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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김진숙 



'크레인 85호'에서 내려온 김진숙의 절박한 트윗은,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을 서술한다. '감옥'에 들어간 사람은 체제의 입장에서 보면 전쟁에서 '패배'한 이다. 당연히 그들은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체제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에 비해선 말이다. 김진숙이 감옥에 갇힌 것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그녀가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지금 상황에서 하나마나한 가정이지만 만약 한국 사회가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는 노동자에 대해 더한 대우를 하는 사회가 된다면, 한국 사회의 수인에 대한 대우는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승리'할 수 있는가? 그녀의 승리조건은, '제 발로 내려오는 것'이다. (시사in에 보내온 김진숙의 육필원고 참조)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 크레인에 올라간 이상은, 어지간한 타협적 결과물을 가지고 내려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건, 퇴로를 막아버리고 벌이는 근본적인 투쟁이다. 김진숙이 크레인 위로 올라가는 걸 동료 활동가 모두가 말린 건 그 때문이었는데, 모두 알다시피 김진숙은 새벽에 조합원들 몰래 김주익 사후 채워져 있었던 85호 크레인의 자물쇠를 열고 고집스레 올라갔다. (당시 레디앙 기사 , 당시 김진숙의 편지) 그 후 반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승리가 힘겨운 조건은 여전하지만 여론은 극적으로 변했다. 김진숙이 김주익의 크레인 85호로 올라갈 때 그녀를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그녀를 지지한다. 김진숙이 지켜본 한진중공업 박창수와 김주익과 곽재규의 죽음이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오마이뉴스 기사) 송경동의 노력 때문이든 김여진의 활동 때문이든 SNS의 역할 때문이든 (나는 희망버스의 성황을 SNS의 진보성으로만 분석하려는 논의가 조금 불편하다. 이에 대해선 2011/07/10 - [정치/분석] - SNS의 진보성? 을 참고할 것.) 부산 영도에 1만 명의 사람들이 내려가 그녀를 보기 위해 전경/용역들과 맞섰다. 


반값등록금 이슈가 그리 되었듯 이 사건이 다른 이슈에 밀려날 우려를 일단 제끼고 말하더라도, '1만 명'이란 건 엄청난 숫자이다. 그리고 운동단체들의 동원능력이 상실된 세태에서, 1만 명이 그곳에 내려갔다는 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김진숙의 추도사에 발끈하며 프레시안에 악플을 달았을 성향의 이들도 그곳에 잔뜩 몰려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나는 김진숙의 그 추도사를 블로그에 소개했었다. 2009/06/09 - [정치/기타] - [펌/김진숙]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려면, 그녀의 이 글을 게재한 프레시안 기사에 달린 덧글들을 봐야 하는데, 프레시안 서버가 리뉴얼되면서 덧글들은 남아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조금 순화된 표현으로 '결국 노동계도 시대를 앞서 나간 노무현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들은 차벽 속에 갇힌 진보였다.'라고 반응했으며 이러한 내용을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을 섞어 게시한 사람도 많았다.)


굳이 김진숙의 노무현에 대한 추도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SNS에서 그녀에게 성원을 보내는 이들 중 상당수가 어떠한 정치성향을 지녔는지는 조금만 둘러봐도 명약관화다. 이것은 한국 사회 '진보 세력'의 외연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보여준다. 진보신당 당권자가 1만명이라면 그 중에서 유시민을 진보신당과 함께 좋아하는 이들이 4천명은 될 거라고 예측하는 것처럼, 김진숙을 지지하기 위해 내려온 이들이 1만명이라면 그 중엔 진보정당 독자노선보다 야권 단일화론에 더 동감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거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거다.


나는 지금 야권 단일화론을 말하는 이들은 김진숙을 지지할 자격이 없다거나, 소위 '좌파'라 스스로를 칭하는 사람들이 그런 이들을 색출하여 단호하게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인지하는 상황은 훨씬 더 비참하다. 혹시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오늘날 김진숙에게 훨씬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한줌도 안 되는 '좌익'이 아니라, 인간다운 세상을 꿈꾼 노무현을 추모하면서 '나쁜 이명박'을 일단 몰아내기 위해 야권이 연합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라믿는 '자유주의자'들이 아닐까 하는?


어쩌면 희망버스의 '성공'이야말로 사실은 그 판단을 지지하지 않는가? 좌익들은, "민주당은 노동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진보정당이 해결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거나, 또는 "정당들이 내세우는 임시방편들은 노동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로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근본적인 시도만이 노동문제를 해결할 것이다."라고 선언할 거다. 하지만 동조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그런 생각을 가진 좌익들보다 '우리 시민들'이 훨씬 더 숫자가 많기 때문에, 우리들이 김진숙을 더 도와줄 수 있다."고 자부한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민주당이 진보정당보다 김진숙을 도와주지 못할 지라도, 야권 단일화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김진숙을 훨씬 더 많이 도와줄 수 있다면 그런 판단에 대고 뭐라고 말해야 하나?  


사회운동에, 그것도 노동운동에 규합한 시민들이 진보정당 운동을 소멸시킬 가능성에 대해 '좌익'들은 사유해봤는가? 이 '딜레마'에 맞닥트린 어느 좌익청년에게는 두 가지 정도 선택지가 해결책으로 주어질 것이다. 하나는 '저 자유주의자'들보다 내가 훨씬 더 치열하게 실천하겠노라고, 그리하여 저 딜레마를 발생시키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이 아무리 윤리적일지라도 그의 행동은 저 딜레마를 해소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가장 성공할 때라도 김철수라는 청년이 또 다른 김진숙이 되어 김철수를 지지하는 이들에 대해 동일한 딜레마를 발생시키는 상황을 만들어낼 뿐이다.  


다른 선택지는 그렇게 합류한 사람들이 어떻게든 변하게 될 거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은, 결국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이나 야권단일화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진보정당이나 사회주의를 지지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것이다. 여기에는 또 두 가지 다른 버전의 입장이 가능하다. 노동문제가 우연히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주의 세력과 좌익 세력의 견해의 차이를 드러내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될 거라는 현실정치적 견해가 있고, 원래 노동문제야말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집약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 이슈에 뛰어드는 이는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길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인 견해가 있다.


나는 이러한 견해들이 어떤 기대에 대한 의견표명이라면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그러한 기대가 필요하고 그 기대를 실현시키기 위해 각자 노력을 해야 한다. 아마도 그것이 적어도 김대중 노무현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진보는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의무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각고의 노력없이 하나의 사건이 저러한 변혁을 불러올거라고 믿는다면 그건 올바른 인식이라 보기 어렵다.



3년 전 한국에선 촛불행진이라 불리는 거대한 시민의 저항이 있었다. 그러나 촛불행진은 이명박이라는 악덕한 대통령에 대한 분노에 몰두함으로써 결국 모든 걸 이명박 탓으로 돌린 개혁정치 세력이 그 열매를 차지하고 말았다. 그러나 희망버스는 김진숙이 188일째 싸우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싸우던 김주익이 129일째 되던 날 목을 맨 건 바로 그 개혁정권에서였다는 것, 개혁적 공권력과 개혁적 언론에서였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그들 역시 자본의 또다른 도구이자 하수인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을 말이다.
- 김규항, <부산발 혁명, 희망버스 혁명>  




현실정치적 견해가 말하는 노동문제의 특수성은 다음과 같이 반박될 수 있다. 첫째,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노동문제와 분리해서 사고할 2008년 촛불시위의 구호나 반값등록금과 같은 의제들도 찬찬히 따져보면 '반이명박'이란 구호로 집약될 수는 없었다. 이 사건들에서도 한미 FTA를 체결하거나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시기가 "바로 그 개혁정권에서였다는 것, 개혁적 공권력과 개혁적 언론에서였다는 사실을 환기"할 수 있다. 이 문제들과 노동문제 사이에 어떤 질적인 차이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환기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참여정부의 한미 FTA는 이명박 정부의 굴욕적인 대미협상과는 달리 이익균형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고, 등록금이 언제 많이 올랐는지를 환기하기보다는 이 정권의 경찰이 예전에 비해 얼마나 학생들을 더 탄압하는지를 조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둘째, 아예 노동문제로 들어와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희망버스에 참여한 이들만큼의 숫자는 아니더라도, 2008년 기륭전자에 항의한 김소연 분회장의 단식농성이나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투쟁 등은 촛불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호응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이러한 호응이 이루어질 때라도 '개혁정권'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환기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투쟁하는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해고당한 것은 참여정부 시기였고, 그들이 해고당한 사정이 참여정부 시기에 통과되었던 비정규직 보호법안과 관련이 있음을 환기한 이들이 얼마나 있었는가. 쌍용자동차의 문제가 참여정부 시기에 있었던 상하이 자동차로의 매각에서 연유되었음을 환기한 이들은 또 얼마나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내가 정혜신이나 박혜경, 그리고 레몬트리 공작단 등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그걸 '환기'한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하는 자괴감이다. 내가 그들에 비해 더 왼쪽으로 치우친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일은, 바리새인이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해 우월의식을 가지는 것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구조적 견해가 말하는 노동문제의 특수성 역시 같은 방식으로 반박될 수 있다. 어떤 정치적 사건이 정치적 주체를 탄생시키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사건에 참여한 이들이 모두 변화를 겪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정치적 감각과 신념들을 새로운 사건에 참여하면서도 유지한다. 그리고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새로운 사건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정치적 감각을 길러내거나 기존의 신념을 변경한다.


만일 희망버스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정치신념을 더 왼쪽으로 바꾼 사람들이 있다면, 한국 사회의 정치지형도 속에서 그들은 1만명이 참여하던 그 시위의 희열과는 전혀 다른 소수자의 소외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의 지지자로 살기 위해선 제 몸의 거죽처럼 달고 다녀야 할 어떤 감각이다. 그래서 타인의 입장에서 그 길을 선택하라고 윽박지르기가 힘들다. 2008년 기륭전자에 흘러들어온 몇몇 82cook 회원들은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한다고 믿었지만 한편으론 그 거대한 촛불의 무리에서 외딴 곳으로 떨어져 나왔단 사실이 심란하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 심란함과 불안함을 지우기 위해 기륭의 투쟁구호를 온건하게 바꾸자고 말하는 그분들에게 나는, "원래 지배계급이랑 싸울 때는 우리가 원하는 전장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싸울 수는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많은 사람이 희망버스에 타는 건 환영해야 할 일이다. 성공한 운동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운동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운동이 성공했을 때라도 고스란히 남는 문제들이 있다. 희망버스에 참여하는 것 자체로 사람들의 정치의식이 높아지거나 진보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당장 "사람이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나 "노동자의 생존의 문제는 보수 진보의 문제와 무관하다."는 어법들은 어떤 탈정치성이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나는 보수주의자라도 김진숙을 지지해야 한다 믿지만, "보수주의자라도 노동자 생존을 지지해야 한다."는 말과 "노동자 생존의 문제는 보수 진보와 무관하다."는 말은 또 다르다. 우리는 그런 감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이 활동에의 참여나 지지가 다른 감각을 만들어내길 기대해야 하고  그 기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가령 위에서 인용한 김규항의 한겨레신문 칼럼이 전적으로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김규항이 글에서 말하는 사실판단이 현실과 사뭇 어긋나  있다고 보지만, 그 어긋난 현실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당위를 사람들에게 '환기'하는 차원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김규항이나 어떤 좌익들이 현재의 상황과 본인의 실천의 의미를 인지하고 있느냐다.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제대로 해석해 내면서 실천의 영역을 호출해야 한다. 분명히 세상과 사람들은 조금씩 변하고 있고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에 희소식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변화는 우리의 사변 속에서 '무로부터 생성되어' 현실 속으로 틈입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희망버스에 올라탄 사람들의 감각에 예전과 다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그 이전의 사건들인 08년 촛불시위나 기타 사건들과 별개로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을 인지했다면  김규항의 글은 조금 더 세련되게 달라졌을 것이고, 그 이전에 '진중권이 촛불시위 때 자유주의자들을 데려와 진보신당을 망쳤다.'와 같은 주장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떤 진보주의자들은 자신이 동의하는 시위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조리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 야무지게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진중권은 국민참여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3당합당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08년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이전의 대한민국의 맥락과 상관없이 땅속에서 솟아난 사람인 양 취급한다. 한편 김규항은 새로운 정치의 필요성을 말하기 위해 희망버스에 참여한 이들이 이전의 맥락과 상관없이 우주에서 떨어진 사람인 양 말한다. 그렇게 본인의 신념을 위해 현실을 자의적으로 추출해낸다면 그런 평론은 '뇌내망상'에 불과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소위 좌익들이 희망버스를 바라보며 희열을 느끼기도 해야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곤혹스러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좌완유격수

2011.07.14 03:24:08
*.116.201.221

좌익의 한명으로서 이 글은 곤혹스러우면서도 참 반갑네요. 잘 읽었습니다.

흐음

2011.07.14 10:58:31
*.21.178.96

생각하지 못했던 역발상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이글에서 한윤형님의 번민이 느껴지네요.

하뉴녕

2011.07.14 17:12:41
*.152.7.251

글쎄 번민일 수도 있겠는데....원래 세상일이란게 찬찬히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한 것들이 굉장히 많은데 다들 억지로 그걸 잊어버리고 '명확한 판단'을 추구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흐음

2011.07.15 12:10:21
*.143.73.116

억지로 그걸 이져버릴수도 있지만 차분하게 생각하기 어려울정도로 바쁘다는 거지요. 그리고 일터에서 지치고 녹초가 되면 다른걸로 보상받기 바쁘니까요.

쇼핑이건 오락이건 말이죠 차분하게 생각하려면 마음도 편해야하고 개인적인 인프라가 갖추워야 하지만 그러질 못하는거 같습니다. 생각하고 자신을 성찰한다는게 그치않아도 힘든 세상에 자신의 상처를 본다는건 보통의 내공이 아니면 어렵지요.

좌파 어른들은 너무 쉽게 그걸 애기해서 부담스러울때가 있어요. 이사회가 자극적이고 말초적인것으로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있기 때문에 차분이 자신을 돌아본다는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ps:이건 다른 애기인데 이 험한 세상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덜 받고 싶죠 자기 일도 벅찬데 세상일의 부조리까지 신경쓸 여유가 별로 없는거 같습니다. 젊은분들이요 나이든 어른들은 이점을 이해하지 못하는거 같고요 세상의 부조리 즉 정치에 데해서 젊은이들은 너무 잘 알아서 냉소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확 올랐다 열정이 빠지면 무기력에 빠지기도 하고요.

하뉴녕

2011.07.20 17:27:35
*.171.89.66

답변이 늦었는데 제가 너무 '명확한 판단'을 추구한다고 비판한 건 생활세계의 사람들이 아니라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정치평론가들이나 좌파들입니다. 생활세계의 사람들이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운 것은 맞구요. "좌파 어른들은 너무 쉽게 그걸 애기해서 부담스러울때가 있어요."란 말에 동의를 하고, 전 그게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좀 이해가 안 간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님의 저에 대한 코멘트에서 "대개 좌파들은 그런 고민을 안 하던데..."라는 함의를 느껴서, "전 이런 고민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변을 한 상황이었던 거지요. ^^;;

으흐흥

2011.07.14 16:06:19
*.205.71.201

저는 김규항 류의 낙관론에는 절대 동의하지 못하지만, 사실관계를 어느정도 파악할 지능만 있다면 아직까지 소위 저 촛불시민들이 '의식화'될 여지는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노동이나 자유무역협정 투쟁 등을 보면서 이명박을 욕하고 노무현을 빠는 그들에게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않고(노무현 개객기 유시민 더개객기! 좌익은 그동안 이런 식으로 덮어놓고 욕부터 했던건 아닌가...)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노동문제가 심화된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들도 무엇이 정말 문제인지 이해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희망버스나 촛불시위 등에 연대했던 저 '자유주의적' 시민들이 노동문제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고 그 원인이라도 깨닫게 된다면 그걸로 좌익들은 그 현장에서 최소한 그들에게는 충분히 임무를 다한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이 의식화되어 진보정당을 지지하건, 여전히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지지하건 간에 노동에 대해선 어떤 주관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과거보다는 바람직한 정치지형이 펼쳐지지 않을까 소심하게 기대합니다.

김여진씨는 운동권 출신인데(어떤 성향인지는 잘 모릅니다), 김진숙 지도의 문제를 상당히 드라이하게 설명하면서도 감정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팔로워들을 조직하는데 성공한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날라리 외부세력'이라는 이름으로 팔로워를 조직해 홍대투쟁에 성공적으로 결합한 예가 있기도 하고요(물론 이 사실은 주인장이 더 잘 아시겠지만). 그 외부세력의 정치성향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수렴되었는지 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노유빠 수준으로 남아있으리라곤 믿기 힘듭니다.

사실 아직까지 제가 의식화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당장 제가 극렬 노빠출신인데 각종 노동문제를 보면서 '이게 아닌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별 다른 루트없이 좌익 이데올로그들의 글을 통해서 진보정당의 당원이 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형적인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다, 제 경험을 너무 절대화하는 믿음이라는걸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멍청한데다, 주변이 수꼴들로 가득찬 환경에서 살아온 저같은 놈도 진보정당원이 되었기에, 저보다 나은 조건에 있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더 쉽게 의식화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덧.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희망버스는 전국의 운동권이 총 동원된 이벤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기획 자체는 분명 운동권이 했을테고 다수 운동권들이 중심을 이룬데다(전 진보정당원도 운동권으로 지칭하지만 사실 그들도 자유주의적 시민일 수도 있겠네요) 트위터를 통했건 인터넷을 통했건 간에 버스를 타려면 그래도 최종적으로는 운동권조직에 연락을 했어야 되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희망버스를 '노유빠 성향 자유주의적 시민들의 자발적 결합'으로 보는건 노빠들이나 운동권들의 어떠한 판타지에 기반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하고요. 오히려 이 이벤트가 운동권이 전통적인 동원에 성공한 것이 맞다면, 아직 한국의 운동권은 이 정도 기획을 할 능력은 있는게 아닌가 섣부르게 기대합니다.

하뉴녕

2011.07.14 17:11:15
*.152.7.251

1. 말씀하신 부분들은 저도 열어두고 생각하는 부분이고 본문에서 썼듯이 그런 기대가 없이는 운동 자체가 유지되지가 않겠죠. 그런데 저는 김규항의 낙관론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그 낙관론의 비일관성을 문제삼는 것이거든요. 희망버스의 지지자에 대해 그러한 낙관론을 가지고 있다면 적어도 진중권이 촛불시위에 참여한 '자유주의자'들을 진보신당에 결합시킨 것에 대해 비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김규항이나 그의 말에 동의하는 분들은 이 얘기아 어떻게 연결될지도 모를 거라는게 문제죠.


2. 사실 저 자신도 안티조선 운동하다가 진보정당 당원된 흔하지 않은 케이스이지요. 그래서 더 그런 일들이 일반적이진 않다고 말하는 것이구요. 물론 사람이 살다보면 자기 주위에 그 흔하지 않는 케이스들만 넘쳐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더라도 현실은 파악하고 있어야죠.


3. 희망버스 이벤트 자체가 운동권의 이벤트였단 것과 거기에 참여한 이들이 어떤 이들인가엔 차이가 있는 거죠. 운동권 이벤트가 성공한다는 건, 운동권이 아닌 사람들이 많이 규합한다는 것이겠구요. 그게 아니라면 어지간한 정치적 사건에도 좌익들이 시위대 1만을 동원할 수 있다는 건데 그렇지는 않지요. 전경들이 막고 있으면 "노무현 때는 안 이랬다."고 말씀하실 아저씨들이나 청년들이 많이 갔을 거라고 추정합니다. 그리고 제가 본문에서 너무 참여한 1만명에만 관심을 기울인 측면이 있지만, SNS에서 이 시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의 성향도 무시하면 안 되겠지요.

으흐흥

2011.07.14 17:30:15
*.205.71.201

덧글을 보니 제가 잘못 읽은 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덧글의 내용에는 우선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점 밝히면서, 3번에서 서술하신 부류에게 "아니 놈현때도 그랬거덩? 이 멍충아!" 라고 악을 쓰기보다는, 얘네들이 왜 차벽을 만들고 김진숙은 왜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지를 차분히 설명하는 것이 '좌익' 운동권들의 역할이 아닌가 하고 소심하게 주장하는 것이고요..

하뉴녕

2011.07.14 18:32:22
*.152.7.251

그 부분엔 당연히 저도 동의합니다. 다른 정치적 전망을 설명해야 할 문제에 대해, 그걸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내지 못하는 무능력을 '노명박'이란 수사로 덮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거든요. 뭐 어쨌든 저 개인은 말씀하신 부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물론 가끔 성질을 부릴 때가 있는지라....ㅡ.,ㅡ;;;

씨니

2011.07.14 21:43:00
*.234.209.39

여전히 고생이네

명교

2011.07.14 21:57:50
*.39.110.71

문제의식에도 동의하고, 우려하시는 바에 저도 공감합니다.

근데 약간 덜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요. 이번 2차 희망버스는 조직된 좌파 대오가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서울에서만 해도 소위 개인 참가자는 4분의1정도였고, 대부분 조직좌파들이 자기 주위에서 분위기 타서 열심히 조직해온 사람들이었죠. 영도조선소 앞에서 국참당 깃발들은 종종 보이긴 했지만 고작해야 깃발마다 네다섯명씩 모여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저는, 정치 자체가 종언을 고하는 시대에 저 정의로운 자유주의자들 역시 얼마 안되는구나, 전혀 경계할 필요도 신경쓸 필요도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되려 했어요.

거기서도 분탕질 하는 인간들이 있었고("폭력시위하지 맙시다!"라고 신경질내는 국참당 몇몇 아저씨들) 아랑곳 않고 앞에서 전경들이 쏘는 최루액 맞으면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기이한 풍경이 오히려 내부에 또 다른 전선을 보여주었고, 앞에서 싸우는 사람들 상당수는 좌파 학운 학생들이나 진보신당 청년 당원들, 노동자들, 한대련 학생들이 전부였거든요. 한마디로 말해서, 희망버스는 그냥 열심히 사람 조직하면서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들을 열심히 하면 되는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빠들이 트위터나 인터넷에선 어떤지 모르겠는데, 현실에 나가면 진짜 없어요. 10만명이 되면 또 모르죠. 그리고 실은, 주최측이나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이런 방식으로 선전하는게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는 걸 '꼼수'로써 알게되었는지도 모르죠. 맨날 이렇게 선전하니까요.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라고.

어쨌든 역시 중요한건, 저 좌파들이 대중운동을 얼마나 포괄할 수 있느냐, 지도력을 확보하고 있느냐 인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한 상태라는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쨌든, 자기가 좌파라고 자임하거나 그렇고 싶은 분들은 얼른 대인기피증 벗어버리고 평소에 열심히 살면서 사람들 많이 만나야 돼요.

하뉴녕

2011.07.14 22:41:59
*.152.7.251

후기도 많이 보지 않고 쓴 글이라 (보기가 괴롭더군요.) 확실히 현장분위기를 잘 집어내지 못했습니다만, 그 분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들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1) 요즘 어떤 시위를 가든 각 조직에서 나온 분들이 촛불을 들고 나와 '촛불문화제'를 하신다면서 '자발적 시민'이란 프레임으로 언론화되기를 원하는 세태,

2) 촛불시민으로 둔갑(?)한 그 사람들이 사실 시위에서 가장 열심히 싸우는 축이라는 것, 사실 08년 촛불시위조차도 밤이나 후기의 분위기는 조금 그랬다라는 생각도 있습니다만.

3) 그렇지만 각 조직 단위로 끌어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권유한 사람과 권유받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있지요. 저도 조직해서 내려간 사람이 더 많을 거라 어렴풋하게 생각하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 내부가 이질적이었을 거라고 추정한 이유는 그래서였습니다. 물론 그렇게 오신 분들이 일단은 권유한 사람의 문제의식을 따라오게 되는 경우도 많죠.

4) 시위의 포장(?)을 촛불문화제로 하는 것의 영향까지 포함해서, 대중운동에 대한 공로나 자부심은 참여당 성향의 사람들이 많이 가져가게 된다는 것. 참여당의 인터넷상의 '과잉대의' 현상은 진보정당 당원보다 수십 배는 숫자가 많을 민주당 지지자들까지도 진절머리 내는 형편이니 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겠습니다만.


대중운동의 영역에선 가면을 쓰고 숨어 있고, 정당운동의 영역에선 무력하게 휘둘린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됩니다. 후자의 문제에 대한 무력감이 전자에 다소나마 영향을 미쳐 글이 더 이렇게 된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게 중요하단 건 정말 맞는 거 같아요. 선배들 보면 사람들 별로 안 만나다가 나중에 후배들에게 아첨이나 하게 되더라구요.


P,S 아 근데 그런 의미로 하신 말씀이 아닌 것 같긴 한데, '현실'에 나가면 노빠들이 별로 없단 건 사실이 아닙니다....ㅠㅠㅠㅠㅠ 특히 지역에서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 입자에선 득시글하죠....이게 또 한편으로는 삶의 공간의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본인이 '좌파'라거나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로 가지고 있는 계급적 포지션이나 삶의 공간에 노/유빠들이 열 배쯤 더 포진해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죠. 군대가서 보니 노빠고 좌파고 하나도 없어서 18개월 고참인가가 자긴 유시민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너무 반가워서 커밍아웃할 뻔 했었던...(그때가 참여정부 말이었고 제가 정서적으로 가장 싫어하던 정치인이 유시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

2011.07.15 15:51:30
*.141.217.27

저기 간 사람 중에 노유빠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데요? 심지어 정동영 때문에 간 청년 조직까지 있던 걸 보면, 그런데 그 수치야 저 분 말씀대로 서너명 있던 국참당 사람보다 나은 정도가 아닐까 싶고....

기본적으로는 제가 보기엔 70%정도가 솔직히 조직이나 애초에 좌파인 사람인 듯

하뉴녕

2011.07.15 16:19:01
*.171.89.66

명교 님과 으흐흥 님에게 답하면서 말씀드렸듯이 간 사람 뿐만 아니라 희망버스란 상징을 크게 만들고 지지한 사람들까지 고려해서 해석을 해야 할 것 같구요.

애매한 부분이긴 하지만 70%가 단체에 의해 조직되었다는 것과 70%가 좌파라는 건 다른 얘기지 않겠어요? 조직적 참여가 있었다고 했을 때, 권유한 사람과 권유당한 사람의 괴리를 명교 님에게 말씀드렸던 건 그 때문이구요. 참여한 단체들의 성향이 어떤지도 따져봐야 하는 문제지요.

만약에 이런 문제들을 가뿐이 건너뛰고, 희망버스 인원의 70%가 이 글에서 말하는 정치적 좌익의 일원이었다고 본다면, 그때부터는 좌익들도 자유주의자들에게 크게 선전된 집회에만 대거 참석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얘기해 보아야겠지요. (좌익들이 매번 7천명씩 모아대는 건 아니니까요.) 명교 님에 대한 덧긍에서 말씀드린 부분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정동영 때문에 간 청년 조직까지 있던 걸 보면" 이란 말로 무엇을 의미하시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좌파와 좌파가 아닌 것을 분류하고 있었는데요. 님은 노유빠와 노유빠가 아닌 것을 분류하고 계셨던 것 같네요.

김규항

2011.07.19 10:07:04
*.158.67.70

이제 글을 읽었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기 위해 희망버스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급진성을 부풀려말한다는 이야기는 말그대로 부풀려진 이야기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윤형님이야말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기 위해 제 이야기를 부풀려 말하고 있습니다.ㅎ

인용한 제 글은 사실 매우 소박한 이야기입니다. 김진숙의 싸움과 희망버스가 적어도 촛불에 비해 급진적인 내용을 가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설사 그게 주류가 되지 못하더더라도 최대한 그 차이와 내용을 부각하는 건 좌파의 당연한 일이지요. 그걸 적었을 뿐입니다. 혹시 제가 당장이라도 혁명의 불꽃이 일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는 깡통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요?

제가 '진중권이 촛불시위 때 자유주의자들을 데려와 진보신당을 망쳤다.'는 주장을 했다는 것 역시 윤형님의 견해를 표명하기 위해 부풀려진 이야기입니다. 반복해서 적은 내용이지만 자유주의자를 데려왔든 극우를 데려왔든 무슨 상관입니까. 출신이 뭐든 진보적인 정체성을 가지면 되는 거죠. 제 진중권 비판의 요체는 진중권 씨가 자유주의 자체를 좌파적인 것이라 강변하고 자유주의와 변별성을 가지려는 진지한 노력들을 모조리 구좌파로 몰아 진보신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정체성을 잃는데 기여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내용은 제쳐두고 진중권 씨가 당원을 늘였다는 부분에만 주목할 때 촛불 당원들은 진보적 정체성에 수렴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자유주의 정체성을 진보신당에 살포하게 되는 거지요. 역시 굳이 논란할 게 없는 소박하고 당연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논란의 대상은 그런 소박한 이야기를 대중 앞에서 진보감별사니 교조주의니 선동해대는 진중권 씨의 행태겠지요.

그간 간간히 제 글에 대한 윤형님의 부풀려진 전언을 보았습니다만 언급하긴 처음이군요. 제 글에 대한 해석과 의견은 제가 관여할 필요없는 윤형 님의 일입니다. 그러나 '김규항이 이렇게 말했다'는 기술은 앞으로는 좀더 '정당하길' 그리고 '정확하길' 바랍니다.

한가지 되새겨볼 것은, 제가 희망버스를 제안하고 진행하는 비없세의 회원인데 어려운 여건 속에서 분투하는 후배들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같은 말이라도 좀더 '희망적'으로 했을 소지는 분명히 있어 보입니다. 그 혐의가 지적된다면 제 스스로 좀더 냉정하게 살펴보도록 하지요.

휴거는 없다

2011.07.19 20:03:53
*.209.65.139

늘 본인의 진의는 그게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결국 부풀려지는 선동으로 깡통좌파를 양성할 소지는 충분하지요. 다미선교회는 구원의 날짜를 못 박은 게(혹은 너무 빨리 잡은 게) 치명적 실수였지만, 언제인가敎 신도들은 약속 시간을 모르는 채 하염없이 기도만 해야한다능..

이건 뭐

2011.07.20 07:48:18
*.40.203.22

오해의 정부에 비견되는 오해의 규항이로군..

하뉴녕

2011.07.20 18:05:25
*.171.89.66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희망버스에 딴지를 건다거나, 참여정부의 지지자들이 좌파들을 비웃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는 글을 (물론 제가 그런 의도로 쓰지는 않았습니다만) '오해'없이 수용해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선생님의 발언을 제 견해를 표명하기 위해 부풀렸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제가 선생님의 견해를 크게 부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분명히 “자유주의자들이 촛불 광장에서 활약한 덕에 당원이 늘었다지만, 그렇게 입당한 사람들은 지금 진보신당을 아예 자유주의 정당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라고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을 제가 다시 찾아보지 않고 기억에 의해 고치면서 조금 다른 느낌이 됐을 수는 있겠습니다.) 다만 처음의 맥락과 나중의 해명에서 지금 설명하신대로 '자유주의자'라서 문제가 아니라 그 자유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존중하지 않아서 문제라고는 설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제가 말하려는 바는 하나의 운동이 성장할 때 만나는 자유주의자의 성향이 촛불시위에서나 희망버스에서나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데, 선생님이 진중권을 비판하고 희망버스를 상찬하는 그 대목에서 이 지점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신 게 아닌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의 진선생님과 김선생님의 논쟁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http://galleon.tistory.com/111 정리한 바가 있으니 혹시 제가 어느 정도로 상황을 '부풀렸는지' 궁금하시다면 참조하시면 될 것 같구요. 본문에서 썼듯이 선생님이 희망버스에 대해 다소 희망섞인 예측을 하는 것이 그 자체로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글쓰기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선생님의 글을 굳이 언급한 것은 선생님 개인을 공격하려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조류를 지적하려고 했는데 마침 매체에 선생님이 쓰신 글이 그 조류를 대변할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 자신도 다음부터는 블로그에서라도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발언을 소개할 때 좀 더 신중하고 정확하게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투더리

2011.07.26 10:00:39
*.94.41.89

김규항님, 글을 쓰고 나서 반드시 자신의 글을 독자 입장에서 읽어보세요.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님의 텍스트를 어떤 방향성으로 해석한다면, 다른 이의 오해를 말하기 전에 자신의 글을 뒤돌아보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투더리

2011.07.26 09:56:32
*.94.41.89

윤형님 블로그 오랜만에 와서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요즘 트위터는 잘 안하시나요?

blizen

2011.08.03 10:06:36
*.149.203.164

한대 얻어맞은 느낌인데요? 글을 읽고 나니 불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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