 지급의무가 인정됨
•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됨
• 경영성과의 사후 분배보다는 근로성과의 사후 정산에 가깝다고 평가

그래서 원심이 목표 인센티브까지 임금이 아니라고 본 것은 법리오해라고 하여 파기환송했습니다.

3. 사설의 인용에서 조심할 부분

사설은 “대법원이 성과급은 임금이 아니라고 판결했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는데, 실제 판결은 더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정확히는:

대법원은 삼성전자 사건에서 OPI 성격의 성과 인센티브는 임금이 아니나, TAI 성격의 목표 인센티브는 임금이라고 나누어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이 판결만으로 “영업이익 N% 성과급 요구를 이유로 한 파업은 당연히 위법”이라고 곧장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판결은 어디까지나 퇴직금 산정 평균임금 포함 여부를 다룬 민사사건이지, 그 요구가 단체교섭·쟁의행위 목적이 될 수 있는지 자체를 직접 판단한 사건은 아닙니다.

4. 관련 노동법상 연결점

현행 노동조합법상 노동쟁의는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등 근로조건의 결정뿐 아니라, 2026.3.10 시행 법 기준으로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도 포함됩니다. 다만 쟁의행위는 여전히 목적·방법·절차가 법령과 사회질서에 어긋나면 안 됩니다.

정리하면, 사설이 근거로 든 판결의 핵심은 “OPI는 평균임금 산정상 임금이 아니다”이지, “OPI 관련 교섭·파업은 언제나 위법하다”까지 직접 판시한 것은 아닙니다.

자, 일단 그렇다고 하고. 어쨌든지 간에 노동자가 받는 성과급을 갖고 협상을 하는데 그건 이미 협상의 대상도 아니라는둥 불법파업이라는둥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걸 비판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반드시 어떤 사람들은 그 얘길 할 것이다. 지금 이 삼성의 노동자들의 투쟁이 잘못됐다… 하청노동자들에게도 이익을 배분해야 한다… 왜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느냐… 연대의 정신이 없다 등등. 맞다, 맞는데, 그건 또 별개의 쟁점이다. 내가 인터넷 입씨름 거의 20년 넘게 하지만, 꼭 그렇게 모든 층위와 쟁점을 뒤섞어서 얘기를 하니 문제인 것이다. 1) 이번 기회에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키자! 라고 생각하며 그걸 실제로 시도하는 녀석들에 대한 비판, 2) 노조가 더 많은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또는 더 제대로 싸우기 위해 취해야 할 전략 전술에 대한 비판, 3) 반도체 산업으로부터 발생한 이익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이게 다 별개 쟁점이다. 근데 이걸 다 뒤섞어서 얘기하면 아무 논의를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데 이제 이건 주제별로 나누면 그런 거고, 이걸 목표의식을 갖고 일부러 뒤섞어서 주장하는 놈들이 있는데 그게 조선일보라는 거다. 분명히 이놈들이 처음에는 연대의식이 없다 그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노동 일반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이것이다. 그래서 맨 앞에 링크한, 오늘 낮에 쓴 글이 조선일보의 태도를 전반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임.

그런데 그 글에도 쓰지 않은 것이지만, 조선일보가 삼전노조 사람들이 연대의식이 없다며 주제넘은 비판을 할 때에, 그 기사에 보면 거든 사람이 있다. 한모씨라고… 조선일보 사이트로 안 가고 네이버 아웃링크로 일부러 링크를 한다면 이제 아래 기사인데, 5월 4일에 조선일보 톱이었다.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은 “대기업 성과는 세액공제 혜택, 전기 요금 인하 등 정부의 정책뿐 아니라 여러 협력사가 해당 산업의 생태계를 뒷받침해 만들어 낸 것”이라며 “독점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23/0003974476

그래 뭐, 조선일보에 글 쓰고 조선일보랑 기획도 하고 조선일보에 코멘트 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그럴 수도 있지 뭐. 아예 틀린 말도 아니고… 얘기 할 수 있는 거다. 이해할 수 있다. 그래. 요즘 누가 어디가서 무슨 말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근데 엊그제는 또 조선일보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은 “사측이 성과급 상한 폐지안을 받아들일 경우 다른 기업 노사관계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며 “긴급조정권 행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23/0003976350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부가 긴급조정권 행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 아니다. 말해봐야… 아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이상한가? 갑자기 전의를 상실하게 되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긴급조정권,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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