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에 대한 좋은 말씀
떠들어서 먹고 사는 것, 쉬워 보여도 쉽지 않다. 여름에 유튜브에서 이 얘길 하니 어떤 놈이 채팅창에다가 땡볕에 일하는 노동자들도 있는데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앉아서 씨부리는 님이 할 얘긴 아닌듯… 이러더라. 그딴 소리대로 하면, 불행 경쟁 해가지고 제일 불행한 노동자가 된 사람만 투쟁할 자격이 있는 거겠지? 떠들어서 먹고 산다는 게 다 이런 식이다.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 그냥 성질대로 얘기하면? 다 짤리고 다 떠나고 집에서 혼자 떠들어야 된다. 지금도 거의 그런 처지지만… 하여간 그래서 청중이 알아듣게 얘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킨 직후인 2025년에는 그런 노력이 몇 배로 필요했다.
이런 먹고 사는 문제와 별개로, 2025년에 가장 많이 생각한 주제는 포퓰리즘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윤석열의 출마와 집권 자체가 우익 포퓰리즘의 결과물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포퓰리즘 포퓰리즘 노래를 불렀는데, 제일 답답한 게 다음의 도식이 강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가 듣는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
1) 포퓰리즘은 나쁘다.
2) 그런데 누구누구는 포퓰리스트다.
3) 누구누구는 나쁜 놈이다.
뭐!? 그러면 포퓰리즘이 좋다는 거냐? 그게 아니고, 포퓰리즘 얘기를 꺼내면 아~ 누구 욕하려고 꺼낸 얘기구나 이렇게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아~ 욕하자는 거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서 포퓰리즘이란 단어를 남용하는 이런 악순환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대상에 대해서 ‘그건 포퓰리즘이 아니다’라고 하면, 왜 실드를 치지? 이딴 식으로 얘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 생각은 오래 되었는데, 이 공간에도 반복적으로 메모를 남겼듯, 나는 저쪽이 싫은 책을 낸 직후에도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엘리트주의로 오도된 포퓰리즘(윤석열)과 포퓰리즘적 스타일을 차용한 엘리트주의(더블민주당)의 대결 구도 같은 얘기를 그래서 한 거다. 사실 저쪽이 싫은 책을 유심히 보시면 그 구도가 이해가 될 것.
아무튼 이러한 와중에, 어제는 김변호사님이 ‘이재명 정부가 포퓰리즘이란 것에 대해 우리가 동의’했다고 하여 나는 거기에 동의한 적 없다는 걸로 짜증을 냈다. 그랬더니 유튜브 채팅창이라는 데서 왜 화를 내냐는 둥… 이제 포퓰리즘이란 말도 못 쓰냐는 둥… 항상 그런 식이니까 섭외가 안 되는 거 아니냐는 둥…
내가 분명히 말했다.
1) 포퓰리즘이라고 하면 안 되냐? -> 해도 된다. 해라! 단, 난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데 ‘동의’했다고 해서 꺼낸 얘기일 뿐이다.
2) 꼭 네 얘기를 다 귀담아 듣고 기억해야 되냐? -> 안 해도 된다! 내 얘기가 뭐 중요하냐? 근데 내가 ‘동의’했다고 하니까 아니라고 한 거다.
3)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 -> 그럴 수 있다! 근데 이재명 정권을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그 유튜브에서도 수차례 얘기를 했는데 ‘동의’했다고 하니까! 내가 아니라고 한 거야! 좀 말을 들으라고 사람 말을! ‘동의’했다고 해서, 아니라고 한 거라고!!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의 학문적 논의에 대해서는 일전에도 여기서 소개했던 아래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https://www.daewooacademia.com/horizon-of-knowledge/797/1836
위의 글을 안 읽었으면 이 아래 내용부터는 어떤 반응도 하지 마시라. 이 아래 내용을 보고 싶으면 위 링크의 글을 다 읽어라. 안 읽고 뭐라고 하지 마라.
앞의 글을 보면 이 대목이 있다.
벌린의 사상을 포함하여 다원주의 정치철학을 포퓰리즘의 대안으로서 재검토하고 재조명하는 일이 필요하다. 포퓰리즘이 정말로 반다원주의적인가 하는 점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반론에 대한 반박이 충분치 않다면, 포퓰리즘의 반다원성을 입증하기보다는 오히려 포퓰리즘이 아닌 다원주의 정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특히 서유럽이나 미국 모두와 상이한 한국적 맥락의 특수성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정파적 멸칭 혹은 낙인으로서의 포퓰리즘 개념의 오용과 관련해서는 (‘인기-’ 혹은 ‘대중-’) ‘영합주의’라는 의미로 ‘포퓰리즘’을 말하는 일을 피할 필요가 있다(그림 3). ‘포퓰리즘 = 영합주의’라는 등식은 외래어 ‘포퓰리즘’이 영어 개념 ‘populism’의 번역어로 정착되고 정파적 수사로 유행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Hong 2023). 그리고 이미 이러한 용법의 유행 초기부터 ‘영합주의’라는 의미로 ‘포퓰리즘’을 이해하는 용법이 “국적불명의 편의적 사용법”이며, “정치적인 반대자를 몰아붙이는 낙인이 되거나 개혁을 가로막는 보수주의자들의 상투적 어법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는 경고는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이러한 “느슨한 의미”의 용법은 “정적(政敵)이나 반대편을 공격하는 무의미한 수사 내지는 욕설에 그치게” 되며 “엄밀하지 못한 용어 사용으로 적대감만 고취시키고 합리적 토론”을 가로막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이성형 2004: 51, 54). 무엇보다도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어느 반대 정파나 정치인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영합주의’로서의 ‘포퓰리즘’이라는 용법은 포퓰리즘의 대안으로서의 다원주의에 대한 추구와 양립하기 어렵다.
여기 인용된 이성형의 ‘인기영합주의로의 해석은 국적불명의 편의적 용법’이란 글은 포퓰리즘에 대한 국내 논문 등 자료를 찾아보면 종종 인용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포퓰리즘이란 개념을 적용할 때 엄밀할 필요는 이미 20년된 지적이라는 것이다. 즉, 학문적 맥락은 포퓰리즘이란 얘기를 하려면 포퓰리즘이 뭔지부터 정확히 하고 얘기를 해야 한다는 거다.
근데 미친 한국 사람들은 이미 포퓰리즘이 뭔지를 지들이 다 알고 있다. 그래서 포퓰리즘의 개념에 대해 얘기를 하면 그게 아니라면서 지들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 올해 유튜브에서 떠들면서 제일 크게 놀랐던 것은 우익 포퓰리즘, 혹은 극우 포퓰리즘이란 개념에 대해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처음 들어보는 얘기인 것처럼 반응 하더라는 것이다. 그저 채팅창 반응이 그랬다는 게 아니고, 좀 알만한 사람들도 그러더라.
야, 그래서 포퓰리즘이 뭔데? 앞의 글을 읽으라고 했잖아!! 가서 읽어 좀.
가령 단적인 예를 들면, 더블민주당 일부의 검찰개혁, 사법개혁 담론은 포퓰리즘이다. 검찰과 법원이라는 기득권을 혼내주는 게 목적이지, 제도 그 자체의 합리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통령과 정부는 이런 흐름을 제어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본회의 가기 직전에 의총 열고 난리가 난 거 아닌가. 그러니까 그게 통치-책임의 문제이다. 이게 무슨 성군이 났다는 얘기가 아니고, 책임이라는 걸 맡으면 대개는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는 거다. 하다 못해 조별과제 조장해도 그렇잖아. 감투 안 써봤어?
하여간 그래서 이 정권을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거다. 이 얘기 엄청 했는데 또 해야 되나? 이를 통해서 이 정권이 이루려는 것은 사실상 더블민주당이 유일하게 주류를 대변하는 정당 체제이다. 무관용에 대한 관용이라고 할 만한 이혜훈 지명은 이걸 노골적으로 시사한다. 그런데 오늘날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지도자는 주류-기득권을 상정하고 이를 타파하자고 하지, 자기가 주류를 대변하겠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계속 그 얘기를 하잖나.
실제 이 얘기를 유튜브에서 한 3시간 한 적이 있거든? 포퓰리즘과 엘리트주의 모두 반다원주의적이다 이 얘기 하면서 다원주의를 지향해야 하고… 라는 앞의 글 얘기를 하고 있었단 말야. 그랬더니 어떤 분이 아니 내란 세력에 대고 무슨 다원주의를 얘기하냐면서 막 부들부들 떨면서… 여보세요 윤석열이 포퓰리스트라니까 도대체 뭔 소리야! 왜 이런 일이 일어나냐? 무슨 개념에 대해 얘기를 해도, 이 새끼가 이거 윤석열 욕하는 게 맞나? 맞지? 윤석열 욕으로 끝나는 얘기 맞는 거지? 이렇게 가니까… 반대도 마찬가지야. 이 새끼 이거 언제 이재명 욕을 하나 이것만 보니까 3시간을 떠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지.
이런 하소연을 하면, 책을 쓰세요~ 이런단 말이지. 쓸 건데, 근데 말로 해도 안 듣는 걸 책을 쓴다고 하면 보고 납득을 하겠습니까? 기대 안 합니다. 그리고 사실 지난 6월엔가 공저를 만든다고 해서 원고를 준 책이 있거든? 이게 나온 건지 안 나온 건지 얘기를 들어본 일이 없네. 난 이런 건 또 처음이야. 출판계라는 데도 참 희한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