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메모
어쩌다 새만금과 관련한 유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NL적인 영화였다. 감독이 NL출신이란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인터뷰 등을 찾아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거 같다. NL적인 영화라는 것은 내가 이걸 보면서 NL을 연상했다는 것이며, NL적인 한계가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NL을 어떻게 하자는 얘기가 전혀 아니다. 갑자기 NL이 왜 나오냐 하실 수 있는데, 제가 운동권 출신이라…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카레를 보면서 똥을 연상했다고 해서 실제 카레가 똥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과 비슷한 뭐 그런 거다. 그냥 내가 뭔가 똥 생각 나는 카레라고 하는 거지…
먼저 영화를 본 분이 그런 불평을 했다. 세간의 평도 좋고 실제로도 좋은 영화이지만 감독 본인이 너무 많이 등장해 몰입을 방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보니까 정말 비슷한 느낌이 받는 장면이 곳곳에 있었다.
거기에 또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영화가 대상을 다루는 방식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인간주의적이고 감상적이라는 거다. 가령 등장인물이 조개들이 이제나 저제나 바닷물이 들어오길 기다리다 빗물에 모처럼 갯벌 위로 올라왔지만 말라 죽고 말았다는… 그 얘길 하면서 어떤 실망과 낙담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이건 전형적인 인간주의적 방식의 설명이다. 조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라는 거다. 새들이 먹이를 찾는 모습을 민간 전문가의 생업과 교차편집하는 씬도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다. 새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다. 그게 감독이 조개껍질을 어루만지는 장면이 나오고 죽은 새를 어루만지는 손이 나오는 이유인데,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렇다는 거고,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 목적이 있어야 하는 거고, 그게 무엇일까 라는 게 영화 초반에 내가 가졌던 의문이다.
후반부에 미군기지와 전투기가 나오면서, 무릎을 쳤다. 아~~~ 이거구나~~~ 그러니까 이런 거다. 만약에 새만금 사업을 둘러싼 비극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고 하면 그것은 인간 대 자연의 대립구도로 그려질 것이다. 이 구도라면 본래 자연과 공생했거나, 자연의 편에 의식적으로 서려고 하거나, 자연에 정서적으로 연민을 느끼는 인간이 등장할 수는 있지만 그게 내러티브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이런 구도에서 인간은 어디까지나 잘못을 했으니 반성하고 속죄하는 주체이지 자연과 근본적으로 한 편이 될 수는 없다. 근데 미군기지와 전투기가 등장하는 세계관에서는 권력과 민중의 대립구도가 강화된다. 여기서 민중과 자연은 부당한 권력에 핍박받고 맞서 싸우는 같은 편으로 묶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다루는 새와 조개와 고둥과 게의 이야기는 인간주의적이고 감상적으로 그려지는 것이며 인간의 본질적 죄란 ‘아름다운 것을 본 죄’로 묘사되는 거다. 그리고 이게 말하자면 NL적 세계관이다.
이런 세계관을 덮거나 희석하는 것은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영상과 음향이다. 새와 조개와 게들의 영상이 대단하다. 갯벌의 드론샷도 인상적이다. 마지막에 묵음으로 그것만 보여주는 것도 좀 과하다 싶긴 한데 아무튼 굉장하다. 옛날 같았으면 독립PD? 인디다큐멘터리 제작자? 정도 수준에선(물론 국제적 대기업이 펀딩을 했더라마는…) 촬영할 수 없거나 어려운 장면이다. 물론 옛날에도 어떻게든 했다는 얘기가 있는 것도 사실인데, 아무튼 기술의 발전으로 좋은 세상이 돼서 이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도 수준의 영상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새들의 날갯짓 만으로도 전해져 오는 그런 게 있다. 몇 번이나 감탄했다.
아무튼… 이러한 세계관의 스토리에서 주인공은 ‘뭔가 막연한 의문을 갖고 있다가 어떤 계기에 의해 근본적 모순에 눈을 뜨고 투사로 거듭나는 존재’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이 역할을 완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감독 본인 뿐이다. 그러니 나레이션은 1인칭이어야 하고 감독이 주요 장면마다 등장할 수밖에 없다. 가령 감독이 카메라로 새가 아니라 전투기를 쫓는 장면이 한 순간 나오는데, 이 장면이 주인공이 거듭나는 어떤 전환점이 아니겠는가. 하여간 전반부의 의문은 이런 방식으로 풀렸다.
그게 문제라는 게 아니라, 그렇다는 거다. 원래 정체성은 곧 한계이다. 이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 하는 것도 운동권 출신의 한계 아니겠는가. 영화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그런 감상을 가졌다는 것을 개인적 기록으로 남기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