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라는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얘기를 해보면 무조건 지들이 나보다 많이 알고 있다. 뭐 대체적으로 극렇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뭐 내 얘기는 하나도 귀 기울여 들어볼 만한 얘기가 없는 거냐? 그리고, 일단 들어는 봐야 네가 건질 얘기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냥 건성 건성 들은 다음에 조소하는 태도로 이미 한 얘기 또 물어보고 이런다니깐(진지하게 안 들었기 때문에 또 되묻는 것). 그리고 대답을 해주면 자기 식으로만 이해하려고 하고. 야, 연구자면 기본적으로 남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맥락을 맞춰서 이해를 해야 될 거 아니냐? 환장한다. …
그런데, 뭐 그러는 것도 이해는 가요. 그 양반들이 그런거 아니면 뭐 어떻게 사나… 연구자 그거 해가지고 돈을 잔뜩 버는 것도 아니고… 존심이라도 세워야지 뭐… 자… 연구자 여러분 일반화 해서 미안하고요. 훌륭한 연구자들도 많은데…
아무튼 최근에 무슨 작가라는 분이 무슨 연구를 한다면서 무슨 매체에다가 거의 아무 말이나 해놓은 걸 보고 또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런 많은 걸 알고 있다! 내가 이런 걸 말을 한다!’는 자기 만족적 기분 외에, 뭐 진지하게 세상 일에 대해 고민을 해보기는 한 건가 싶은 그런 얘기들이 너무 많다. 남들이 보기에 나도 그럴까? 그렇겠지? 닥치고 사는 게 장땡인데… 왜 이렇게 사는지…
아무튼. 내가 게임의 문법과 게임 담론, 그리고 이걸 조직화 하려는 정치가 만나 젊은 세대 내에서의 극우포퓰리즘으로 귀결되는 어떤 통로 중 하나가 되었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는 것은 이 블로그를 보는 분이라면 많이들 아실 것. 동시에, 윤석열 탄핵 집회에 젊은 남성 오타쿠들이 왜 출현하였느냐에 대해서, 이것 역시 역설적이지만 게임적 세계관 덕분일 수 있다고 한 일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자체만큼이나 해석, 즉 비평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던 거다. 근데 뭐 이런 말 하면 막 눈 굴리고 그러는 거거든. 대체 무슨 말이냐, 게임이 좋다는 거냐 나쁘다는 거냐…
언젠가 유튜브에서 그런 말을 했다. 프리렌에서 힘멜을 봐라. 가령 힘멜 오타쿠들이 세계 각지에서 선행을 했다는 기사들이 가끔 나오잖나. 대만의 힘멜좌도 그렇고.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된 거냐에서 출발하는 이야기. 이미 한 얘기의 리바이벌이라는 점, 공지드리고.
프리렌을 보면 느낄 수 있는 거지만, 이 얘기는 기본적으로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의 문법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용사 힘멜은, 그 호칭(직업)이 ‘용사’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전형적인 게임의 주인공이다. 힘멜이 작중에서 했다는 행위들은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을 즐기는 유저가 게임에서 하는 일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던전을 보면 반드시 들어가고, 최단코스로 공략하는 게 아니라 한 층을 전부 공략할 때까지 다음 층으로 넘어가지 않고, 마왕 공략을 위한 가장 효율적 루트를 찾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모든 마을에서 모든 의뢰를 받아 아주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해결하고, 의뢰를 해결하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다.
사실 플레이어가 게임상에서 이러한 일을 하는 이유는 게임 속 세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더 많은 재미와 경험 즉 퀘스트, 더 많은 경험치, 더 많은 보물 등 아이템, 더 많은 동료 등을 위한 일을 뿐이다. 게임을 돈 주고 샀으니 그만큼의 가치를 뽑아내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즉, 이것은 철저히 ‘나’를 위한 일이고, 철저히 사익을 위한 일이다.
그런데 힘멜은, 즉 장송의 프리렌에서 ‘평소 게임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는 나’더러 감정 이입을 하라고 만들어 놓은 캐릭터인 것이 틀림이 없는, 게임 상에서 내가 하던 일을 만화에서 그대로 하고 있는 이 캐릭터는, 내가 그저 사익을 위해 한 일이 사실은 게임 내 세계에서 모두 선의의 활동이었으며 공익을 위한 것이었으며 게임 내 인류에게 큰 의미가 있었던 행위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나는 단지 경험치를 더 얻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했는데, 힘멜은 사실 그게 아니라 게임 속 인물들의 사연 하나 하나에 모두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한 일이라고 설명해준다. 내가 해온 행위에 공적인, 선한 의미를 부여한다. 나도 몰랐는데, 나는 과연 정말로 용사였다! 힘멜에 따르면 그렇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도 나는 용사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힘멜좌가 탄생하는 것이다. 다만 현실은 게임과 만화보다 복잡하므로, 거짓 명분과 서사에 속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은 오늘 천사였던 존재가 내일 마왕으로 밝혀질 수 있는 세계이다. 확실하지 않으면 토벌에 나서지 마라. 그런데 윤석열이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확실한 마왕이 세상에 등장하였던 것이다.
윤석열 이전에 이 구도를 거꾸로 비튼 것이 극우포퓰리즘이다. 극우포퓰리즘에서는 문재인, 시진핑, 김정은이 마왕의 자리에 앉아 있다. 평범한 동료(알고 보면 특별할 수도 있는… 특히 특별할 수도 있는 나…!)들이 각성해 힘을 합쳐 부와 권력을 독점한 사악한 군주나 엄청난 힘을 가진 악의 제왕을 무너뜨리는 것 역시 게임의 클리셰이다. 물론 클리셰의 왕이 예수 스토리인 것에서 보듯, 이는 기득교적 구도이기도 하다.
밥 먹으면서 프리렌 보다가 문득 다시 떠올라서 적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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