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7천원 짜리 책을 사서 700원 어치만 즐기는 방법

여러분이 책을 고르고 볼 때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보자. 이미 독자여러분은 책을 평소에 많이들 읽으셔갖고 모든 일을 다 알고있어. 그래서 제목 딱 보고 음~~ 이러저러한 내용이겠네~~ 라고 딱 생각해.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책 내용을 다 알고 있어.

여기서 변수가 생기는데, 그 담에 저자를 봐. 저명한 인사이거나 이름 난 전문가이거나 하면 조금쯤 마음을 고쳐먹지. 아, 이 분이 그래도 식상한 얘기를 쓰지는 않았겠지. 열심히 읽으면 남는 게 분명 있겠지. 이렇게 마음이 열려야 1만7천원짜리 책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니까 예를 들어 저자가 시사평론가야. 그러면 ㅋㅋ뭐? 저쪽이 싫어서 투표?? ㅋㅋㅋㅋ뭐라고 씨부려놧나 한 번 보기나 해보잨ㅋㅋ 이러면서 그냥 대충 술술 봐요. 그러면 그게 봐도 본 게 아니지. 네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그래서 다 읽고 나서도 책에 다 써있는 얘길 또 하면서 이러저러한 점이 부족하다고 하거나, 책에서 다 논파한 반론을 다시 하는 것임. 확증편향이니 뭐니 갈 것도 없이, 이런 정신승리로는 1만7천원짜리 사서 700원어치나 먹는 바보짓으로 끝난다는 거다.

지난 번에 박선생님이랑 만나서 차를 마시는데 그 얘기 하시더라. 어디서 강연을 하는데 분명히 책을 다 읽고 오신 분들인데 누가 손 들고 그래도 한국 사회엔 능력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하더라는 거다. 내가 쓴 책도 아닌데 내가 열받더라.

엊그제 장선생님이 쓴 서평에 보면 독자의 그런 심리가 잘 나타나있다. 물론 장선생님하고는 워낙 오래된 사이라 일반 독자보다는 나에 대해서 훨~~ 씬 열린 태도를 갖고 있다. 그러니까 메시지가 끝까지 제대로 전달이 된 것이다. 그런 분들이 지난 번보다는 많을 것이라 한편으론 기대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삶을 좀 낙관적으로 살어야 되는데… 날 때부터 이랬는데 이제와서 그게 고쳐지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