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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Author: 이상한 모자

좌파-오타쿠 행사에서 한 말

2025년 1월 23일 by 이상한 모자

좌파 오타쿠 행사에서 두서없이 떠든 내용을 주최측이 정리해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떠들면서 망설임이 많았다. 평론가질을 하고 다니면서 ‘말’을 하는 것에 대한 덧없음을 계속 체화하던 차이기 때문이다. 말을 해봐야, 똑같은 의미의 말을 해도 자기가 원하는 표현으로 나오지 않으면 알아듣지를 않는 시대다. 더군다나 오타쿠들을 상대로? 오타쿠란 대체로 자기 영역에서 자기가 최고 오타쿠고 최고 잘 알고 최고 맞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과거에는 가난해서(이렇게 말하면 돈 없어도 얼마든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람들 있는데, 그거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다…), 지금은 평론가질을 하느라 오타쿠를 제대로 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많지 않다. 이건 사실이다. 사실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전에도 썼듯, 단지 모여서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 주제 넘게도 여러 말씀을 떠들었다.

https://docs.google.com/document/d/1Gr7oRm5cS_TgqYvSa36Zw3X_5q5RoEMn11wlkeTOqY4/edit?tab=t.0

사실 내 생각에는, 제대로 말하려면 더 긴 시간이 주어져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 얘기였다. 하나를 말해도 말이다. 말하는 사람 입장에선 여러 생각을 담을 수밖에 없다. 가령 우주세기 건담은 인정하지 않는데, 그것은 다만 마음가짐의 문제일 뿐이며, 모든 건담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한 대목이 있다. 대개의 사람은 그냥 웃고 말텐데,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많은 생각을 하는 거 아니겠나?

건담의 아버지가 굳이 턴에이건담을 만들어서 그 때까지의 우주세기와 비우주세기를 하나의 역사로 통합했다. 그러니까 우주세기니 아니니의 논쟁은 무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턴에이 이후에도 우주세기와 비우주세기의 구분법에 근거한 작품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이제 대체역사물 같은 걸 만든다고 하는데… 물론 이쪽에도 모순은 있다. ‘우주세기만 인정한다’라고 했지만, 유니콘을 인정할 수 있는가?

사실 이건 ‘진정한 ~에 대한 논쟁’에 관한 얘기로 끌어올 수 있다. 언젠가 ‘진정한 건담’에 대한 농담을 한 일이 있는데,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진정한 건담이란 퍼스트 건담 밖에는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데!? 퍼스트 건담조차 따지면 ‘진정한 건담’답지 않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진정한 무엇’이라는 것은 실존하는가(이 비슷한 얘기는 제가 쓴 냉소에 관한 책을 보시면 좀 더 나와있다)? 그러나 이 모임이 건담 푸념 모임은 아니니까, 그냥 적당히 저렇게 말하고 마는 것이다. 실제로 행사가 끝나고 나서는 한 건담 애호가와 위와 비슷한 대화를 나누었다.

전반적으로 좀 그런 느낌인데, 만일 모인 사람들이 ‘저쪽이 싫은 책’을 읽고 왔다면 무슨 얘긴지의 맥락을 훨씬 더 정확하게? 물 흐르듯? 수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순전히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이다. 제발. 내 블로그에 적는 내 생각입니다. 사람의 한계는 곧 정체성이고, 내 한계란 결국 내가 쓴 가장 긴 이야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니겠나. 요즘 하는 얘기도 결국은 이전에 쓴 책들과 같은 맥락 안에 있는 거다.

끝나고 나서 뒷풀이 자리에서 오간 대화에서도 흥미로운 얘기들이 있었다. 가령 모바일 게임에 저당잡힌 인생에 대해 말했다. 나는 랑그릿사 모바일이라는, 중국 회사(중국회사 ’치고‘ 안정적이고 성의있는 운영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가 일본 아이피를 갖다가 만든 게임을 5년 넘게 했다. 이런 류의 게임의 정식이 있는데, 매일의 숙제+가챠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매일 12시가 지나기 전에 뭘 눌러서 숙제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새로운 캐릭터가 출시됐을 떼 더 적은 돈을 들여 뽑기를 할 수 있다. 이게 다 매일매일 노력의 댓가인 셈인데, 어느 날 내가 왜 이딴 짓거리를 하고 있는가 현타가 와서 지워버렸다. 뒷풀이 자리의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었는데, 한 분은 그 자리에서 평소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넥슨의 유사한 게임을 지워버렸다.

집회 형태에 대한 얘기도 했는데, 이것도 어느 유튜브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내용이다. 집회에 대한 코멘트는 계급적 기반에 관한 얘기다. 물론 노조나 기타 단체로 조직됐다고 해서 그게 곧 계급이라고 할 순 없다. 그걸 착각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그러나 노조나 단체로 조직화 된 대중을 계급적으로 조직하는 게 더 쉬운 일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내 경험으로만 말하자면 집회 형태와 관련한 논쟁을 처음 본 건 2002년의 촛불 시위였다. 앙마라는 사람이 주도했는데, 이 분은 나중에 흑화한 걸로 기억한다. 하여간 그때는 아예 탈중앙화 된 집회 형태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는데, 섬세한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지금와서 평가해보자면 거기서 드러난 요구는 ‘탈정치’였다. 이게 2006년과 2008년에도 반복되었다. ‘깃발 내리라’는 요구가 대표적이다. 그때는 단체들이 깃발을 들고 오면 ‘순수한 시민’들이 깃발을 내리라고 했다. 자신들이 깃발의 소속으로 오인된다는 이유다. ‘숟가락 얹지 마라’는 거지. 그래서 나중에는 처음에 깃발을 들고 모였다가 ‘순수한 시민’들을 위해 깃발들만 옆으로 비켜주는 절차가 생긴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이게 ‘탈정치’적 요구다. 계급의 기준으로 보면 ‘탈정치’는 분명 조직이 어려워진 요건이다.

깃발이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부활한 것은 박근혜 탄핵 국면이다. 이때는 오히려 ‘순수한 시민’들이 제각기 이상한 깃발을 만들어왔다. 재치와 유머가 돋보였다. 즐거웠다. 그러나 이게 ’탈정치’를 넘어 계급운동(…이라고 말할 수 없더라도 그것을 지향하고 싶어하는 어떤 조직운동)의 쇠퇴와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좌파-조직화의 관점에서 유리해진 조건인가, 불리해진 조건인가? 이번 집회에서는 응원봉이 나왔다. 이건 여러차례 얘기했지만 ‘탈정치’를 지나 ‘소비자‘로서 조직된 대중이 표현된 것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뭘 욕하거나 폄하하자는 게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후원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과거에 비해 회원으로 가입하기 보다는 일회성 후원에 그치는 일이 늘었다고 한다. 첫째로 유행의 문제, 둘째로 ’캔슬‘의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시민단체의 내로남불이 메인 아젠다인 세상이다. 흠없는 시민단체를 찾기 어렵다. 내 후원금 지출은 흠이 없는 시민단체를 향한 것이었으면 한다. 여기서 시민단체는 상품화된다. 이게 ‘소비자적 문법’이다. 이 ‘소비자적 문법’의 소유자들이 잘못했다거나, 죄를 지었다거나,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게 새로운 세상의 문법이라는 거다. 단지, 질문은 이것이다. 이것은 지금 계급을 조직하는 일에 있어서 유리한가, 불리한가?

그게 불리한 조건이라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대중에게 ‘소비자에게 벗어나라! 우리가 조직 좀 하게!’ 이렇게 외칠 것인가? 근데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거다.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각적 해법이 필요하다. 그 다각적 해법 중에는 같은 소비자로서(결국 좌파를 자처하는 사람도 어떤 처지에서는 소비자이다) 개입, 관여하는 방식도 있는 것이다. 저는 아마, 그 얘기를 한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만일 이 다각적 해법의 다른 측면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으시다면 저쪽이 싫은 책을 보시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뒷풀이에서 한 말이 좀 더 있는데, 지금은 또다른 얘기를 떠들러 가야 한다. 그래서 그건 또 다음 기회에… 그리고 여기서 한 얘기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어떤 오타쿠적 세계의 얘기이며, 일군의 백래쉬가 법원을 때려부수기 전 얘기다. 법원 때려부순 얘기는 오늘 낮에 택시에서 쓴 글이 있는데, 그것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한 얘기긴 하지만 그건 발행되면 알려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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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스트

2025년 1월 20일 by 이상한 모자

계엄 며칠 후에 그런 얘기를 쓰다가 만 일이 있다. 윤석열이 파시스트인지는 모르겠으나 윤석열의 계엄을 지지한다는 사람은 파시스트인 게 분명하다. 그때 전여옥이니 이런 사람들이 계엄 지지 발언을 할 때인가 그랬다. 윤석열이 파시스트인지 모르겠다고 하려던 거는 계엄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고, 그게 파시즘에 의해 얼마나 뒷받침되는 것인지 모르는 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윤석열과 그를 지지하는 일군의 세력을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것에 큰 무리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파시즘에 대해선 보통 두 가지를 본다. 첫째, 문제 해결 방식으로서의 폭력(권위든 독재든)에 의존하는가. 둘째, 그 해결 방식이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는가. 첫째는 윤석열이 시도한 내란의 전모가 거의 드러났음에도 이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는 점에서 확인되었다. 둘째는 사실 좀 애매했는데, 극우 시위대가 실체를 가지고 오프라인에 등장해 자신들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했다는 점에서 또한 확인되었다.

폭도가 된 윤석열 지지자의 서울서부지법 습격은 두 가지 조건을 한꺼번에 만족시키는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윤석열 구속 이후 온라인에 나타나는 이들의 ‘국민저항권’ 운운 담론은 전형적인 파시즘적 징후이다. 이를 축소 옹호하면서 끝도 없는 이재명 타령으로 반사이익이나 보려는 여당의 태도 역시 파시스트다. 지난 정권에 대해 연성파시즘 운운하면서 이의 대항담론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주체로서의 윤석열 지지 활동을 사실상 했던 분들의 견해를 듣고 싶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국민저항권, 윤석열, 파시스트, 파시즘

솔루션스의 단독공연

2025년 1월 20일 by 이상한 모자

나루님이 오라고 해서 갔다. 생각해보니 나루님이 프로가 된지 거의 20년 가까이 됐는데 녀석이 하는 공연을 제대로 본 일이 없다.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첫째, 원래 공연을 보러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둘째, 공연을 보면 즐기고 나서 무조건 잘했다고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내 성격에 또 꼬치꼬치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면서 평가를 할 것이다… 그게 좋지 않다… 이런 생각을 계속 했던 거 같다. 지난 번에도 동영상을 보고는 지판을 잘못 짚었더라 라는 망언을 제가… 나루님은 쿨하게 그게 라이브의 묘미이다 라고 대꾸했습니다마는… 그러나 이제 너도 나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고 하니 어떻게 되기 전에 공연을 봐야 하지 않을까 하여 노구를 이끌고 일요일에 청계천으로 갔던 것이다.

나루님은 또 집에서 잘 나오지 않는 제가 모처럼 나온다고 하니까 본인의 지인에게 횽님 잘 돌봐드려라 라고 부탁도 해줬는데, 그 분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옛날에 회사 비판 만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했던 권PD님을 마주쳤다. 그러잖아도 얼마 전 오타쿠 모임 뒷풀이에서 그… 논란의 프로그램 얘기가 잠깐 나왔는데, ㅍㄹㅅㅌ님이 논란이 있긴 했지만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라고 하기도 하여 그런 얘기를 할까 했으나 장소가 마땅치 않아 눈 인사만 주고 받았다.

공연은 역시 대단했다. 12년 짬이 어디 안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밴드의 사운드는 자기 고집이 있으면서 트렌디한 편이라 좀 복잡한데, 이러면 실제 공연을 할 때에는 악기 위주로 축약을 하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되도록 사운드라는 면에 있어서 포기를 하지 않으려는 집념 같은 게 느껴졌다. 보컬과 베이스에 신디사이저를 배치해 놓은 게 그렇고, 그걸로도 커버가 안 되는 부분은 드럼 옆에 맥북을 활용하는 거 같았다. 선수 입장~ 할 때 맥북을 조작한다.

다만 이러한 집념에 비할 때에 공연장 환경과의 궁합은 조금 아쉬운 대목이 있었다. 관객이 무대를 둘러싸는 형식이다 보니 소리를 일관되게 조정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사운드가 펑크록처럼 심플하면 상대적으로 쉬웠을 텐데… 이 밴드의 사운드는 다이내믹레인지랄까 뭐라고 해야 할까 이게 넓을 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큰일이다. 가령 내가 있던 위치에선 저음의 부밍이 좀 셌는데, 특히 베이스의 신디사이저가 그랬다. 근데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거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잃는 건데 관객이 무대를 둘러싸는 형식의 장점도 분명히 있기 때문. 무대의 변이 3개로 늘어나므로 관객과 아티스트의 거리가 좁혀지고, 관객도 무대 건너편을 통하여 서로를 볼 수 있다. 그런 점은 확실히 대단했다.

요즘 밴드가 다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장비를 적극적으로 쓴다는 인상이었다. 그냥 시대가 좋아진 걸 내가 잘 몰랐던 건지… 앞서 맥북도 그렇고… 마이크 스탠드 밑에 붙어있는 작은 패널이 있기에 그게 뭐냐고 나루님에게 물어보니 퍼스널 모니터링 믹서라고 했다. 엔지니어한테 보컬 좀 올려주세요 베이스 내려주세요 할 필요 없이 모니터를 각자 알아서 조정할 수 있다는 거지. 그거 참 유용하겠군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유로운 퍼포먼스를 위해? 악기도 무선 송수신기를 사용하는데, 나루님 텔레캐스터는 케이블을 쓰더라. 나는 그 생각을 했다. 저기서 텔레캐스터인가? 이 노래를 원래 텔레캐스터로 톤을 잡았단 말인가? 그것은 대단하다. 그런데 나루님의 얘기는, 그건 아니고, 레스폴의 줄이 끊어졌다는 것이다. 텔레캐스터는 예비용이었다는 것이지. 그래서 유선이었군. 그런데, 레스폴이 끊어졌는데 왜 텔레캐스터를 쓰는가? 셋팅이 어떻게 돼있기에? 픽업을 뭘 박았기에? 나루님은 스트랫을 썼어도 됐었을 거라고 하긴 했는데, 이건 나중에 더 물어봐야겠다. 아무튼 공연 중에 돌발상황이 꼭 생기는데, 그것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어떻게 대응하는가, 대응을 무리없이 했는가, 이게 다 실력이다.

보컬의 경우는 아는 분야가 아니라 이러쿵 저러쿵 할 말이 많지 않은데, 끝까지 지치지 않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지만, 그게 쉽지 않다. 레코딩하고 거의 같은 컨디션으로 전반적으로 정확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쭉 갔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게 12년의 짬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락밴드다운 공연 구성이 돋보인 부분도 있었는데, 드럼과 베이스 솔로가 있었다는 점이 그렇다. 특히 드럼 솔로… 그렇다. 역시 밴드 공연은 드럼 솔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최첨단의 조명이 대단했다. 관객도 대단했다. 무슨 문구를 적어 놓은 가로로 넓은 종이를 나눠주던데, 이런 문화는 생소했지만 나루님이 앵콜 무대에서 특별히 언급을 하여 퍼포먼스에 동참했다.

다들 뒷풀이 등에 바쁜 거 같았지만, 집에 와야했다. 집에 오면서는 이런 저런 옛날 생각을 했다. 나루님 대학 다니실 적에 생각해보면 지금이랑 비슷하다. 기타치고, 그림 그리고, 우유부단 무기력하게 있다가 뜬구름 잡는 얘기하고… 뭐가 되려고 저러나 싶은 때도 있었고… 공연에서 멤버들이 리더를 오경횽님으로 바꾼 얘기를 하던데, 그렇지… 나루님은 리더가 맞지 않지… 근데 어찌됐든 자기 영역에서 한 20년 가까이 한 길을 간 성과가 분명히 있구나, 이런 것을 실감하는 그런 자리였다. 20년 가까이 뭔가가 엄청나게 많이 쌓였고, 그걸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나도 기뻤다.

난 20년 동안 뭐했나? 생각해보면 뭐든 적당히 하지 않았나?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게 많지 않았나?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었던 거 아닌가? 그리하여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열심히 삽시다!

Posted in: 신변잡기, 잡감 Tagged: 나루, 솔루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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