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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피해자중심주의와 냉소주의

조회 수 23975 추천 수 0 2011.08.18 13:26:20

사람들은 약자가 고난을 뚫고 승리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많은 것을 가진 강자가 몰락하는 모습도 보고 싶어한다. 한예슬의 <스파이 명월> 촬영 거부와 방송 펑크는 대중이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최고의 가십이 되었다. 그 가십의 배역 성격이 계속 왔다갔다 한다. 한예슬은 부당 노동에 대항하는 약자인가. 그렇게 대중이 감정 이입을 할 때, 대립항인 오만한 강자는 연출 피디가 되었다. 구조의 문제가 아닌 사람 대 사람의 대결로 상징적으로 이해할 때 가십은 가장 파급력이 빠르고 선정적이 되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한예슬의 미국행과 현장의 증언까지 이어지자, 오만한 강자의 배역이 한예슬이 되고 현장 제작진이 약자의 배역으로 바뀌었다. 시청자와의 약속이다, 노동권의 문제다, 등등의 정색하고 가십을 사회적으로 평론하는 시각도 줄을 이었다. 배역의 성격이 계속 흔들리면서 지나치게 진지해지자, 대중은 사건 자체를 못난이들의 촌극으로 비웃기 시작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818100728&section=04&t1=n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개입하지 않은 사건을 지켜볼 때는 '약자'에 감정이입을 하려고 한다. 심지어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무한경쟁과 약자의 도태의 필요성을 기꺼이 말하는 아저씨들도 드라마나 뉴스를 볼 때는 그렇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사회적인 문제에서 곧잘 '진보적인' 시선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마음 속으로 상정하는 '약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무기를 뻔뻔할 정도로 활용해서 제 권리를 지키려는 현실영합적인 '을'이 아니라 어떠한 자력구제 장치도 가지지 못하고 가해자에게 짓밟히는 '피해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태가 가해자/피해자 이분법으로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 -그러니까 대부분의 경우에- 그들은 판단을 유보하거나 포기하곤 한다. 


하긴 구체적인 피해를 당하고 있는 어떤 약자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우리가 오지랖 넓게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본능처럼 머리 속에 가지고 있는 그런 도식에서 정치적인 관심이란 것도 자라날 것일 게다. 그러므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도식 자체는 아니고, 추후에 사회현실이 머리 속 멜로 드라마와 다른 것임이 밝혀졌을 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것이다.


-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복잡한 문제에 걸맞는 복잡한 해법을 고민하는데 관심을 가진다.


- 어떤 사람들은, 현실의 구체적인 '을'의 개성을 소거하고 그를 자기 머리 속 멜로드라마의 비운의 여주인공 역할에 억지로 꿰어맞추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오늘날엔 이런 사람들이 진보주의자라 불린다.


- 또 다른 사람들은, 현실 세계의 '을'이 제 머리속 멜로드라마 주인공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단언하고 그들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을 비웃는다. 오늘날엔 이런 사람들이 보수주의자라 불린다.


그러니까 피해자중심주의와 냉소주의, 동일한 편견에서 우러나온 현실에 대한 다른 태도가 오늘날 우리의 정치적 의식을 대표하고 있다. 피해자중심주의자가 모든 종류의 팩트를 피해자의 심리적 문맥에서 해체하고 재구성한다면 냉소주의자들은 그렇게 재구성된 것의 원본 맥락을 찾아 헤맨다. 그런 의미에서 양자는 나름대로 로망스와 리얼리즘의 대립을 보여주지만,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할 방책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내지는 못한다. 즉 이 자세들은 각각 어떤 국면에서 필요한 것이지만, 오직 이 태도로만 정치문제를 바라볼 경우엔 사태 해결이 불가능하다.


한예슬 사건에 대한 위 필자의 예리한 스케치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내가 위에 서술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런 태도는 체제에서 작동하는 권력을 자꾸 인격화한다는 점에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뒤집어 까서 생각할 여지를 없앤다. 집중타격할 '나쁜 놈'을 찾아 헤매다 그런 놈이 발견되지 않으면 바보들의 코미디가 된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한동안 우리의 이런 태도가 개선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의 권력행사 방식이 많은 영역에서 지나치게 자의적이라, 체제의 권력 이전에 그걸 휘두르는 사람이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전혀 다른 영역에서 이슈화된 안현수의 경우는 한예슬에 비해 대중적으로 더욱 지지를 받는 것 같다. 제 나라 국적을 포기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국가주의적 심성에서만 벗어나서 생각해 봤을 때, 적어도 쇼트트랙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안현수는 '능력이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패거리나 흑막에 의해 저지당하고 제 꿈을 펼치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판단엔 사실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쇼트트랙 문제에 대한 누리꾼들의 관심은 그간 이 좁은 세계를 왜곡한다고 여겨지는 부당한 흑막이나 패거리를  감시하는 역할은 해왔다. 그러나 그것들을 도덕적으로 단죄하기만 할 뿐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까지는 논의하지 않았다. (하긴 그것도 이해가 가는 것이, 이 '원인'이란 것들은 생각해낸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더 어려워지는데다가 남을 손쉽게 욕하는 것을 찜찜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더 관심있는 사람은
2010/12/24 - [문화/생활] - 쇼트트랙 순위조작 사건을 보며 을 참조할 것.) 


야구팬들에게 가장 큰 이슈가 될 SK 김성근 감독 사퇴 선언에 얽힌 사연은 이에 대한 더 극적인 사례일 것이다. 야구팬들은 재벌이 가진 자본의 힘이, 시장과도 상관없이 그저 그 힘을 위임받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 구현되는 것을 본다. 이에 대해선 언론도 방관하고 팬들의 성난 목소리도 메아리처럼 되돌아올 뿐인데, 물론 사려깊은 야구팬들은 이 문제가 결국엔 한국 프로야구가 작동하는 어떤 방식에서 연유했다는 사태의 본질조차도 알고 있다. 다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당장 희망할 것은 자신들이 힘을 합쳐 '나쁜 놈 A'를 밀어낼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하는 것 정도다. 


모든 사건에서 무분별하게 '나쁜 놈'을 찾아 사태를 판단하려는 태도는 맹목적이지만, 당장 힘을 합쳐 어떤 인간과 대적해야 할 처지에 그 이면에 있는 본질적인 구조를 지적하는 것 역시 공허하다. 반MB연합의 효용과 정치개혁(혹은 진보)의 당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이들의 고민 역시 여기에 있을 게다. 딜레마를 온전히 벗어던질 수는 없지만, '피해자중심주의'와 '냉소주의'라는 동전의 이면에 깔린 편견의 문제를 간파하고 사태를 바라보는 눈을 키우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행동을 결정한다면 적어도 명백한 오류를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파도소리28

2011.08.18 17:00:06
*.136.139.39

제 짧은 단상입니다. 1) 한예슬사건->비교적 노동시간을 지켜주는 미국에서 살다온 한예슬로서는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빡빡한 스케쥴은 환상의커플 같은 예전 드라마에서도 그랬을 텐데 왜 이번에만 민감하게 반응인지. 정말 시청률 문제인건지. 아님 다른 문제가. 2) 안현수 사건 -> 스포츠 파벌로 인해서 부정의한 일을 당한 것 같습니다. 러시아 귀화까지 한 선택을 이해합니다. 3) 김성근 사건 -> 구단에서 김성근의 야구스타일과 그로 인한 비용을 용납하지 못했더군요. 거기다 김성근 본인이 워낙 대쪽같은 사람이라 유들유들한 사람을 좋아하는 한국 조직문화에서 숙청당한 경우. 4) 반MB연합 -> 삼국지의 동탁토벌군을 보는 느낌입니다 (우석훈도 최근 블로그에서 동탁토벌군 언급). 동탁을 잡고나서 어떤 촌극을 보일지 우려스럽네요.

pjnsoul

2011.09.06 11:42:32
*.129.15.16

동탁과 이명박의 공통점이 뭔지 궁금하네요.

Breeze

2011.12.28 16:29:19
*.132.34.150

반동탁연합군같다고 말씀하신 걸 보면, 이명박과 동탁이 비슷한 면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단순히 반 이명박 세력과 반 동탁 연합군의 면면에 비슷한 느낌이 든다는 말씀이실 듯 합니다.

ㅇㅇ

2011.09.09 05:10:19
*.179.248.6

진짜 한윤형 대단한 사람이다. 추후에 한국에서 지식인으로서 어떤 보배로운 성과들을 이뤄낼지 많이 기대가 된다.

하뉴녕

2011.09.09 08:06:41
*.118.59.159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ㅇㅇ

2012.01.08 06:26:55
*.179.6.44

딱히 우상화 하겠다고 그런 건 아니고...

닉네임어따써

2012.08.28 14:40:20
*.238.148.82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 꽤 많을겁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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