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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우크라이나

13기병방위권, 호라이즌에 대한 글

2022년 6월 14일 by 이상한 모자

오랜만에 또 께임 제네레이션에 글을 썼다.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match=id:120

마침 오늘 뉴스를 보다 보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크림반도까지 되찾아버리겠다며 전의를 불태우는 거였다. 이런 때에는 레선생의 해법을 상기하게 된다. 혁명적 패배주의… 독일이 쳐들어오건 말건 상관없고 전쟁을 일방적으로 끝내겠다는 선언을 한 거다. 이건 우크라이나더러 전쟁 더 끌어봐야 서방세계만 곤란해지니 돈바스 지역을 그냥 러시아에 넘겨주고 시마이하자는 개념과는 다르다. 혁명적 패배주의는 전쟁 그 자체가 계급적 이익에 복무하지 않는다는 정치적 캠페인을 전제로 한다. 그런 전제를 놓고보면 젤렌스키의 크림반도 수복론은 그가 우크라이나의 민족적 영웅일순 있으나 어떤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인지를 드러내는 언술이기도 한 것이다.

뭐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어주시면 왜 저런 글을 썼는지 느낌이 오실 것으로 생각.

Posted in: 작품 감상, 잡감 Tagged: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크림반도, 혁명적 패배주의

냉전 이전

2022년 3월 14일 by 이상한 모자

https://www.ifans.go.kr/knda/ifans/kor/pblct/PblctView.do?pblctDtaSn=13964&menuCl=P07&clCode=P07

방송에 가서는 편의적으로 신냉전의 시대이다 라고 얘기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푸틴의 의도가 알렉스선생 말씀처럼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든, 어떤 신비주의적인 것이든, 아니면 실성이든 간에 그 결과가 냉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냉전 이전’으로 가는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는 상당한 것 같다.

트럼프 시대만 해도 각자 이익을 챙기는 시대에 국익을 최대화 하자 막 이랬는데, 바이든이 가치 외교를 다시 한다니까 편을 제대로 먹자 또 막 이런다. 이리저리 휩쓸리는대로 살면 되는 시기가 아니고 중심이 있어야 되고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어느 방송에서 그랬다. 그리고 그건 그냥 지도자가 알면 되는 철학이 아니고 국민적 합의의 대상이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설득하고 또 그것에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무슨 말만 꺼내면 오만가지를 다 내로남불이라고만 하고(내로남불만 아니면 뭐든 된다는 것인가? 늘 말하지만 내로남불 타령은 사안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냉소적 인식을 전제한다) 그래서 너는 친미 친일 친중 친러 어느 쪽이냐고 묻는 이런 저질스런 공론 환경에서 뭘 설득하고 하겠느냐만. 그래도 결국 내가 이런 얘길 잘난 듯이 여기다가 쓰는 것도 어디엔가 누군가 언론 지면에 비슷한 얘기를 썼고 내가 그걸 주워 듣듯이 봤기 때문 아니겠나.

격리돼있으려니 생각이 많아진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냉전, 러시아, 우크라이나, 푸틴

국민국가의 탄생?

2022년 3월 2일 by 이상한 모자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033103.html?_fr=mt2

한겨레라는 이름에 걸맞는 기사라고 봐야 하나? 국민국가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근대국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국민을 규정하고(중세에는 이것이 불가능했다) 그에 대한 통치 체제를 가진다는 점에서 국민-국가이다. 그러니까 소련이 무너지고 독립을 이뤘을때, 이미 개념상으로 우크라이나는 국민국가였던 거다. 우크라이나 내에 친러파 친서방파가 얼마나 있든, 분포가 어떻든 그것은 국민국가 내에서 일어나는 어떤 여론의 대결구도일 뿐이다.

국민국가가 이미 있는데 또 국민국가를 탄생시킨다는 건 무엇인가? 가령 우크라이나인들이 그들의 공동체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푸틴에 맞서 우리의 정체성은 8세기 이후에 이미 확립돼있었다고 반론하는 것과 지금 국민국가가 탄생하고 있다는 말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현대 정치에서 국민국가(nation state)의 일부가 ‘진정한 국민국가’를 호출하는 것은 배타적인 내셔널리즘 정치로 귀결되는 일이 많았다.

한겨레가 이런 기사를 쓴 것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엇비슷한 얘기를 하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그걸 공동체가 어떻게 소화할 거냐가 진정한 문제이다. 지금 거기 사람들이 얘기하는 건 우리나라 일부가 기득권=친일=보수세력을 말하며 ‘진정한 독립’을 끝없이 얘기하는 거랑 비슷한 논법이다.

우크라이나의 친유럽 정치가 내셔널리즘이라는 거냐? 지금 시점에 그렇게 말하긴 어렵다고 본다. 젤렌스키가 지금은 ‘우크라이나인’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보이지만 처음 선출될 때는 그런 맥락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진정한 국민국가론’은 그리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한겨레 기사를 많이 보지는 않겠으나, 관점을 점검해보는 것은 필요하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국민국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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