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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작품 감상

VIVANT을 보고

2025년 7월 3일 by 이상한 모자

밥 먹으면서 VIVANT이라는 넷플릭스 일본 드라마를 보았다. 보면서 느낀 것은 이런 노골적인 군사팽창주의적인, 아베신조적인 열망을 숨길 생각도 더 이상 하지 않는구나 라는… 아래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보기 싫으면 적당히 끊고 가시기 바란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별반’이라는 육상자위대 산하의 초법적 특수부대에 소속되어 있다.  이 드라마 소개와 더불어 ‘별반’의 모티프가 된 실제 ‘별반’에 대해서는 아래의 기사 참고.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81901260000926

하여간 이 ‘별반’은 일본을 지키기 위해서는 뭐든지 하는 대단한 녀석들인데, 주인공인 사카이 마사토는 국제적 테러 조직 ‘텐트’의 음모에 휘말리게 되어… 일부러 휘말린 건지 휘말리게 된 김에 개입하는 건지 아무튼 휘말리게 되어 ‘텐트’를 조사하게 된다. 이 과정에 일본 경찰의 멋진 정보분과인 외사과 소속의 아베 히로시와 사막을 건너는 등 대모험을 하게 되는데… 이런 얘기로 시작해서 뭐지 인디존스 같은 얘기인가 싶었으나 그게 아니고 뒤에 가면 사카이 마사토가 ‘텐트’ 지도자인 야쿠쇼 코지의 어릴적 헤어진 아들이라는 걸 깨닫는 등 꽤 흥미진진한 전개로 이어진다.

여기서 이제 일본 국뽕과 대일본제국 만세 같은 얘기로 흐르기 시작하는데, 이게 뭐냐면, 사실 젊은 시절 하야시 켄토였던 야쿠쇼 코지는 아베 히로시와 마찬가지로 공안 소속이었던 것이다. 그는 공안 소속으로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가상 국가인 발카에 비밀 임무를 수행하러 갔다가 내전에 휘말리는데, 이래 저래 하다보니 발카인들과 용병집단을 형성해 군사 활동을 대신 해주고 돈을 벌어 고아들을 먹여 살리는 입장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일에 평생 몰두해 거대 테러조직을 만들게 되었고, 그 테러 조직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내전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수많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고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등의 활동을 뒤에서 펼치고 있으며 전과가 없는 ‘깨끗한’ 후계자도 키워 가상국가 발카를 번영의 길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더라 라는 것인데…

이게 뭐냐면, 결국 아베 시절의 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밖에 없다. 아버지인 야쿠쇼 코지가 발카인들을 돕다가 무장세력화 된다는 것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스토리다. 그런데 거기서 비극으로 가지 않고 발카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실제 성과를 낸다는 것은 무슨 얘긴가? 일본인이 다른 나라에 군사적으로 개입해서 평화도 가져오고 개발도 하고 부도 쌓게 만들고 다 해준다 이거다. 대동아공영권? 더 의미심장한 것은, 이렇게 하는 와중 아무래도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데, 이건 별반 소속인 아들 사카이 마사토가 해결해주게 된다는 것이다. 별반 사카이 마사토의 활약 덕분에 가상국가 발카에는 실질적 번영이 찾아온다. 근데 별반은 뭐다? 초법적 특수부대이다 이거다. 여기서 아베 시대의 특정비밀보호법, 안보법제 이런 걸 연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다.

결국 야쿠쇼 코지는 마지막엔 일본으로 돌아와 개인적 복수를 하려다가 사카이 마사토에게 죽는데, 그 순간에도 ‘역시 일본을 지키려고 아버지까지 죽이는 너는 역시 내 아들! 자랑스럽다!’라고 한다. 사카이 마사토는 눈물을 흘리고… 근데 야쿠쇼 코지가 하려던 개인적 복수가 뭐냐면, 자신과 가족이 발카에 파견됐을 때 희생되도록 내버려 둔 부패 정치인을 죽이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 애국자… 였던 피해자 대 부패 정치인’, 이 구도는 극우정치를 보며 이미 익숙해졌다. 그러니까 구세대가 손에 피 묻히고 전쟁 일으키고 이런 게 다 외국에 번영을 안겨주고 이후 세대를 잘 살게 해주려고 한 거다, 책임은 뭐 지라면 어느 정도 지겠지만 잊지 말아야 한단다 알겠니? 뭐 그런 정서겠지.

그 외에도… 발카인들이 계속 일본 칭송을 하는 등 이렇게까지 노골적일 수가 있나 싶은 장면이 계속 나온다. 뒤로 갈수록… 극우 드라마 어쩌구 라고 해도 이건 정말 부인할 수 없겠군 싶은 생각이 강해진다. 아니 근데 요즘 극우라는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는 얘길 많이 보았는데, 2030 남성 얘길 하면서 말이다. 함부로 극우라고 하지 마시오! 이 얘기 엄청 봤거든? 근데 다들 일본 정치에서는 뭐 스스럼없이 무조건 다 극우라고 하더라고. 아무튼 군대도 없고 무언가가 거세?된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일본 버전의 극우적 세계관을 느끼고 싶다면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Posted in: 작품 감상, 잡감 Tagged: VIVANT, 비반, 사카이 마사토, 아베 히로시, 야쿠쇼 코지

던전밥과 물신

2024년 8월 12일 by 이상한 모자

밥 먹으면서, 더 이상 볼 게 없어 넷플릭스로 아무거나 눌러 던전밥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한 4회인가 까지 봤는데 흥미롭다. 동생이 레드 드래곤에게 잡아먹혀 소화되기 전에 구출해야 한다는 이유로 다시 미궁에 도전한 한 사나이의 이야기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동생을 구한다는 목적은 어디로 가고 없다. 마물을 보면서 ‘저거 먹을 수 있나?’이 생각만 계속 한다.

이제 중반 넘어 가면 좀 심오해진다고는 하는데, 일단 모티프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마물은 마물의 역할이 있고 한 것인데, 보면서 무조건 먹을 수 있나? 이것은 일단 돈이 되나? 이렇게 보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유식한 말로 하면 마선생이 말한 물신이다. 주인공이 마물을 보는 관점은 이렇게 보면 전형적인 물신이고 그에게 장단을 맞춰주는 드워프는 초기 산업자본주의의 모험가적 자본가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거지.

그러고 보면… 검찰총장이 대통령인 나라에서 법을 지키라는 취지로 법 조문을 보여주니, 어 이거 이렇게 피해가면 내가 인사를 이렇게 꼼수로 막 해도 되지 않나? 안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뭐 이런 거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나 같은 놈이 뭐만 보면, 어 이거 갖고 이렇게 얘기하면 좌파 티 낼 수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블로그에다가 얼른 쓰는 것도…

Posted in: 작품 감상, 잡감 Tagged: 던전밥

페르소나 시리즈에 대해 쓴 글

2024년 8월 8일 by 이상한 모자

그러고보니, 페르소나 시리즈에 대해 글을 썼었다. 아래의 내용이다.

<페르소나 3>는 서사 구조만 놓고 보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아류로 볼만하다. (…)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방영된 시기는 1995년 말에서 1996년 초까지다. <페르소나 3>는 2006년에 출시되었다. 이 10년의 간극에도 불구 <페르소나 3>는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걸 스토리를 중심에 놓고 평가한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같은 작품의 성공은 버블붕괴로 인한 사회적 혼란 및 이와 맞물린 비관주의의 확산과 떼어 놓고 평할 수 없다. (…) <페르소나 3>가 나온 2006년의 상황은 1990년대의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되는 국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일상의 평화에 젖어 오히려 종말을 바라는 인류, 이대로 세상의 종말을 평화롭게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감수하더라도 종말을 막기 위해 싸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건 시선에 비유한다면 ‘돌아보는 시선’이다. 분명 어떤 점에서는 나름의 진정성이 있는 것이지만, 지금 당장 눈 앞에 닥친 자신의 문제라는 절박함은 상대적으로 희박한 것이다.

(…)

<페르소나 3>에 투영된 것이 지나간 것에 대한 ‘돌아보는 시선’이라면, <페르소나 4>는 ‘자신의 발 밑을 내려다보는 시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시선이 보는 세계는 지극히 개인화 되어 있다. (…) <페르소나 4>는 2008년 7월에 출시됐는데 시기적으로 3편의 출시일과(2006년 7월)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즉, <페르소나 4>는 3편과 동시대성을 공유하며 동전의 앞뒷면을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현재 시점에 비관주의가 득세했던 과거를 모사하며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게 <페르소나 3>, 과거를 뒤로 하고 눈 앞의 이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게 <페르소나 4>다.

(…)

그런데, <페르소나 3>으로부터 꼭 10년이 지나 나온 <페르소나 5>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크게 바뀌게 된다. <페르소나 5>는 3편이나 4편처럼 현재에 안주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애쓴 티가 역력하다.

(…)

오늘날의 상황은 또다시 변화되었다. 아베 신조의 장기 집권은 더 이상 없다. 현재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아베 신조와 같은 강압적이고 일극지향적인 이미지를 갖지는 않는다. 지지율은 저조하지만 원내에서의 정치적 기반은 탄탄한 편이다. 일본 사회의 우향우는 지속되고 있지만 안보법제 폐지 투쟁 때와 같은 격렬한 반대 운동은 없다. 밖의 상황은 심상찮지만 적어도 일본 내의 분위기를 보면 당분간은 이러한 어딘가 불안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 같다.

바로 그러한 때에, 과거 그러한 시기를 ‘돌아보는 시선’으로 기억한 <페르소나 3>가 <페르소나 3 리로드>로 되돌아왔다. <페르소나 3 리로드>는 <페르소나 3>를 거의 그대로 현대에 되풀이 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페르소나 5>의 혁명은 실패했고, 우리는 그 이전으로 뒷걸음질쳐 온 것인가? 아니면. 또다른 현 시대에 맞는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과거의 유산을 활용하려는 것인가?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d702545e-f49a-461c-b0bd-c928d786746b

무슨 얘기를 한 건지 자세히 알고 싶으면 링크를 클릭하시고…

Posted in: 작품 감상, 잡감 Tagged: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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