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쪽이 싫어서 조국당
지난 번 광주 취재에 이어 한겨레가 또 이런 걸 썼는데, 저쪽이 싫어서 하는 정치 행위의 총 집대성이라 할만 하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election/1133643.html
첫째, 열심히 “정신차리세요! 조국은 범죄자예요~~” 글 쓰는 분들 있지만, 소용없다. 그걸 알면서도 지지한다는 것이다. 가령 아래의 대목.
그는 “조국 대표의 ‘내로남불’에 실망했고 여전히 그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번 총선의 판단 기준은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며 “지금은 윤 대통령의 대척점에 조국이 서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몰라서 하는 게 아니다, 알면서 한다, 알지만 한다… 는 게 냉소주의의 기본 도식이다. 내가 얘기하면 안 믿으니까 다른 사람이 얘기한 걸 인용한 걸 다시 인용한 걸 다시 인용한 글을 보여줄게.
“우리 시대는 냉소의 시대가 됐다.”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그의 출세작 <냉소적 이성 비판>(1983)에서 내뱉은 말이다. (…) 여기서 냉소주의란 어떤 것이 옳지 못하고 잘못됐고 틀린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는 자의 태도를 가리킨다. “냉소주의자는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상황논리나 자기보존의 욕망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 그는 냉소주의를 ‘계몽된 허위의식’이라는 말로 규정한다. 허위의식의 고전적 정의는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행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순진한 상태가 허위의식인 셈이다. 냉소주의가 ‘계몽된 허위의식’인 것은 알 것 다 아는 채로, 그러니까 더는 순진하지 않은 채로 허위의식을 고수하고 거기에 맞춰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냉소주의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순응”이다. 계몽적 활동이 아무리 많은 것을 발가벗겨도 “폭로 효과도 없고 ‘적나라한 사실’이 거기서 드러나지도 않는다.” 자유·진실·민주 따위의 계몽적 가치는 비웃음을 당한다.
여기서 글의 핵심을 다시 강조하는 바, 마르크스는 ‘허위의식’에 대해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행하고 있다”고 했지만, 슬로터다이크는 ‘계몽된 허위의식’이란 표현을 통해 “그들은 그것을 알지만 행한다”로 명제를 살짝 비틀었다는 거.
둘째, 그럼 그걸 통해 이들이 이루려는 바는 뭐야? 윤석열을 혼내주는 것이다… 한겨레 기사에 보면 “흥미로운 대목은, 조국혁신당 지지층 안에서도 민주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근거가 충돌하고, 그에 따라 투표 의향도 다르다는 점이다”라고 돼있는데, 어떤 사람은 민주당의 현역들이 이재명을 안 도와줘서 민주당이 마음에 안 들어 조국당을 찍는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재명식 공천에 문제가 있어 조국당을 찍는다는 거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 이유가 어찌됐든 윤석열을 반대하기 위해서, 윤석열을 제대로 혼내주지 못하는 민주당을 반대해야(그게 현역 때문이든, 공천 때문이든, 사법리스크 때문이든 뭐든…) 한다는 논리를 충족시키면 조국당 지지 논리는 성립되기 때문. 즉, 윤석열 반대-이재명의 민주당 반대 조합이 곧 조국당 지지인 거고 그게 저번에 말씀드린 ‘윤석열이 싫고 이재명의 민주당이 불안해서 조국당을 지지한다’는, 저쪽이 싫어서 조국당 지지하는 논법인 것임. 기사에 인용된 사람들 말씀 보시면 이게 다 뒷받침 됨.
셋째, 근데 이러면 뭐가 좋은 거고 뭐가 바뀌는 거냐? 이게 제대로 된 정치 행위는 맞냐? 그런 게 어떤 의미가 있냐? 사실 그건 없는 거지. 그런 점에서 이건 제 관점에서는 여전히 소비주의적 세계관에 머무르는 것임. 일전에 썼듯 앞으로 이런 경향은 더 강해질 수 있음. 국힘도 태극기당, 한동훈당, 윤석열당 자유롭게 위성-지망 정당을 만들 수 있지 않겠어? 이게 K-다당제다(K를 붙인 것은 양당제에 종속된 거라는 걸 강조하려고…)… 그런 점에서 조국당의 부상은 제가 다년간 해온 이야기들의 거의 완벽한 현실적 사례라고 해야할까 뭐 그런 거란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