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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문제

조회 수 23248 추천 수 0 2011.09.10 13:10:53

내가 보기에, 이 사건에 대한 가장 공평한 시선을 보여준 글은 이상한 모자 님의 것이었다. http://127thshelter.tistory.com/130

그러나 이 글은 아마도 이미 그와 같은 견해를 취하고 있는 사람에게나 이해될 것 같아서, 그의 구속을 통해 세상이 시끄러운 와중에 몇 마디 덧붙일까 한다.


1.
이상한 모자 님이 짚고 있는 부분은 선거를 둘러싼 제도의 문제, 그리고 검찰수사의 모든 것을 비난하는 입장의 난점에 있다. 먼저 첫번째  문제부터 얘기해보자면, 우리는 우리가 막연히 환호하는 '후보 단일화'라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선거를 치르려면 돈이 드는데, 이 돈이 어디선가 샘물처럼 펄펄 솟아날 리 없다. 그리고 '야권후보 단일화'를 말하는 이들 중 돈이 아주 많은 후보만 선거에 나와야 한다고 믿는 정치성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선거비용은 일정 수준 이상의 득표를 받아야 공제받을 수 있다. 그야 당연한 것이, 모두 다 공제해줄 경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나올 것이며 그걸 국가가 어찌 다 감당할 것인가. 그러므로 이 제도 자체는 타당한데, 다만 그 기준선에 대해서 얘기해볼 수는 있다. 현행 제도는 15% 이상 득표하면 전액 보전, 10% 이상 득표하면 반액 보전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당선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비율은 크게 중요치 않고 당락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군소정치세력의 후보들은 이 비율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들은 돈을 꼴아 박으면서도 제 정치적 견해의 선전을 위해 선거에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선거만한 선전의 장은 없으니, 어느 정도 비용을 들여 어느 정도 선전/홍보를 할 수 있고 일정 부분 보전받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면밀히 판단하는 것이 군소정치세력 후보들이 할 일이다. 


그러므로 이미 선거에 나온 후보에게 사퇴를 권유하는 행위는 그의 선전기회를 봉쇄하는 것을 넘어 그에게 무의미한 자금 출혈을 강요하는 행위다. 가령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심상정은 선거 며칠 전에 사퇴를 했는데, 덕분에 그녀가 그 순간까지 지출한 선거비용은 아무런 정치적 선전의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채 빚으로 남았다. 물론 유시민과 김문수가 박빙으로 간주되던 당시 정국에서 그녀가 완주해봤자 반액보전이라도 받았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국민'의 뜻을 존중하여 사퇴한 심상정이 남긴 부채를 그 '국민'들이 책임해준 일 없고, 진보신당의 몇몇 활동가들이 아직도 힘겹게 갚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군소정당 후보의 사퇴를 종용하는 사람(강세후보의 지지자)들이라면 적어도 후원회에 돈을 납부하여 선거비용 일부를 보전해주겠다는 책임의식 정도는 지녀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왠지 '단일화'를 명령하는 '국민의 뜻'은 그런 책임의식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러니까 애초부터 출마를 하지마."라는 새로운 명령을 내리실 것 같다.  


교육감 선거는 이와도 약간 상황이 다르다. 이 선거는 정당공천이 개입하지 않으므로 누가 우세이고 누가 약세인지 분명하지 않고, 누구나 다 자신이 당선될 수 있다고 여길만하다. 이제 곽노현과 박명기가 단일화 협상테이블에 앉았다고 했을 때, 어느 한쪽이 후보를 사퇴한다는 건 그가 아무런 기대이익 없이 지금까지 들인 적지 않은 비용을 모두 손실로 감내한다는 걸 의미한다. 두 사람이 동시에 '완주'카드를 내밀면 기대이익이 현저히 줄어들고,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완주'카드를 내밀면 '완주'한 쪽의 기대이익은 극대화되는 반면 다른 한쪽은 막대한 손실 밖에 남는게 없다. 분명히 게임이론이라면 이 상황에 대한 해법을 "완주하는 쪽이 손실을 감내하는 쪽에게 기대이익에 대한 배분을 약속하는 것"으로 제시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해법이야말로 우리의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바다. 


그래서 제도개혁을 고민하는 쪽에선,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협상'이든 '선의'이든 간에, 충분한 선거공영제(이를테면 선거비용 보전의 하한선을 낮추는)나 단일화 압박을 피할 수 있는 제도적 방책(결선투표제?) 없이는 문제의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여길 것이다. 2억원이 '협상'이 아니라 '선의'에 의해 건네졌다 하더라도 박명기가 어려운 상황에 빠져서 그런 일이 일어났단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것은 돈이 오가는 상황 자체를 혐오하고 규탄하는 시선에 대해서 이상한 모자 님이 환기시키고자 하는 논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 논점은 진보성향의 논평가/누리꾼들 중 상당수가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2.
그래서 이 문제를 '순결(순수)주의적인 도덕성'의 측면에서 사유하지 말라.'는 요구는 일리가 있다. 박동천이나 정희준 등이 그렇게 얘기하고 있고 꽤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대편의 편향이 발생한다. 앞에서 설명했듯 나는 돈이 오간 상황 자체에 경기를 일으켜 무조건 사람을 매장하려는 시도에도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곽노현 사퇴'를 요구하는 견해가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에 얽어맨 (혹은 진보진영 스스로 뒤집어 쓴) '도덕성 프레임'에 갇힌 것이라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만약에 어떤 이가 "곽노현이 조금씩 말이 바뀌고 있는데, 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의 도덕성은 파탄났다. 즉시 사죄하라. 그리고 그를 교육감으로 만들어준 지지자들 앞에 진실을 고하라."고 했다면 나는 그런 주장에 대해서는 곽노현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주장이라 보고 명백하게 반대했을 것이다. (2003년 송두율 사건 때 진보진영이 취한 태도가 대략 이랬다.) 설령 내가 범죄자라 하더라도, 나는 국가나 대중 앞에 그것을 밝혀야 할 의무가 없다. 그것을 밝혀내는 건 공권력의 의무다. 나는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변호사가 있다면 그와 함께 전략을 짤 수도 있다. 이런 행동을 비난하는 이는 부지불식간에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그러나 곽노현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이 그 자체로 이와 같은 인권침해의 함의를 지닌 것은 아니다. 


또, 어떤 이가 "나는 곽노현이 법적으로는 무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그는 당장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면 이에 대해선 "도덕성 프레임에 갇혔다"란 반론이 타당할 수 있다. 사람들이 문제삼은 진중권과 조국의 트위터 발언은 이와 비슷한 것이었던 것 같은데,(물론 그들은 법적인 문제에 대해선 구태여 코멘트하지 않았다.) 설령 그들이 그렇게 말했다 하더라도 '교육감 사퇴'를 요구하는 모든 주장이 '도덕성 프레임'에 갇힌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곽노현 사퇴'란 주장을 진보에게만 차등적으로 적용되는 도덕성이란 논거를 끌어들이지 않고 전개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도덕성 프레임에 갇히지 마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모든 사안을 도덕적으로 판단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를테면 그들이 모든 종류의 '곽노현 사퇴'론을 '도덕성 프레임에 갇힌 것'으로 판단하는 것도 그 증세의 일환일 수 있다. 내 생각에 그들은 도덕성과 양심을 혼동하고 있고, 본인들의 혼동을 근거로 권력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가령 99년도에 어떤 후보가 공직선거법에 의해 유죄판결 받은 일이 있었다. 그는 본인의 상례에 와서 5만원 부조한 사람의 상례에 가서 5만원 부조했단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공선법에 의하면 부조는 3만원까지만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양심의 법정에서 떳떳할 것이다. 그가 5만원의 답례부조를 한 데에, 금품제공의 의도는 없었다 추정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법적으로 유죄다. 그리고 나는 공직선거법의 규정이 이렇게 엄격한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고 믿는다. (물론 공직선거법의 조항이 한 두개가 아닌 만큼 세부적인 조항에 대한 개별판단은 다를 수 있다. 박동천은 곽노현에게 적용된 '후보자에 대한 매수 및 이해유도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 주장한다. 링크 당연히 이런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공직선거법이 이렇게 엄격한 이유에 대해 "공직자의 업무수행은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일반인들보다 더한 도덕성이 요구된다."라고 취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설명할 때, 법적판단과 도덕성, 그리고 도덕성과 양심은 전혀 다른 것으로 구별될 수 있다. 누군가가 이런 맥락에서의 '도덕성'을 운운하더라도 그는 상대방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선의를 가졌지만 '비도덕적'이다."라는 서술도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용례에선 (법적판단 뿐만 아니라) 도덕성도 어떤 공적인 영역의 행위를 판단하는  잣대이지 내면의 의도에 대한 침해는 아니기 때문이다. 진중권과 조국의 말을 선의적으로 해석한다면 그가 말하는 '도덕성'도 이런 것이었을 수 있다.  누군가는 '도덕성'이란 말을 이런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반대할 수 있겠으나, 그렇더라도 '도덕성'이란 말이 이런 용례로 사용될 경우엔 적어도 "곽교육감이 양심에 떳떳하다는데 무슨 도덕성 운운이냐."라는 식으로 반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상대방이 말하는 도덕성은 양심과 다른 영역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도덕성의 문제를 빼고 생각하더라도, 법적판단과 양심의 영역이 별개의 것이며, 설령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이를 처벌하는 법이라도 공직선거법과 같은 특수한 법률에선 공리에 부합할 수도 있다는 지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이상한 모자 님이 지적한 두 번째 논점이라 생각된다.


3.
이제 이 두 번째 논점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기 위해 '곽노현 사건'의 핵심을 구체적으로 간단히 추려보자. 문제가 되는 건 공직선거법상 후보매수죄가 성립하느냐다. 곽노현이 후보단일화의 반대급부로 금전이나 자리를 약속했다면 죄가 성립한다. 그렇지 않다면 일단 곽노현에게는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곽노현에게 죄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당선무효가 되는 일도 가능하다. 공직선거법상 후보자가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거나 회계책임자가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당선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곽노현 측의 주장은, 자신의 회계책임자가 동서지간인 박명기 측의 회계책임자와 후보매수에 대한 이면합의를 했지만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자신은 나중에야 이 합의를 알게 되었으나 그 합의의 내용을 부정한 다음에야 박명기 교수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선의로 2억원을 건넸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선의'는 일상용어이면서 법률용어일 수 있다. 왜냐면 법률용어에서 '선의'는 "모르면서 행하는 것" '악의'는 "알면서 행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곽노현의 '선의'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선의와는 좀 다르다. 곽노현은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후보단일화를 했고, 그 시점까지 박명기의 어려운 사정에 무심했다. 그러다가 그는 나중에서야 박명기의 어려운 사정을 인지하고 느닷없이 선의를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선의'의 발현, 즉 "후보를 사퇴하면 님 사정이 너무 어려울테니 제가 나중에 좀 도와드릴께요."라는 약속이야말로 그 선량한 심성과는 상관없이 공직선거법의 처벌대상이란 것이다. 아마도 법이 그러한 '양심'을 인정하면, 공직선거는 돈 있는 자들이 공직을 사는 요식행위로 변질될 거라 우려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률의 취지에 나는 동의할 수 있다. (굳이 이 법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첫번째 논점에서 짚은 제도 변혁의 문제와 관련하여, 상대후보에게 선거비용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것은 합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렇게 법률이 개정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기는 힘들다. 어쨌든 이런 주장을 펼칠 수는 있는데 이 주장은 검사수사 자체를 비난할 수 있는 논거는 안 된다.)  

 
그러므로 곽노현의 '선의'는 일반적인 선의와는 좀 들어맞지 않는 이상한 선의인데,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곽노현의 말이 사실일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그렇게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고, 일관성이 없는 행동을 마구마구 종종 하며, 곽노현이 어려운 처지에 처한 이들을 도와줬다는 증언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 정도의 정황이 있다면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는 것이 정상이다. 곽노현이 현 정권과 다른 진영의 사람이고 지금의 시기가 묘하단 이유로 검찰이 수사한다는 사실 자체를 어떤 정치적 의도라고 비판하기 시작하면, 김대중 정부 시절 국세청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한 것이나 참여정부 시절 신문법 개정을 추진한 것을 '비판언론 탄압'이라 주장한 조중동의 논법을 규탄할 하등의 근거가 없다. 


그리고 정치인이나 시민들이 곽노현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 역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결국 곽노현의 말이 모두 사실이며 그가 자신의 양심의 법정에서 떳떳하다 하더라도, 곽노현의 선본 차원에서 보면 후보매수 행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곽노현이 법정투쟁에서 무죄를 인정받고 그의 '양심'을 명백하게 증명받는다 하더라도, 동서지간에 후보매수를 공모한 회계책임자가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고 곽노현이 당선무효가 될 수가 있다. 이에 대해, "비록 본인이 인지를 못했다 하더라도 선본차원에서 그러한 행위가 있었던 것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라는 견해가 있을 수 있는데, 이 주장은 곽노현의 양심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정치영역은 책임윤리의 공간이라 다른 영역과는 달리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다. (가령 우리는 모두 김영삼이 IMF 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선 다시 양심과 법적 판단 사이에 '도의적 책임'이란 게 개입하여 앞서 구분한 '도덕성'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이 논법은 "진보주의자들에게만 엄정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차라리 "보수도 진보도 다 지켜야 한다 믿지만 보수는 이미 내팽겨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왜냐하면 곽노현의 사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수교육감이 같은 처지에 놓였을 때 "너는 보수주의자라 도의적 책임 이딴 거 가질 자격 없으니까 그냥 법원판결을 기다려."라고 주장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도덕성'이란 잣대만을 강하게 내세우는 게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란 건 분명하지만, 이것에 반박한답시고 마치 진보세력이 자기 편 인사들에 대해서만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처럼 미화(?)하면 안 된다. 소위 진보진영은 공정택이 사학의 자금지원을 받아 선거를 뛰었다는 의혹이 터져나온 시점부터 '도의적 책임을 진 사퇴'를 주장했었다. 첫 민선 교육감 선거인지라, 그 사안을 무슨 법으로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도 결정이 안 된 시점이었다. 검찰이 학원 원장과 교장/교감 그리고 급식업체로부터 공정택이 선거자금을 받은 행위를 기소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지만, (공정택의 당선무효형은 이와는 다른 곳에서 나왔다.) 진보진영이 보수세력에 대해서는 그들의 '죄'가 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준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곽노현을 옹호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은 사실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의 비일관성이 아니라, 그 효과다. 즉 보수(수구)진영은 자신의 '편'을 이렇게 잘 지켜내는데 우리는 이렇게 갑론을박하여 힘이 딸리니 뭐가 안 된다는 그런 인식인 거다. 나는 이걸 '조폭논리' 이외의 다른 무슨 말로 칭해야 할지 모르겠다. 좀 유화해서 말하면 '정실주의'가 되려나? 그리고 우리는 같은 이유로 무슨 사건만 터지면 "종북주의자들은 잘 뭉치기 때문에 우리는 보수세력의 허물을 감싸안아야 한다."고 외치는 아스팔트의 전사들을 발견하곤 한다.


물론 우리는 '곽노현 엄호론'에 깔린 '조직논리'를 비판할 때 이것이 과거 진보진영의 전통적인 '조직논리'와는 좀 다른 것이란 사실도 지적해야 한다. 전통적인 진보진영의 '조직논리'는 "대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자!" 쪽에 가까웠다.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를 보면 송두율 사건에서 그 논리가 어떻게 구현되는지가 생생히 보인다. 하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이 논리는 이제 "대의를 위해 우리편 개인을 보위하자!" 내지는 "착한 사람을 보위하는 것이 대의다!"로 뒤집혀진 것으로 보인다. 이게 더 소박하다거나 민중적이라고 느낄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닌데, 이번 사태에 적용된 것처럼 아무데나 끼어드는 '윤리'여서는 곤란할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 정치영역에선 양심의 문제와 책임윤리의 문제, 법적판단의 문제, 제도개선의 문제 등등을 구별해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4. 
유시민은 곽노현 사퇴를 요구하는 것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어긴 것이라 비판했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는데, 그렇게 정확하게 들어맞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죄추정의 원칙을 제대로 어긴 사례는 '곽노현 사퇴'를 반대하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요구한 고려대 성폭행 가해자들에 대한 출교 조치일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고려대 측이 사건이 터지자마자 피해자가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있는 일이 없도록 임시적인 징계조치를 한 후, 법원판결이 확정된 후에 그들을 출교시키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고려대의 행동과 상관없이 우리가 이 사건에 대해 사회에 요구해야 할 일은, 출교조치보다는 성폭력 전과자가 의사면허를 취득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이었을 거다.(글이 너무 길어서 대충 넘어가야 하니, 더 세세한 얘기를 보고 싶은 분은  http://sovidence.tistory.com/456 을 참조할 것.) 


곽노현 교육감과 조금 더 가까운 사례를 찾아보면 어떨까? 임명직 공직자들의 경우 형사기소가 되면 직위해제가 될 수 있고 그후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 다시 복권되거나 명확한 징계를 받는 것이 가능하다. 당장의 업무는 정지되지만 만일 무죄로 판명난다면 돌아올 가능성은 존재하는 것인데, 이때 직위해제되는 것을 무죄추정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 보진 않는다. 다만 형사기소만으로 그 공무원을 돌아올 가능성이 없이 파면시키는 징계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어기는 것으로 보고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  


곽노현은 선출직이기 때문에 이 테크트리를 따를 수가 없고 양자택일만 할 수 있다. 기소되기 전에 사퇴를 하거나, 기소된 이후에 법정공방을 벌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르느냐, 책임윤리를 따르느냐에 따라 다른 선택이 나오고 그 선택 모두 어떤 측면에선 타당하고 어떤 측면에선 타당하지 않다. 곽노현이 사퇴한다면 보수언론은 그가 모든 죄를 자백했다고 단정하고 그의 양심의 자유를 난도질할 수 있다. 그리고  곽노현이 사퇴하지 않는지금 보수언론은 물론 그가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검찰이 흘린 피의사실을 받아 보도를 하며 그의 죄상을 단정적으로 구성할 것이다. 그가 구속되는 것을 그가 '나쁜 놈'임을 인증받고 처벌되는 퍼포먼스로 인증할 것이다. 당연히 이런 상황 자체는 비판할 수 있다. 이런 게 말하자면 '도덕성 프레임'이다. 사퇴든 법적 절차든 모든 것을 도덕성이 훼손되었단 증거로 삼고 그 파탄을 선전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곽노현을 엄호해야 한다는 쪽의 입장은 어떤가? 양심의 자유와 정치영역의 책임윤리, 법적 판단이라는 상이한 영역들을 구별하지 않고, 곽노현은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니 이 모든 논란은 무용하고 검찰은 정권의 개로써 그를 탄압한다고 외친다. 이런 견해가 있다면, 이건 왜 '도덕성 프레임'이 아니란 말인가? 전자가 어떤 외적인 사건 하나만으로 '도덕성의 파탄'을 증명하는 프레임에 빠져 있다면, 후자는 어떤 사건이든 맥락이든 상관없이 선량한 사람의 '도덕성'을 믿으면 된다는 프레임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곽노현이 자신의 양심을 주장하면서 사건 최초의 충격은 사라지고 그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상한 모자 님이 말한 '죄책감의 정치'다.


5.
곽노현이 양자택일의 선택지 중 어느 쪽을 뽑을지는 주변 사람들이 갑론을박할 수는 있지만 결국은 본인의 실존적 결단에 달렸다. 사퇴를 택하면 자신의 양심을 밝힐 기회 자체가 봉쇄당할 수 있고, 법정투쟁으로 당선무효된다면 돌려받은 선거비용을 반납해야 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두 선택지 중 한 쪽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상대편에게 '도덕성의 프레임'에 빠졌다 비난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그는 결국 법정투쟁의 영역으로 향할 것으로 보인다. 


안쓰러운 것은, '사퇴요구'를 비판하고 그가 무죄임을 확신한 채 실존적 선택을 지지했던 이들이 검찰의 구속수사를 반인권적 탄압으로 또 한 번 규탄하는 것이다. 물론 곽노현이 불구속수사를 받는다면 그는 확정판결을 받을 때까지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따라서 구속은 그것을 막기 위한 정치적 술수라고 폄하하는 것도 가능은 한 얘기다. 그러나 곽노현의 떳떳한 양심을 믿는 것은 이쪽이지 검찰은 아니다. 검찰이 그걸 믿는다면 애초에 수사를 안 했을 것이고, 사실 어떤 정황을 수사로 검증해 보기도 전에 지레짐작으로 인품을 믿고 포기한다면 그건 검찰도 아니다. 그리고 검찰이 입증해야 할 곽노현의 죄는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이면합의에 대한 인지의 여부다.


이 사안은 다른 사안에 비해 '말 맞추기' 등을 통한 증거인멸의 우려가 존재한다고 볼 수가 있다. 모두 알다시피 구속수사여부는 혐의의 중차대함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 여부에 달려 있다.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곽노현은 구속되었으니 나쁜놈!"이라 색칠하는 게 '도덕성 프레임'에 빠진 거라면, "곽노현보다 '나쁜놈'들은 구속 안 되는데 왜 곽노현은 구속?"이라고 항의하는 건 '도덕성 프레임'이 아닐까? 적어도 곽노현이 양심의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가는 것을 지지하기로 했다면 검찰의 구속수사를 비판하는 것은 모순된 행위다. 검찰로서는 구속수사 없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를 밝혀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하면 안 된다고 요구해야 한다. 공정택의 불구속수사와 곽노현의 구속수사를 비교하면서 검찰을 성토하는 것은 좋은데 이걸로 검찰이 일관성이 없다 말할 거면 둘 중에 뭐가 옳은지 양자택일은 해야 할 게 아닌가? (사실상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공정택은 구속수사하고 곽노현은 불구속수사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거'들 때문에 오늘의 검찰이 신뢰받지 못하고 욕을 먹는다는 사실은 이해가 가지만 말이다. 


검찰수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은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란다."와 "죽은 권력은 물고 산 권력은 물지 못한다."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런 정서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고, 이해는 된다. 그러나 이 정서가 검찰수사 자체를 비판하는 타당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 모두가 똥이나 겨가 묻었다고 서로 나무라는 것을 금지한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똥통에 살게 될 것이다. 다가올 권력과 현행 권력에 약하고 예전 권력에 강한 검찰의 행태가 눈꼴시려운 게 사실이지만, 그런 검찰수사라도 '죽은 권력도 안 무는' 상황보다는 공익에 기여한다. 이명박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은 권력이 될 텐데, 우리는 검찰이 얄밉기 때문에 그 세력에 대한 수사를 금지해야 하는가? 노무현의 경우도 수사 자체가 문제였다기보다는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는 언론보도를 어느 정도까지 금지하거나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 문제들을 세세하게 따져보지 않고 '그냥 우리 모두 잘못했고 진보언론도 노무현에게 잘못했다.'란 결론만 내리고 지나쳐왔기 때문에 우리는 보수언론의 거울상에 해당하는 역편향을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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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1 죄책감의 정치의 두 부류, 그리고 도덕성의 강박 [9] 하뉴녕 2011-09-15 24304
1360 우리편 전문가, 비평의 방법론, 그리고 현실의 재구성 [13] 하뉴녕 2011-09-13 26522
» 곽노현 문제 [39] 하뉴녕 2011-09-10 23248
1358 SK와이번스 단상 : 현실은 드라마와 달라... file [18] 하뉴녕 2011-09-09 22761
1357 청춘 탐구와 시대 탐구 :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7] 하뉴녕 2011-09-03 22280
1356 [기획회의]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 키워드로 살펴보는 저자 "20대 멘토" 편 [126] [1] 하뉴녕 2011-08-19 30853
1355 피해자중심주의와 냉소주의 [7] 하뉴녕 2011-08-18 24491
1354 세계문학의 구조 : 정말로 문학 바깥에서 바라보았을까? [43] 하뉴녕 2011-08-04 20613
1353 어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 윤리적 판단을 위한 역지사지 [118] 하뉴녕 2011-08-03 27435
1352 어떤 민주당 지지자들 [85] 하뉴녕 2011-07-28 25238
1351 슬럿워크와 잠재적 성범죄자의 문제 [10] [1] 하뉴녕 2011-07-26 23271
1350 어느 '스포츠맨'의 답변 [27] 하뉴녕 2011-07-25 19451
1349 [작가세계] 장하준의 ‘더 나은 자본주의’, 그리고 한국 사회 [14] 하뉴녕 2011-07-23 25958
1348 [황해문화] 루저는 ‘세상 속의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22] 하뉴녕 2011-07-15 23972
1347 왜 좌익은 희망버스를 곤혹스러워 하지 않는가? [21] [1] 하뉴녕 2011-07-14 23515
1346 [작가세계] 이건희는 생각하지마. [5] 하뉴녕 2011-07-13 26793
1345 SNS의 진보성? [14] 하뉴녕 2011-07-10 23759
1344 [프레시안books] 더 울퉁불퉁하게 기록하고, 더 섬세하게 요구했으면... [5] 하뉴녕 2011-07-09 22487
1343 한화의 가르시아 헌정 짤방 file [5] 하뉴녕 2011-06-30 38139
1342 [고황] 야권연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24] 하뉴녕 2011-06-21 24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