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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한겨레 극우 기획의 한계

2026년 10월 21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 그간 여기서 두어 차례 언급했던 한겨레의 극우 기획 마지막 회인 거 같은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83358.html

이런 기획은 대개 좌담으로 끝내는 그런 클리셰가 있다. 전문가들이 출동하였는데, 역시 우려했던 한계가 여기서 다 드러난 걸로 보인다. 참가자들 다수가 현대의 극우정치를 과거의 구도로만 보려 하거나, 문제를 파편화 해 평가하거나, 축소하려고 하는 인상을 준다. 인상이라고 하니까 느낌적 느낌을 말하는 것 같겠지만, 그게 아니고 구체적 발언에 이런 문제가 드러난다는 거다. 기사의 해법에는 동의하면서도, 이런 전형적 시각이 갖는 위험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령 아래 이어지는 발언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김종우
‘왜 1020 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인스타그램에선 진보적 의제가 잘 안 보이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이 세대가 진보 담론을 주도하는 세대가 아니니까’라는 답변도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청년 하위문화는 기성세대에 반하는, 안티테제를 지향한다.

박선경
저도 안티테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정치 지형에서 민주당이 기득권이었고, 10대가 반기득권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면도 있다. 특정 플랫폼에 특정 이념이 더 유리하다고 보긴 어렵다. 한겨레가 10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일수록,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할수록 5·18 민주화운동 등을 조롱하는 밈을 많이 보고, 또 그런 밈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왔다. ‘보수화’는 맞다. 하지만 ‘극우화’라고 말하긴 어렵다. 전세계 극우 논의에서 공통적인 극우의 기준은 ‘폭력에 대한 용인’이다. 밈을 보고 깔깔 웃는 ‘강한 보수 성향’과 폭력적 수단을 용인하는 ‘극우 성향’ 사이에는 구분이 필요하다. 하지만 설문조사 결과에서 ‘남성이 더 차별받는다’는 인식이 극우를 결정짓는 변수로 나온 것은 중요하게 봐야 한다. 10대 남성의 경우, 군대 문제 때문에 스스로 ‘피해자’란 의식이 강해지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홍성수
군대 문제가 혐오 담론 확산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여성이 겪는 성차별은 양상이 복잡하다. 이제 ‘여성은 채용 안 한다’고 표방하는 기업은 없다. 반면 남성 차별은 설명하기 쉽다. ‘남자는 군대에 가는데 여자는 안 간다’가 끝이다. 인스타그램 특성에 맞는 담론 확산에 유리한 논리 구조다. 10대 남성들이 ‘피해자’ 정체성을 갖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둔감해지고 혐오에 동참하기 쉬워진다.

문성호
대학 입시도 중요한 것 같다. 서울에 여자대학교가 4곳 있다는 것에 (남성들의) 분노가 크다. 서울에 자사고 여성 정원이 남성의 4분의 1 수준이라고 반박해도 듣질 않는다. 대입 경쟁에 내몰린 교육 환경 자체가 극우를 양산하는 셈이다. ‘쟤는 나보다 (성적이) 낮아’와 같은 인식을 점점 더 내면화한다.

박선경
최근 혐오 양상을 보면, 능력·재산·성별이 우위에 있는 자가 군림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타인이 ‘루저’로 인식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정당화한다. 세상을 위아래로 나누는 ‘사회적 지배 성향’의 태도가 마음 밑바닥에서 작동하는 것 같다.

홍성수
극우 세력의 여러 특징 중 기본이 표적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다. 이는 약자의 슬픔에 대한 무감각에 기반을 둔다. 중국인을 혐오하는 표현을 보면 대림동에 사는 중국 동포가 어떻게 느낄까,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면 유가족이나 광주 학생들이 어떻게 느낄까, 이런 감각 자체에 둔감한 거다. 독일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학살) 교육에서 확인된 것처럼,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약자나 소수자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

첫째, 청년들의 반기득권 정서는 언제나 당연한 것인데, 이들이 사회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윗세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 반기득권 정서가 과거에는 진보적 운동의 동력이 되었는데, 지금은 왜 이 논자들이 말하는대로 보수화 혹은 극우화의 동력이 되고 있느냐이다.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그냥 이것도 관계있고 저것도 관계있다, 이런 얘기만 반복되어서는 해법을 찾기가 어려운 국면에 우리는 들어와 있다. 왜 그때는 그랬고 이때는 이랬을까? 자타칭 진보가 집권을 해봤기 때문에, 혹은 이들이 내로남불이어서, 정치를 잘못해서 등등 여러가지 설명 방식이 가능하지만 그 모든 걸 관통하는 하나의 답은 정치가 이 반기득권 정서를 어떻게 조직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유가 뭐든 이들을 진보-정치가 조직했지만, 이제는 극우정치가 조직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조직의 방식과 매커니즘, 이를 가능케 하는 담론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못했던 일을 이제는 극우정치가 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런데 계속 논의가 어떤 집단을 극우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고… 등등 하는 영역으로 되돌아간다. 원래 세상만사 모든 것은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 초기에 자기가 진보라고 하는 사람이 과반 이상이었다. 그걸 근거로 앞으로는 진보의 시대가 이어질 거라고 전망한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난 그 때도 상황 달라지면 자기가 보수라고 하는 사람이 더 늘어나고 정치 구도도 그렇게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걸 갖고 공개 토론 비슷하게 했던 기억도 난다. 왜냐면 자기가 진보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 자기가 진보적 지향을 틀림없이 갖고 있어서 그렇게 답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가 개같아서 자기가 진보라고 하는 거지… 마찬가지 원리로 진보(라고들 알려져있는) 집단이 죽을 쑤면 자기가 보수라고 하는 사람은 늘어나는 것이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진보 보수도 단정이 안 되는데 극우냐 아니냐가 단정이 되겠나? 그러나 극우정치를 뒷받침하고 그들을 지지하며 세계를 극우화 하는데 기여를 하고 있으니까 극우정치의 지지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둘째… 군대 및 피해자 정체성, 대학 입시 및 능력주의,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가 분절적으로 언급되는데 이게 하나의 서사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자격이 없는 이들’이 불순한 동기를 가진 기득권에 의하여 자원과 권력을 배분받고 있어서 ‘자격을 가진 이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므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 이게 현대 극우정치의 핵심 서사이다. 이 서사를 떠받치기 위해 피해자 정체성과 능력주의 등이 동원되는 것이며, 이 논리의 연장이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로 표출되는 것이며, 이를 논리적이 아닌 정서적으로 정당화 하기 위해 짐이 동원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파편화하고 주변화 하면 핵심을 볼 수 없다.

셋째, 폭력을 용인하는가가 극우의 척도이다 라는 말은 수단을 얼마나 과격하게 급진적으로 동원할 것이냐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문제는 오늘날 폭력은 전체주의-권위주의의 속성인 것처럼 덧칠되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금지되어 있으므로(물론 주류의 담론에서, 기만적으로… 논하자면 기니까 일단 넘어가시라), “나는 일반적으로 폭력을 옹호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극우정치는 조건부로 폭력을 옹호한다. 너는 폭력을 옹호하니? 라고 물어보면 아니오 라고 하지만, 극단적 페미니스트에 대한 폭력은 옹호하니? 라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답한다는 것이다. 이 답을 정당화하는 것도 밈이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밈적 영상과 그 밑에 댓글 달아놓은 것들을 좀 보시라!

이러한 태도는 통계로도 일부 확인된다. 여기서도 한참 전에 인용한 지난 시사인의 기사 내용 일부가 이를 확인해준다.

민주주의 규범과 관련한 여러 문항에서 2030 남성은 전체 평균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또래 여성들과의 차이도 그리 크지 않다. 물론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20대 남성은 보수, 20대 여성은 진보 성향이 높게 나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보수와 극우는 다르다. ‘2030 남성 극우화’ 담론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 집단에 존재하는 소수의 ‘계엄 옹호·탄핵 반대’ 세력이 과대 대표된 측면이 없지 않다.

다만 2030 남성들의 버튼을 누르는 요인이 있다. 페미니즘이다. ‘지나친 페미니즘의 영향을 막기 위해서라면 법규칙을 어기거나 무력을 사용하는 게 정당화될 수 있다’는 문장을 제시했다. 전체에서 14%가 동의한 반면, 20대 남자의 32%, 30대 남자의 25%가 동의했다. 이는 동세대 여자들과 16%포인트에서 27%포인트 차이 날 뿐 아니라 여타 세대 남자들에 비해서도 튀는 수치다. 즉 2030 남성 대부분은 민주주의적 규범을 대체로 존중하지만, 적어도 이 집단의 네 명 중 한 명은 페미니즘에 대한 강한 반감과 불신을 이유로 무력도 불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045

최근 시사인 기사를 보면 2030 남성의 윤석열 비상계엄에 대한 태도가 특출나게 긍정적으로 나오는 것이 확인된다고 한다. 온라인 기사는 현재 구독자만 볼 수 있으니 미국 교수님의 블로그 링크(https://sovidence.tistory.com/1332)로 대신하겠다. 블로그에 첨부된 그림을 잘 보시기 바란다. 시사인은 얼마 전까지도 이대남 극우화를 단정하면 안돼요 이런 내용의 기사를 몇 차례에 걸쳐 썼었다. 모르긴 몰라도 조사 결과가 이렇게 나온 데 대해 자기들도 당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새로운 조사에서 젊은 남성의 비상계엄은 정당했다라는 응답은 왜 증가했을까? 꾸준히 생각하고 고민한 결과? 그렇다기 보다는 극우정치의 반-이재명, 반-민주당 담론(이게 뭔지는 여기서 수도 없이 얘기했다)이 윤석열의 만행을 정당화 하는 데로 이끄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다. 앞서 보수화/극우화를 나누는 도식으로 하면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다. 왜? 그 도식에 따르면 반-이재명, 반-민주당 담론은 보수화를 정당화 하지 극우화를 정당화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극우화가 아닌 보수화 된 계층은 이재명과 민주당은 증오해도 윤석열의 비상계엄 앞에서는 멈춰야 한다. 실제 다른 성별 및 세대는 어느 정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젊은 남성은 아니다. 고령층보다 변화가 더 드라마틱 하다. 폭력의 용인을 기준으로 보수화/극우화를 손쉽게 도식으로 나눌 수 없다는 증거다.

그럼 젊은 남성은 다 극우인가요? 내가 말했잖아요. 극우 정치의 조직화의 방식이 어떻게 담론으로 작동하고 있고, 거기에 젊은 남성 집단의 뭐가 반응하고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그 얘기는 여기서도 충분히 한 거 같으니 리바이벌 하지 않고…

아무튼 간에, 좋은 기획에도 불구하고 답답하다 이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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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극우포퓰리즘의 담론 사슬

2026년 10월 20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도 한겨레의 기획 기사가 이어졌는데, 아래의 대목이 특히 중요하다고 본다.

생태계 내부의 담론 구도 역시 대립각이 명확해졌다. 김종우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의 도움을 받아 비상계엄 이후부터 올라온 게시물 3만364건을 대상으로 ‘토픽 모델링’ 분석을 봤더니, 극단적으로 양쪽으로 나뉜 담론의 뿌리가 드러났다. 토픽 모델링이란 해시태그, 게시물 본문 등을 분석해 주요 ‘열쇳말’(토픽)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이재명-민주당-좌파-공산주의자-부패’가 하나의 담론 사슬을, ‘보수-국민-자유-민주주의-정의’가 또 다른 사슬을 이루고 있었다. 인스타그램 극우 생태계 안에서는 ‘내부의 적’인 이재명, 민주당, 좌파가 ‘외부의 적’인 공산주의자, 중국과 함께 ‘하나의 적’으로 결합하는 셈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유럽과 미국의 극우 포퓰리즘은 ‘우리’와 ‘그들’을 분리한 뒤에 표적집단인 ‘그들’이 문제의 원인이라면서 공격한다”며 “한국에서도 부정선거론이 중국인 혐오로 연결되면서 소수자 혐오로 진화해나가는 방식으로, 서구 극우 포퓰리즘과 매우 닮은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83164.html

이거 제가 글과 방송 등에서 늘 말씀드리는 바이다. 이 얘기 한지가 한참 됐다. 한겨레는 인스타그램을 주로 분석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바로 이 담론 전략 수행을 위한 플랫폼이라는 게 핵심이다. 이들의 담론에서 진보는 중국, 북한, 전체주의, 공산주의, 이재명, 문재인, 민주당, 여성주의, 차별금지법 등과 사슬을 이루고 있다. 이 중 하나에만 반대해도 나머지 모두를 반대하게 되는 전략이다.

이들은 자신을 기사에 나온 ‘보수-국민-자유-민주주의-정의’로 규정하는데, 여기서도 중요한 건 이 사슬이 자신들이 따르는 가치로 규정된 게 아니라, 자신들이 반대하는 것의 반대 개념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즉, 진정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향해서가 아니라, 전체주의와 독재를 반대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자유고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청년-극우 담론에서는 여성주의를 반대하면 전체주의와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투사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 담론 사슬에서 자유민주주의는 텅 빈 기표이다.

이런 작업은 기사에서 말하는대로 비상계엄 이후가 아니라, 그 훨씬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굳이 단기적 기원을 찾자면 박근혜 탄핵, 문재인 당선 이후이다. 그때는 인스타그램을 지금처럼 활용하지 않았으니 정량적 분석이 어려운 측면이 있겠지만 오랫동안 보수언론을 보고 보수정치의 언어를 관찰한 경험을 가진 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이런 얘기들을 짧게 정리한 원고가 있는데, 이미 넘겼지만, 이후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이런 얘기를 집중력있게 길게 정리할 계획도 갖고 있는데, 이것도 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지난 해에 다 써놓은 원고를 개작해야 한다. 뭐… 여러 사람들과 함께 쓴 이웃집 극우에도 제가 쓴 파트에 위와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아무튼 올 해 책을 두 권 출간하리라 했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계획대로 되었다면 이런 논의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텐데…

도움이 안 됐을라나? 하긴 다들 내가 뭐라 하든 관심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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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와 민주주의

2026년 10월 16일 by 이상한 모자

최근 한겨레가 좋은 기획을 연재하고 있다. 그러나… 엊그제 보다가 역시 이 대목이 한계다 싶은 게 있어서 따로 적어놔야지 했었는데, 계속 미루다가 이제야 적는다. 뭐 어차피 맨날 하는 얘기긴 한데… 아래의 대목이다.

그렇다면 실제 10대들은 ‘극우화’된 것일까. ‘극우’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학계에서도 논쟁적이다. 한겨레는 관련 논문과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극우’를 판별하는 세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 민주주의 원리를 반대하거나 부정한다. 둘째, 강력한 지도자에 의한 통치를 선호하는 등 권위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셋째, 중국과 북한, 성소수자, 장애인 등 특정 집단에 대한 강한 혐오를 나타낸다. 이를 가늠할 수 있는 8개의 문장을 제시하고 10대에게 ‘동의’하는 정도를 물었다.

‘중국인 대상 혐오 발언을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문장에 10대 남성 응답자의 42.4%가 동의(그렇다+매우 그렇다)했다. 유럽 극우 세력이 ‘이민자’를 표적으로 삼았다면, 한국 극우 세력은 ‘중국(인)’을 주로 공격한다. 디스토리팀이 만난 10대들도 외부 집단에 대해 강한 ‘배타주의’ 성향을 내비쳤다. 고등학교 1학년 이주한은 중국인이 위험한 이유에 대해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본) 무비자 입국”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김가연은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면 (일본에서) 사슴을 발로 차고 이런 건 다 중국인이더라” “제주도에서 중국인 때문에 어떤 분이 죽었다는 게시물을 봤다”고 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 진보 언론 등을 중국·북한과 연결하는 파시즘적 음모론이 전파되고 있으며, 이를 접하는 온·오프라인 공간이 일부에겐 ‘극우로 들어가는 관문’이 될 수 있다.”(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 유행하는 계급도 ‘밈’이 대표적이다. 피라미드 형태의 계급도 가장 위에 중국공산당이 있고 민주당, 전라도, 4050, 2030 순서로 차례로 짓눌리고 밑바닥에는 10대가 피라미드를 떠받치고 있다.

‘경우에 따라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필요할 수 있다’는 문장에는 남성 응답자의 21.5%가, ‘나와 의견이 같은 단체라면 가끔 폭력을 써도 응원할 것이다’라는 문장에는 15.6%가 동의했다. 중국 혐오를 포함해 앞에 제시한 3개 문장 모두에 동의한 남성 응답자는 8%였다. 10대 남성이 집단적으로 극우화됐다고 단정 짓기엔 다소 낮은 수치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82067.html

나는 이 방법론으로 ‘극우 감염자들'(내 비유다)의 숫자를 셈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말해왔다. 나뿐만이 아니고 그런 말씀하시는 분들이 더 있을 거다. 오늘날의 극우 정치는 정치적 조직화의 방식이 핵심이다. 한 사람이 얼마나 극우농도가 높은가… 이거 필요 없다. 사람은 다 제각각이고 어떤 부분에서 극우라 할지라도 또 어떤 부분에선 진보에 가까울 수도 있다. 가령 유럽 사람들 (어디까지나 그들 기준에서) 나름 멀쩡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극우정당을 대거 찍는다.

극우정치란 무엇인가?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자격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자원과 권한을 빼앗아 가고 있으므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극단적 급진적 방식으로 배제하거나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다. 유대인 절멸! 본래대로면 이 끔찍한 아이디어를 지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극우정치가 위력을 갖게 된 건 이 불리한 구도를 해킹하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극우정치가 민주주의를 자처한다. 자유주의-엘리트 세력을 ‘독재’로 규정하고, 그것과 싸우는 자신들을 ‘독재와 싸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민주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텅 빈 기표가 되는 등가 사슬을 구성하면,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것만으로도 극우정치의 지지자가 되는 연결 고리가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극우 감염자’를 판별하기 위해 넌 민주주의를 지지하니?(물론 이렇게 직접적으로 묻지 않는 경우라도 말이다)라고 묻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거다. 중국을 왜 혐오하는가? 오늘날의 극우정치 지지자들은  중국인이 더럽고 규칙을 몰라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국이란 나라가 민주주의가 아니라서 혐오한다고 주장한다. 올공시위는 왜 부정선거를 말하면서 왜 참정권 운운하는가? 자신들이 이재명 독재에 맞서 훼손된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들이 다 민주주의자들이다. 충실한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자격이 없는 자들’에 북한, 중국, 진보, 여성, 장애인, 무능력자(그들만의 기준) 등을 몰아넣고 혐오할 수 있다. 왜? 독재-기득권이 이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으로 정치적 이득을 얻고 독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 이 담론 구조가 한국에서만 관찰되는 게 아니다. 전 세계 극우 정치가 이제는 다 이 지랄한다.

그러면 왜 한겨레 혹은 한겨레의 자문에 응한 학자들은 ‘젊은이 8%만 극우론’의 관점을 가져야만 하는 것일까? 제 얘기대로 하면 ‘극우 감염자’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김문수 찍은 사십 몇 퍼센트를 다 ‘극우 감염자’로 보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거다. 왜냐면 ‘극우 감염자’는 ‘방화벽’ 너머로 밀어내야 하는데, 국민의 40%를 어떻게 밀어내나?

문제는 이런 태도가 극우정치의 정당성을 오히려 강화한다는 것이다. 독일을 위한 대안이 바로 이런 이유로 자기들을 ‘중도 세력’이라고 한다. 가령 국민의힘도 그런 주장 할 수 있다. 우리가 대선 뛰면 국민의 40%가 지지하는데, 그런 극우가 어디 있느냐! 그러나 극우를 극우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겠나? 그러니 여기서는 두 개의 개념을 버려야 하는 거다. 첫째 ‘극우 감염자’, 둘째 ‘방화벽’. 실제 방화벽은 유럽의 예로 볼 때 오늘날 극우정치를 막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또한, 극우정치의 지지자를 논하려면 늘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조직화 방식, 동원 논리, 그러니까 담론이 문제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

여기서 다 한 얘기잖어?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극우, 극우정치, 방화벽,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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