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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극우 포퓰리즘

이딴 걸 선거라고

2026년 6월 5일 by 이상한 모자

바둑은 두는 것만큼 복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여론조사부터 투표용지 매수까지, 맞는 게 하나도 없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도대체 뭔 소리를 하며 살고 있나 복기하기 위해 남긴다.

오늘 오전부터 모 유튜브에 가서 여러가지 얘기를 했는데, 그 유튜브를 위스퍼X로 화자 분리 자막 추출해가지고 AI한테 내가 한 얘기만 내용 요약을 시켰더니 이렇게 뽑아왔다. 다소 거칠게 정리했고 중간에 그냥 넘어간 부분도 있어 보이지만 대체로 결은 맞는 거 같다.

김민하 평론가는 이번 선거 결과를 전체적으로는 민주당 및 집권 세력의 ‘대승’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서울, 부산 북구 갑, 평택 등 핵심 격전지에서 패배한 것을 두고 “시험은 다 잘 봤는데 국영수를 망친 격”이라며 뼈아픈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유권자들이 집권 세력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특정 지역에서는 보수 진영의 공세를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김민하 평론가가 제기한 세부적인 주장과 분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서울시장 선거 패배 원인 분석

서울은 본래 여론조사 추이 상 민주당에게 불리하고 오세훈 후보가 앞서가는 어려운 판이었습니다. 정원오 후보는 전통적인 민주당의 색채(세금 부과, 이념적 접근 등)를 지우고 ‘유능한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부각하는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 전략은 오세훈 시장을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는 ‘반(反)오세훈 전선’을 강하게 형성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도봉, 관악, 금천 등 민주당 전통 지지층의 투표율을 충분히 끌어올리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반면 오세훈 후보는 정원오 후보를 ‘제2의 박원순’으로 규정하는 프레이밍 전략을 썼고, 이것이 강남권 등 보수 유권자들에게 부동산 규제와 세금 폭탄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여 보수층의 높은 결집과 압도적인 투표율을 이끌어냈다고 지적합니다.

2. 20대 남성 및 보수 유권자의 심리 분석

20대 남성 일부가 보수화되거나 극우적 담론에 동조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지위 박탈에 대한 위협’과 ‘피해자성’으로 설명합니다. 이들은 실제로 자신의 지위가 하락하지 않았더라도, 한정된 자리를 두고 다른 불이익을 받던 존재(여성 등)들이 치고 올라와 자신이 도태될 수 있다는 공포를 느낍니다. 보수 진영은 재개발·재건축을 막는 세력을 ‘자유를 억압하는 좌파’로 이념화하여 이들의 공포와 불만을 성공적으로 포섭했다고 분석합니다.

3. 국민의힘 당내 권력 지형과 향후 전망

장동혁 체제는 선거 과정 내내 지역 거부 반응과 역효과를 낳았으므로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봅니다. 반면 한동훈 후보는 선거 막판 장동혁과의 거리를 두며 정권 견제론을 흡수하는 전략을 썼고, 당선 이후 영남과 부산 지역의 지분을 바탕으로 당내 영향력을 키울 것으로 전망합니다. 특히 서울시정에 묶여 운신 폭이 좁은 오세훈과 달리, 한동훈은 당 밖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하며 반(反)장동혁 전선 안에서 임시 동맹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4. 부산 북구 갑 및 평택 선거 실패 요인

부산 북구 갑의 하정우 후보에 대해서는 애초에 색깔이 옅은 후보를 내세워 중도 스윙보터층을 흡수하려던 전략이 한동훈의 영리한 캠페인에 막혀 실패했다고 분석합니다. 한동훈은 하정우를 지역 기반이 강한 전재수(시장 후보)와 철저히 분리시켜 하정우의 무능함을 부각했고,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이 ‘시장은 전재수, 국회의원은 한동훈’을 뽑는 교차 투표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평택 선거에서 벌어진 조국혁신당과 민주당의 갈등은 시기가 적절치 않았던 섣부른 합당 제안과 선거 연대 결렬이 낳은 ‘외통수’라고 비판합니다. 조국혁신당이 독자적인 제3당으로서의 비전을 증명하지 못한 채 민주당 지지층을 빼앗기 위해 네거티브 캠페인에 몰두하는 모순을 보였다고 지적합니다. 김민하 평론가는 정치인 조국이 이번 선거를 통해 이른바 ‘조국 사태’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긍정적으로 반전시키는 기회로 삼았어야 했으나, 오히려 과거의 부정적 인식을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아쉬운 결과를 낳았다고 꼬집습니다.

5. 선관위 논란 및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시각

투표 용지 부족 사태 등으로 불거진 선관위 부실 관리 문제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시스템 개편이 현실적으로 매우 꼬여있는 문제라고 진단합니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업무 감사를 거부하는 논리, 즉 민감한 정치 자금 및 후원금 내역이 집권 세력에게 넘어가 정치 탄압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를 무작정 무시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이 사안에 끼어들면서 합리적인 제도 개선 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오세훈 측의 ‘제2의 박원순’ 프레임 전략에 대해서는 선거 과정에서 좀 심각하다고 봤는데, 이 얘기를 글로도 썼었다. 아래 글이 5월 21일 입력으로 되어 있으니까 실제 쓴 거는 그 이틀 전이나 그럴 것이다. 물론 글로 쓰기 전에 이미 말로도 떠들었다.

‘정원오는 제2의 박원순’ 프레임의 최종 기착지는 부동산 문제다. 유권자가 보기에 두 후보는 부동산 대책 철학에서 큰 차이를 드러내는 것 같지는 않다. ‘착착개발’이냐 ‘신통기획’이냐 등의 레토릭, 공공과 민간의 역할 등 세부 정책 차이가 있을 뿐 세금으로 집값 잡는 데 반대하고, 공급 중심 대책을 앞세우며, 1주택자 세부담 완화를 주장하는 방향은 유사하다. 이러면 실행 의지나 실적이 쟁점이 되는 게 당연한데, 이 경우 현직 시장에 아무래도 불리한 논쟁 구도가 형성된다. 직전까지의 시정 평가 위주로 논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 후보가 “박원순 시장 시절 재개발 재건축 사업 구역 389군데를 해제했다” “박원순 전 시장 시절 부동산 시장이 완전히 빙하기에 접어들었다”고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은 이 구도를 뒤집기 위한 시도다. ‘오세훈 시정’에 대한 평가 구도를 ‘박원순 시정’ 평가로 뒤집어 자신의 위치를 ‘디펜딩 챔피언’(전 대회 우승자)이 아니라 ‘도전자’에 놓이도록 해서 ‘언더도그’(약자)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박원순=운동권=성추문=민주당=부동산 정책 실패’라는, 반대의 대상으로서 개념 사슬은 이를 위해 고안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슬이 ‘이재명=문재인 정권’ 프레임과 연결되면 오세훈식 포퓰리즘 동원 논리가 완성된다.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9356.html

이대남 얘기는, 또 이 얘기 하면 할 말들 많아 가지고 이 얘기 저 얘기 하겠지만, 얘기가 나와서 한 얘기니 그냥 넘어가시고, 피해자 정체성이 극우포퓰리즘의 연결 고리 중 하나가 된다는 얘기는 최근 한겨레에 실린 신진욱 교수의 글에도 나온 바 있다.

오스트리아 언어학자 루트 보다크(Ruth Wodak)에 따르면, 신극우 전략은 ‘도발-부인-피해자화-전치-주류화’의 패턴을 보인다. 계산된 모호성으로 도발적 메시지를 던지고, 비난에 처하면 의도성을 부인한다. 제재가 가해지면 ‘전체주의’, ‘파시즘’을 비난하며 자신을 억압받는 피해자로 만들고, 쟁점을 ‘표현의 자유’로 전치하여, 자신들의 도발을 사회가 관용하게 만든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60540.html

이스라엘 인사가 쟁점을 전치하는 과정에 좌파 혹은 리버럴 이론을 왜곡해 갖다 쓰는 현상이 일어난 바 있는데, 그 피해자 중 하나가 심지어 지젝이었다는 점에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감정을 느끼게 된 바도 있었다.

충격적이게도 고프만은 정책 결정자를 위해 불법적 폭력을 대신 저지를 수 있다는 논리에 대한 지적 근거로 나를 꼽았다. 물론 비판 이론이 반동 세력에 의해 전유되는 현상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이스라엘군은 오랫동안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포스트구조주의 개념을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도시전 수행의 작전 이론에 활용해왔다. 디지털 신봉건주의의 설계자라고 할 수 있는 피터 틸은 르네 지라르를 왜곡하여 전유한다. 우파 포퓰리스트들 역시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좌파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혹시 내 이론 안에 고프만이 전유할 만한 요소가 있을까? 단호하게 말해 없다. 나의 작업은 현대 국가권력이 자신의 법질서를 위반해가며 불법적 폭력을 동원해 권력을 재생산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일이었다. 고프만은 이를 국가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뒤집어 권력이 법을 위반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전략으로 사용한다. 억압자가 자신과 같은 이들을 비판하는 이론을 왜곡하여 오히려 자신들의 범죄적 활동을 정교화한다는 점에서 놀라운 아이러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61248.html

놀랍게도 우리 역시 이러한 일을 이미 겪었는데, 그게 바로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 타령이다. 문재인을 반대하는 것이 곧 자유민주주의라는 타령을 하고 염병을 하더니 지가 사실상의 독재인 내란으로 달려갔다. 즉,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론으로 내란을 정당화 한 셈이다. 근데 이런 방식의 접근(커피를 선택할 자유 등)이 아직도 젊은이 일부에는 먹힌다. (먹히는 이유가 있는데 그 얘기는 많이 했으니 생략.)

한동훈 씨가 보수 재건을 한다는데 그 내용이 2022년 윤석열(상대를 반대하기만 하면 저절로 뭐가 된다는…)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오늘 어느 방송에서 2024년 윤석열 반대로만 보수 재건이 되지 않는다, 2022년 윤석열까지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이 얘기를 오늘 낸 글로도 썼다.

물론 대부분의 뉴스 콘텐츠 소비자들에게는 선거 진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찾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극우 포퓰리즘, 오세훈, 정원오, 지방선거, 한동훈

하이퍼 능력주의와 공정 담론

2025년 10월 25일 by 이상한 모자

외국, 그러니까 주로 서구에서 민주주의니 능력주의니 하는 사람들 얘기를 잘 들어보면 이런 구도의 얘기를 많이 한다. 능력주의 세계에서 낙오된 사람들이 체제로부터 소외된 것에 모욕감을 느끼고 분노하여 자기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이단아적 지도자를 찾게 됐고 그게 트럼프니 하는 극우포퓰리스트 집권으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너무 거칠게 요약한 것일 수도 있는데, 뭐 하여간 이런 구도다. 요즘 한겨레신문에 나온 몇몇 분들도 이런 구도의 얘기를 했다.

근데 이게 미국 등 서구 모델에는 맞는 설명일 수 있지만 한국에는 꼭 들어 맞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옛날부터 이런 저런 형태로 했는데, 최근 유튜브에서는 이 얘기를 ‘하이퍼 능력주의’라는, 내 나름의 유머를 섞은 명칭으로 몇 차례 설명하기도 하였다. 하이퍼화… 를 염두에 두고…

그게 뭐냐면, 이런 거다. 한국 능력주의의 낙오자는 서구와 같은 형태로 모욕감을 느끼거나 분노하지 않는다(느끼더라도 다른 방식이다… 인데 제가 서구 전문가들의 입장을  오독한 것일 수 있으니 이해바란다). 오히려 한국 능력주의에서 낙오자는 자신이 낙오된 상황 자체를 더욱 강화되었으면서도 왜곡된, (즉 하이퍼화 된…!) 능력주의적 세계관으로 포섭한다. 그것은 뭐냐, 낙오와 배제를 능력주의 질서 자체의 부당함이 아니라 능력주의 질서 안에서의 부당함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가령 그것은… 나보다 위에 있는 녀석은 나보다 진정으로 실력이 좋아서 내 위에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 부당한 수단을 썼든지 아니면 이 사회의 기준이 잘못됐든지 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진정한 능력주의적 기준을 공정하게 적용한다면 나는 50등이 아니고 최소한 15등은 하는 것이 맞다는 식이다. 그러므로 내 위에 있는 녀석이 부당하게 그 위치에 있다는 증거를 끊임없이 찾아내야 한다. 나보다 밑에 있는 녀석은? 그럴만해서 밑에 있는 것이다. 이 밑에 있는 녀석이 부당한 수단(가령 아빠찬스)을 쓰거나 잘못된 기준(가령 할당제)을 갖고 와서 우기는 걸로 내 등수를 위협한다면? 철저히 짓밟아야 한다.

그렇다면 자기 위에 있는 이가 트집 잡을 게 하나도 없는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인정이다. 인정! 이 서사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견결한 능력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정할 것은 또 인정한다. 그런데 이들이 실제로 신실한 능력주의자가 맞느냐? 그건 아니다. 이들은 종종 어차피 뭔가 부당하다고 주장해봐야 소용없는 대상에 대해서도 그냥 인정을 한다. 가령 이재용. 상대가 이재용인데 아빠찬스라는 둥 할 거냐? 그게 무슨 실익이 있냐? 이재용이 아빠찬스를 써서 회장이 됐으므로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무 실익이 없다. 따라서 이재용은 인정한다.

이러한 양상은 자신이 ‘부당한 기득권’의 위치를 차지할 기회가 생겼을 때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가령 나보다 위에 있는 존재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그가 능력주의 질서 안에서 부당하게 경쟁의 우위를 점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내가 부당한 수단을 써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만약 신실한 능력주의자라면 이런 기회는 거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한 기회를 움켜 쥔다. 아빠찬스를 쓰면 15등이 아니라 5등이 될 수 있다? 무조건 해야지 임마! 다른 애들도 다 하는데! 꼬우면 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그리하여, 내가 볼 적에 한국에 만연한 이러한 하이퍼-능력주의는 위에 대하여 ‘부당한 수단 혹은 잘못된 사회적 기준에 의하여 지위를 획득한 위선적 엘리트’라는 반대해야 할 대상을 쉽게 상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포퓰리즘과, 아래에 대하여 ‘너는 능력이 없으므로 그에 맞는 대접을 받아야 하고 그 이상을 바라면 안 된다’고 한다는 점에서 혐오 즉 극우적 세계관과 쉽게 결합할 수 있다. 이걸 해내는 정치를 한 마디로 압축한 슬로건이 ‘공정과 상식’이며, 윤석열이 당선된 대선 전후의 보수는 그러한 방식으로 유권자를 조직-동원하는 정치(내가 볼 때는 한국형 극우포퓰리즘)를 구사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정치로 조직된 유권자의 목표는 당연히 극우 이념의 관철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위의 상승 및 탈락 방지이다. 이 지위 상승 욕구와 상실 불안을 극우와 연결시키는 수단, 매커니즘이 극우포퓰리즘이다. 이준석이 만든(그가 그렇게 주장하므로) 윤석열의 승리는 이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경쟁, 극우 포퓰리즘, 극우주의, 능력주의

민주당에 화가 나면 뭐든지 해도 되나

2025년 10월 22일 by 이상한 모자

이런 글에 일일이 화를 내는 것도 이제 지친다.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5/10/21/IMU5ZRBWFVEADEVXTQTIRPSIQ4/

그런데 쓴 사람이 그래놔서 한 번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거 쓴 분은 남이 자신을 비판하면 자기가 맞는 얘기를 해서 비난을 받는다고 보통은 생각을 하니 생각을 고쳐 먹으리라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슷한 스탠스인 다른 사람들이 정신을 좀 차렸으면 하는 생각에 기록을 남긴다.

얼마 전 다른 운동권 분들과의 티타임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다. 이대남 이런 얘기하면 극우 낙인찍기 하지 말라는 얘기만 끈질기게 하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난다… 거기서 내가 그랬다. 그게 결국 극우담론이 민주당에 정파적 이익을 안긴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 즉, 이런 사람들은 세상만사 판단기준이 민주당에 유리하냐 불리하냐라는 점에서 그들이 그렇게도 미워하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과 별다를 것이 없는 존재들이다.

제가 쓴 저쪽이 싫은 책을 읽어보면 이해하시겠지만, 상대가 싫어서 선택을 하거나 행동을 했다고 하는 거는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일반 문법이다. 운동권들도 잘 생각해봐라. 뭔가에 반대하는 자신의 포지션이 먼저 있고 그걸 정당화 하기 위해 이념이든 이론이든 동원하는 게 먼저였지, 태어날 때부터 레선생님 이름 마빡에 새기고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게 윤석열이든 한동훈이든 장동혁이든 이재명이나 민주당을 막기 위해 뭔가를 하거나 했다고 말하는 거는 다 마찬가지란 거다. 그렇게 반대하는 포지션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 즉 어디까지 허용을 할 거냐가 문제인 거지…

현대 정치에서 극우정치의 문제는 이제 거의 극우-포퓰리즘의 문제로서 다뤄지고 있다. 극우정치는 이제 과거처럼 극우 이데올로그를 가두리 양식장에 가둬 놓고 상대를 안 해주는 것으로만 상대할 수 없다. 극우정치는 이미 집권을 했거나, 집권을 노리고 있다. 전세계가 같은 양상이다. 극우정치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이들이 현대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의 파훼법(내 표현법으로는 ‘해킹’이다)을 발견 하였기 때문이다. 그 공략법은 포퓰리즘과 결합하는 것이며, 그게 극우-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의 정의에 대해서는 이전 메모에서 다뤘으니 모르겠으면 찾아 보시고, 그러한 정의가 현실 정치에서 어떤 문법의 구현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바로 ‘반대의 정치’로 나타난다. 포퓰리즘을 압축하면 ‘엘리트를 반대한다’인데, 여기서 ‘엘리트’는 지금이 대안적 사실의 세계인 바 지 마음대로 구성하면 되는 것이므로 결국 ‘반대한다’가 남는 것이다. 여기서 반대의 대상인 ‘엘리트’가 어떻게 대안적으로(?) 구성되느냐는 ‘반대해야 할 개념의 사슬’에 대한 메모를 찾아봐라.

이게 그냥 포퓰리즘이 아니라 극우-포퓰리즘인 이유는 그 포퓰리즘적 접근의 결과가 극우정치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즉, 앞서 개념으로 하면 반대의 결과로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가 그 정치의 성격을 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구의 기준으로 하자면, 엘리트가 싫다고 인종차별 담론에 기대서야 되겠는가?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싫다고 내란을 정당화해서 되겠나? 민주당이 싫다며 윤석열 구속에 항의한다며 서부지법을 때려 부수면 되겠나? 도대체 이걸 말로 해야되나?

일관된 이념을 갖추지 않으면 극우도 극좌가 아니라는 주장은 현재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그렇게 따지면 프랑스에서 마린 르 펜의 당이 지지를 얻는 것은 극우적 현상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도 극우정치의 결과물이 아니다. 마린 르 펜이든 트럼프든 극우지도자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과거엔 진보도 지지하고 리버럴도 지지하고 했던 이들이다. 이런 기준이면 지구상에 유의미한 극우정치는 없다. 다들 기득권이 싫어서 일시적으로 탈선한 결과를 일으켰을 뿐이다. 즉, 아무도 아프지 않은데 지구 정치는 병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보통 돌팔이라고 한다.

극우정치를 지지하는 한 개인을 분자 단위로 쪼개서 분석할 수 있다면, 극우 극좌 진보 보수가 섞여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논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념 농도를 측정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극우정치의 문제는 유권자를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조직하고 동원하며 이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내가 일전에도 이 나라에 진정한 극우 유권자가 몇 퍼센트인지를 따지고 이런 거는 크게 의미 없다고 쓴 거다.

오히려 ‘기득권을 반대하는 것에 불과하니까 여기까지는 해도 돼’라는 건 오늘날 극우-포퓰리즘이 가장 선호하는 자기 변명의 논리다. 극우정치에 동력을 제공하는 극우정치의 지지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항변이 ‘내가 왜 극우냐’는 거다. ‘나는 여성혐오를 하는 게 아니다! 단지 위선적인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것 뿐이다!’ 앞서 글은 정확히 그런 기준에 들어 맞는다는 점에서 극우-포퓰리즘에 일조하는 논리를 보여준다. 이러면 글 쓴 사람은 ‘허~ 이제는 평생을~ 노동운동에 바친~ 나까지 극우주의자라네요~’라고 하겠지만, 다시 강조하는데 개인이 극우주의자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극우정치가 너님들이라는 정치적 자원을 ‘반대하는 것에 불과’라는 명분으로 어떻게 동원하고 있는지를 보란 말이다.

오히려 이 글은 본인 행보의 자기정당화를 위한 것이 아닌가? 내가 한 일은 민주당의 행태에 화가 나서 한 일일 뿐이다!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했었다. 전략적으로 민주당하고 협력하는 건 된다면서 왜 국민의힘하고 협력하는 건 안되냐! 뭐 그 시점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봤다. 그러나 윤석열이 내란으로 간 다음에는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되었다. 그런 명분으로 윤석열 정권과 뭘 한 사람들은 최소한 사과든 입장표명이든 뭔가 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일보에다가 이딴 똥글이나 쓰는 게 아니고…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극우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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