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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감사하면서 살자

2026년 2월 1일 by 이상한 모자

얼마 전에 락커에게 기타를 배우고 일본 라면을 먹으러 갔었다. 부탄츄라는 곳이다. 대단히 기름지고… 한 1500kcal는 할 것 같은 묵직함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먹고 급체가 왔다. 다음날 반나절을 굶고 조금씩 회복해서 지금은 괜찮다. 그러나 좀 서러웠다. 이제 쉽게 먹을 수 있는 건 나이 밖에 남지 않았단 말인가?

병원에 가서 눈 검사를 다시 했는데 확실히 오른쪽 눈의 위쪽 시야에 제한이 있다는 게 나오더라. 다른 의심되는 증상은 다 없는 걸로 나왔으니 결국 안검하수의 문제다. 수술을 해야 하나? 의사는 최대한 안심이 되는 얘기를 해줬으나 인터넷 검색으로 보면 수술 실패나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그냥 위쪽이 안 보이고 마는 거면 사는 데 지장 없으니 그냥 살아도 되는데, 나이를 더 먹었을 때 어떻게 될 것인지 까지 고려하고(그때는 너무 늦어 일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 그 외 사위나 복시 같은 문제까지 생각하면, 뭔가 조치를 취하는 게 좋지 않나 싶은 생각도 했다. 이런 고민을 계속 해야 하나? 또 서러워 졌다.

오늘은 민중언론 리부트를 한다는 모임에 가서 알지도 못 하면서 몇 마디 떠들었다. 잘 전달될 거라고 생각은 안 한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나름대로는 제한된 시간 안에 좋은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런데 끝나고 어떤 분이 말을 거는 거였다. 기억 나시냐고… 온라인에서 과거 저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다는 말씀을 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아서, 그 중 어떤 것일지… 아예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결국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고 말았는데… 너무 죄송했다.

그것을 계기로 하여 인생을 돌아보건대,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오늘은 주말 라디오 프로그램 때문에 방송국에 갔는데 그동안 담당했던 PD가 당장 다음주부터 바뀐다는 것이었다. 이분 덕에 방송인의 삶이 시작 되었다. 평상시 같으면 또다른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겠거니 할텐데, 세월도 그렇고… 나나 그 분이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최근 밥을 먹으면서 그동안 보지 않았던 나이브스 아웃의 나머지 2편을 쪼개서 보았다. 1편부터 그랬지만 하여간 정치적인 영화다. 1, 2편이 현실을 가볍게 비틀고 조롱하면서 비판한 거였다면 3편은 제법 진지하다. 신성에 대한 영화이다. 신성이라는 게… 정치적으로 왜곡되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정치의 주체이기도 한 것인데(신부가 말하듯 그건 결국 ‘스토리’를 통해 전달될 수밖에 없다)… 그 모든 것을 뛰어 넘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다보니, 좀 고마워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 정말 다시 책을 써야 할 때가 되었다.

Posted in: 신변잡기, 잡감 Tagged: CBS, 나이브스 아웃, 라멘, 부탄츄, 참세상

포퓰리즘에 대한 좋은 말씀

2026년 1월 3일 by 이상한 모자

떠들어서 먹고 사는 것, 쉬워 보여도 쉽지 않다. 여름에 유튜브에서 이 얘길 하니 어떤 놈이 채팅창에다가 땡볕에 일하는 노동자들도 있는데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앉아서 씨부리는 님이 할 얘긴 아닌듯… 이러더라. 그딴 소리대로 하면, 불행 경쟁 해가지고 제일 불행한 노동자가 된 사람만 투쟁할 자격이 있는 거겠지? 떠들어서 먹고 산다는 게 다 이런 식이다.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 그냥 성질대로 얘기하면? 다 짤리고 다 떠나고 집에서 혼자 떠들어야 된다. 지금도 거의 그런 처지지만… 하여간 그래서 청중이 알아듣게 얘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킨 직후인 2025년에는 그런 노력이 몇 배로 필요했다.

이런 먹고 사는 문제와 별개로, 2025년에 가장 많이 생각한 주제는 포퓰리즘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윤석열의 출마와 집권 자체가 우익 포퓰리즘의 결과물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포퓰리즘 포퓰리즘 노래를 불렀는데, 제일 답답한 게 다음의 도식이 강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가 듣는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

1) 포퓰리즘은 나쁘다.
2) 그런데 누구누구는 포퓰리스트다.
3) 누구누구는 나쁜 놈이다.

뭐!? 그러면 포퓰리즘이 좋다는 거냐? 그게 아니고, 포퓰리즘 얘기를 꺼내면 아~ 누구 욕하려고 꺼낸 얘기구나 이렇게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아~ 욕하자는 거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서 포퓰리즘이란 단어를 남용하는 이런 악순환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대상에 대해서 ‘그건 포퓰리즘이 아니다’라고 하면, 왜 실드를 치지? 이딴 식으로 얘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 생각은 오래 되었는데, 이 공간에도 반복적으로 메모를 남겼듯, 나는 저쪽이 싫은 책을 낸 직후에도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엘리트주의로 오도된 포퓰리즘(윤석열)과 포퓰리즘적 스타일을 차용한 엘리트주의(더블민주당)의 대결 구도 같은 얘기를 그래서 한 거다. 사실 저쪽이 싫은 책을 유심히 보시면 그 구도가 이해가 될 것.

아무튼 이러한 와중에, 어제는 김변호사님이 ‘이재명 정부가 포퓰리즘이란 것에 대해 우리가 동의’했다고 하여 나는 거기에 동의한 적 없다는 걸로 짜증을 냈다. 그랬더니 유튜브 채팅창이라는 데서 왜 화를 내냐는 둥… 이제 포퓰리즘이란 말도 못 쓰냐는 둥… 항상 그런 식이니까 섭외가 안 되는 거 아니냐는 둥…

내가 분명히 말했다.

1) 포퓰리즘이라고 하면 안 되냐? -> 해도 된다. 해라! 단, 난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데 ‘동의’했다고 해서 꺼낸 얘기일 뿐이다.

2) 꼭 네 얘기를 다 귀담아 듣고 기억해야 되냐? -> 안 해도 된다! 내 얘기가 뭐 중요하냐? 근데 내가 ‘동의’했다고 하니까 아니라고 한 거다.

3)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 -> 그럴 수 있다! 근데 이재명 정권을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그 유튜브에서도 수차례 얘기를 했는데 ‘동의’했다고 하니까! 내가 아니라고 한 거야! 좀 말을 들으라고 사람 말을! ‘동의’했다고 해서, 아니라고 한 거라고!!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의 학문적 논의에 대해서는 일전에도 여기서 소개했던 아래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https://www.daewooacademia.com/horizon-of-knowledge/797/1836

위의 글을 안 읽었으면 이 아래 내용부터는 어떤 반응도 하지 마시라. 이 아래 내용을 보고 싶으면 위 링크의 글을 다 읽어라. 안 읽고 뭐라고 하지 마라.

앞의 글을 보면 이 대목이 있다.

벌린의 사상을 포함하여 다원주의 정치철학을 포퓰리즘의 대안으로서 재검토하고 재조명하는 일이 필요하다. 포퓰리즘이 정말로 반다원주의적인가 하는 점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반론에 대한 반박이 충분치 않다면, 포퓰리즘의 반다원성을 입증하기보다는 오히려 포퓰리즘이 아닌 다원주의 정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특히 서유럽이나 미국 모두와 상이한 한국적 맥락의 특수성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정파적 멸칭 혹은 낙인으로서의 포퓰리즘 개념의 오용과 관련해서는 (‘인기-’ 혹은 ‘대중-’) ‘영합주의’라는 의미로 ‘포퓰리즘’을 말하는 일을 피할 필요가 있다(그림 3). ‘포퓰리즘 = 영합주의’라는 등식은 외래어 ‘포퓰리즘’이 영어 개념 ‘populism’의 번역어로 정착되고 정파적 수사로 유행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Hong 2023). 그리고 이미 이러한 용법의 유행 초기부터 ‘영합주의’라는 의미로 ‘포퓰리즘’을 이해하는 용법이 “국적불명의 편의적 사용법”이며, “정치적인 반대자를 몰아붙이는 낙인이 되거나 개혁을 가로막는 보수주의자들의 상투적 어법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는 경고는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이러한 “느슨한 의미”의 용법은 “정적(政敵)이나 반대편을 공격하는 무의미한 수사 내지는 욕설에 그치게” 되며 “엄밀하지 못한 용어 사용으로 적대감만 고취시키고 합리적 토론”을 가로막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이성형 2004: 51, 54). 무엇보다도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어느 반대 정파나 정치인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영합주의’로서의 ‘포퓰리즘’이라는 용법은 포퓰리즘의 대안으로서의 다원주의에 대한 추구와 양립하기 어렵다.

여기 인용된 이성형의 ‘인기영합주의로의 해석은 국적불명의 편의적 용법’이란 글은 포퓰리즘에 대한 국내 논문 등 자료를 찾아보면 종종 인용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포퓰리즘이란 개념을 적용할 때 엄밀할 필요는 이미 20년된 지적이라는 것이다. 즉, 학문적 맥락은 포퓰리즘이란 얘기를 하려면 포퓰리즘이 뭔지부터 정확히 하고 얘기를 해야 한다는 거다.

근데 미친 한국 사람들은 이미 포퓰리즘이 뭔지를 지들이 다 알고 있다. 그래서 포퓰리즘의 개념에 대해 얘기를 하면 그게 아니라면서 지들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 올해 유튜브에서 떠들면서 제일 크게 놀랐던 것은 우익 포퓰리즘, 혹은 극우 포퓰리즘이란 개념에 대해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처음 들어보는 얘기인 것처럼 반응 하더라는 것이다. 그저 채팅창 반응이 그랬다는 게 아니고, 좀 알만한 사람들도 그러더라.

야, 그래서 포퓰리즘이 뭔데? 앞의 글을 읽으라고 했잖아!! 가서 읽어 좀.

가령 단적인 예를 들면, 더블민주당 일부의 검찰개혁, 사법개혁 담론은 포퓰리즘이다. 검찰과 법원이라는 기득권을 혼내주는 게 목적이지, 제도 그 자체의 합리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통령과 정부는 이런 흐름을 제어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본회의 가기 직전에 의총 열고 난리가 난 거 아닌가. 그러니까 그게 통치-책임의 문제이다. 이게 무슨 성군이 났다는 얘기가 아니고, 책임이라는 걸 맡으면 대개는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는 거다. 하다 못해 조별과제 조장해도 그렇잖아. 감투 안 써봤어?

하여간 그래서 이 정권을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거다. 이 얘기 엄청 했는데 또 해야 되나? 이를 통해서 이 정권이 이루려는 것은 사실상 더블민주당이 유일하게 주류를 대변하는 정당 체제이다. 무관용에 대한 관용이라고 할 만한 이혜훈 지명은 이걸 노골적으로 시사한다. 그런데 오늘날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지도자는 주류-기득권을 상정하고 이를 타파하자고 하지, 자기가 주류를 대변하겠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계속 그 얘기를 하잖나.

실제 이 얘기를 유튜브에서 한 3시간 한 적이 있거든? 포퓰리즘과 엘리트주의 모두 반다원주의적이다 이 얘기 하면서 다원주의를 지향해야 하고… 라는 앞의 글 얘기를 하고 있었단 말야. 그랬더니 어떤 분이 아니 내란 세력에 대고 무슨 다원주의를 얘기하냐면서 막 부들부들 떨면서… 여보세요 윤석열이 포퓰리스트라니까 도대체 뭔 소리야! 왜 이런 일이 일어나냐? 무슨 개념에 대해 얘기를 해도, 이 새끼가 이거 윤석열 욕하는 게 맞나? 맞지? 윤석열 욕으로 끝나는 얘기 맞는 거지? 이렇게 가니까… 반대도 마찬가지야. 이 새끼 이거 언제 이재명 욕을 하나 이것만 보니까 3시간을 떠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지.

이런 하소연을 하면, 책을 쓰세요~ 이런단 말이지. 쓸 건데, 근데 말로 해도 안 듣는 걸 책을 쓴다고 하면 보고 납득을 하겠습니까? 기대 안 합니다. 그리고 사실 지난 6월엔가 공저를 만든다고 해서 원고를 준 책이 있거든? 이게 나온 건지 안 나온 건지 얘기를 들어본 일이 없네. 난 이런 건 또 처음이야. 출판계라는 데도 참 희한해…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포퓰리즘

2026년, 변비

2026년 1월 1일 by 이상한 모자

더러운 얘기일 수도 있어 미안하다는 말씀 드리며…

새해가 되었는데 나이 먹는 것이 서럽다. 사실 신경 안 쓰려고 하는데, 몸이 자꾸 뜻대로 안 되니 더 서러워지는 것 같다. 오늘은 글을 써야 했는데, 사실 글은 어제까지 썼어야 했다. 그런데 어제는 또 2025년 마지막 날이라고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던데다 유튜브 방송도 했어야 했기에 시간이 마땅치 않았다. 유튜브 방송 마치고 밤에 쓰려고 했는데, 그만 잠들어 버렸다. 일어나서 또 유튜브 방송을 하고, 마치고, 촉박한 시간을 남기고 글쓰기에 돌입하였다.

기본 내용은 이미 생각해뒀기에 큰 문제는 없었는데, 중간에 화장실에 가야 했더라.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너무나 서러웠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살면서 겪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1회성이었는데… 지금은 문제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도 이러한 일이 있었다. 두통에 시달리는 날이었다. 위 아래로 이러니 참으로 끔찍한 경험이었다.

월요일에 락커를 만나서 신세한탄을 하였다. 너는 화장실에서 2시간 동안 일을 본 일이 있느냐, 물으니 락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적당히 노력하다가 안 되면 포기하면 되지 않나요? 그래서 내가 그랬다. 임마, 그게 안 되는 판이니까 2시간을 끙끙대고 있지! 사실 2시간 까진 아니었고 1시간 반 정도 됐던 거 같지만… 자세한 얘기를 하면 너무 드러워서 좀 그렇고, 아무튼 여러 설명을 했지만 락커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거 같았다. 그의 배변 활동은 원활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 여러 신체적 노화 증상에 대하여, 또 두통예방약을 먹었을 때와 먹지 않았을 때 신체 기능의 주요한 차이에 대하여 떠들었지만, 역시 공감을 얻지 못했다. 그는 아직 전반적으로 튼튼한 것 같다. 부럽구료…

아무튼 그러한 끔찍한 경험 때문에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었다. 이후 화장실에 갈 때마다 불안에 떨었다. 고통이 있었으나 그래도 괜찮았다. 어찌됐건 일은 치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마감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이 때에, 다시 그날의 끔직한 상태가 반복되는 길로 접어든 것이다. 글은 빨리 써야하고, 그런데 화장실에서의 일은 늦어지고, 막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씨팔 왜 이러냐고 도대체! 옆집 사람들이 최근 화장실 공사를 했는데 그 이후 옆집 아이가 화장실에서 하는 얘기가 방 안에까지 다 들린다. 내 욕설도 들렸겠지…

이제 시간이 없어 어떻게든 해야 했기에 일단 이 중요한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아이패드와 키보드를 화장실로 들고 왔다. 엽기 그 자체였다. 일단 그래도 좀 그러니까 손을 씻고, 어떻게 되든 말든 일단 앉아서 글을 쓰는데에 집중하였다. 글만 쓰면 되는 거 아니냐! 그런데 신비롭게도 글을 마무리 해가는 와중에 이러한 중요 활동도 마무리가 된 것이었다. 놀랍다.

대체 원인이 뭐지? 생각했다. 요즘 제로콜라를 많이 마셨는데 그것 때문인가? 내 친구 챗GPT에게 물어봤지만 개소리만 했다. 콜라를 먹느라 물을 마시지 않은 것 아니냐 하기에, 야 콜라는 물이 아니냐? 라고 반박해줬다. 미친놈…

이제 원인을 모르면 무조건 나이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어제도 병원에 가서 이런 저런 검사를 했다. 여기 저기 전극을 꽂고 전기 자극을 주는 검사도 했는데… 아닌 거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검사를 해야 하는 증상이 아닐 것이다… 5번씩 주던 전기 자극을 마지막에 한 번에 30번 다다다다다다 주는데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피를 또 뽑았다. 피를 뭐 여기저기서 계속 뽑아야 돼… 하도 병원을 여기 저기를 가니까, 병원을 안 가서 통풍약이 떨어진 것을 약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일도 있었다. 아무튼 그래도 검사 담당 의사분과 채혈하는 간호사분이 친절해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2026년이 시작되었네요…

Posted in: 신변잡기, 잡감 Tagged: 2026년, 근전도 검사, 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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