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인들의 한가운데서
토요일에는 나루님이 밥을 산다고 하여 홍대로 향했다. 나루님의 누추한 집 외관을 잠시 구경하고, 나루님이 마음 속으로 점찍어 놓은 산해진미를 파는 식당에 방문하려 했으나… 쉬는 날이더라. 근처에 있는 야키토리집에 가서 요기를 하며 40대 아저씨들이 다들 그렇듯 세상 걱정을 했다.
나루님이 자기들 앨범에 꽤 자신감을 피력하기에, 넓은 무대가 상상이 되는 곡들이라고 덕담을 해줬다. 무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뛰어가는 장면이 저절로 떠오르더라… 하는… 빈말이 아니고 이건 진짜 그랬다. 셈을 해보니 나루님은 진지하게 곡을 쓰기 시작한지가 20년이라고 했다. 난 언제부터로 따져야 하나. 게시판에 글 쓰는 걸로 따지면 2002년(이건 뭐 별거 아닌게, 저와 비슷한 나이인데 안티조선부터 하신 분들은 1999~2000년일 거다)이고, 직업적 운동권 한 걸로 따지면 2006년이 시작이고… 라디오 방송은 2013년이고… 모르것다.
뭐 그런 얘기를 하다 구운 명란을 먹고 나서 슬슬 좀이 쑤셨는지 나루님이 같이 어디를 가자는 거였다. 자기 친구가 음악을 틀고 있다니 같이 가보자 한 것인데, 가면서 물어보니 호도리님이 함께하는 디제잉 파티다. 호도리님은 한 10년 만이다. 그때도 홍대 어디였던거 같은데, 난 취해있었다. 취해서 좀 무례했을지 모른다. 정신을 차려보니 정색을 하는 분위기였던 거 같다. 사과를 했나 그랬던 거 같은데… 하여간 루프탑이 어쩌고 하는 장소인 모양인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어떤 분이 “이상한 모자님 아니세요?”했다. 엘리베이터 안은 매우 좁았다. 저 그냥 따라온 거예요 라고 했다.
파티가 열리고 있는 클럽 안은 매우 어두웠다. 콜라를 한 잔 마시며 상황을 살피다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옥상으로 올라왔다. 나루님은 자기 친구들과 활발히 대화를 나누었다. 보는 사람마다 “어제도 봤다”라고 하더라. 파티를 맨날 하는 거니? 도대체 맨날 무엇을 하는 거니? 그러는 동안 나는 그냥 서있었다. 다양한 생각을 했다.
사실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다른 루트로 갔는데 가고 보니 나루님이 뭘 하는 날이었나 그랬던 거 같은데, 그때는 나루님의 대학 동기인 나의 대학 후배를 우연히 만났다. 흥이 나서 막춤을 추고 막 그랬던 거 같다. 지금은 더 늙어서 그러긴 어렵고… 사람들 분위기도 그런 판은 아직 아니고… 뻘쭘하게 서서 음악을 유심히 들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데려온 손님이 너무 방치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나루님은 자기 친구들을 소개시켜주려고 했다. 이 분은 이 밴드에서 베이스를 치시고… 저 분은 저 밴드에서 드럼을 치시고… 나름대로 잘 알려진 팀이다. 여기가 홍대는 홍대구나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루님은 나를 ‘유튜브에 나오는 사람’, ‘평론가’라고 소개했는데, 한 여성 분이 춤을 추면서 “그럴 거 같아요”라고 했다. 열정적인 공연을 마치고 옥상으로 올라온 호도리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술은 끊었다고 말씀을 드렸다. 호도리님은 몽골에 다녀왔는데, 외모 덕에 몽골 사람들이 다들 자기나라 사람인줄 알고 몽골어로 말을 걸더라고 했다. 그 외 술에 좀 취한 독일인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한국말에 완전히 익숙한 상태는 아니어서 좀 어려움이 있었다. 나루님은 독일인에게 나를 ‘코뮤니스트’로 소개했다. 독일인은 기후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밖으로 나와 소주를 한 병씩 들고 나발을 부는 외국인 여성들 옆에서 호도리님, 독일인, 나루님과 함께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사먹으며 조금 대화했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와 병나발 대단하다’라고 했는데 바로 쳐다보더라… 아이 씨 죄송합니다… ‘메이드 카페 버틀러 카페 카와이’라는 간판의 아래였다. 나루님은 다시 클럽으로 간다기에 난 늙어서 이제 집에 가야겠다고 말씀드렸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홍대인들의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디제잉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다들 열심인 게 좋았다. 이렇게 저렇게 쫄리며 사는 것보다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
오늘은 밀린 숙제를 한다는 차원에서, ‘나르시시즘의 고통’이라는 책을 읽었다. 한 20년 전에 보고 들은 얘기인 알튀세 호명 얘기로 시작해서 프로이트, 라캉, 스피노자 거쳐 헤겔, 지젝으로 끝나는 책이다. 지젝… 그럼 그렇지… 냉소사회 쓸 때 생각이 조금 났다.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달린 댓글을 보며, 이 책은 라깡이고 지젝이는 얘기를 모르면 잘 이해가 안됐을텐데 하는 생각이…
책을 다 읽고 나니 홍대인들 생각이 다시 나서 기록으로 남기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