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나이 울리는 남성호르몬
최근 만난 싸나이 분이 이상하게 머리가 떡져 있는 것이었다. 머리는 감고 나왔느냐고 물어봤는데, 3일째 감지 않고 있다고 했다. 싸나이는 머리 따위 신경쓰지 않는다… 뭐 그런 건가? 그렇다기보다는, 얘기를 들어 보니 탈모 우려라고 했다. 탈모에 좋지 않다… 흠… 그런가? 그러고보니 주변에 비슷한 나이대에 탈모약을 먹는 사례가 많이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너 이러다 대머리 되겠다”는 말을 함부로 했는데, 이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대머리’는 그들에게 실질적 위협이고, 대머리가 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 나는 그들 입장에선 기득권?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탈모 우려로 머리를 감지 않는다는 말씀을 들으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대머리는 왜 되는가? 그것은 남성호르몬의 작용이다. 물론 남성호르몬이 많다고 해서 대머리가 되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적으면 대머리가 될 확률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다. 물론 남성호르몬이 탈모를 결정하는 유일한 변수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 얘기하는 건 과학적 근거가 아니고, 기분이다. 새삼 신경쓰게 된다. 이 녀석… 남성호르몬이… 대머리를 걱정할 정도잖아?
어렸을 적의 나는 스스로를 ‘의외로’ 싸나이답지 않다고 생각했다(어디까지나 의외로다. 내가 뭐 특별히 같은 시기에 똑같이 사회화 된 한국 남성들과 크게 다른 인식을 갖고 살았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시기에는 그게 장점이라고도 생각했다. 싸나이다운 사람들에 대한 컴플렉스 같은 것은 가져본 일이 없다. 단기적으로 부러워해본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동석한 분 중에 데미 무어가 나오는 영화를 최근 본 여성이 있었는데, 남성은 절대 완전히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일 거라고 했다. 유튜브나 SNS에서 화제가 됐던, 노년의 데미무어가 화장 고치다가 폭발하는 그 장면이다. 물론 그럴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왠지 약간 정도는 알 것 같았다. 나를 만난 사람들은 잘 몰랐겠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이 꼴을 하고 밖에 나가도 될지에 대한 고민을 매일 많이 했다. 거울을 보면서,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이 이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지금보다 훨씬 비만일 때, 107킬로그램일 때도 있었다. 밖에 나가는 것이 어려웠다(거듭 강조하지만 그게 여성들만큼은 아닐 것이다.).
사실 지금도 이런 습성은 약간 남아있어서, 씻지 않은 상태… 특히 머리를 감지 않은 상태라면 되도록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편의점도 안 간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포기하는 게 많아졌기에, 7시 방송인데 눈을 뜨니 6시 20분이다 이랬을 때는 씻지 않은 채로 옷만 입고 방송국으로 직행한 일도 있고 하긴 했지만… 먹고 살려면 존엄도 포기해야지 어쩔 수 없다.
즉, 남성호르몬 따위 신경 써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묘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다. 남성호르몬이… 여전히 많겠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거는 늙었다는 것이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머리를 걱정하는 싸나이를 약간,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부러워해버린 것이다.
물론 내가 주로 일하는 영역에서 나는 아직 햇병아리 취급을 당한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나도 이제 40대고 나이를 먹었다는 걸 체감한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더니, 청취자로부터 ‘민하야 내가 네 나이면 수능을 다시 본다’는 문자가 날아오더라. 그 장문 얼마 단문 몇십원 어쩌구 하는 그 문자 말야(시사 라디오 청취는 고령층이 주력이다).
그러나 그 외의 영역에선 그렇지 않지. 내가 전업으로 뉴스의 세계에 파묻혀 산 것도 거의 13년? 그 동안 뉴스가 아닌 다른 기준으로는 늙었다는 걸 어떻게 부정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육체적으로도 그렇다. 옛날만큼 밤을 새는 게 잘 안 되고, 옛날만큼 집중력을 발휘하는 게 어렵다. 조금 딴 생각 하다보면 1시간이 금방이다. 게임하다가 조는 경우도 늘었다. 눈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옛날 같으면 생각하지 않았을… 근육! 운동능력! 강인한 남성의 상징! 이런 걸 생각하게 된 것이지. ‘싸나이’를 남성으로서가 아니라 젊음으로서 부러워하게 된 거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그 트리거가 탈모 얘기였다는 게 재미있는 점이다, 이게 오늘의 결론이고, 밥도 먹었으니 좀 휴식 후 일하러 간다는 게 이제부터 나의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