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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일전에 기획회의에서 300호 특집으로 '한국의 저자 300인'을 선정했는데 대한민국 출판시장이 협소하고 특히 비소설 분야에 젊은 필자가 별로 없는 관계로 저도 주제넘게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와 별개로 이 특집에서 일군의 저자들을 소개하는 글을 한 꼭지 맡았는데요. 제가 잡지세계에서 부여받은 역할이 '세대론 설거지'인만큼.... 그 키워드는 여러분들의 예상대로입니다. 잡지가 나온지 한달이 지났으므로 블로그에도 원고를 공개합니다. 

301호도 나왔지만 알라딘에선 아직 300호를 구매신청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481004

관심있는 분들은 구입해서 소장하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원고는 제가 보낸 버전이고 여기서 어떻게 더 편집되었는지는 저도 잡지를 안 봐서 잘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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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살펴보는 저자-20대 멘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우석훈·박권일, 『88만원 세대』(레디앙, 2007), 
김어준, 『건투를 빈다』(푸른숲, 2008)
우석훈,『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레디앙, 2009)
김난도,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 2010)
엄기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푸른숲, 2010)
김형태, 『너 외롭구나』(예담, 2011) 


멘토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일단은 지금의 세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현실인식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삶의 지침이 필요할 것이다. 전자를 평가하기 위해 현실인식의 적실함을, 후자의 실질적인 효과를 위해 청년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권위의 필요성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논하는 모든 책들은 제각각 어떤 현실을 담아내거나 담아내지 못한다. 그리고 이 저자들은 어떤 방식의 권위를 체득하고 있고 그것을 행사한다. 김난도와 우석훈과 엄기호의 경우 ‘강의자’라는 데에서 권위가 나오고, 김어준과 김형태와 박권일에게는 ‘남들과 다르게 살았는데도 안 죽고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권위가 나온다. 그런데 한편 다시 생각해보면 여기서 언급한 강의자들도 자신의 인생의 성공담을 늘어놓는 이들은 아닌지라, 결국엔 ‘남들과 다르게 살았는데도 안 죽고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권위의 근거로 수렴된다. 20대들의 말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하는 엄기호라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청년들은 그 권위를 인정하는 문맥에서 그들의 말을 받아들인다.  


이런 실정을 알면서, 20대의 마지막 국면을 지나가는 내가, 이 저자들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는 우석훈과 박권일의 조언이 현실세계의 20대들에게 전혀 와닿지 못하더라고 비판해야 할까? 다시 돌아온 우석훈이, 일본의 아마미야 카린 같은 활동가가 한국에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것은 또래가 자신의 위에 서는 걸 견디지 못하는 20대들의 성정을 무시하는 것이라 말해야 할까? 김난도의 조언이 결국 그의 강의가 이루어지던 서울대생들에게나 최적화된, 80년대 대학을 다닌 기성세대의 꼰대질이라 말해야 할까? 자못 진보적인 척하는 김어준과 김형태의 조언이,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과 동떨어진, 서구 68세대나 한국 386세대의 추억을 더듬는 퇴행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말해야 할까? 엄기호는 이들과는 다른 방식을 취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결코 20대들의 멘토가 될 수 없었다고 말해야 할까? 물론 이 모든 말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질없어 보인다. 그것이 부질없어 보이는 이유는 이들의 담론이 소비되는 양상이 이런 식의 조언의 내용에 대한 비판과 전혀 다른 층위에 놓여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한 번 이 책들을 당신의 발밑에 일렬로 늘어놓아 본다고 상상해보라. 그리고 책을 어떻게든 배열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이 책들을 어떤 순서로 늘어놓고 싶은가? 이 책의 저자들은 아마도 스스로를 ‘진보’로 포지셔닝하는 사람들일 거라 여겨진다. 그래서 저자들의 정치성향의 스펙트럼으로 책을 배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인 것 같다. 차라리 이 책들은 ‘스타일’을 통해 배열될 수 있을 것 같다. 서툴게 손을 놀리고 나니 책이 두 패로 갈린다. 한편에는 일종의 ‘상담 수기’의 역할을 하는 책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무언가에 대해 ‘설명’하는 책들이 있다. 전자에는 김어준, 김난도, 김형태가, 후자에는 우석훈, 박권일, 엄기호가 배열된다. 그런데 이러한 스타일의 분류는 어떤 보수 성향 필자들이 청년들에게 조언하는 책을 저술한다 할 때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게 되는 일이 아닐까? 가령 복거일이나 공병호와 같은 이들이 이 도식에서 후자에 배열될 수 있다면, 허다한 자기계발도서들은 전자에 소속될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사태는 오늘날 ‘좌’와 ‘우’의 대립쌍이라는 것이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의미는 물론 통상적인 의미, 사회를 바라보는 총체적인 시각에 있어서의 좌우변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더욱 부각되고 있는 두 번째 의미는 사회를 바라보는 총체적인 시각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진보적인 행위가 될 수 있고, 그 반대편에 있는 보수성이란 것은 그 총체적인 시각에서 진보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총체성을 포기할 뿐이라는 데에 있다.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이 복거일이나 공병호와 같은 우익 필자들을 비판하거나 조소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은,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총체적인 시각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것, 본인과 복거일(공병호)이 경쟁하고 있는 그 장에 청년들을 끌어오는 일이다. 출판시장에서 그들의 대립각에 서 있는 것은 복거일이나 공병호가 아니라 차라리 김훈이나 장영희일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상대편의 광활함에 화들짝 놀라면서 우리의 약소함을 인지하게 되는데, ‘김훈이나 장영희’라는 말이 포섭하는 바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적어도 김훈의 독자들은 스스로 보수주의적이라 생각하거나 보수주의자의 책을 읽고 있다 생각할 가능성이 있지만, 장영희의 독자들은 정치적 보수주의의 차원에 있다기보다 아예 그 변별 바깥에 있다. 거듭 말하지만 진보 지식인들이 링 위에 올라온 이들을 상대할 수 있다고 천명할 때 사실상 링이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 거다. 결국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것이냐다. 


20대 세대론과 청년 담론의 범람은 내게 이 필요성을 무의식 중에 자각한 진보진영의 나름의 대응방안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대응의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청년들을 사회문제 인식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말하는 지식인들이 새로운 자기계발 담론을 통해 ‘멘토’의 역할에 대한 경쟁을 시작한 것에 가깝다. 물론 여기서 ‘멘토’나 ‘멘토링’ 자체가 보수적이라고 질타하는 것 자체는 큰 의미를 지닌다 보기 어렵다. 시장의 문제가 되었든 사람들의 심리의 문제가 되었든 ‘멘토’를 요구하는 구조가 있었을 때, ‘88만원 세대’ 담론의 주창자도 멘토로 군림하게 되었고 그 세대론에 기반하여 청년층에게 이런저런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이들도 멘토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는 분석이 더 타당하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진정한 문제, 혹은 슬픈 현실은 사회문제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대해 열심히 말하던 ‘진보적 어른’들에게 청춘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요청할 경우 ‘보수적 멘토’들과 다르게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는 것이다. 명문대생들이 고시나 공무원 시험에 몰리고 대학생 일반의 ‘취업 눈높이’이가 높아져서 대기업에게만 지원하는 현상에 대해선 이명박 대통령이나 조선일보도 우려를 한다. ‘취업을 안 해도 살 수 있으니 겁먹지 마라.’고 당부하는 박원순이나 진중권의 충고가 이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진보적 평론가들은 특히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대해 이런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지만, 김어준이나 김형태의 ‘남 눈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라.’는 조언의 현실정치적 함의가 ‘공무원이나 대기업 정규직 지망하지 말고 중소기업 가거나 창업하라.’는 우파들의 조언과 겹쳐 보인다고 말한다면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앞서 나는 멘토의 구성요소로 현실인식과 삶의 지침을 들었다. 그런데 일단 후자에 집중할 경우, ‘삶의 지침’이 청년들에게 수용되는 방식에는 굉장히 묘한 구석이 있다. ‘무규칙 이종예술가’라는 김형태의 ‘이태백’ 세대에 대한 독설이 블로고스피어에서 크게 ‘히트’친 것이 2003년이었다. 청년들은 자신들을 강하게 질타해주는 ‘어른’을 바라는 듯했다. 그리고 그 질타가 하나의 관심이 되기를 바라는 듯했다. 김형태의 청년에 대한 조언들의 모음이 『너 외롭구나』라는 제목으로 묶여 나온 것은 그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전에 이미 네이버와 싸이월드에서 크게 히트친 김난도의 ‘슬럼프’란 글을 보면 “나는 ‘슬럼프’라는 말을 쓰지 않아. 왠지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서……. 그냥 게으름 또는 나태라고 하지.”라는 식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비난이 이어지다가 “여전히 너는 너야. 조금 구겨졌다고 만 원이 천 원 되겠어? 자학하지 마.”라는 구절로 맺어진다. 오늘날의 청춘은 질타받기를 원하는데, 그것은 질타받는 것도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의 질타가 쌩뚱맞으며 그 뒤엔 구조적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오히려 그들의 ‘자기’에겐 더 감당하기 힘든 문제일 수 있다. 


이런 실정에선 멘토가 청년들에게 멘토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지친 청년들이 어떤 종류의 조언들을 소비하기 원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생산할 사람들을 바란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88만원 세대』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 드러나는 시대인식조차도 청년들에게 이와 같은 조언을 ‘토해내 달라는’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석훈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서, 마치 ‘멘토’처럼 등장해서 오히려 청년들에게 ‘운동’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한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엄기호는 청년층의 말하기를 이끌어내면서 오히려 기성세대에게 이 시대의 청춘에 대해서 ‘들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작업들이 가장 성공한 경우엔, 결국 청년들을 향한 ‘조언’은 사라지고 그들은 자신들이 던진 질문을 되돌려 받게 된다. 그리고 이는 지친 삶을 위안받기 위해 서가를 기웃기웃하는 대다수의 청년들이 원하는 바는 아니다. 


사회과학과 멘토링, 현실인식과 저자의 권위라는 두 개의 링이 있다. 이것은 한쪽이 진보적이고 다른 쪽이 보수적이라는 식으로 양자택일될 사안은 아니며, 양쪽 모두 (좌파든 우파든 간에) ‘개입’해야 할 하나의 영역이다. ‘20대 멘토’라는 영역에 묶이는 저자들은 이 두 개의 링에 개입하면서 어떻게든 답을 찾고자 한다. 특히 진보주의자들의 시각에서 지금까지 그 답들이 만족스럽지 않지만, 김난도의 조언을 냉장고 앞에 붙여놓고 삶에 대한 주문을 외우는 어떤 청춘도, 우석훈이나 엄기호의 책을 읽고 위안을 받고 상처를 치유했다 말하는 어떤 청춘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멘토는 추상적인 단언이 아니라 멘토링이란 활동에서 나올 것이니, 나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이들의 시도가 지속되는 활동을 통해 업그레이드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계속 이들에게서 위안을 얻기를. 


경계인간

2011.09.02 20:33:32
*.32.123.174

지금 가장 우스운 건, '자신의 주장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한 무의미한 것이었다는 점'을 자기 스스로 증명하신 이 순간까지도 213s님은 자신의 문제제기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신 겁니다. 아까부터 님의 전제를 우리는 이미 알고있었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었는데, 그 부분에서는 계속 말을 돌리시네요? 착각이면 착각이고 아니면 아니다? 아까부터 그건 님의 착각이라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더 말 못돌릴 지경이 되니까 뭐 착각일수도 있겠다고 웃어넘기자는 겁니까? 무례하게 구시는 것에도 정도가 있죠. 우리가 그걸 절대로 모를 거라고, 수준이 낮아서 모르는 거라고 모욕까지 퍼부으신 분이, 참 쉽게 이야기를 정리하시는 군요.

213s

2011.09.02 20:34:59
*.140.58.209

그걸 다 알고 인정하고 있는 걸 겉으로는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 속에서 전달되는 게 그런 게 아니면 어쩔 겁니까. 뭘 그렇게 보이는 걸로만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한윤형씨하고 님은 양쪽 다 보이는 부분만 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안 보이는 부분은 남겨두고 뭔가 딴 데에서 생각하고 그렇게 하실 요량인가본데, 그거 겹쳐질 수 있어요. 그걸 겹쳐서 생각하는 발상을 타자성과 연결지어보면 이게 뭔 이야기인지 알 방법도 있겠죠. 이 정도까지만 하렵니다

213s

2011.09.02 20:35:58
*.140.58.209

모욕이 아니라 팩트를 말한 것 뿐이죠. 님들 그렇게 잘 살고 있나요? 내 물음에 대답할 수 없으면 그건 내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을 건드린 거지 헛다리 짚고 꼰대질 한 게 아니게 되는데?

경계인간

2011.09.02 21:00:18
*.32.123.174

이만큼이나 (님 말처럼)상식적인 수준의 이야기인데, 여기까지 복잡하게 진행되었어야 하는 이유를 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미지로 받아들인다느니, 그 이미지 자체가 대화의 매개라느니 하기 이전에, 우리가 하는 말을 언어적인 의미에 따라 받아들이란 말입니다. 누군가의 말을 타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야 복잡한 문제지만, 최소한 그 말의 내용 자체를 왜곡하지는 말라는 소리에요. 우리가 '안다'고 이야기 했을 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그 근거를 대세요. 니들 속 마음을 니들은 모르지만 나는 안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우리가 하는 말이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그 근거를 대셔야죠. 그 근거를 좀 보여달라는 말씀도 누누히 드렸는데, 그에 대한 대답도 없었어요. 행간을 읽기 이전에 문자로 표현된 것 부터 읽으셔야지, 본문은 읽지도 않으시고 행간부터 짐작하시면 어쩌라는 겁니까? 안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는 건 좋은데, 보이는 부분도 안 보면서 안 보이는 부분을 어떻게 아시죠?

님들 그렇게 잘 살고 있냐는 소리는 좀 웃겼습니다. 제가 어떻게 사는지와, 지금 님과 저의 대화 내용이 무슨 상관인가요? 논쟁하다가 갑자기 다른 사람 어떻게 사느냐는 소리 같은 걸 하는건 한국에서는 매우 꼰대적인 특성인데, 제가 과문한 탓에 외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님 질문에 지금까지 열심히 대답해 온 사람에게 [내 물음에 대답할 수 없으면 그건 내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을 건드린 거지 헛다리 짚고 꼰대질 한 게 아니게 되는데?]라고 하시는 건 뭐죠? 질문 하고 싶으시면 하세요. 그래서 님이 자신의 주장을 정당한 것으로 만든다면 님에겐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뭘 남의 사정 봐주는 척 하십니까? 코에 걸고 귀에 걸 수 있는 원론의 차원에서 어떤 경우가 있을수도 있다고만 하시지 말고, 이 문제에 대해 하시고 싶은 질문을 하시라는 겁니다. 그 발언이 모욕이 아니라 사실이었다고 하실 거면 뭐가 사실인지는 설명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님처럼 남의 마음 속 읽는 초능력이 없어서, 이야기 안 하시면 몰라요.

오늘은 답글 더 달 시간이 없을 거 같고, 혹시 하실 말씀 있으시면 달아두세요. 며칠 후에 확인하러 올 생각이니까요. 생각 없으시면 별 수 없고.

하뉴녕

2011.09.02 05:42:41
*.118.61.148

...그리고 논의와는 딴 얘깁니다만 <구봉숙의 도시탈출 팬클럽>이란 곳에서 유입경로가 잔뜩 찍혀 있는데 무슨 일인지 제보해 주실 분 혹시 안 계신가요? -0-;;; 회원제 게시판이라서 제 블로그 주소가 무슨 맥락에서 찍혔는지 알 수가 없네요....ㅡ.,ㅡ;;;

호오

2011.09.02 10:00:09
*.143.73.117

한윤형님 좀 있으면 당대회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진보신당이 될것이며 독자파나 통합파는 어떻게 될지 한윤형님의 거치 문제에 데해서 짧게 글 써보심이 어떨런지요. 윤형님의 생각이 궁금하네요.

하뉴녕

2011.09.02 10:08:48
*.118.61.148

저는 아직까지 당비를 내고 있는데 이번에 어떻게 되든 결과만 보고 탈당하게 될 것 같습니다. 글은 언제 시간나면 쓰겠습니다...

호오

2011.09.02 11:05:16
*.143.73.117

탈당하시고 나서는 당적없이 있으실 요량인지? 통합신당으로 갈까 고민했는데 그냥 당적없이 있으려고요. 요즘 많이 회의감이 듭니다. 정치에 ㅎ

경계인간

2011.09.02 20:56:04
*.32.123.174

논쟁으로 한윤형님 블로그를 꽤나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거의 남의 게시판을 사유화 한 수준입니다만, 원래 논쟁이 자주 벌어지는 게시판인 줄 알고 있으니 따로 사과를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하뉴녕

2011.09.02 23:14:24
*.118.59.133

자 얘기가 좀 감정적으로 겉돌고 있는데요. 제가 경계인간 님의 덧글을 옹호하면서 213s님의 주장에 물음표를 제기했던 게 맞습니다. 그리고 저를 '스포츠맨'이라 부르는 종자들도 있습니다만, 제가 얘기를 시작하면 '이겨먹으려고' 글을 쓰는게 아니라 말을 섞는 사람의 견해와 어디에서 갈라지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애쓴다는 걸 잘 아실줄로 압니다. 그러면 이제 제가 왜 213s님이 견해에 반대했지를 설명해 볼게요. 저는 213s님의 글에 대략 다음과 같은 전제들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들이 제가 바라보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판단도 별로 제대로 된 분석이라 동의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 전제들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 사회의) 보수담론은 진보담론에 비해 청년들에게 대화를 걸지 않았다.

--> 이건 213s님이 직접 말씀하신 거니 '전제'라 추정할 필요도 없겠군요. 여하간 213s님은 이 주장을 좀 세대론적으로 의인화하여, "유신세대들보다는 386세대가 청춘들과 대화를 하려고 시도한다. 그들의 저술이 그 증거다." 정도의 말씀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저는 이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고 이 글의 본문의 내용이 사실 어쩌면 이런 생각에 대한 반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제가 본문에서 뭐라 그랬던가요? 진보지식인들은 공병호나 복거일 같은 보수파 담론과 논쟁을 해서 이길 수 있다고 자임해 왔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에 대해 총체적인 인식을 해야 할 필요성 자체를 사람들이 부정하고 있어서 '링' 자체가 좁아지고 있다구요. 보수주의가 예전처럼 총체적 인식의 영역에서 진보주의와 경쟁하고 있는 게 아니라, 총체적 인식 따위 필요없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흩뿌리는데 성공했다구요. 물론 경계인간 님이 처음에 유신세대와 386세대를 언급했기 때문에 213s님이 그에 맞춰 코멘트한 것이긴 하겠으나, "386세대가 그래도 더 많이 대화하지 않았느냐."라는 주장은 그래서 제가 말하는 바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저는 보수담론이 지금까지 전유해 온 자기계발 담론, 멘토링 등등의 영역에 이제 진보담론이 '개입'하기 시작했다고 보는데, 사실 진보담론이란 게 내용적으로 "우리가 이걸 다 알고 있으니 청춘들에게 이런저러한 조언을 하겠다."란 내용으로 정식화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엔 보수담론의 '조언'을 꼰대질이라거나 마취제라고 욕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 '조언'을 진보적 방식(?)으로 해보려다가 비슷한 꼰대질을 하기도 하는 상황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저는 진보담론이 청춘들에게 더 자주 말을 걸고 있기는 커녕 이 영역에서 후발주자라고 생각해요. 멘토,멘토링이란 단어가 유행한지 몇년 후에 <88만원 세대>의 성공을 통해 그나마 이 영역에 끼어든 겁니다.


2. 김형태의 글은 청년층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 그리고 여기서 얘기가 좀 꼬이게 되는데요. 제가 본문에서 언급한 진보주의자들의 '조언'엔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진보주의 담론의 성격대로 청춘들에 대한 실천적 조언은 거부/포기하고 자기계발담론의 대척점에 서는 조류인데요. 차라리 제가 긍정하는 것은 이쪽입니다. 그런데 이쪽을 택할 경우 청춘들에게 별로 어필하지 않더군요. 이 글에서 시사되었듯, 청춘들은 뭔가 권위있는 어른이 자신의 삶의 문제에 확실한 어드바이스를 해주길 바랍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이러저러하니 같이 고민해보자, 이걸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길 바라지는 않아요. 물론 이건 제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만일 이런 상황에 대해 213s님이 최초의 덧글을 썼다면, 저는 아마도 그 말에 동의했을 것입니다. 편의상 이걸 진보적 조언 a라고 적어봅시다.

문제는 다른 부분인데요. 상업적 필요에 의해서든, 가치관의 충돌에 의해서든 진보주의 담론이 실제로 청춘들에게 구체적인 조언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계인간 님과 제가 "보수담론의 조언과 구조적으로 다를게 뭐냐."라고 묻는 조언들은 대개 그런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이 조언들을 좀 폭넓게 발견하고 비판하지요. "취직을 안해도 다 살 수 있더라. 제발 그런 걸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는 박원순이나, "어떻게 공무원이 희망직종 1위인 사회가 있을 수 있느냐." "십 년만 뻘짓하면 인정받더라."라고 말하는 진중권의 발화를 이 영역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역 조언의 가장 안 좋은 형태의 대표자로 (경계인간 님이든 저든) 김형태의 것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편의상 이걸 진보적 조언 b라고 기록해 봅시다.

여기서 제가 213s님의 주장에 의문을 느끼는 것은 이런 겁니다. 분석을 하기 이전에 사태파악이 안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거지요. 제가 이해하는 일반적인 청춘들은 차라리 a보다는 b를 좋아해요. 적어도 제가 알고 듣고 본 세상에서 박원순의 조언은, 진중권의 조언은, 조소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청년층들로부터 환호를 받습니다. 앞서 얘기했듯 현실문제가 이러이러하니 오히려 같이 고민해보자는 꼰대와 가장 거리가 먼 주장이 무관심의 대상이 되겠지요. (다행히도 엄기호의 책은 만만찮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만) 저는 이 현상이야말로 차라리 213s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청년층이 계속해서 아이로 남고 싶은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2004년의 김형태가 청년들에게 각광받은 상황에 대해 본문에서 얘기했습니다. 청년들은 김형태의 글을 욕하기는커녕 막 너무너무 좋은 조언이라고 퍼다날랐단 거죠. 여기서 저는 경계인간 님을 '평범한 20대 찌질이'로 모는 213s님이 뭘 분석해야 할지 재료를 잘못 선택했다고 느낍니다. 만일 경계인간 님과 같은 반응이 '대세'였다면 저는 오히려 "이제 그런 상투적인 반응말고 다른 걸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386세대에게만 세상을 바꿀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란 식으로 말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죠. 청년들은 자길 욕하더라도 구체적으로 무엇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는 얘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걸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하고 있다는 자기최면을 걸 수가 있거든요. 저는 이런 자기최면이라도 없으면 하루하루를 버틸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거대로 이해가 가지만, 하여간 이런 조언이 소비되는 방식은 자기계발담론과 하등 다를 바가 없어요.


3. 386세대가 청춘들에게 던지는 충고는 진보담론과 연관이 있다.

---> 그래서 이 영역으로 넘어오게 되는데요. 213s님은 386세대의 문제를 한국 사회의 진보담론과 연결짓고 그들에 대한 비판은 한국 사회의 진보담론의 맥락을 받아들이고 고려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싶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앞서 2번에서의 구분에서 암시되었듯, 저는 김형태류의 조언이 진보담론과 상관이 있다고는 보지 않아요. 물론 그걸 하는 개인들은 (한국 사회 내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치적 주장을 하고 본인이 하는 조언들을 진보적인 것이라 믿고 있겠지요. 그래서 저도 그걸 "진보담론의 청춘문제에 대한 개입"으로 쓰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 조언의 내용자체는 저는 보수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보수적인 거라고 해서 꼭 나쁜 거는 아니지요. 이건 제가 꼰대성에 대해 말할 때의 태도와 비슷합니다. 저는 사회에 꼰대가 있어야 한다고 보고 가끔 꼰대질도 필요하다고 보는데, 꼰대에게도 지켜야 할 윤리가 있지요. 아마 앞서 언급했던 것 같은데 저같이 궁핍한 찌질이도 후배들에게 꼰대질을 하고 싶을 땐 마음속으로 어금니 꽉 깨물고 술자리는 제가 계산합니다. 자, 보수담론이 청년층에게 하는 조언이 두 개가 있어요. 공적인 조언과 사적인 조언. 공적인 조언으로는 대기업 지망하지 말고 공장가거나 중소기업가라고 얘기합니다. 물론 집에 가서 자기들 자식한테 이런 말 하는 양반은 없죠. 사적인 조언은, 부모로서 하는 얘기들인데, 내가 뒷바라지할테니까 어떻게든 준비해서 몇 년 걸리더라도 대기업 가라고 얘기합니다. 한국 사회는 첫 직장이 중요하다면서요.

제가 꼰대질로 인정할 수 있는 건 후자입니다. 적어도 자기가 돈을 대니까요. 그에 비하면 전자는 아주 파렴치한 꼰대질이지요. 한국 사회의 대줄/고졸 임금격차, 낮은 최저시급, 대기업의 중소기업 착취 등의 사회적 문제엔 눈을 감고 청년층이 품성으로 그곳에 가서 굴러야 사회가 산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니까요. 자,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겠지요? 진보담론의 조언 b는, 보수담론의 조언 a와 닮았습니다. 물론 이것조차도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닙니다. 사회가 안 바뀐다고 가정하고 청년층에게 뭔가 조언을 한다고 친다면, 사실은 할 수 있는 다른 말이 별로 없어요. 그러나 이게 조금이라도 책임을 지는 조언이 되려면 "이러저러한 사회적 문제가 있는데 여기에 대해선 이런 방식으로 연대하자." 정도의 얘기는 나와야 하지요. 그런데 그런 얘기까지 넣으면 '조언'이 되기엔 너무 복잡해지니까 다들 서술을 생략해요. 그래서 '술값 계산이 소거된 술자리 꼬장'이 탄생하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386세대의 청춘에 대한 충고 (물론 여기서 말하는 충고는 진보담론의 조언 b입니다.)가 유신세대나, 보수담론의 충고와 '본질적으로' '구조적으로' '형식적으로' 똑같다는 주장이 매우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386세대 조언의 특수성도 있지요. 그런데 이것도 진보담론과 관련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특수성은 이른바 '청춘'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관련이 있어요. 서구의 68세대나 일본의 전공투 세대와 비슷하게, 이들 세대는 자신들이 청춘인 시절 정점을 찍었고 그 이후로 (이념적/이상적인 차원에서는) 내려왔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에 대한 이 모델을 가지고 청춘들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요. "야!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20대가 인생에서 가장 진보적인 시기야! 근데 니들은 그 시기에 이 정도로 보수적이니 시발 인생 존나 그지같은 거 아니냐?" 근데 저는 그 모델이 그 세대에만 작동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거든요.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차라리 나이를 더 먹고 자기 인생에서 가장 진보적인 견해를 가지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한국 사회의 경제상황을 본다면...

이걸 가장 솔직하게 공표한 사람이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고 말한 김용민이죠. 젊은 애들이 싹수가 노라니 평생 재수가 없을 거라고 저주를 퍼부은 겁니다. 그렇게 저주를 퍼부어야 니들이 운동을 할 거 아니냐는 '선의'를 가면으로 뒤집어 쓰고요. 그런데 저는 이런 '조언'이나 '청년비판'이 그냥 자신들의 청춘에 대한 기억에 대한 낭만적 회고 내지 찌질거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요. 213s님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님들 잘 살고 있나요?" 저 좆같이 살고 있습니다. 아마 213s님이 충고하고 싶어하는 그 '평범한 20대들'이 저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 겁니다. 그분들도 213s님과 마찬가지로, 저같은 인간을 하잖게 봅니다.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저 조언이 진보담론의 어떤 것을 보여주나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겁니다.


이와 같은 사안들 때문에 저는 213s님의 견해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구요. 사실 이런 얘기들은 본문에도 시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213s님이 저의 인문학적으로 모자란 독해능력에 대해 한탄을 한다면, 저도 비슷하게 213s님이 참 글을 못 읽는구나라고 한탄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모두 좋아하는 편이고, 어렸을 때는 공부를 많이 하면 사회에 대해 더 정연하게 바라볼 수 있을 거라는 판타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간 정치평론을 하면서 만난 인간들은 그런 제 기대를 무참하게 깨버리더군요. 각 영역의 전공자는 그 전공영역의 방언으로 헛소리를 하는 고유의 기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전공영역의 지식으로 한국 사회를 잘 파악하는 분들도 (아주 가끔, 모래사장에 묻혀 있는 바늘처럼) 있지요. 그런데 그쯤 되면 그분들이 '공부를 해서' 그 능력을 획득했다고 보기는 힘들더군요. 그 분들은 원래 그 능력이 있었는데 거기다 덧붙여 공부까지 하면서 그걸 그 전공의 언어로 풀어내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그 전공의 언어로 풀어내게 되면, 뭐가 좋은 점이 있느냐, 글쎄, 사회적인 의미는 하나도 없고 다만 같은 전공자들에게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데는 도움이 되겠더군요. 각 영역의 전공자는 저같은 사람의 글을 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반면, 그들의 방언을 사용해서 상황을 설명하면 "호오, 흥미로운 해석인데?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라."며 각자의 뇌내망상을 풀어내는 이야기의 장 정도는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전 213s님이 정신분석 담론이 헤겔좌파니 하는 얘기를 하면 '아' 얘기하면 '어' 하듯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지만, 제가 하는 얘기의 요지들도 그 담론에 얹어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 짐작합니다. 결국 그런 인식들은 인문학을 잘 공부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던 거지요. 그러나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이를테면 "정신분석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한국 시민의 욕망을 제대로 분석할 리가 없어!"와 같은 편견을 가지고 자기들 방언을 공유하지 않는 이들의 견해를 무시하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입니다. 이런 저런 상황을 겪은 저로서는 "님들의 삶이 그따위인 건 이 정도도 못 알아먹기 때문"이란 님의 단언이 참 부럽기도 하고 생각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아이피는 진작에 찍어봤었어요. 공부를 많이 하면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판타지, 참 좋죠. 근데 그 판타지를 유지하시려면 그냥 외국에서 주욱 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비아냥이 아니라 실천적인 '조언'이에요. 공부 제대로 한 90년대 학번들 중에 한국에서 할 짓이 없어서 돌아오지 못하시는 분들 많이 봤거든요. 근데 돌아오지 않는 게 훨씬 더 나은 겁니다. 인문학 담론 잘 알면 가진 거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망상을 한국 사회에서 실현하려면 수유에 가서 고미숙 등을 천재로 대우하는 것 이외의 방법이 없는 듯 하니까요.

뒤에는 푸념도 좀 섞였는데 이쯤 하겠습니다.

abcd

2011.09.02 23:06:59
*.254.158.210

경계인간과 213의 잉여력(정열)이 부럽습니다

하뉴녕

2011.09.02 23:26:37
*.118.59.133

제가 213s님에게 김형태 글은 본 적이 있느냐고 여쭤본 건 그의 글이 보수파의 조언에 비해 나을바 없고 (사실상 더 악랄하고) 현실인식도 엉터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그런 글이 청년층의 반박을 받은 것이 아니라, 환영받았습니다. 이 블로그 들어오시는 분들 중에선 읽지 못한 분도 있을 것 같으니 참고삼아 보시라고 퍼옵니다. 전 이게 '할 수도 있는 충고'라고 보지 않고, 제가 지금껏 본 모든 종류의 충고 중에서 가장 엿같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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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십니까. 김형태님께서는 몸건강하시겠지요.
입춘이 지났건만 아직도 키보드를 치고 있는 제 손가락은 차갑기만 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요즘 사회적 이슈인 '이태백' 의 일원인 본인의 넋두리를 들어주십사, 더불어 형태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 이렇게 얼어붙은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는 지방대 디자인학과 졸업예정이고 다른 이태백 일원들과 마찬가지로 여러군데 이력서를 넣고 있는 와중입니다. 연락오는 곳은 별로 없고 무언가 불안하면서도 편안한(?) 생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곳저곳 이력서를 넣고 있지만 솔직히 제가 무엇을 하고픈지 알수가 없습니다. 원래의 전공인 제품디자인을 하고 싶다가도 디스플레이를 하고 싶기도 하고, 영화공를 하고 싶기도 합니다. 제품디자인을 하자 라고 하면 평생 영화공부는 커녕 영화 찍는 것도 구경하지 못할 듯하고, 영화공부를 하자고 하면 학교다닐때 했던 과제들의 즐거움이 떠오릅니다.
일단은 먹고 살아기위해 직장을 다녀야 할듯해서 계속 이력서는 넣고 있지만, 만약 회사에 다닌다면 영화공부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완전 히 영화에 미쳤다든가 비범하다든가 하는 인간극장에 나올법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회사에 다니면서 다른 것을 병행하기란 힘이 들것 같습니다.

아 정말 모르겠습니다. 올해 후반에 있을 영화교육기관(?) 시험을 보고싶은데 그때까지 매달려야할까 아니면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히 해야할까 모르겠습니다. . 그렇다고 영화라는 것이 내 평생 직업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힘들고 배고픈 그 직업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나. 또한 4년동안 했던 디자인은. 대체......

기대를 걸고 있는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놔두시겠지만 그래도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호강을 시켜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마는 그 '안정된'직장생활의 끝에는 나의 꿈이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백수가 되어 이것저것 가릴때는 아니지만 신중하고 싶습니다. 섣불리 조금 앞만 바라보고 결정했다가는 나중에 후회 할 일들이 이만저만이 아닐것 같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기를 일단은 취직을 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영어공부를 하고, 영화쪽이나 디자인 쪽으로 유학을 가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그러나 회사를 몇년 다니면 유학을 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영화교육기관에는 들어갈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부메랑처럼 또 따라옵니다.

횡설수설 앞뒤 안맞는 소릴 해댔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이 행복한 고민일까요. 어쩌면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하는 소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많이 사신 형태님께서는 지금 제가 어떤 선택을 해야 형태님의 나이가 되어서는 그때 나 정말 잘했어 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조언 부탁드립니다.



A:
당신은, 요즘 20대 청년실업자의 전형입니다.
20대가 왜 그렇게 취직하기가 어려운줄 아십니까?
사람들은 불경기라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20대들이 정확히 하고 싶은 일이 없고, 확실하게 할줄 아는 것이 없고, 겁은 많아서 실패는 무진장 두려워 하고, 무엇이든 보상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절대 시작도 하지 않으며, 눈은 높아서 자기가 하는일도, 주변의 현실들도 모두 못마땅하고, 시시껄렁하고, 옛날사람들처럼 고생고생하면서 자수성가하는 것은 할 자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어떡하면 편하고 안정된 직장을 얻어 돈을 벌수 있을까만 궁리합니다.
가장 혈기왕성해야 할 20대가 그런 식이니까 사회가 무기력해지고 경제가 침체되어 불경기가 오는 것입니다.

그럼 세상은 어떤지 이야기 해드리죠.
취업문이 좁다고들 난리지만, 사실 모든 회사에서는 새로운 인재가 없어서 난리입니다. 세상은 자꾸 변해가고 경제구조도 바뀌어가니까 새로운 젊은 인재들이 회사에 들어와서 젊은 피를 수혈해줘야 하는데 이력서를 디미는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개성도 없고 창의력도 없고 일에 대한 열정도 없이 그저 돈만 바라보고 온 사람들입니다.
회사입장에서 볼때 그런 사람들은 조금만 더 나은 봉급을 주는 직장이 나타나면 미련없이 회사를 그만둘 사람들로 보이고, 또 현장에서 기대하는 젊은 혈기와 창의력은 없고, 학원 좀 다니면 누구나 딸수있는 뻔한 자격증만 잔뜩 가지고 오죠. 그래서 요즘 회사들은 신입사원 최우선 기준이 '충성도'랍니다. 이말인즉슨, "너희는 그냥 시키는 일이나 로보트처럼 한다면 일자릴 주겠다"는 뜻입니다. 개성과 창의력은 포기하고 잡부나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20대들은 자신들이 신세대이고 새로운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믿겠지만, 사실, 기업이나 산업현장에서 당장 필요한 능력은 그런 겉멋이나 추상적인 감각이 아닙니다. 그리고 직장은 돈을 벌자고 다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당신처럼 하고싶은 일은 따로 있으면서 단지 돈만 바라보고 원하지도 않는 직장에 입사원서를 내는 것을, 기업의 인사관리 중역들은 모두 이미 눈치채고 있습니다. 그러니 500명 1000명이 와도 뽑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있는 사람과 결혼을 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세상 어디에서도 원하지 않습니다.
20대가 취직을 못하는 이유는, 바로, 특별히 할줄 아는 일도,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어른들은 그 사실을 면접때 눈빛만 봐도 다 알아봅니다.

그리고, 나약한 의지박약에 굴리는 잔머리가 문제입니다.
당신이 쓴 글을 보십시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저걸 하면 배고플거 같고, 이걸하면 잘 된다는 보장은 없고, 돈도 벌고싶으니 취직도 하고싶은데 직장은 재미없을 것 같고......그 와중에 대학원엘 갈까 유학을 갈까...... 편안한 학생신분만 연장하려고 하고, 대체 뭘 하고싶다는 것입니까.
당신의 진로문제를 짧게 정리해보면, "하고싶은건 많지만 고생해가면서 까지 꼭 해야할건 아니고, 그냥 먹고살게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도 않거니와 또 시시할거 같아요"입니다.
그런 사람을 받아주는 회사는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만든 영화가 감동스러울 수 없고, 그런 사람이 기획한 디자인이 아름다울리 없습니다.
그런이유로, 오늘날의 20대들이 그렇게 많은 자격증과 명문대 졸업장과 수백장의 입사원서를 발송하며 뛰어 다녀도 취직이 안되는 이유이고, 나라의 심장부가 그모양이니 이 나라의 경제가 침체되고, 장기 불황이 시작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당신들은 잘못된 교육탓으로 돌릴것입니다. 물론 맞는 이야기입니다. 동정표 한장!
하지만, 교육이 엉망이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습습니다. 그래도 당신들의 부모나 선배들은 더 발전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고 배워야합니다. 훨씬 열악한 환경안에서 훨씬 일찍 철이 들고, 나라를 발전 시켰으며 그 와중에 나름대로의 문화생활도 영위했습니다. 남탓, 시대탓, 환경 탓하는 것만큼 구제불능의 바보는 없습니다.
참고로, 아시아 모든 국가중에서 우리나라가 청소년의 어른에 대한 공경심 조사에서 꼴찌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어른을, 선배를, 과거를 존경하지 않는 젊은이는 원대한 꿈을 가질 수 없습니다. 꿈과 희망이란, "나도 저 누군가처럼 될테다"하는 동경에서 시작되는 것이거든요. 당신들의 큰바위얼굴은 누구입니까? 그런게 있습니까?
오직, 자기자신과 돈에 대한 갈망만 있지 않은가요?

섣불리 결정했다가 나중에 후회할까 두렵다고요?
왜 해보지도 않은 일을 후회할 걱정부터 합니까? 보지도 않은 영화를 재미없을까봐 포기하고, 가보지도 않은 여행지에 볼게 없을까봐 안가기로 하고, 저 요리가 맛이 없을까봐 안먹고... 사는건 대체 뭘까요?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정말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잘 만들수 있는지, 디자인은 또 얼마나 훌륭하게 할지, 회사를 다니면 얼마나 뛰어난 업무능력이 발휘될지 해보지도 않고 그 짧은 인생경험으로 오로지 책상앞에서 당신이 어떻게 알수 있겠습니까.
양다리에, 삼발이에, 문어발로 온갖 일에 맘을 다 걸쳐놓고 실제로 하는 일은, 해본 일은 하나도 없으니 불안할 수 밖에요.
'하고싶은 일이 많다는 행복한 고민'이요? 웃기는 자위입니다.
"내가 뭘 할줄 알고 뭘 하면 행복해 하는 인간인지 이 나이 먹도록 하나도 모르겠어요."로 들리는 헛똑똑이의 넋두리로밖에 안들립니다.

좀더 실랄하게 당신의 심리를 파헤쳐보자면, 영화를 하고 싶다는 것은 현실도피성 희망입니다. 솔직히 디자인도 최고로 잘할 자신이 없는것이죠.
자신의 전공쪽으로도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까,
"사실 나는 디자인보다 영화에 관심이 훨씬많다. 그래서 늦게라도 영화공부를 다시 한다"라는 상황에 대한 알리바이를 미리 준비해두려는 것이죠.
취직이 계속 안되는 상황에도 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입사원서 던지다가 어디 좋은데 운좋게 취직되면, 당신은 이러겠죠. "먹고 살아야하고, 부모님께도 효도하려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디자인과 영화를 포기했어"
그냥 한 나약한 생활인일 뿐인데 어느새 순교자로 승화되는거죠.
그 좋은 머리를 이런 자기합리화에 쓰기에 바쁘니 뭘 하나 똑부러지게 실천하겠습니까.

내 말이, 억울합니까?
그럼 실천해보십시오.
우선, 근무조건이 좀 열악한 직장을 선택해서 취직을 하세요. 그럼 금방 취직됩니다. 봉급도 좀 만족스럽지 못하겠지만, 자기 한입 먹고 살만큼은 줄겁니다. 그리고 20년 계획으로 영화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세요. 용돈을 쪼개서 모으고 모아서 캠코더를 사고, 컴퓨터를 사서 편집장비를 마련하고 (왠만한 PC로 다 가능합니다) 책을 사서 읽고, 주말에 영화 관련 포럼에 찾아 다니고, 틈틈히 시나리오를 쓰고, 휴가때는 비디오 영화를 만들어 보고, 이 모든 것은 직장 다니면서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20년 계획으로 꾸준히 하면, 습작이 꽤 될거고, 시나리오도 몇 편 나올겁니다. 디자인 공부한건 영화에 고스란히 활용될거니까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요. 그렇게 해서 40대가 되면, 당신은 어느새 다니던 직장에서 직위도 올라가있어서 월급도 꽤 되니 안정된 직장인에,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에 경쟁자가 없으리 만큼 탄탄한 준비를 가진 40대 신예 영화감독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그럼 바로 성공이냐? 아니죠. 입봉하고 나서 한 10년 현장에서 시행착오도 겪고, 기대도 받았다다가 실패도 했다가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진정한 실력을 쌓습니다. 앗 어느새 50대가 되었네요. 여러분들은 이정도되면 인생 쫑났다고 생각할겁니다. 그러나 나이먹고 알고보면, 세상은 어른들의 세계입니다. 그렇게 30년 줄기차게 정진해서 60가까이에 걸작을 하나 남길 수 있다면, 당신은 최고로 멋진 인생을 산 것입니다. 인생은 결과보다 과정에 더 많은 가치가 있으며, 결과까지도 좋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구요. 인생은 60부터란 말에는 인생의 커다란 진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말을 못믿어서가 아니라, 후줄근한 직장에 다니면서 20~30년이나 투자할 만큼 영화를 그정도로 갈구한것도 아니거든요.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저렇게 할 수 없는 피치못할 적당한 구실을 찾느라 머리를 쓸 뿐이죠. 벌써 몇가지 변명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르죠.

결국 자기인생에 변명을 만드느라 젊은 날을 허비하고 있다면 참 암울할 뿐입니다.

당신들, 정말, 왜들, 그렇게도, 경험으로 진리를 찾기를 두려워한답니까?

하뉴녕

2011.09.02 23:33:07
*.118.59.133

자 그리고 이건 시사평론가 김용민의 글 중 청춘에 대한 조언(?)으로 화제가 된 것인데요. 이런 구체적인 텍스트를 놓고 이 텍스트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지 설명해주실 수 있다면 얘기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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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겐 희망이 없다
김용민 한양대 겸임교수 특별 기고문
2009년 06월 08일 사회

5월 30일. 서울광장이 ‘털렸다’. 검은 장정들이 어스름한 새벽, 잔디밭 안으로 밀고 들어와 장악한 것이다. 당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집회’를 열기 위해 광장을 사수하려 했던 소수의 민간 활동가들은 전경의 완력(腕力)에 연행 또는 퇴거당하고 말았다. ‘노무현 추모 열기’로 재 점화될 줄 알았던 촛불은 그렇게 무력하게 꺼지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분노하는 이들은 “80년대 대학생들이 2009년에 부활해 그 자리에 있었다면…”이라며 덧없는 통분(痛憤)만 쏟아냈다. 대학생이라. 2009년에도 선발됐고, 재학 중이고, 취업 될 때까지 졸업하려고 버티는 선배까지 합치면 학생들이 제법 있을 텐데, 왜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물어 봤다. 바쁘단다. 맞는 얘기이다. 취업하려면 입학식 끝나기가 무섭게 어학 실력 향상, 학점 관리, 스펙 쌓기에 혈안이 돼야 한다. 이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틈을 내 연애도 해야 한다. 어쨌든 아주 어렵게 이들에게 시간을 얻어낸다. 그리고 시국집회 참석을 권유한다. 그러면, “그거 합법 집회인가요? 네? 집회 허가가 안 났다고요? 불법 집회네? 불법 집회를 왜 하는데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눈물 어린 준법정신이다. ‘법질서’를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표창이 뒤따라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3·1, 4·19, 5·18, 6·10 중에 합법집회가 있었나?) 그렇게 해서 간신히 설득해 집회 장소로 데리고 나와도 이들의 ‘까칠함’은 꺾일 줄 모른다. “집회가 너무 선동적이네요. 정치적으로 세뇌시키려는 것 같아요.” 그래. 졌다. 네 팔뚝 굵다!

지금의 20대 초중반을 이루는 대학생 세대. 이들을 일컬어 ‘IMF 세대’라 부르는 이가 있다. 사실 일리 있다. 19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나 사춘기 무렵에 아버지의 실직 등 외환위기의 여파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감수성 예민한 그 때에 뼈저리게 했던 고민, 뭐였겠나. “우리 아버지는 왜 잘렸을까” 이거였을 것이다. 이 화두 앞에서 ‘처세’와 ‘생존’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이후 모든 사안을 ‘가치’보다는 ‘자신의 유불리’에 방점을 두고 사리판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수가 2007년 겨울, 투표장에서 밑도 끝도 없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설레발 떠는 후보에게 표를 헌납했다. 이 후보의 부도덕한 과거를 충분히 숙지했음에도 말이다. ‘참을 수 없는 가벼운’ 현실 인식에 있어 기성세대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내 말을 들려주려 한다. 요컨대 “너희처럼 처신하면 밥되기 딱 좋다”라는 말이다. 자, 들어보라.
이명박은 너희에게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다. “누가 찍으래?” 이런 입장일 것이다. 너희의 등록금 걱정, 취업 고민에 대해 공감이라도 해줄 것 같나. 천만에. 그러니 등록금 반값 공약을 일말의 거리낌 없이 부도냈다. 아, 이런 대안은 제시했더군.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으면 되겠네”라는. 또 너희의 미래? “4대강 살리기 할 테니 삽 하나 들고 와서 한 반 년 일하라”는 게 최선의, 또 전부인 해법이다. 참, 이것도 있군. “정규직인 아버지의 일자리를 없애줄 테니 대신 네가 인턴으로 들어와 커피 타오고 복사나 하라”고 하는.

386선배들이 있었다면 그래서 권력의 골칫거리가 됐다면,
과연 이명박이 지금과 같이 무덤덤한 태도를 보였을까.

누굴 탓하겠나. 너희가 만만하게 보여서이다. 앞서 얘기한대로 지금의 너희 자리에 1980년대 군부 독재 권력에 온 몸으로 항거했던 386선배들이 있었다면 그래서 권력의 골칫거리가 됐다면, 과연 이명박이 지금과 같이 무덤덤한 태도를 보였을까. 이명박은 강한 자에게 약하다. 아무리 수틀려도 미국에게 또 북한에게 찍소리 못하는 거 봐라. 봉하마을에서 험한 꼴 당할까봐 직전 대통령 빈소도 못 들르는 졸렬한 보신을 봐라. 촛불 또 일어날까봐 지나가는 다섯 살짜리의 촛불도 끄게 겁박하는 심약함을 봐라. 만약 천지가 개벽해 대학생들이 조직적인 봉기를 벌인다면, 이명박은 어떻게 나올까. 아마도 대학생 사회를 운동권과 비운동권 둘로 이간하기 위해 등록금 또 취업 정책에 상당한 성의를 나타낼 것이다. “강한 자가 (목표물을) 쟁취할 수 있다”는 원리, 연애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너희에게 데모할 것을 부추기는 게 아니다. 도리어 만류하는 것이다. 왜냐면, 이미 너희는 뭘 해도 늦었기 때문이다. 너희의 단점, 즉 뒷모습을 이미 이명박이 목격했기에 어설픈 저항했다가는 더 가혹한 보복만 당할 것이다. 그냥 조용히 공부하고, 졸업해서, 삽 들고 안전한 삶의 길을 모색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또 너희가 소화하기 좋은 유일한 충고이다. 다만, 나는 지금 10대에게 큰 기대를 건다. 이 친구들은 촛불의 발화점이 됐던 소위 촛불 소년 소녀 세대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애들이다. 독재 권력은 물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불평등 현상에 대해 강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올 내년 또는 내후년쯤이면 아마 우리 대학 사회도 생존의 쟁투장이 아니라 가치와 사상이 꽃피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이 될 거라 믿는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졸업하면 너희 세대를 앞지를 것이고, 곧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판 돈 모두를 걸련다. 너희에게 너무 야박하게 들렸을 법한 이야기였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너희는 안 된다. 뭘 해도 늦었기 때문이다.

하뉴녕

2011.09.02 23:34:47
*.118.59.133

자 이런 종류의 글들이 엿같긴 하지만 유신세대의 청춘에 대한 조언, 혹은 보수담론의 조언보다 나은 면이 있다고 생각된다면, 혹은 한국 사회의 진보담론의 문제나 그 진보담론을 386세대가 구성했다는 문제에 대해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의의는 어떤 것인지 이 텍스트들에 기반을 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경계인간

2011.09.03 14:03:37
*.128.34.32

김용민이 그렇게 믿는다고 하던 10학번, 11학번 녀석들 중 어떤 녀석들은 저하고 사이좋게 김형태를 '까부스고'있습니다. 김용민씨가 그토록 애타게 갈망하던, 그들의 혁명을 계승해 줄 리틀 386은 등장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하뉴녕

2011.09.03 19:22:58
*.118.61.248

그들의 반석같은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한겨레신문보도나 하종강 같은 사람들을 보면 그 고딩들이 대학생이 되어서 최근 한국의 사회운동이 잘 되고(?) 있다고 해석하지요...

이챠

2011.09.03 11:15:18
*.41.224.95

음.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한들 남들보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꼬장이 아닐 수 있을까.

나는 진보 꼰대들의 청년관대로 나름 열심히 인생을 꾸려온 사람인데.
(위에 올린 두 글은 스쳐지나가면서 본 것 같고, 못본 것도 같은데,
10대 때 김형태 씨가 보는대로 내 또래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봤고,
20대 초 중반에 김용민 씨가 이렇게 살아야되지 않겠냐고 말하는
식으로 내 인생을 살아야되지 않겠나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때는 진보 꼰대들이 그런 말을 하는지 몰랐으니
그걸 들어서가 아니라 내 어릴 적, 진정한 인생은 이래야하지 않을까?
했던 인생에 대한 판타지가 그와 유사해서 - 저 글을 퍼 나른 분들도 나와
유사한 판타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그 수도 상당히 많지 않았을까)
그것은 어떤 면에서 판타지일 뿐이기에 스스로 참 어리숙했구나, 스스로를 너무
이른 시간부터 속이는지도 모르고 속여왔구나 싶기도 하다.
나도 어떤 면에서 나름 춎같이 살고 있고, 앞으로도 평범한
직장생활 하는 친구들과 굳이 비교하자면 사회, 금전, 인간관계 같은
면에서는 계속 그럴 것만 같지만, 애초에 그 부분에 욕심이 적기도 했고, 그걸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 된다는 걸 알고 선택한 지점인데다가, 포기하면서 얻을
수 있을 거라 했던 것들은 다 가질 수 있어서 이런 인생에 큰 후회는 없다.
그렇다고 친구가 없거나 여자친구가 없거나 기아에 허덕이는 상황도 아니고.

반대 편에서 생각하면 어떤 삶을 택하든 다른 종류의 같은 크기의 상실은 있을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함.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보니 이게 좀 더 고통이 큰 선택이었지만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꿈이 강했기에 후회나 상실의 크기는 같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난 몇가지 경험으로 생각할 때, 그런 길에 대해 논한다면 입은 닫고 자신이 가는 길이어야지
결코 남들의 인생에 대해 조언하는 자리에서 쓸 수는 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다 환경과 성향이 다른 것이니까.
같이 고민해보자 이 상황과 너의 방황이 나에게도 난제다.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그리고 충고는 철저히 조언을 해주고픈 사람의 성격과 그 사람이 접하는 현실에 기반해야겠지.
특히 세대 전체를 논하는데 누가 됐든 논하려는 사람의 인생에 대한 고민 없이
자기 인생 경험만 따와서 충고하려는 세대 옆에 놓아두는 것으로
끝이면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의도가 좋아도 꼬장으로 끝나겠지.

(......요즘 한윤형의 '내 인생은 좆같다'가 상당히 많이 보인다.
주로 금전, 사회관계, 인간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으나, 정신위생이 빠질 수 없으며 인생이 좆같을
때는 최근 주변에 등장한 사람이 좆같을 때도 많은 바, 그 중 한 명으로 심심한 유감의 표시를 전한다.)

하뉴녕

2011.09.03 11:53:52
*.118.61.248

그건 해괴한 악플러들이 많아서 그런 거라네...

경계인간

2011.09.03 14:01:52
*.128.34.32

제가 213s님과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건 한윤형님이 하신 것과는 좀 다른 차원에서인데, 저는 애초에 그 사람이 이 블로그에서 저나, 우리와 대화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13s님은 처음에는 허수아비 치기를 하셨고, 지금 치고 계신 게 허수아비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때부터는 사실 자기가 친 건 허수아비가 아니라 너희 자신이라고 주장하셨을 뿐이죠. 정신분석담론이니, 헤겔좌파니, 그런거 많이 아셔서 참 좋으시겠는데, 그러면 처음부터 그런 도구들을 통해 저나 한윤형님이 하는 이야기를 분석하셨어야 했겠죠. 그런데 213s님은 처음에는 제 주장을 곡해해서 제가 386세대의 사회적 의미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다가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반론을 듣고 나서부터 그런 도구들을 통해서 보면 사실 맞다고 우기신 겁니다.
제 주장이 그런 분석의 틀을 통해 봤을 때 386을 완전히 부정하는 거라면 처음부터 그렇다고 말씀하셨어야 하겠죠. 그냥 문맥대로 읽었을 때 그런 의미를 가지는 거라면 굳이 그런 분석도구를 사용해서 읽으라고 하실 필요가 없고. 그런데 처음에는 그냥 쓴 대로 읽어서 그렇다고 하시다가, 아니라고 하니까 사실은 그런 관점을 통해 봤을 때 그런 숨은 뜻을 찾을 수 있다고 말을 바꾸셨죠.

그나마, 어떻게 해서 제 글의 '행간에'숨은 뜻을 찾아내셨는지라도 밝히셨다면 납득하겠는데, 그것도 아니었어요. 213s님이 말씀하신 분석의 도구들은 사실 맥거핀이었죠. '내가 뭘 좀 아는데 이거에 따라 보면 니들의 주장은 그래, 그런데 니들은 뭘 몰라서 니들이 그런 걸 몰라'라고 하신다면, 당연히 그 뭐가 뭔지, 뭐가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 반문하게 되죠. 그 때 213s님은 '니들은 뭘 몰라서 그걸 모르는 거고, 뭘 몰라서 니들 인생이 그모양 그꼴이고, 뭐를 모르니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라고 대답하셨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럼 그 뭐가 대체 뭐죠? 뭐는 우리 주장에 어떻게 작용해서 우리의 전제를 정 반대로 뒤집어 놓는 겁니까? 제가 아는 한, 이에 대한 설명은 끝까지 안 나왔어요.
뭘 모르는 바보들하고 이야기 못하시겠다 싶으시면 조용히 돌아가셨으면 될 일이고, 그 뭐에 따라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으면 뭐가 뭔지 설명을 하셨어야 할 일인데, 그냥 뭐라는 게 있고 그건 여기서 나만 아는데 그거에 따라 보면 니들은... 이라고 주장하는 건, 그냥 우기기밖에 안 돼요.

그래서 제가 보는 213s님은 메시아 컴플렉스 환잡니다. 213s님은 진리를 깨달으셨고, 우매한 우리는 그 진리를 알지 못하기에 213s님의 따뜻한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고, 그러니 213s님은 우리에게 화를 내시는 거죠. '왜 이 진리를 알지 못하여 어두운 길로 가려 하느냐? 나를 따르면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느니라' 라구요. 그런데 그 진리는 대체 뭘까요? 물론, 진리니까 말로 할 수 없겠죠. 이쯤 되면 이건 종교의 영역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그 종교의 신자가 되지 않으니까 213s님은 다시 태도를 바꾸셨죠. '애초에 대화란 불가능한 거였다, 나는 너희가 생각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주었을 뿐이다. 너희가 어리석어 이 화두에서 진리를 끌어내지 못하면 안타까운 것이고, 혹시 끌어낼 수 있다면 희망적이겠구나. 그런데 ㅆㅂ. 난 한국사회에서 타자인데... 얘들은 지금 타자를 박해하고 있어, 할렐루야!'

뭘 어째야 하는 걸까요?

사실, 213s님이 하신 이야기와 저나 한윤형님이 한 이야기는 비슷해요.(다만, 저로써는 처음에는 일부 오류에도 불구하고 386들이 가진 가치를 옹호하자던213s님께서 토론이 진행되던 과정에서 나도 사실은 386꼰대들을 싫어하지만 그들이 존재하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을 좀 바꾸신 것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만.) 그런데 이 논쟁이 이렇게 길게 이어진 이유는, 제가 보기에는 213s님이 자꾸 자신이 계도해야 할 이상적인 우민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덧씌우셨기 때문이에요. 213s님이 이야기하신 다섯가지 전제 같은 경우, 저도 한윤형님도 모두 다 인정하는 거였어요. 그렇다고 했더니 '아냐, 니들의 주장 뒷면에는 그걸 부정하는 숨은 뜻이 있어'라고 관심법을 쓰기 시작하셨죠. 왜 자신이 설명하지도 않은 걸 남보고 이해하고 인정하라고 하시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213s

2011.09.06 04:28:31
*.140.58.209

한국의 문화나 담론 수준이 저질이라서 일일이 이야기하고 있기도 귀찮다는 거야. 나중에 내가 책 쓸 테니까 그거 보라고 했잖니^^ 메시아니 뭐니 하는데 그건 니가 기독교에 대해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걸, 내가 타자로서 도입하자 마자 쏟아져나온 니 무의식이야. 그 내장 좀 줏어 담아라. 냄새 난다 진짜 어휴. 대학의 담론으로 이야기하잔 식이더라도 이 이야기는 한윤형식 영미철학 분석적 대화법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건데, 나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기 귀찮다는 걸 이야기했을 뿐이야. 그냥 그만하겠다고 했잖아 뭐 더 알으라고 했니? 난 사과까지 했어요 너한테 말고. 넌 그냥 건드리면 니가 가진 분노 죄다 쏟아내는 니가 인정하듯이 '평범한 20대'고.

한윤형씨도 그걸 못 알아듣다니 참.. 뭘 그렇게 요구하는 게 많아요? 내가 건드렸으니까 그거 전부 책임지라고? 근데 나 시간 그리 많은 사람도 아니고, 이야기하자니 도저히 견적이 안 잡혀서 그만둔 거예요. 댓글 몇 문장보단 책 한 권이 나을 것 같으니까, 나중에 내가 책 쓰면 그거 내가 한국에 직접 한국어로 번역해서라도 내던지 할 테니까 그거 읽으세요. 한윤형씨 여행도 좀 다니고 그러세요. 어떻게 한국에 꽉 틀어박혀가지고 뭐하시는 건지 진짜. 머리가 굳어가는 것 같아. 예전에는 부드러운 글 많이 쓰더니만, 기능적으로 특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다 언제 한 번 크게 부딪칩니다. 조심하세요^^

213s

2011.09.06 04:33:21
*.140.58.209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생각 안 하고 판에 끼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뭐든 요구해도 된다고 생각하나본데, 귀찮으면 그냥 그만둘 수 있는 게 대화에요. 경계인간 넌 좀 한심해보인다. 니 삶이 어느 수준인지 대충 알 것 같거든? 모르겠으면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라도 봐. 니가 지금 뭘 하고 싶은 건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만 건지 거기 대충 나오니까

213s

2011.09.06 04:47:39
*.140.58.209

경계인간 너 있잖아 문장들을 레포트로 정리해내는 게 수준급이야. 무슨 기자도 아니고.. 칭찬하는 거 아니니까 그걸 또 칭찬이라고 받아들이고 좋아하지 말고^^
대화는 그런 방식으로 하는 것만 있는 게 아냐. 한윤형씨도 그렇고, 그거 죄다 논증하랍시고 들이대는 거 아니에요. 이러니까 박가분같은 바보들조차 님이 가진 그런 문제의 일부분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걸 또 걷어차고는...
한국에서 지금 하고 있는 짓거리 내가 살던 부근에서는 최소한 20년 전에는 다 끝난 이야기거든요?
님 같은 사람 한국에는 지금은 없잖아요. 근데 내가 살던 데에서는 요즘 님 같은 사람이 낡은 사람 취급받아요. 대학에서 교수나 비평가하고 있고
이택광씨도 그걸 뻔히 아니까 그렇게 신중하고 점잖은 거예요. 밖에 좀 나가봐요. 그렇게 한국 문제에 집중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으면 세계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213s

2011.09.06 05:10:02
*.140.58.209

뭐 나같은 사람들한테 이런 블로그는 지금 한국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굳이 노력해서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해줘서 좋긴 한데ㅋ 네이키드 런치 봤어요? 거기 보면 자기 와이프 죽이고 레포트를 써서 그걸 메워나가려는 사람 나오는데, 한윤형씨가 딱 그짝이거든. 그 사람이 그 뒤에 쓴 소설이 정말 재밌는데, 그걸 보는 재미하고 비슷한 재미로 한윤형씨의 글을 볼 수 있어요^^ㅋ

213s

2011.09.06 05:11:04
*.140.58.209

나중에 그것도 못해먹어서 거기서 나오거든요? 님도 그렇게 될 거예요. 그때까지 즐겁게 기대하고 있을게요^^

213s

2011.09.06 05:30:07
*.140.58.209

아 마지막으로 박가분을 대신해서, 님은 도구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박가분은 인간이 바보라도 도구가 좋아서 한윤형씨가 가진 문제를 지적할 수 있었는데, 한윤형씨는 현재 한국상황을 고려해서 도구를 사용하려고 하시잖아요. 그러면 딱 그 시대 수준에 맞춰서 갈 수는 있는데, 더 멀리까진 못 가요. 그러니까 정리는 할 수 있어도 새로운 걸 만들어내진 못하죠. 그리고 새로운 걸 만들어내지 못하면 앞장서서 뭔가를 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이 바닥에서만 놀고 그러는 거지. 더 멀리 가고 싶으면 도구가 도구 사용자의 정신에 영향을 끼친다는 거, 상호작용을 한다는 거 좀 생각하셔요.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라도 하고 있는 건데, 사람이 멋대로 하는 걸 내버려두지 못하는 게 자기를 딱 그만큼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만큼 시대와 맞춰 가고 있다는 거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내딛어서 밖으로 나와도 되는데 왜 다 같이 잘 살 방법 같은 걸 일일이 고민하고 그걸 제시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게 한국인들의 한계에요. 그걸 가만히 내버려둬도 된다는 걸 모르는 거. 한윤형씨도 그 한계선에 맞춰져 있는 거죠. 헤겔좌파를 괜히 들먹인 게 아니에요. 모든 인간은 자기 시대보다 앞서갈 수 없다고 말하잖아요.

근데 아실 거예요. 나라마다 다른 시대를 보내고 있거든요.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살다오면 그만큼 달라보이는 거예요. 그걸 기존의 담론체계와 맞추는 게 어려우니까 이택광씨 같은 분이 문화비평을 하고 있는 거고.

그리고 이 정도 대화는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평범하게 다 통했습니다^^ 나도 그래서 처음에 적응 못하고 생난리를 쳤는데-ㅅ-.. 하여간 그쪽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게 이쪽에서는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게 된다는 게 참.. 못 믿겠으면 유럽와보세요 ㅋㅋ

하뉴녕

2011.09.06 05:43:45
*.118.59.215

213s 님만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닌데, 이 블로그엔 "공부를 하면 무엇을 더 잘 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람은 오지 않고 그것을 주장하는 분들만 오는 것 같습니다. 이 길고 긴 댓글에서도 본인의 주장과 그것의 맥락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그냥 저에 대한 인상비평만이 난무하는군요. 이런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게 제 잘못인지 그분들 잘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는 말에 내용이 없으니 답변할 건덕지도 안 생기네요. 그리고 저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글쓰기를 오래 지속할 생각이 없으니, 똑똑한 여러분들은 헛힘쓰지 마시고 본인들 할 일이나 제대로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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