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에 일일이 화를 내는 것도 이제 지친다.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5/10/21/IMU5ZRBWFVEADEVXTQTIRPSIQ4/
그런데 쓴 사람이 그래놔서 한 번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거 쓴 분은 남이 자신을 비판하면 자기가 맞는 얘기를 해서 비난을 받는다고 보통은 생각을 하니 생각을 고쳐 먹으리라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슷한 스탠스인 다른 사람들이 정신을 좀 차렸으면 하는 생각에 기록을 남긴다.
얼마 전 다른 운동권 분들과의 티타임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다. 이대남 이런 얘기하면 극우 낙인찍기 하지 말라는 얘기만 끈질기게 하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난다… 거기서 내가 그랬다. 그게 결국 극우담론이 민주당에 정파적 이익을 안긴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 즉, 이런 사람들은 세상만사 판단기준이 민주당에 유리하냐 불리하냐라는 점에서 그들이 그렇게도 미워하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과 별다를 것이 없는 존재들이다.
제가 쓴 저쪽이 싫은 책을 읽어보면 이해하시겠지만, 상대가 싫어서 선택을 하거나 행동을 했다고 하는 거는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일반 문법이다. 운동권들도 잘 생각해봐라. 뭔가에 반대하는 자신의 포지션이 먼저 있고 그걸 정당화 하기 위해 이념이든 이론이든 동원하는 게 먼저였지, 태어날 때부터 레선생님 이름 마빡에 새기고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게 윤석열이든 한동훈이든 장동혁이든 이재명이나 민주당을 막기 위해 뭔가를 하거나 했다고 말하는 거는 다 마찬가지란 거다. 그렇게 반대하는 포지션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 즉 어디까지 허용을 할 거냐가 문제인 거지…
현대 정치에서 극우정치의 문제는 이제 거의 극우-포퓰리즘의 문제로서 다뤄지고 있다. 극우정치는 이제 과거처럼 극우 이데올로그를 가두리 양식장에 가둬 놓고 상대를 안 해주는 것으로만 상대할 수 없다. 극우정치는 이미 집권을 했거나, 집권을 노리고 있다. 전세계가 같은 양상이다. 극우정치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이들이 현대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의 파훼법(내 표현법으로는 ‘해킹’이다)을 발견 하였기 때문이다. 그 공략법은 포퓰리즘과 결합하는 것이며, 그게 극우-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의 정의에 대해서는 이전 메모에서 다뤘으니 모르겠으면 찾아 보시고, 그러한 정의가 현실 정치에서 어떤 문법의 구현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바로 ‘반대의 정치’로 나타난다. 포퓰리즘을 압축하면 ‘엘리트를 반대한다’인데, 여기서 ‘엘리트’는 지금이 대안적 사실의 세계인 바 지 마음대로 구성하면 되는 것이므로 결국 ‘반대한다’가 남는 것이다. 여기서 반대의 대상인 ‘엘리트’가 어떻게 대안적으로(?) 구성되느냐는 ‘반대해야 할 개념의 사슬’에 대한 메모를 찾아봐라.
이게 그냥 포퓰리즘이 아니라 극우-포퓰리즘인 이유는 그 포퓰리즘적 접근의 결과가 극우정치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즉, 앞서 개념으로 하면 반대의 결과로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가 그 정치의 성격을 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구의 기준으로 하자면, 엘리트가 싫다고 인종차별 담론에 기대서야 되겠는가?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싫다고 내란을 정당화해서 되겠나? 민주당이 싫다며 윤석열 구속에 항의한다며 서부지법을 때려 부수면 되겠나? 도대체 이걸 말로 해야되나?
일관된 이념을 갖추지 않으면 극우도 극좌가 아니라는 주장은 현재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그렇게 따지면 프랑스에서 마린 르 펜의 당이 지지를 얻는 것은 극우적 현상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도 극우정치의 결과물이 아니다. 마린 르 펜이든 트럼프든 극우지도자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과거엔 진보도 지지하고 리버럴도 지지하고 했던 이들이다. 이런 기준이면 지구상에 유의미한 극우정치는 없다. 다들 기득권이 싫어서 일시적으로 탈선한 결과를 일으켰을 뿐이다. 즉, 아무도 아프지 않은데 지구 정치는 병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보통 돌팔이라고 한다.
극우정치를 지지하는 한 개인을 분자 단위로 쪼개서 분석할 수 있다면, 극우 극좌 진보 보수가 섞여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논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념 농도를 측정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극우정치의 문제는 유권자를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조직하고 동원하며 이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내가 일전에도 이 나라에 진정한 극우 유권자가 몇 퍼센트인지를 따지고 이런 거는 크게 의미 없다고 쓴 거다.
오히려 ‘기득권을 반대하는 것에 불과하니까 여기까지는 해도 돼’라는 건 오늘날 극우-포퓰리즘이 가장 선호하는 자기 변명의 논리다. 극우정치에 동력을 제공하는 극우정치의 지지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항변이 ‘내가 왜 극우냐’는 거다. ‘나는 여성혐오를 하는 게 아니다! 단지 위선적인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것 뿐이다!’ 앞서 글은 정확히 그런 기준에 들어 맞는다는 점에서 극우-포퓰리즘에 일조하는 논리를 보여준다. 이러면 글 쓴 사람은 ‘허~ 이제는 평생을~ 노동운동에 바친~ 나까지 극우주의자라네요~’라고 하겠지만, 다시 강조하는데 개인이 극우주의자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극우정치가 너님들이라는 정치적 자원을 ‘반대하는 것에 불과’라는 명분으로 어떻게 동원하고 있는지를 보란 말이다.
오히려 이 글은 본인 행보의 자기정당화를 위한 것이 아닌가? 내가 한 일은 민주당의 행태에 화가 나서 한 일일 뿐이다!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했었다. 전략적으로 민주당하고 협력하는 건 된다면서 왜 국민의힘하고 협력하는 건 안되냐! 뭐 그 시점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봤다. 그러나 윤석열이 내란으로 간 다음에는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되었다. 그런 명분으로 윤석열 정권과 뭘 한 사람들은 최소한 사과든 입장표명이든 뭔가 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일보에다가 이딴 똥글이나 쓰는 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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