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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트럼프

트럼프, 법치, 노동계급

2024년 11월 19일 by 이상한 모자

토요일에 읽은 인터뷰 기사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안병진 교수 얘기다. 이거를 중앙일보에서 읽었다고 토요일날 유튜브 방송에서 잘못 말했는데, 한국일보였다. 한국일보에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경제 문제가 핵심이었다는 거는 여러 군데서 얘기하지만 ‘법과 질서’ 역시 중요한 한 축이었다는 게 중요한 거 같다. 이거는 제가 얼마 전에도 여기다가 적은 트럼프와 법치 얘기랑 비슷한 말씀인 거 같다.

“시대정신이 트럼프에게 있었다. 선거 초반부터 해온 얘기인데,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인플레이션이다. 먹고살기 팍팍하다는 거다. 식료품 물가상승으로 치명타를 입은 저소득층에게 임금 수준이 나아졌다는 통계치를 줘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제 반성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문제니까 넘어가자. 다른 하나는 한국에 덜 알려진 ‘법과 질서’, 즉 로 앤드 오더(law & order) 문제다. 미국 정치의 핵심 키워드인데 너무 간과됐다.”

-법과 질서라는 건 어떤 건가.

“미국 내 ‘진보의 아성’이라 불리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의 민주당 정치인들은 엄청 곤혹스럽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 같은 사람이 ‘너희 진보가 그렇게 훌륭하다고? 어디 한번 당해봐’ 이러면서 불법 이민자들을 버스, 비행기에 태워서 진보 도시에다 보냈다. 진보 도시들은 이민자를 수용하느라 정신없다. 그 결과 뉴욕 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이라는 브롱스, 퀸즈 같은 곳에서도 트럼프 표가 2~3배 이상 늘었다. 또 하나는 펜타닐 문제다. 서부에 가보면 약물 오남용 중독자들이 길거리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이런 혼란상이 싫으니 정리해달라는 게 법과 질서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은 1968년 대선 당시 리처드 닉슨의 승리와 동일하다.”

-그러고 보면 닉슨도 그 유명한 ’68혁명’ 와중에 승리했다.

“묘한 평행이론이다. 그때도, 지금도 현직 대통령 린든 B 존슨과 조 바이든이 재선 출마를 포기했고 현직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와 카멀라 해리스가 출마했다. 험프리도 전임 존슨과의 차별화에 실패한 가운데 닉슨은 ‘법과 질서’를 내걸었다. 닉슨에겐 케빈 필립스라는 탁월한 전략가가 있었다. 그는 ‘사회 진보, 민권 신장 다 좋은데 이렇게 폭력적이고 혼란스러운 건 싫다는 이들, 침묵하는 다수를 공략하자’고 했다. 이 전략이 1968년 유혈사태로 치달았던 민주당 전당대회 등과 맞물리면서 미국민들에게 먹혀들었다. 올해 민주당 행보, 대선 흐름과 판박이다.”

-해리스도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 경력을 내세웠다.

“너무 안이했다. ‘검찰총장하면서 마약 카르텔, 아동 성 착취범들을 단호하게 처벌했다’고 했는데 그뿐이었다. 사실 해리스는 민주당 진보파들에겐 의심의 대상이었다. 사형제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선 것 등 여러 요인들이 있다. 그 때문에 해리스는 검사로서의 커리어를 내세우면 법과 질서에서 뒤지지 않는다 생각한 것 같은데, 그건 민주당 내에서나 통할 이야기다.”

(…)

-해리스가 ‘법과 질서’란 이름 아래 내놓을 수 있는 제안은 무엇이었을까.

“공화당이 초당적 이민법을 안 해줘서 그렇다, 라고 변명하기보다 여러 혼란과 불편함에 대해 일단 사과하고 그다음에는 이민 담당자로 강력한 인물을 내세워야 했다. 박근혜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를 생각해보라. 복잡하게 설명하느니 ‘김종인 영입’으로 그냥 보여줬다. 그게 대선 캠페인의 기본인데 그걸 못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11308360001887

인터뷰 전문을 보면 그 외에 이대남 얘기도 있고 지난 번에 메모로 적어 놨던 거랑 겹치는 얘기가 이래 저래 있다. 이외에 또 눈길이 가는 대목은…

-한때 인구구성 변화 등으로 미국의 ‘백인 정체성’이 옅어지면 민주당이 장기집권하는 거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다.

“2008년 버락 오바마의 대선 승리 이후 민주당에서 나온 주장이다. 흑인, 히스패닉계에 이어 청년, 여성까지 끌어들였으니 이제 ‘레이건 민주당원’은 중요하지 않다는 목소리다.”

-레이건 민주당원이란 어떤 이들인가.

“말 그대로 민주당원인데 대통령으론 레이건을 찍는 백인들을 말한다. 사회경제적으론 민주당, 프랭클린 루스벨트, ‘뉴딜 민주주의’를 좋아하지만 문화적으론 보수적인 백인들을 말한다. 오바마 승리 이후 ‘흑인 히스패닉 여성 청년, 4개의 카드만 있으면 레이건 민주당원이 없어도 우리가 이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농촌, 백인, 노동자의 분노가 2012년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중이 줄었다 해도 그들은 여전히 다수다. 거기다 흑인, 히스패닉, 여성, 청년이 무조건 진보적이라는 것도 착각이다. 특히 히스패닉의 경우 백인 주류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트럼프의 승리’라기보다는 ‘해리스의 패배’라는 건가.

“만약 트럼프가 좀 더 온건한 후보였다면 훨씬 더 크게 이겼을 거라고 본다. 민주당의 오만함이 너무 싫은데 트럼프라서 차마 찍지 못한 이들도 많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는 극단성 때문에 이긴 게 아니라 되레 손해를 본 경우라고 봐야 한다.”

이걸 버니 샌더스 등의 지적과 연결해서 봐야 할 필요가 있는데, 나는 버니 샌더스 등의 지적을 ‘민주당이 보다 좌파적이 되지 못해 패배했다’는 식으로 연결하는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유권자가 ‘좌파적인 민주당’을 원하는 그런 판인지 의문이고, ‘좌파적인’ 게 뭔지조차에 합의하지 못하는 게 오늘날 전 세계 진보쓰들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레이건-민주당에 대한 위 규정이 그런 건데, 1) ‘뉴딜 민주주의’를 좋아하지만 2)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인 백인이라는 거 아닌가? 1)로 보면 진보적인데가 있다고 할 수도 있고 2)로 보면 중도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오바마 이후 민주당은 1)에서는 뉴딜 이후 그래왔던 것처럼 (그게 자의든 타의든) 사실상 답이 없거나 더디거나 말 뿐이거나 하고, 2)에서는 급진화 되었다. 그러니 안 교수가 말하는 ‘레이건 민주당’은 오바마 이후의 민주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는 거고, 이번 대선에도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 레이건-민주당을 잡을 해법은 뭘까? 이들이 2)에 대해 갖는 거부감은 낮추면서 1)에 대해선 대안적 해법 제시가 필요하다. 이걸 버니 샌더스식으로 말하면 노동계급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되는 거다. 사실상 똑같은 얘긴데, 이렇게 얘기하면 중도층 잡으라는 얘기가 되고 저렇게 얘기하면 노동자 계급 잡으라는 얘기가 된다. 즉 우리는 중도층을 잡는 것과 노동계급에 대안을 제시하는 게 비슷한 얘기인 세상에 살고 있다.

그게 그렇게 된 이유는 뭐다? 주류 정치가 세상에 대한 총체성, 즉 통치를 전제한 어떤 상을 잃어버린 탓이다… ‘나는 뭘 하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저런 뭘 해주겠다’고 말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것. 그런데 트럼프는 그나마 ‘뭘 하겠다’에 가까운 것처럼 보였고, 그게 승패를 가른 것 아니냐 라는 생각이 든다는 그런 얘기를 계속 드리고 있다는 것.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레이건 민주당, 안병진, 트럼프, 해리스

트럼프의 선거-통치 담론에 대한 짧은 생각

2024년 11월 13일 by 이상한 모자

전적으로 내식으로 말하는 거지만, 선거담론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통치담론이라고 말하기도 그래서, 선거-통치 담론이다. 미국 대선에 대한 이런 저런 글들을 계속 보는데, 아직은 기존의 틀 혹은 인식에다가 우겨 넣는 식의 얘기가 많은 거 같다.

지난 번에 여기다가도 썼지만, 바이든 심판론에 트럼프 심판론으로 맞서는 거는 역부족이었다는 점에 대해선 대개 인정하는 거 같다. 그렇다는 전제 하에, 하여간 트럼프가 이겼으니 트럼프의 무엇에 사람들이 반응했고 해리스의 무엇에 반응하지 않은 건지를 규명해야 한다.

이번에 느낀 건 트럼프의 여러 선거용 논리 중 먹혔던 게 어떤 ’법치‘ 논리였다는 거다. 대표적으로 합법적 이민자와 불법적 이민자를 가르는 논리가 그렇다. 어차피 정치적 효과는 백인-남성-기득권 중심과 소수자 배제 및 혐오지만 거기에 이르는 방식 그러니까 포장지가 그랬다는 것인데, 이게 최근 ’이대남 정서’와 코드가 맞는 게 있다.

가령 ’이대남 정서‘라는 건 본질은 어떨지 몰라도 포장은 ‘팩트’, ‘논리’, ‘법치’로 자기들이 부르는 무언가로 한다. 그 대척점에 있는 건 ‘선동’, ‘감성’, ‘생떼’이다. 가령 어느 시민단체가 ‘서민 보호를 위해 복지제도를 강화하고 이를 위한 증세를 하자’는 주장을 내걸고 집회를 개최하면, 감성에 기초한 선동에 나선 좌파들이 생떼부리는 게 되는 거다. 그리고 이들을 ‘참교육’ 하기 위하여 복지 혜택 줘봤자 놀고 먹는데 익숙해지기만 하는 사람 스토리 같은 걸 팩트라고 들고와 무슨 주장을 하면서 그걸 논리라 하고, 이런 시위대를 경찰이 당장 해산시켜야 한다며 법치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태도를 냉소주의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가령 마약정책이라고 해보자. 이런 팩트-논리-법치의 세계관 속에 2차 감염부터 막기 위해 미사용 주사기를 나눠주는 장기적 접근 같은 건 위선에 불과한 거다. 하물며 이민자 문제는 어떤가? 대외문제는? 젤렌스키 좋은 일을 왜 해야 하는가?

이들에게 트럼프의 대답은 이런 위선 같은 건 다 일소하고 선동, 감성, 생떼들의 설 자리를 없애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여기서 트럼프의 태도가 먹히는 게 있는데, 트럼프는 이렇게 ‘하겠다’고 하는 거고 사람들에게 ‘알아서 따라오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찌됐건 해법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는 거다. 실제 그렇든 아니든.

이에 반해 해리스는 해법 제시라기 보다는 공감형이었다는 인상이다. 트럼프에 대한 여러분의 우려를 안다, 그러니 우리 함께 트럼프 집권을 막자…. 그 와중에 오바마가 나와서 막 꾸짖고…. 트럼프가 이기게 생겼는데 흑인 남성 너네들 정신 못 차리고 도대체 뭐하냐! 다시 해리스가 와서 우리 흑인 남성들 뭐 좋아해… 마리화나? (물론 대마 소지에 대한 처벌 완화는 트럼프도 얘기했다. 다만 맥락이 해리스와는 다르게 보였을 뿐. 언제나 중요한 건 맥락…)

트럼프식 21세기 극우포퓰리즘의 시대가 지나면 엘리트주의가 이전보다 훨씬 더 잔혹한 모습으로 본능을 드러내며 귀환하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한 바 있다. 최근 상황에 대입해보면 정확히 바이든이나 해리스가 그렇게 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였다. 비유하자면, 트럼프가 조커라면… 팀 버튼의 영화에서처럼 조커가 배트맨의 아빠 엄마를 죽이는 바람에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되어 귀환하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닌 거 같다.

트럼프 이후에 귀환하는 것은 또다른 트럼프다. 트럼프는 그대로지만 대중과 시대가 트럼프 이후의 트럼프로 트럼프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전의 엘리트가 그랬던 것처럼, 법치의 외양을 하고 있다. 조커가 그저 조커로서 환호를 받는 게 아니라, 배트맨으로서 환호를 받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아마 엘리트가 그랬던 것처럼 트럼프도 엘리트처럼 부패하고 엘리트처럼 무너질 것이다. 트럼프처럼 부패하고 트럼프처럼 무너지는 게 아니다. 그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닐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이제 일하러 가야 하는 시간이어서 급히 마무리 함…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미국 대선, 엘리트주의, 트럼프, 포퓰리즘, 해리스

미국 대선 단평

2024년 11월 7일 by 이상한 모자

기득권을 위협받는 백인의 분노, 백래쉬, 소수자에 대한 공격, 자본 기업가 투자자들의 욕망… 이거는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거다. 당선된 게 트럼프인데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이건 따로 말씀 안 드리고.

민주당과 주류 매체들이 트럼프 심판 선거로 많이 묘사를 했는데, 평론가 언어로 말하면 트럼프 심판 선거가 아니고 바이든 심판 선거였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는 느낌이다. 바이든 심판 선거를 트럼프 심판 선거로 엎어치기 하는 게 해리스 측의 거의 유일한 전략이었으나 ‘넌 바이든의 부통령이잖아’란 도돌이표에 결국 다 무력화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

구체적인 분석은 국내 언론이 미국 언론을 종합해서 기사를 많이 썼는데, 일단 조선일보를 보자.

트럼프는 유세 기간 내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의 실정(失政)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충격을 방어하기 위한 막대한 부양책 이후 미국에 닥친 초유의 인플레이션을 민주당의 무능 탓이라고 돌리는 전략을 폈다. 팍팍해진 민생을 돕겠다며 식당 종업원 등 서비스 노동자와 중산층에 대한 감세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으며 유권자들을 공략했다. 다급해진 해리스가 이후 비슷한 공약을 발표했지만 트럼프는 ‘어설픈 아류’ ‘짝퉁’이라며 이를 역공의 수단으로 썼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폭증하는 남부 국경의 불법 이민자 문제를 쟁점화하면서 ‘사상 최대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을 내세운 것도 백인은 물론 이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를 느낀 라틴계, 흑인 등 중도층들의 호응을 골고루 이끌어 냈다는 평가다. 민주당이 밀어붙여온 친환경 정책도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이 내연기관차에 비해 노동자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전기차 확대 정책을 추진하자 트럼프는 이를 전면 백지화하겠다며 러스트벨트의 노동자 표심을 공략했다. 중국에 대한 비하 수준의 적대적 발언 등은 ‘이들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강화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us/2024/11/07/6UOEZVVPNFBUNHR7HCXUYKUOA4/

해리스는 이번 대선의 주요 이슈 중 하나였던 여성 생식권(임신·출산·낙태 등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 문제를 중점 부각하고, 민주당의 전통적 취약층인 백인 여성들의 표심을 파고드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외교·안보·경제 등 주요 현안에서 전임 바이든 정부와 어떻게 차별화할지 비전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부통령으로 재임하는 4년 동안 국정 이인자로서 존재감이 미미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고물가 등 경제난과 남부 국경 지역 불법 이민자 문제 등 바이든 행정부의 약점에 대한 ‘연대 책임론’에 번번이 발목을 잡히는 양상이었다. 선거 기간 트럼프는 ‘아이티 이민자들이 동네 주민들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는 극단적 언행으로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이민자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면서 “국경 정책의 책임자는 해리스”라고 공격했다. 이 같은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여성 대통령’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도 해리스의 ‘유리천장 깨기’ 도전을 가로막았다는 평가다. 뉴욕타임스(NYT)는 선거 전날이었던 4일 “트럼프가 이긴다면 (2016년 힐러리 클린턴에 이어) 여성 후보를 두 번 이긴 셈이 된다”며 “미국인들이 아직 대통령 집무실에 여성이 앉아 있는 장면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us/2024/11/07/6YSVHTSSJVCKBAKMMBY5QWZTP4/

동아일보는 경합주에 대한 좀 더 디테일한 얘기를 종합했다.

특히 민주당 측은 당초 석권을 예상했던 러스트벨트 3개 주의 패배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해리스 부통령은 4년 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던 최대 운송 노조 ‘팀스터스’, 국제소방관협회(IAFF) 등 주요 노조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백인 남성이 대부분인 노조원들이 비백인 여성 해리스 부통령보다 백인 남성인 트럼프 당선인을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꼈고, 그의 강력한 고율관세 정책과 불법 이민 규제에 호응했다는 평이다.

(…)

미 노동부가 미 전역을 9개 경제권으로 나눠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 9월 펜실베이니아주가 속한 중부·대서양 경제권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9월보다 3.4% 올랐다. 미 전체(2.4%)보다 1%포인트 높다.

(…)

또 화석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펜실베이니아 주민들은 해리스 부통령이 2019년 셰일가스 수압파쇄 추출법인 ‘프래킹(Fracking)’을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올 8월 “허용하겠다”고 말을 바꾼 것 또한 비판한다.

7개 경합주 중 트럼프 당선인이 가장 먼저 승리를 확정한 남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는 올 9월 말∼지난달 초 초대형 허리케인 ‘헐린’이 강타했다. 200명 이상이 숨지고 300만 가구 이상이 정전, 단수 등을 겪어 주민 불만이 고조됐다. 조지아주에서는 해리스 후보가 강조한 낙태권 의제에 불만을 보인 유권자가 많았다고 NBC방송이 진단했다.

(…)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하자 그간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했던 무슬림 유권자가 이번 대선에서 대거 공화당 쪽으로 돌아섰다.

트럼프 당선인은 레바논계 무슬림이 많은 미시간주 주요 도시 디어본에서 해리스 부통령을 눌렀다. 2020년 대선 때 조 바이든 대통령이 68.8%를 득표했고 트럼프 당선인은 고작 29.9%만 얻은 곳이지만 4년 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디어본을 포함해 아랍계 주민이 많은 디어본하이츠, 햄트랙 등 3개 도시의 민주당 소속 현직 시장은 주민 반발을 우려해 이번 대선에서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역시 4년 전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했지만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이긴 애리조나주는 불법 이민에 대한 주민 반발이 큰 곳이다. 싱크탱크 ‘이민연구센터’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의 임기 첫해인 2021년에만 10만 명 이상이 애리조나주를 통해 국경 밀입국을 시도했다. 2020년(약 8000명)의 12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2022년 기준 애리조나주의 불법 이민자 비율 또한 3.5%로 미 전국 평균보다 0.2%포인트 높았다.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41107/130378381/2

한겨레는 진보지답게(?) 트럼프 캠페인의 기만적 성격을 함께 짚어놓은 점이 인상적이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 때 급증한 멕시코 국경 월경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그는 해리스가 한때 이민 문제의 근본적 원인에 관해 중남미 국가들을 상대하는 역할을 맡은 것을 놓고 ‘국경 차르’라는 별명을 붙이며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트럼프는 또 2016·2020년 대선 때처럼 불안 심리와 외국인 혐오를 적극 조장하는 유세로 백인들을 중심으로 지지세를 결집시켰다. 그는 미등록 이주자들은 습관적으로 “살인자”, “성폭행범”, “마약 밀매자”, “해충”이라고 불렀다.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이 남의 집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고, 해리스가 허리케인 구호에 쓸 돈을 미등록 이민자들을 위해 빼돌렸다는 거짓말도 했다. 취임하면 군대를 동원해 미등록 이민자 대량 추방에 나서겠다는 공약도 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올해 초 국경 통제를 강화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법안을 공화당 의원들을 움직여 부결시킨 바 있다. 통제 강화로 월경자가 줄면 자신이 선거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거에서는 이성적 판단 대신 트럼프의 거짓말과 과장이 섞인 선동이 더 잘 통했다. 결국 유권자들의 귀를 잡아끈 것은 트럼프였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1166213.html

이런 스토리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바는, 목전의 과제가 ‘민주주의냐 아니냐’라기 보다는 ‘어떤 민주주의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바마 이전까지 미국 선거에서 역사의 진보라든가 어떤 디테일한 가치를 담은 담론으로 승부를 본 사례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거 같다. 가령 최근의 진보적 담론과 과거의 인민주의적 접근은 다른 거 아니겠나.

문제는, 늘 말씀드리는 거지만 오늘날까지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가 하루에 정치와 사회, 공동체에 대해 한 5분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모두 한 표를 행사하는 체제라는 거다. 그런 사람들은 진보쓰 못 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그래도 하루에 1시간은 생각할 수 있는 분들에게만 투표권을 주자(진짜로 이렇게 주장한 게 아니고 제 식으로 비틀어서 설명드리는 것)는 식의 말씀을 하기도 하는데, 그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구상이 아니고. 저 같은 녀석들은 반대의 얘기를 하고 있다. 지금의 이 민주주의가 하루에 세상에 대해 5분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 15분, 50분, 5시간…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그러한 처지가 되어야 한다는, 그러한 시스템의 필요성을 오히려 증명하고 있는 게 아니냐…

윤통의 담화인지 기자회견인지를 기다리며 잠시 적었다. 힘들 내시고…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미국, 민주주의, 트럼프, 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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