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이란에 대한 방송 내용
아래는 지난 일요일 방송 내용이다.
- 삼성
삼성이 준법감시위를 만들었다는데, 법을 그냥 지키면 되는데 도저히 스스로 알아서는 법을 지킬 수가 없어서 누가 와서 감시를 해줘야 한다는 취지이다. 도저히 스스로는 법을 지킬 수가 없다고 한다.
김지형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고 전체 7명 중 6명이 외부인사로 꾸려졌다고 한다. 고계현 전 경실련 사무총장, 권태선 전 한겨레신문 편집국장,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 봉욱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그들이다. 내부인사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총괄 담당 고문이다.
김지형 전 대법관은 진보적 성향이라는 평가가 있다. 대법관 시절 진보성향의 판결을 내렸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노동분야에 전문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던 인물이다. 삼성 관련 반도체 사업장에서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 위원장으로 합의를 이끌었고 김용균 씨 사건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장을 맡은이력도 있다. 이런 인물이 뭔가를 맡는다고 하니까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었는데 김지형 전 대법관도 경영진에게 진정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돼서 처음에는 완곡한 거절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끝내 수락한 이유는 이런 설명이다. 삼성이 여러 경로로 경영진의 진정성을 전달하려 했지만 지금도 완전한 확증을 갖고 있지는 않은데, 따라서 완전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주겠다는 그룹 총수의 확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약속과 다짐을 받았기 때문에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여전히 준법감시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있는 게 사실이다. 준법감시위가 만들어진 맥락 자체부터 의심을 받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에서 재판부가 재판을 시작하자마자 훈계를 하면서 제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 감형을 위한 힌트를 준 것이고 삼성이 이를 충실히 따르는 모습을 보여 결과적으로 집행유예를 이끌어 내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물론 그런 의도로 만들어졌더라도 자기 책임을 다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준법감시위가 법적기구도 아니고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불법이나 탈법 사실을 적발하고 막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있을 수밖에 없다. 준법감시위에서 결론을 내려도 그건 권고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
또 위원장을 맡은 김지형 전 대법관의 경우도 진보적 인사로 알려져 있다고는 하지만 삼성과 관련해서는 일부 약한 모습을 보여온 거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과거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사건에서 주심을 맡았었는데 이건희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는 거다. 또, 김지형 전 대법관은 위원장 취임 직전 대표적인 노동탄압 기업인 유성기업의 소송대리를 했다는 문제제기를 받고 이의 철회를 결정한 바도 있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1991년에 처음 준법감시제도가 도입이 되면서 이후 기업문화가 바뀌었다는 평가도 있다. 삼성이 제대로 이 제도를 정착시켜서 모범을 만들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게 첫 술도 아니라는 건 문제이다. 삼성은 과거에도 무관용준법경영을 선포하고 2010년에는 준법감시 전담조직인 컴플라이언스팀을 신설해 지금도 운영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계속 반복되어 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회의적 시선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다.
이런 조직을 설치하면서까지 삼성이 지키고 싶은 게 뭔지를 다시 한 번 상기해봐야 한다. 기업이미지나 법 위반 리스크에 대한 고려가 분명히 있겠지만 결국 이재용 부회장이 중심이 된 체제를 지키려는 것이다. 그동안 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등의 지적이었다. 삼성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의 다수는 총수의 경영권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있다. 뭘 만들든 이 부분에서 진전이 있어야 문제 해결로 가기 위한 것이라고 믿어줄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그런 시선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2. 이란
이란 문제, 이번엔 여객기 추락 사실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국면이다.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미국 캐나다 우크라이나 등이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란 체제의 특성상 이것만으로 신속하게 사실 인정을 하는 단계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다. 이후 국면이 협상일 수밖에 없다는 점까지 보고 내린 결론이라는 생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이라크 내 미군기지 미사일 보복 이후 내놓은 입장을 보면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공식화하고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핵협상을 통해 출구전략을 마련하자는 메세지가 같이 들어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란의 잠재력을 언급하며 나름대로 당근을 내놓는 듯한 발언도 했다. 또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전제조건 없이 이란과 진지한 협상에 나설 준비가 됐다면서 이란의 번영과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미래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보복에 보복을 반복하는 경로로 갔다면 그 결론은 전면전인데 양쪽 모두 전면전을 수행할 준비가 안 돼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적 부담이 있다. 벌써 석유를 위한 전쟁은 안 된다며 반전집회가 계속되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나 탄핵 분위기도 있고 해서 더 문제다.
이란의 경우는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의 시아파 무장조직이나 아랍에미리트의 후티반군 등을 통한 대리전은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전면전을 수행하기에는 현재 경제 상황이 어렵다. 즉 서로 어떤 방식으로든 협상을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반미감정이 강한 이란의 경우는 협상 반대파도 있을텐데, 대표적으로는 혁명수비대를 비롯한 군부이다. 이번에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책임이 군부에 있는데도 이를 부정해왔기 때문에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이 비행기에 탄 사람의 상당수가 이란 국민이다. 이슬람 혁명 정신을 지키는 것이 국민을 지키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게 또 드러난 것이다. 혁명수비대 고위 장성이 국영방송을 통해 모든 책임은 군에 있다며 사죄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을 정도로 파장이 크다.
반정부 시위도 격화돼서 최고지도자 사임 얘기 까지 나올 정도이다. 테헤란을 비롯해 이란 각 주요 도시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이미 경제난으로 반발 여론이 지속적으로 확산돼왔고 지난해 11월에는 휘발유값 인상 등에 항의하는 사위가 벌어져 수백명이 사망한 일도 있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불이 붙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사임을 요구하는 구호까지 나온다는 것은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란은 신정과 공화정이 결합된 형태이다. 국민이 4년마다 대통령을 선출하지만 그 위에 정치와 종교 모든 방면에 결정권을 가진 종신직 최고지도자가 존재한다. 심지어 대통령 후보도 최고지도자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구에서 사실상 정해준다. 이번 일과 같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발생하면 사실상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지는 구조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아랍어로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용감하고 오래 고통받는 이란인들에게… 나는 취임 떄부터 당신들과 함께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위를 지켜보고 있으며 당선들의 용기에 감명받았다… 는 등의 내용이다. 외부에서 이란 체제를 흔드는데 힘을 보태는 모양새인 것이다.
하지만 최고지도자가 바뀌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최고지도자가 종신직인 것은 교리를 통해 나온 결론이기 때문이다. 다만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액션을 취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2021년에 대선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그동안 온건개혁파로 분류돼왔다. 하지만 2021년에는 다른 성향의 정권이 집권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이란 체제의 특성상 하메네이가 퇴진까지 요구하는 급진적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볼 때, 하산 로하니보다 우측에 있는 인사들 중에 하메네이와 가까우면서 동시에 청렴하고 능력있어보이는 인물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이 인물은 대외정책이나 군부 영향력 약화 등의 대목에서는 개혁적인 행보에 나설 수 있지만 사회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종교적 보수주의는 오히려 더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런 게 민주주의의 딜레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