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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슬럿워크와 잠재적 성범죄자의 문제

조회 수 23184 추천 수 0 2011.07.26 20:12:19


슬럿워크 행사에 별 관심은 없었는데, 요즘 인터넷 여기저기서 "(어떤 여성들이?) 남성 일반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몬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이 반응이 슬럿워크 행사와 모종의 관련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일단 첫 번째로 궁금한 것은, 누군가가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상황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데 그런 것이 과연 항의할 만한 상황이냐는 거다. 그렇게 치면 법률은 언제나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을 것이다. 어디 법률만 그런가. 은행이 새콤을 달고 있는 것은, 우리가 집에 들어가 문을 잠그는 것은, 내가 모르는 일군의 사람들을 '잠재적 도둑'으로 취급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기업이나 가정집에게 "왜 인간 일반을 잠재적 도둑으로 모느냐."라며 항의하지 않는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다 보니, 슬럿워크 행사와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의 연결고리 사이엔 훨씬 더 기이한 점이 있다. 말하자면 슬럿워크 행사야말로 남성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을 반대하는 행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가령 "여성이 헐벗고 다니면 남성은 성욕을 억제할 수 없어 성범죄의 위험이 현저히 높아지므로, 여성은 복장을 제한해야만 한다."는 논법은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취급하는 걸 넘어서 거의 '예비 성범죄자'로 취급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아마 슬럿워크 행사를 비판할 수 있는 가장 냉소적이면서 그럴듯한 논거는, "당신들의 권리에 대한 갈망은 존중하지만, 남성은 본질적으로 성범죄자이기 때문에 그 권리행사는 좀 더 신중해져야 한다."는 것일 게다. (이와 유사한 버전으로, 내가 들은 것 중에 한국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이행하는 것을 반대하는 가장 참신하고 설득력있는 논거는, sonnet님의 "한국인들은 타인종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없기 때문에 다문화사회가 전개되면 한국 사회에 온 타인종 사람들도 너무 괴롭다."는 것이었다.) 


(* sonnet님의 얘기는 여럿이 있었던 어느 모임의 뒷풀이 자리에서 들었던 것인데, 포스트에 쓰신 적은 없는 것 같다. 비슷한 주제로 쓴 글은 이것인 것 같고. http://sonnet.egloos.com/4577066
**슬럿워크 시위 관련해서도 한편 쓰셨는데 그 글은 이것. http://sonnet.egloos.com/4602329 ) 


  

라캉주의자

2011.07.26 22:57:12
*.228.192.153

스티븐 핑커는 <빈 서판>에서 "옷차림이 성범죄율을 단 0.1%라도 줄일수 있다면 이와 관련해 여성들에게 정숙한 옷차림을 권장하는일이 가부장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할수만은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같은책에서 총기소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스위스는 국민의 총기소유 비율이 현저하게 높지만 총기로 인한 사고율은 낮다. 따라서 총기소유가 범죄를 부추긴다고 볼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핑커가 이 두 이슈를 병치한건 아니지만 어쩐지 묘하게 모순되는 태도인거 같아서 기억하고있습니다.

outis

2011.07.27 13:48:25
*.216.97.126

핑커 본인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저는 두 진술이 크게 모순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자의 의견에는 사실 동의하구요.

후자의 경우에, "범죄율과 큰 연관이 없다"가 아니라 "총기 사망자의 수와 큰 연관이 없다."같은 문장이었으면 분명히 잘못이었겠죠.

다시다

2011.07.27 10:12:24
*.124.106.137

차도르나 부르카가 성범죄를 단 0.1%라도 줄인다면? 아예 여자들이 집에서 나오지 않으면 성범죄는 거의 안 일어나겠네요. 넌센스라고 봅니다. 실제로 옷을 어떻게 입을 건지는 이런저런 일을 고려해서 개개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성범죄와 야한 옷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별 근거 없는 믿음에 대한 항의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거죠.

라캉주의자

2011.07.27 10:29:44
*.228.192.153

핑커가 꽤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안나감. 그냥 저렇게 슬쩍 흘리기만 하고 넘어가더군요. 책의 중심 주제도 아니었구요.

용공폭도

2011.07.27 22:41:37
*.89.32.91

여성의 피부노출은 성폭력의 원인이 되고, 다문화주의가 인종주의 테러의 원인이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사유재산은 사기, 절도, 강도를 비롯한 금전적 이익을 위한 범죄의 원인이 되겠지요. 원인을 없애서 범죄를 근원적으로 차단하자는 분들이 참 많으시니, 혁명의 햇새벽이 아주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숙한 옷차림이 성범죄율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면 진지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는 것 처럼, 인구수의 감소는 모든 범죄의 '양'을 낮출 가능성이 큽니다. 역시 학살을 진지하게 고민할 가치가 있는 것 같군요. 특히, 인간이 없으면 사유재산도 없어질 테니 인간의 멸종은 재산에 대한 범죄와 신체 및 정신에 대한 범죄 모두에 대한 확실히 효과적인 해결책이 되겠습니다. 아니, 사실 그 이전에 형법은 인간이 저지른 범죄들을 처벌하기 위한 규정이므로 형법에 규정된 모든 범죄에 대한 해결책이 되겠군요.

'여성의 옷차림이 성범죄의 원인'운운하는 논리의 수준은 사유재산 폐지론보다 좀 낮고, 인간멸종론하고는 비슷한 수준이겠죠. 문제는 이런 엽기적인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인데, 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계단을 올라갈 때 치마 뒷부분을 가방등으로 가리는 행위를 보면 짜증이 난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이유인즉 '보여주기 싫으면 긴 치마를 입으면 될 일이고, 짧은 치마를 입었다는 것은 보일 것을 각오하고 입은 것인데 왜 가리는 것이냐'는 것이었고, 그 가리는 행위가 '뒤에 있는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죠.

이 주장에서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한 '남성'이 여성의 신체적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그 여성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여성에게는 어떠한 옷을 입을지 선택할 권리가 있지만, 그 옷을 입음으로써 생기는 결과를 통제할 권리가 없다고 보는 것 같더군요. 여성이 어떤 옷을 입을지는 자기 자유지만, 그 옷을 입음으로써 생기는 일종의 이익(보는 사람의 즐거움)을 자기 뜻대로 처분할 권리는 없다고 보는거죠. 여성의 '신체'가 생산해내는 이익까지 공유하자고 주장하다니. 혁명의 미래가 정말정말 밝군요.

피부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을 강간한 한 인도네시아 출신 이슬람교도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때 그 강간범은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여성을 강간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더군요. 참 똑같은 인간입니다만, 저 위에서 소개한 그 소리를 한 그 인간은 분명히 그 인터뷰 내용을 보여주면 '그러니까 파퀴벌레들을 청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겠지요.

하뉴녕

2011.07.27 23:20:11
*.171.89.66

좀 과도한 반응이라 생각됩니다. 원인을 '근본적으로' 없애자는 해법이 말씀하신 것처럼 현실세계에서 대단히 무능하단 건 사실입니다만, '옷차림 주의'라는 논법은 여러 층위의 조언들을 포괄하고 있을 테니까요. '여성의 옷차림이 성범죄의 원인' 운운하는 논리의 수준은 사유재산 폐지론이나 인간멸종론에 비견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성범죄를 대비해 여성의 옷차림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정도가 되면 또 얘기가 달라지거든요. 물론 용공폭도 님은 "그 조언의 이면에 서려있는 욕망은 '여성의 옷차림이 성범죄의 원인';운운임이 분명하므로 그런 종류의 모든 조언은 원천적으로 배격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으나, 얘기가 그렇게 흘러가면 용공폭도 님의 얘기도 비슷한 수준의 과격한 근본주의가 됩니다.


아마 저 조언을 큰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저것을 "부잣집 아이들에게 유괴당하지 않으려면 부티나는 옷을 입고 다니면 안 된다."는 조언과 비슷하다고 여길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그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는데, 이걸 구별하려면 얘기가 더 복잡해질 것 같고 이 문제에 대해 따로 글을 한편 써보는 쪽이 차라리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공적 정책의 영역과 사적 조언의 영역은 다른 것일 수가 있기 때문에, 저 조언이 언제나 무의미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밤길 으슥한 곳 혼자서 돌아다니지 마라."는 조언에 비해서도 사적 조언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겠지요. (통계를 좀 봐야 하는 문제이긴 합니다만 아마도 확실히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식의 비평은 할 수 있겠지요. "어떤 남자들의 어법을 보면, 성폭행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 노출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노출을 규제하기 위해 성폭행의 위협을 끌어대고 그것을 여성의 책임 영역으로 전가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는 한두 사람의 편견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통제해왔던 방식을 계승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라구요.


말씀하신 사례나 정서들은 저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긴 한데, 기본적으로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이란 논변이 꼬여 있단 걸 보여주는 게 이 짧은 글의 목적이었는지라 여기서는 상론하지 않았습니다.

용공폭도

2011.07.29 15:57:47
*.180.37.93

말씀하신 내용이 옳긴 합니다. 다만 의심스러운 것은 정말 옷차림을 주의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그 주장을 정말 그런 생활의 지혜 수준으로 이야기하고 있느냐는 점인데요. 물론 그런 수준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긴 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층위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이번 슬럿워크 파동 역시 '옷차림이 성범죄의 원인'이라는 발언(어느 나라였죠?)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지 않았나요.

물론 '관심법'으로 남의 주장을 들여다본 뒤 '그 주장의 이면과 근원에는 여성에 대한 비하가 있으므로 니 주장 원천봉쇄'같은 소리를 하는 건 말씀하신 대로 지나치게 과격한 근본주의적 행동이겠죠. 다만, 본래 사적인 조언이어야 할 것을 공적인 대책으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주장한다는 것은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자기 주장을 생활의 지혜보다 심각한 층위에서 이끌어내고 있다는 근거라고 하면 이건 좀 억측일까요?

nishi

2011.07.28 04:15:32
*.191.65.23

/한윤형
"부잣집 아이들에게 유괴당하지 않으려면 부티나는 옷을 입고 다니면 안 된다."
=> "부잣집 아이들이 유괴당하지 않으려면 부티나는 옷을 입고 다니면 안 된다."

가 아닐런지요.

눈팅족

2011.08.12 12:57:11
*.255.63.30

여성의 옷차림 수준을 가지고 노출정도를 파악할 수 있거나(아주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구요), 어느 정도의 노출이 남성에게 잠재된 성욕망을 발현시킬 수 있느냐의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여성들이 어떤 남성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몬다는 주장 또한 무의미하다고 보구요.

여성의 노출에 의한 성범죄의 위험이란 주제는 성범죄에 대한 원인분석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그저 윤리의식에 관한 개인편차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누군가에겐 그정도의 노출이 성범죄를 유도할만한 욕구로 작용하는 것일테고, 누구에게는 뭐 저 정도야 요새 다 그렇게 입고다니니 한번 훑어보고 마는 정도로 끝나는 것일테죠.

궁금합니다!

2011.08.27 23:31:14
*.179.104.217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하는 것도 인권침해라 할 수 있을까요?
예를들어 남성의 시선만으로 여성에세 성폭행이 성립된거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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