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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제보자가 무슨 상관

2021년 9월 8일 by 이상한 모자

뉴스버스 보도의 배경과 의도에 집중하다 보니 결국 제보자 얘기다. 어제 김웅 씨의 태도는 곧 제보자가 누군지 다 불 것 같았다. 뉴스버스 보도 내용이 제보자 주장 만으로 이뤄져 있으면 그런 의문이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니다. 나름 의혹의 물증이 제시돼있다. 그러면 제보자가 누군지 의도가 뭔지가 무슨 큰 상관인가. 뉴스버스가 그 제보자를 대동하고 함정취재를 해서 김웅을 낚았다면 또 얘기가 다르다. 그러나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면 그냥 의혹에 대해서 말하면 된다. 대체 뭔가.

제보자 색출만큼 황당하게 하는 것은 모든 걸 대선후보 윤석열 기준으로 말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지지율에 미치는 영향은? 낙마 가능성은? 윤석열 지시 드러날까? 지시 했을까? … 검사 출신 동기들끼리 사고 친 것에 불과하다며 윤석열은 연루 안됐다며 다행이라는 사람도 있다. 윤석열만 괜찮으면 만사 오케이?

손검사가 윤석열 최측근이 맞냐 아니냐를 두고 입씨름이다. 이쪽에서는 윤석열이 유임시켜달라고 할 정도로 최측근이라고 주장하는데, 윤석열 쪽은 추미애 라인의 공작이라고 한다. 당시 대검 공공수사부장을 두고도 추미애 라인이다 아니다 대립한다. 그 검사는 추장관님이 연초에 꽂은 인사 맞다. 그런데 여름에 교체됐다. 추미애가 추미애 라인을 날린 것인가? 마지막에 보면 충신 조남관 고기영도 다 도망갈 정도였다. 윤석열의 수족을 잘랐다는 항변과 윤석열 라인이다라는 평가, 그리고 추미애로부터 불이익 받았다와 추미애 라인이다 라는 것은 모두 참일수도 모두 거짓일 수도 있는 거다.

그럼에도 뉴스버스가 손검사를 ‘최측근’으로 지칭한 것은 손검사가 대검 소속, 그것도 민감한 범죄정보를 능동적으로 다루는 업무의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윤석열과 죽고 못사는 사이여서가 아니다. 윤석열 지시 없이 손검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거나, 심지어 대검에서 나름대로 분담을 해서 한 일 아니냐는 추측까지 내놓는 건 이런 이유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난 모든 부적절한 일을 대통령 책임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청와대의 어떤 직책을 맡은 인물이 뭔가를 했다면 언론은 대통령의 책임을 논할 수 있다. 뉴스버스와 제보자의 의도, 공작정치 얘기나 하는 게 과연 맞는가?

여러 사람과 얘기를 했지만, 중대한 사안임에도 범죄 성립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 윤석열 지시 여부도 안 나올 거다. 그런 것보다, 사건의 핵심은 그럼 무엇인가를 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난 그래서 조선일보의 4월 3일 보도에 관심이다. 실제로 고발을 하고 수사를 컨트롤하기 위해서라기 보단 ‘제보자X’의 정체와 관련한 여론전의 성격이 컸다고 본다. 여당과 공영방송의 공작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검찰 보수야당 보수언론이 같은 편 먹은 사건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야 검사가 보수야당에 뭔가 보낸 자료와 단독보도의 내용이 사실상 같고, 검사가 보낸 고발장이 실제 고발로 이어진 정황의 배경이 설명이 된다. 그리고 이런 양상은 처음이 아니고 시작부터 모두가 해온 일이다. 이 정권 초에 한겨레 팟캐스트에서 검경수사권조정과 검찰개혁에 대해 명분을 지키면서 하는 개혁이 중요하지 경찰은 여당편 검찰은 야당편이라는 구도로 가서는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 차원에서 정권재창출 또는 정권교체라는 것은 서로 대립하지만 사실상 같은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자리를 서로 바꿀 거냐 말 거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보자의 의도에 집착하면서 윤석열이 실제로 지시 했니 안 했니(물론 사건이라는 차원에서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에 진심으로 집착하는 사람들 보면 그래서 좀 소름 돋는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김웅, 뉴스버스, 윤석열

평론가 계급을 알려주마

2021년 9월 7일 by 이상한 모자

자… 평론가의 삶 한탄 시작한다. 평론가라고 하면 뭐 별거 아니야. 자기가 평론가라고 하면 평론가지. 내가 평론가라는데 뭐 이의있음? 그런데 평론가의 세계가 이것도 만만한 게 아닙니다. 평론가에도 끕이 있어요. 평론가 TOP TEAR 아니지 Tier… 옛날에 고성국 씨 같은 사람. 배지 달기 전 이처리 정도? 돈 많이 받고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자기 주장과 정견을 딱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손 모으고 경청하거든. 그리고 그게 그럴듯해요. 이 정도 돼야 평론가지. 물론 이제 한 분은 유튜브 한 분은 청와대로 완전히 뭐 그렇게 됐습니다만… 근데 전성기로 따지면 이처리보단 고성국이었다고 본다. 그때는 진짜 대단했는데. 물론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 천지겠지… 이거는 어차피 취존이니까 넘어갑시다. 지금은 슬픔 뿐이니 더 얘기 말고…

그담에 인제 그 다음 등급이 자기 프로그램 있는 분들. 이건 순전히 내 기준이야. 자기 프로그램이 있으면 또 거기서 생기는 여러 효과와 그런 게 있기 때문에 평론가로서도 상당히 가치가 높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런 거지. 데일리 시사프로 매일 진행해봐라. 뭐든지 맨날하면 뭐가 돼도 되는 거야. 물론 그래도 거의 정치무관심층을 못 벗어나는 사람이 있긴 합디다만…

그 다음 등급이 이제 내 생각엔 정치 대담 나가시는 분들이야. 정치권 사건 갖고 교수님 모시고 소장님 모시고 하잖아. 양쪽에 앉혀 놓고 고견 듣는 거. 가끔 전 의원님 오시고. 이거 어쨌든 자기 생각을 갖고 얘기를 하는 거기 때문에 상당히 격이 있어 보인다고 할 수 있지. 내용이 어떻든지 간에. 이 정도 해도 그래도 무게감이 있는 평론가겠지. 나는 이런거 하다가 어디 캠프 드가고 이러면 방송 하차하는 건 줄 알았어. 아니더라고. 그렇구나.

그 밑에가 이제 사건사고 주로 말씀하시는 분들. 이건 주로 TV에서 많이 하는데. 어떻게 보면 시사평론가라는 직함에 가장 맞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 거기다가 좀 험난해요. 변호사들이랑 경쟁해야 되거든. 사건사고 얘기하는데 변호사 이길 수 있겠냐? 요새는 여기에 코로나 추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거 보통 일 아니다. 원고라고 보내주면 질문 10개씩 되는데 답은 하나도 안 써있어. 그리고 두 명 앉혀놓고 누구한테 물어볼 건지 써있으면 다행인데 안 써있는 경우가 많아. 그럼 제한시간 내에 답을 다 찾아가지고 대충 정리해서 가야 된다고. 일주일에 두 번만 해도 코로나 석사된다. 그나마 코로나는 계속 이어지는 플로우가 있잖아. 사건사고는 그것도 없어요. 밑도 끝도 없이 오늘은 누가 누구 등쳐먹은 얘기, 내일은 금융사기 얘기, 그러다가 윤석열 얘기, 검찰 얘기 이런 거 한다고. 답은 없어. 질문만 있어. 다 찾아가야 돼. 근데 그래도 이건 그나마 자기 의견을 얘기할 수 있지.

그 담에가 이 세계의 가장 밑바닥, 뉴스브리핑이야. 여기서부터는 Tier아니고 TEAR다. Tears다. 이거는 오늘 뉴스 뭐 나왔다 정리를 하면 끝나는 거거든. 네 의견은 중요하지 않아. 뉴스를 얘기해. 그리고 이거 라디오에서 주로 하는데 작업 특성상 거의 하청이나 마찬가지야. 원고 이런 거를 다 첨부터 끝까지 써가야 한다고. 엊그제부터 가는 데는 자기들이 쓰는 한글 파일 양식에다가 맞춰서 달라고 하더라고. 이럴 때는 좀 비참하지. 그리고 의견을 말할 기회가 없어. 말하면 지루해 해. 비웃든지. 내가 주로 하는 게 이거… 그니까 나는 평론가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 할 수 있지. 근데 코로나는 할 때마다 아이템이 들어가니까 종합하면 거의 일주일 내내 코로나 얘기를 떠들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 차라리 코로나 평론가라고 하는 게 어떨까?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시사평론가, 평론가

온건파 일본 정치?

2021년 9월 7일 by 이상한 모자

기시다 후미오에 대해 보도하면서 ‘온건파’란 꼬리표를 붙이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볼때 굉지회는 ‘로우폴리틱스’를 지향한 요시다 시게루 노선의 계승자임에는 틀림없다. 근래로 와도 가토 고이치라든지 고가 마코토라든지 그런 사람들의 예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조류인 구 경세회의 경우를 보면 요시다 노선의 후계라는 게 반드시 온건파를 전제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가령 신자유주의와 보통국가화의 결합(정확히 말하면 신자유주의 개혁 논리를 활용한 보통국가화의 정당화)에 대해서는 오자와 이치로가 선구자이다. 하시모토 류타로는 일시적인 리버럴 집권(호소카와, 무라야마)의 반동으로 형성된 우익-백래시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한 인물 중 하나였다.

따지고 보면 구 경세회 뿐만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자와 이치로와 같은 흐름의 원류가 오히라 마사요시에 있다고 본다. 자유주의적 국제협조의 관여라는 측면에서 ‘오히라가 전환점에 서고 오히라의 브레인을 이어받은 나카소네가 전환을 완료했다’란 표현이 나오는 책도 있다. 오히라야 말로 굉지회의 역사적 포스트 중 하나 아닌가. 이쪽이나 저쪽이나 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해오면서도 실은 같은 방향으로의 움직임을 이끌어 온 것에 가깝다. 정치적으로 어떤 논란이 어떻게 불거졌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보통 이렇게 가면 역시 일본인은 반성을 안 하는 악독한 놈들이다라고 결론을 짓는데, 그렇다기 보다는 일본의 보통국가화란 결국 체제적 사건이라는 얘기가 될 것이다. 한국의 정치세력이 광야에서 뭐라 떠들었든 통치자의 자리에 앉으면 대북관계를 풀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근혜가 천안문에 올라간 이유는 뭔가? 그럴만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보통국가화 저지란 체제적 저항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얘기를 하지 못하게 된 일본의 리버럴은 그래서 악세서리에 불과하고 정권을 잡아봐야 똑같은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는 거다. 한국의 민주당이 그렇듯.

이쯤에서 역시 혁명해야 한다 라고 끝을 맺으면 좋겠지만 요즘은 그럴 마음도 아니다. 늘 떠들어 댔지만 결국 권력자가 됐을 때에 어떻게 할 것이냐는 늘 논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탈레반을 보라. 탈레반! 요즘에는 탈레반을 조금이라도 긍정하는 얘기를 한다 싶으면 밑도 끝도 없이 운동권이니 반제투쟁이니 민족주의니 하지만, 다 관심없다. 처음 집권했을 때 그들의 몸과 마음은 여전히 산과 들에 있었다. 그것은 어떤 저항이었다. 문화유산을 폭파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최근의 이들은 통치자의 권좌에 반쯤 앉은 모습이다. 물론 그들 통치의 시작점은 역사적으로 지체되었다. 김영미 씨 말대로 그들의 현재는 물론 미래 역시도 여전히 중세이다. 무자헤딘의 싸움 이후 그나마 통치자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은 북부에서 싸우고 있는 반탈레반 세력 두목의 영웅적 부친이다. 물론 그도 중세를 사는 사람의 한계는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어떤 통치의 구현이긴 했다. 탈레반은 그것을 끝장냈지만 동시에 이제 그것과 비슷한 뭔가를 하려고 한다. 그런 좋은 의도대로 될리 없고, 후퇴라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으나 여성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고통받을 것이다. 그러나 지지하고 말고를 떠나서, 그것은 어쨌든 뭔가의 종말인 동시에 통치의 시작이다. 좀 더 나은 실패를 할 수 있는가, 이 세계에서 우리가 주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결과는 오직 이것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민주당이 싫어서 윤석열, 윤석열이 싫어서 홍준표를 지지하는 정치가 횡행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세상의 원리 때문… 인데 분명히 일본 얘기로 시작했는데 왜 여기로 왔지? 이만 줄입니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굉지회, 기시다 후미오, 탈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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