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루션스의 단독공연
나루님이 오라고 해서 갔다. 생각해보니 나루님이 프로가 된지 거의 20년 가까이 됐는데 녀석이 하는 공연을 제대로 본 일이 없다.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첫째, 원래 공연을 보러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둘째, 공연을 보면 즐기고 나서 무조건 잘했다고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내 성격에 또 꼬치꼬치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면서 평가를 할 것이다… 그게 좋지 않다… 이런 생각을 계속 했던 거 같다. 지난 번에도 동영상을 보고는 지판을 잘못 짚었더라 라는 망언을 제가… 나루님은 쿨하게 그게 라이브의 묘미이다 라고 대꾸했습니다마는… 그러나 이제 너도 나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고 하니 어떻게 되기 전에 공연을 봐야 하지 않을까 하여 노구를 이끌고 일요일에 청계천으로 갔던 것이다.
나루님은 또 집에서 잘 나오지 않는 제가 모처럼 나온다고 하니까 본인의 지인에게 횽님 잘 돌봐드려라 라고 부탁도 해줬는데, 그 분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옛날에 회사 비판 만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했던 권PD님을 마주쳤다. 그러잖아도 얼마 전 오타쿠 모임 뒷풀이에서 그… 논란의 프로그램 얘기가 잠깐 나왔는데, ㅍㄹㅅㅌ님이 논란이 있긴 했지만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라고 하기도 하여 그런 얘기를 할까 했으나 장소가 마땅치 않아 눈 인사만 주고 받았다.
공연은 역시 대단했다. 12년 짬이 어디 안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밴드의 사운드는 자기 고집이 있으면서 트렌디한 편이라 좀 복잡한데, 이러면 실제 공연을 할 때에는 악기 위주로 축약을 하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되도록 사운드라는 면에 있어서 포기를 하지 않으려는 집념 같은 게 느껴졌다. 보컬과 베이스에 신디사이저를 배치해 놓은 게 그렇고, 그걸로도 커버가 안 되는 부분은 드럼 옆에 맥북을 활용하는 거 같았다. 선수 입장~ 할 때 맥북을 조작한다.
다만 이러한 집념에 비할 때에 공연장 환경과의 궁합은 조금 아쉬운 대목이 있었다. 관객이 무대를 둘러싸는 형식이다 보니 소리를 일관되게 조정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사운드가 펑크록처럼 심플하면 상대적으로 쉬웠을 텐데… 이 밴드의 사운드는 다이내믹레인지랄까 뭐라고 해야 할까 이게 넓을 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큰일이다. 가령 내가 있던 위치에선 저음의 부밍이 좀 셌는데, 특히 베이스의 신디사이저가 그랬다. 근데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거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잃는 건데 관객이 무대를 둘러싸는 형식의 장점도 분명히 있기 때문. 무대의 변이 3개로 늘어나므로 관객과 아티스트의 거리가 좁혀지고, 관객도 무대 건너편을 통하여 서로를 볼 수 있다. 그런 점은 확실히 대단했다.
요즘 밴드가 다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장비를 적극적으로 쓴다는 인상이었다. 그냥 시대가 좋아진 걸 내가 잘 몰랐던 건지… 앞서 맥북도 그렇고… 마이크 스탠드 밑에 붙어있는 작은 패널이 있기에 그게 뭐냐고 나루님에게 물어보니 퍼스널 모니터링 믹서라고 했다. 엔지니어한테 보컬 좀 올려주세요 베이스 내려주세요 할 필요 없이 모니터를 각자 알아서 조정할 수 있다는 거지. 그거 참 유용하겠군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유로운 퍼포먼스를 위해? 악기도 무선 송수신기를 사용하는데, 나루님 텔레캐스터는 케이블을 쓰더라. 나는 그 생각을 했다. 저기서 텔레캐스터인가? 이 노래를 원래 텔레캐스터로 톤을 잡았단 말인가? 그것은 대단하다. 그런데 나루님의 얘기는, 그건 아니고, 레스폴의 줄이 끊어졌다는 것이다. 텔레캐스터는 예비용이었다는 것이지. 그래서 유선이었군. 그런데, 레스폴이 끊어졌는데 왜 텔레캐스터를 쓰는가? 셋팅이 어떻게 돼있기에? 픽업을 뭘 박았기에? 나루님은 스트랫을 썼어도 됐었을 거라고 하긴 했는데, 이건 나중에 더 물어봐야겠다. 아무튼 공연 중에 돌발상황이 꼭 생기는데, 그것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어떻게 대응하는가, 대응을 무리없이 했는가, 이게 다 실력이다.
보컬의 경우는 아는 분야가 아니라 이러쿵 저러쿵 할 말이 많지 않은데, 끝까지 지치지 않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지만, 그게 쉽지 않다. 레코딩하고 거의 같은 컨디션으로 전반적으로 정확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쭉 갔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게 12년의 짬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락밴드다운 공연 구성이 돋보인 부분도 있었는데, 드럼과 베이스 솔로가 있었다는 점이 그렇다. 특히 드럼 솔로… 그렇다. 역시 밴드 공연은 드럼 솔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최첨단의 조명이 대단했다. 관객도 대단했다. 무슨 문구를 적어 놓은 가로로 넓은 종이를 나눠주던데, 이런 문화는 생소했지만 나루님이 앵콜 무대에서 특별히 언급을 하여 퍼포먼스에 동참했다.
다들 뒷풀이 등에 바쁜 거 같았지만, 집에 와야했다. 집에 오면서는 이런 저런 옛날 생각을 했다. 나루님 대학 다니실 적에 생각해보면 지금이랑 비슷하다. 기타치고, 그림 그리고, 우유부단 무기력하게 있다가 뜬구름 잡는 얘기하고… 뭐가 되려고 저러나 싶은 때도 있었고… 공연에서 멤버들이 리더를 오경횽님으로 바꾼 얘기를 하던데, 그렇지… 나루님은 리더가 맞지 않지… 근데 어찌됐든 자기 영역에서 한 20년 가까이 한 길을 간 성과가 분명히 있구나, 이런 것을 실감하는 그런 자리였다. 20년 가까이 뭔가가 엄청나게 많이 쌓였고, 그걸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나도 기뻤다.
난 20년 동안 뭐했나? 생각해보면 뭐든 적당히 하지 않았나?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게 많지 않았나?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었던 거 아닌가? 그리하여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열심히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