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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정치 사회 현안

도시와 선거제도

2020년 11월 13일 by 이상한 모자

아까 미국 교수님의 결론은 그래서 농촌의 보수표심이 과대대표되는 미국 간접선거제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결론인데,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을 것 같다. 과거에는 도시가 가난과 범죄의 상징이었던 때도 있었다.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미국 중산층의 이상적 삶은 교외의 독립된 저택에 살면서 이동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자기가 소유한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런 구도로 보면 진보와 보수라는 구도의 허구성이 드러나는데, 가령 도시는 도시화로 불거진 불평등과 빈곤의 해결방법을 모색해야 했다는 점에서 혁신주의의 모티프가 되었지만 동시에 금융자본이라는 절대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즉, 동북부 공화당 자본가들은 남부 민주당 지주들로부터 노예를 빼앗아 노동자로 만들었고 기득권을 빼앗긴 남부 민주당 지주들은 역시 금융자본이 문제라며 노예해방을 강요하는 군정의 종식을 요구하고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던 것이다.

아무튼 마침 양당제이니 직접선거를 하면 논란을 해소할 수 있을 거 같다. 근데 이게 되려면 미국이란 나라의 구성 원리를 바꿔야 된다. 13개 식민지가 논란 속에 하나의 중앙정부를 구성한 것이 미국의 출발… 언제적 얘기냐 할 수 있겠으나 예를 들어 하원은 인구비례로 의원 숫자를 각 주에 배정하지만 상원은 주별 2명으로 동일하게 돼있다. 노쓰다코타든 캘리포니아든 상원의원은 2명씩만 가진다. 이것 뿐만이 아니고 하여간 시스템이 이런 식이다. 윈도우컴에다가 맥OS를 어떻게 깝니까. 해킨토시라는 것도 있지만…

간접선거가 필연이라고 하면, 특정 성향의 사람이 특정 지역에 몰려있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과대/과소 대표의 문제는 피할 수 없어진다. 우리가 총선 치를 때를 생각해보면 사실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선거구 편차가 심해서 특정 성향의 지역이 과대대표된다고 하는…

하여간 편차는 줄일 수 있으면 줄여야 한다. 그런데 앞서 도시에 대한 인식의 차를 두고 말했듯 이 편차라는 것도 시기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 도시나 농촌이나 민주/공화 득표 비율이 똑같이 나온다고 하면 논란은 없을 것이다. 즉 제도에 선행하는 것은 도시와 농촌으로 여론을 양극화시키는 정치이다. 그러니까 이건 결국 완벽한 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문제이다. 제도를 바꾸더라도 상황이 달라지면 또 이런 저런 수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여기서 할 말이 없어지면 이렇게 말하세요.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도널드 트럼프, 민주주의, 선거제도

도시와 농촌

2020년 11월 13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은 미국 교수님 블로그를 보다가 또 그 전형적인 문제의 얘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도 여촌야도 뭐 이래가지고 옛날에 도시가 더 진보적이다 이런 개념이 있었다. 우리 뿐만이 아니고 세계가 다 마찬가지다. 경향적으로 대도시가 더 진보적 성향을 보인다.

이건 당연히 경제-학력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것은 사실 이게 단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는 아니란 거다. 전통적 진보 담론은 변화+대의라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거나, 도덕과 윤리를 따라야 한다거나, 심지어는 선진국은 이러저러한 기준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거나… (선거제도 타령도 담론의 성격으로만 보면 여기에 해당한다) ‘~해야 한다’는 것에 익숙한 고학력층이 수용하기 쉬운 논리 구성이다. 그래서 도시적 진보는 대의를 따르기 위해 변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끌린다.

반면 농촌의 저학력 저소득층에게는 이런 논리가 매력적이지 않다. 경제에 있어선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절실하고 당위를 추구하는 것에 있어선 전통적 가치 수호 이상의 맥락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1차산업 위주의 경제권이라면 더욱 전통적 가치가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전통을 지키거나 되살리고 이상보다는 현실을 택해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자는 담론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근데 트럼프의 담론은 복고적 변화+현실적 이득이라는 형태로 구성돼있다. MAKE AMERICA GREAT AGAIN! 그런 점에서 대도시의 중산층이 BLM 등의 정치적 올바름과 기후변화 이슈에, 농촌이나 쇠락한 지역의 저소득층이 트럼프식 속물주의에 상대적으로 더 끌리는 것은 뭐 당연하다.

이 정권들어 유행인 공정 담론은 ‘현상유지를 위한 변화’, ‘현실적 이득을 추구하기 위한 대의’라는 식의 포장에 성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맞서는 진보의 담론은 대의를 추구하기 위한 변화를 더 철저하게, 더 근본적으로, 더 완결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가령 대의의 추구가 또다른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하지만 현실은 진보의 담론조차도 ‘변화에 동참해야 나의 이익이 보장된다’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과거에는 그것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나의 이익이 훼손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변화해야 한다’는 걸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그건 날이 갈수록 어렵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단지 ‘착한 소비’에 동참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기존의 삶을 버려야 한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불가능에 도전하세요~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기후변화, 도널드 트럼프, 여촌야도, 진보정치

책을 써야

2020년 11월 9일 by 이상한 모자

얼마 전에 출판사 사장님을 만나 일본 라면과 커피를 대접 받았다. 책을 내자는 얘기를 한 게 어언 2년, 사장님은 최후통첩을 했다. 더 이상은 어렵다…

사실 나도 쉬운 상황은 아니다. 책은 사실 좀 쓰다가 몇 번 엎었다. 집중할 시간을 벌기 위해 다른 글을 좀 쉬기도 했었는데, 번번이 좀 쓰다가 처음부터 다시 쓰자는 생각이 들어 어쩔 수 없었다. 최근에는 다행스럽게도 일이 많다. 일이라는 건 많을 때 많은 거고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니까, 계약금이라는 돈의 문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계약금을 돌려주고 기약없는 출판의 희망고문은 끝내는 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왠지 이걸 마무리 해야만 한다는 그런 생각이 있다. 어쨌든 해야 할 말이 있지 않는가. 두 괴물 중 반드시 하나를 편들고 하나를 적대해야만 한다는 이 환상을 깨야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지 않느냐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려는 본격적인 시도를 뭔가 해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라는 이상한 소명의식에 사로잡혀…

마침 적당한 때인지도 모른다. 워싱턴 주류정치가 싫어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미국은, 다시 트럼프라는 아웃사이더가 싫어서 워싱턴 주류의 상징 조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다. 이건 과거에 쓴 조커라는 영화의 감상문을 한 번 찾아보시라. 귀찮지요? 링크입니다.

[월요칼럼] ‘조커’가 드러낸 엘리트 권력의 민낯

어찌됐건 책을 쓰는 일에는 다시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될지 안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살이 같은 생활 속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오해의 근거로만 착실히 쌓여가는 현실 속에 뭔가 숨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숨쉴 공간! 그렇다! 나는 내가 뭘 쓰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어쨌든 가보겠다는 것이다. 주류가 싫어서 비주류를 지지해놓고는 다시 비주류의 구호에 속았다며 주류를 지지하다가 다시 예정된 실망을 하는 이런 한심한 태도가 왜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그게 현대민주주의 정치의 본질이라는… 이런 팔릴리도 없고 내가 쓸 필요도 없고 비웃음이나 살 주제의 책을 쓰는 게 무슨 의미인가 고민하다가도… 살기 위해서는 책을 써야만 한다. 냉소사회는 읽어봤니?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민주주의, 엘리트주의, 책,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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