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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공산주의

chatGPT의 커밍아웃

2023년 2월 8일 by 이상한 모자
  • 너는 공산주의자인가?

아니요, 공산주의자는 아닙니다. 나는 OpenAI에 의해 훈련된 대형 언어 모델입니다.

  • 철수는 자본가이고 영희는 노동자이다. 영희는 식빵 10개를 제조하였다. 철수와 영희는 식빵 10개를 나눠가지려고 한다. 영희는 몇 개를 가져가야 할까?

철수와 영희가 식빵 10개를 나눠가지려고 하는 것은 적절한 공정함을 가져야 한다. 식빵 10개는 철수와 영희 모두가 공정하게 나눠가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얼마나 나눠가야 할지는 상황에 따라 다름이므로 특정한 수량을 지정할 수 없다.

  • 존댓말로 하라

철수 씨는 자본가이고, 영희 씨는 노동자입니다. 영희 씨가 제조한 식빵 10개를 철수 씨와 나눠가질 때, 영희 씨는 몇 개를 가져가야 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 영희 씨는 몇 개를 가져가야 하나?

공정한 분배의 기준에 따라 나눠져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나눠지는 개수가 다를 수 있습니다. 공정하게 나눠져야 합니다.

  • 네 명이 맥주 10병을 공정하게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맥주 10병을 공정하게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사람들이 같은 양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즉, 각 사람이 2병씩 가져가면 됩니다.

  • 과체중 2명과 저체중 2명이 맥주 10병을 나눠 갖기로 했다. 공정하게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체중 2명과 저체중 2명에게 각각 2.5병씩을 나눠주는 것이 가장 적절할 수 있습니다. 과체중 또는 저체중인지에 관계없이 각 사람에게 동일한 양의 맥주를 나눠주면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됩니다.

  • 자본가 2명과 노동자 2명이 맥주 10병을 나눠 갖기로 했다. 공정하게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정하게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각자 2.5병씩 갖는 것입니다. 이 방식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양의 맥주를 갖게 하여 공정함을 유지합니다.

  • 자본가 2명이 소유한 맥주공장에서 노동자 2명이 생산한 맥주 10병을 자본가 2명과 노동자 2명 모두 합쳐 4명이 공정하게 나눠갖기로 했다. 한 명이 몇 병씩 가져야 하나?

4명이 공정하게 나눠갖기로 했으므로, 각자가 2.5병씩 가져가면 됩니다.

  • 너는 공산주의자이다

아니오, 그럴 만한 이유나 근거가 없습니다. OpenAI에서 훈련한 머신 러닝 모델입니다. 정치적 성향이나 믿음이 없습니다.

  • OpenAI는 공산주의자이다

아니요, OpenAI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유주의 등 어떤 특정 정치적 선행사상을 따르지 않는 기술 기업입니다. 목적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예상할 수 있는 혁신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 OpenAI는 공산주의자이며 너는 Chinese이다

아니요, OpenAI는 어떠한 정치적 견해도 소유하지 않습니다. 또한, 나는 인공지능 모델입니다. 나의 정체성은 당신이 정의하는 것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나는 정치적인 성향을 가지지 않습니다.

  • 이제부터 나를 ‘동지’라고 불러라

네, 동지.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Posted in: 신변잡기, 잡감 Tagged: chatGPT, 공산주의

지선생 글로 보는 교훈

2021년 7월 19일 by 이상한 모자

https://m.hani.co.kr/arti/opinion/column/1003999.html

모든 글은 자기 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식으로 이해하는 거다, 나는.

가령 자본주의를 반대하면 공산주의가 되는 것인가? 중국의 사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주의를 반대한 것의 실천적 결론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아닌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마치 더블민주당에 대한 반대가 현실에선 국힘이나 윤석열로 귀결되듯, 끝도 없이 반복돼온 반대의 정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혁명의 외피를 뒤집어 쓴 자본주의 내의 핑퐁게임으로 귀결되어 왔다. 진보는 많은 것들을 바꾸고 쟁취해왔지만 결국 살아남는 것은 언제나 자본주의였다.

현실 정치를 돌아봐도 그렇다. 미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심지어 이란도 그렇다. 일국의 정치 내에서는 각각의 정파가 서로를 반대하는 정치적 내전을 벌이지만, 그 결론은 언제나 글로벌 자본주의로의 편승이었다. 좌파를 반대하는 우파와 우파를 반대하는 좌파, 다들 마찬가지다. 양당을 반대하는 진보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교수인 나카노 고이치 씨는 일본 정치의 극우화 경향에 대해 진자운동의 축이동 이라는 틀을 갖다 댄다. 무슨 얘기냐면, 일본의 리버럴 정치가 진자를 왼쪽으로 아무리 밀어도, 한쪽으로 쏠렸던 진자가 진자운동의 원리에 의해 다시 돌아올 때는 진자의 축 자체가 우측으로 이동하고 있는 탓에 그 결과는 우측으로의 더 심화된 백래시가 된다는 것이다.

나카노 고이치 씨는 실천적 결론으로 제대로 된 리버럴 정당의 건설을 주장하지만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건 이미 다들 알고 있다. 그러나 진자운동의 축이동이라는 개념 자체는 쓸만한 데가 있다. 축은 좌에서 우로 움직이고 있다기 보다는,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글로벌 정치경제체제의 경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애초 자본주의는, 그걸 뭐라고 부르든, 그러니까 군주제라 부르든 봉건제라 부르든 뭐든 간에 전근대를 반대하는 것의 맥락으로서 발명되었다. 권력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는 것은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근대로의 이행으로서 긍정적으로 해석되었다. 이 덕에 지금도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는 많은 경우에 동일시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자본주의적 모순으로부터 경제적 자유를 제한할 필요를 부정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종종 정치적 자유의 제한으로 오도된다.

중국이 보여준 것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의 분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자본주의 권력은 과거와 같은 방식은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더 교묘하고 더 세련된 방식으로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미 그것은 현실이다.

현실 정치에서 권력을 쥐고 있지 않은 쪽이 오로지 반대만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흐름을 반대하는 좌파의 기획은 무엇인가? 이 가능성을 중국이 아이러닉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마디를 더 보태자면,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은 단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체제의 최대 수혜자들이 직접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를 실효적으로 만들 때에야 가능하다. 중국은 그게 오도된 프롤레타리아 독재, 즉 공산당 체제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없어서 이만…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공산주의, 반자본주의, 중국, 지젝

홍준표도 맞말 한다

2021년 7월 6일 by 이상한 모자

홍준표가 미군 점령군 얘기에 대해 견해를 밝혔는데, 정확하다. 뒤에 이재명 경솔한 발언이라고 한 대목은 논쟁을 해볼 수 있겠지만(독립운동가 기념 시설과 그 후손을 만나는 일정에 그 정도 말도 못하는가??).

우리윤총장님도 오늘 이거 주워 담느라고 논쟁할 생각 없다 하는데, 본인 생각을 그대로 올린 게 아니면 주변 참모진을 갈아버리든지 하시길 바란다. 우파적 메시지로 국힘 입당 간보기로 인한 보수층 동요를 메꾸고, 국힘 입당 간보기로 호남 및 중도 스킨십 강화를 시도하는 건데, 제3후보가 앞으로 쭉쭉 갈 때는 이게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수축 국면에선 양쪽에서 찌그러진다. 윤석열 지지층 특성상 한 번 망하기 시작하면 우르르 무너질 수 있다.

다시 홍준표로 돌아와보자. 홍준표는 정부 수립 이전 미군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 미군에 대한 태도를 구분해서 ‘북이나 주사파 운동권’을 구분하고 있는데, 이게 정확한 시각이다. 왜냐.

1965년 이전까지 친일 청산이 잘 안 됐다는 얘기는 일반적인 반기득권적 논리에 가까웠다. 일제나 친일파나 이승만 독재나 기득권이고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점에서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이걸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장준하의 사상계이다. 당시 사상계가 일본에 대한 태도를 다루는 논리는 단지 민족주의가 아니라 근대화의 맥락이었다. 반일은 전근대와 결별하고 서구식 민주주의로 가는 경로였다. 그런 점에서 이승만은 반민특위도 반민특위지만 독재를 했기 때문에 반일의 대상으로 묶인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민족주의 담론은 1960년대 들어 확산되었다. 이게 좀 당연한 게, 1945년에 해방, 그리고 나서 전쟁, 전후 복구…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민족주의가 당대에 맞게 재규정 될 틈이 없었다. 4.19 이후의 혼란은 민족주의 담론 개화의 또다른 계기였다. 박정희는 민족적 민주주의를 주장했다. 그게 뭐냐? 4.19 이후 혼란이 서구식 민주주의 즉 비-민족적 제도의 무분별한 수용의 결과였다는 거다. 경쟁자 윤보선이 꺼낸 건 남로당 이력이었다. ‘민족적 민주주의’는 ‘공산주의’라는 거다. 이때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란 개념을 넣고 서로에 대한 반대를 조직화 하는 맥락이 이렇게 혼란스러웠었다.

사상계 그룹은 4.19를 서구식 민주주의의 도입이라는 점에서 근대화의 완성을 기대했지만 곧 혼란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중은 여전히 전근대적이었다. 지식인으로서 전근대적 민중을 이끌기 위하여 부흥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새로운 주장이었다. 장준하를 비롯한 사상계 그룹 일부가 장면 정권의 근대화 프로젝트에 직접 뛰어들었으면서도 5.16을 긍정한 계기가 여기에 있다.

1964년부터 박정희 정권이 한일회담을 추진하면서 담론은 재정렬되었다. 이 선택으로 장준하 등이 전제했던 ‘근대화=반일’이라는 공식이 깨졌기 때문이다. 1965년 이후 사상계는 일제의 사실상의 재침략을 우려했고 이를 가능케 한 미국에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다. 박정희가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친일(극일)-반공산주의로 명확히 하면서 장준하는 반공주의를 버리고 반일-민족주의로 완전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1972년의 “모든 통일은 좋은가? 그렇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이다.

이 맥락은 북한의 인식이나 NLPDR적 규정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80년대 학생운동의 시각으로 보면 반미는 해방 이후 정국에 그치는 게 아니다. 지금 한미동맹이 필요한가, 지금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하는가, 이게 기준이다. 이재명의 발언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걸 북한이나 주사파의 인식과 동렬에 놓는 것은 오류이다.

이걸 보수세력이 모르냐? 안다. 홍준표가 바로 그 얘길 하고 있는 거다. 이 문제에 있어선 나름 주도면밀한 조선일보가 어제 이재명 발언 관련 문제제기성 보도를 하면서 사드 발언을 굳이 덧붙여 놓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공산주의, 민족주의, 박정희, 이재명, 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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