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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정치 사회 현안

이딴 걸 선거라고

2026년 6월 5일 by 이상한 모자

바둑은 두는 것만큼 복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여론조사부터 투표용지 매수까지, 맞는 게 하나도 없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도대체 뭔 소리를 하며 살고 있나 복기하기 위해 남긴다.

오늘 오전부터 모 유튜브에 가서 여러가지 얘기를 했는데, 그 유튜브를 위스퍼X로 화자 분리 자막 추출해가지고 AI한테 내가 한 얘기만 내용 요약을 시켰더니 이렇게 뽑아왔다. 다소 거칠게 정리했고 중간에 그냥 넘어간 부분도 있어 보이지만 대체로 결은 맞는 거 같다.

김민하 평론가는 이번 선거 결과를 전체적으로는 민주당 및 집권 세력의 ‘대승’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서울, 부산 북구 갑, 평택 등 핵심 격전지에서 패배한 것을 두고 “시험은 다 잘 봤는데 국영수를 망친 격”이라며 뼈아픈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유권자들이 집권 세력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특정 지역에서는 보수 진영의 공세를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김민하 평론가가 제기한 세부적인 주장과 분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서울시장 선거 패배 원인 분석

서울은 본래 여론조사 추이 상 민주당에게 불리하고 오세훈 후보가 앞서가는 어려운 판이었습니다. 정원오 후보는 전통적인 민주당의 색채(세금 부과, 이념적 접근 등)를 지우고 ‘유능한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부각하는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 전략은 오세훈 시장을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는 ‘반(反)오세훈 전선’을 강하게 형성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도봉, 관악, 금천 등 민주당 전통 지지층의 투표율을 충분히 끌어올리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반면 오세훈 후보는 정원오 후보를 ‘제2의 박원순’으로 규정하는 프레이밍 전략을 썼고, 이것이 강남권 등 보수 유권자들에게 부동산 규제와 세금 폭탄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여 보수층의 높은 결집과 압도적인 투표율을 이끌어냈다고 지적합니다.

2. 20대 남성 및 보수 유권자의 심리 분석

20대 남성 일부가 보수화되거나 극우적 담론에 동조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지위 박탈에 대한 위협’과 ‘피해자성’으로 설명합니다. 이들은 실제로 자신의 지위가 하락하지 않았더라도, 한정된 자리를 두고 다른 불이익을 받던 존재(여성 등)들이 치고 올라와 자신이 도태될 수 있다는 공포를 느낍니다. 보수 진영은 재개발·재건축을 막는 세력을 ‘자유를 억압하는 좌파’로 이념화하여 이들의 공포와 불만을 성공적으로 포섭했다고 분석합니다.

3. 국민의힘 당내 권력 지형과 향후 전망

장동혁 체제는 선거 과정 내내 지역 거부 반응과 역효과를 낳았으므로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봅니다. 반면 한동훈 후보는 선거 막판 장동혁과의 거리를 두며 정권 견제론을 흡수하는 전략을 썼고, 당선 이후 영남과 부산 지역의 지분을 바탕으로 당내 영향력을 키울 것으로 전망합니다. 특히 서울시정에 묶여 운신 폭이 좁은 오세훈과 달리, 한동훈은 당 밖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하며 반(反)장동혁 전선 안에서 임시 동맹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4. 부산 북구 갑 및 평택 선거 실패 요인

부산 북구 갑의 하정우 후보에 대해서는 애초에 색깔이 옅은 후보를 내세워 중도 스윙보터층을 흡수하려던 전략이 한동훈의 영리한 캠페인에 막혀 실패했다고 분석합니다. 한동훈은 하정우를 지역 기반이 강한 전재수(시장 후보)와 철저히 분리시켜 하정우의 무능함을 부각했고,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이 ‘시장은 전재수, 국회의원은 한동훈’을 뽑는 교차 투표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평택 선거에서 벌어진 조국혁신당과 민주당의 갈등은 시기가 적절치 않았던 섣부른 합당 제안과 선거 연대 결렬이 낳은 ‘외통수’라고 비판합니다. 조국혁신당이 독자적인 제3당으로서의 비전을 증명하지 못한 채 민주당 지지층을 빼앗기 위해 네거티브 캠페인에 몰두하는 모순을 보였다고 지적합니다. 김민하 평론가는 정치인 조국이 이번 선거를 통해 이른바 ‘조국 사태’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긍정적으로 반전시키는 기회로 삼았어야 했으나, 오히려 과거의 부정적 인식을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아쉬운 결과를 낳았다고 꼬집습니다.

5. 선관위 논란 및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시각

투표 용지 부족 사태 등으로 불거진 선관위 부실 관리 문제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시스템 개편이 현실적으로 매우 꼬여있는 문제라고 진단합니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업무 감사를 거부하는 논리, 즉 민감한 정치 자금 및 후원금 내역이 집권 세력에게 넘어가 정치 탄압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를 무작정 무시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이 사안에 끼어들면서 합리적인 제도 개선 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오세훈 측의 ‘제2의 박원순’ 프레임 전략에 대해서는 선거 과정에서 좀 심각하다고 봤는데, 이 얘기를 글로도 썼었다. 아래 글이 5월 21일 입력으로 되어 있으니까 실제 쓴 거는 그 이틀 전이나 그럴 것이다. 물론 글로 쓰기 전에 이미 말로도 떠들었다.

‘정원오는 제2의 박원순’ 프레임의 최종 기착지는 부동산 문제다. 유권자가 보기에 두 후보는 부동산 대책 철학에서 큰 차이를 드러내는 것 같지는 않다. ‘착착개발’이냐 ‘신통기획’이냐 등의 레토릭, 공공과 민간의 역할 등 세부 정책 차이가 있을 뿐 세금으로 집값 잡는 데 반대하고, 공급 중심 대책을 앞세우며, 1주택자 세부담 완화를 주장하는 방향은 유사하다. 이러면 실행 의지나 실적이 쟁점이 되는 게 당연한데, 이 경우 현직 시장에 아무래도 불리한 논쟁 구도가 형성된다. 직전까지의 시정 평가 위주로 논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 후보가 “박원순 시장 시절 재개발 재건축 사업 구역 389군데를 해제했다” “박원순 전 시장 시절 부동산 시장이 완전히 빙하기에 접어들었다”고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은 이 구도를 뒤집기 위한 시도다. ‘오세훈 시정’에 대한 평가 구도를 ‘박원순 시정’ 평가로 뒤집어 자신의 위치를 ‘디펜딩 챔피언’(전 대회 우승자)이 아니라 ‘도전자’에 놓이도록 해서 ‘언더도그’(약자)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박원순=운동권=성추문=민주당=부동산 정책 실패’라는, 반대의 대상으로서 개념 사슬은 이를 위해 고안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슬이 ‘이재명=문재인 정권’ 프레임과 연결되면 오세훈식 포퓰리즘 동원 논리가 완성된다.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9356.html

이대남 얘기는, 또 이 얘기 하면 할 말들 많아 가지고 이 얘기 저 얘기 하겠지만, 얘기가 나와서 한 얘기니 그냥 넘어가시고, 피해자 정체성이 극우포퓰리즘의 연결 고리 중 하나가 된다는 얘기는 최근 한겨레에 실린 신진욱 교수의 글에도 나온 바 있다.

오스트리아 언어학자 루트 보다크(Ruth Wodak)에 따르면, 신극우 전략은 ‘도발-부인-피해자화-전치-주류화’의 패턴을 보인다. 계산된 모호성으로 도발적 메시지를 던지고, 비난에 처하면 의도성을 부인한다. 제재가 가해지면 ‘전체주의’, ‘파시즘’을 비난하며 자신을 억압받는 피해자로 만들고, 쟁점을 ‘표현의 자유’로 전치하여, 자신들의 도발을 사회가 관용하게 만든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60540.html

이스라엘 인사가 쟁점을 전치하는 과정에 좌파 혹은 리버럴 이론을 왜곡해 갖다 쓰는 현상이 일어난 바 있는데, 그 피해자 중 하나가 심지어 지젝이었다는 점에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감정을 느끼게 된 바도 있었다.

충격적이게도 고프만은 정책 결정자를 위해 불법적 폭력을 대신 저지를 수 있다는 논리에 대한 지적 근거로 나를 꼽았다. 물론 비판 이론이 반동 세력에 의해 전유되는 현상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이스라엘군은 오랫동안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포스트구조주의 개념을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도시전 수행의 작전 이론에 활용해왔다. 디지털 신봉건주의의 설계자라고 할 수 있는 피터 틸은 르네 지라르를 왜곡하여 전유한다. 우파 포퓰리스트들 역시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좌파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혹시 내 이론 안에 고프만이 전유할 만한 요소가 있을까? 단호하게 말해 없다. 나의 작업은 현대 국가권력이 자신의 법질서를 위반해가며 불법적 폭력을 동원해 권력을 재생산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일이었다. 고프만은 이를 국가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뒤집어 권력이 법을 위반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전략으로 사용한다. 억압자가 자신과 같은 이들을 비판하는 이론을 왜곡하여 오히려 자신들의 범죄적 활동을 정교화한다는 점에서 놀라운 아이러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61248.html

놀랍게도 우리 역시 이러한 일을 이미 겪었는데, 그게 바로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 타령이다. 문재인을 반대하는 것이 곧 자유민주주의라는 타령을 하고 염병을 하더니 지가 사실상의 독재인 내란으로 달려갔다. 즉,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론으로 내란을 정당화 한 셈이다. 근데 이런 방식의 접근(커피를 선택할 자유 등)이 아직도 젊은이 일부에는 먹힌다. (먹히는 이유가 있는데 그 얘기는 많이 했으니 생략.)

한동훈 씨가 보수 재건을 한다는데 그 내용이 2022년 윤석열(상대를 반대하기만 하면 저절로 뭐가 된다는…)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오늘 어느 방송에서 2024년 윤석열 반대로만 보수 재건이 되지 않는다, 2022년 윤석열까지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이 얘기를 오늘 낸 글로도 썼다.

물론 대부분의 뉴스 콘텐츠 소비자들에게는 선거 진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찾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극우 포퓰리즘, 오세훈, 정원오, 지방선거, 한동훈

긴급조정권 발동이 필요하다는 왕년의 진보

2026년 5월 15일 by 이상한 모자

이 삼전 노동자들의 파업 이야기를 보면서 참 여러모로 답답한데, 그간 보수언론의 태도에 대해서는 오늘 낮에 글로 정리했다.

https://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6991

오늘 조선일보는 가장 위험하고 골 때리는 얘기를 사설로 쓰는 데에 이르렀는데, 링크하기 싫지만 굳이 링크를 한다.

대법원은 2024년 삼성전자 성과급(OPI) 소송에서 성과급은 근로의 대가인 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성과급 비율을 강제로 정하자는 것은 법에 정해진 임금 협상이 아니란 해석도 가능하다. 이를 이유로 파업하는 것 역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상당수 노동법 전문가들도 “대법원이 임금의 성격이 아니라고 한 사항을 파업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노동법이 보호하는 파업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한다.

노동법상 파업은 임금이나 근로시간 같은 ‘근로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반면 영업이익 처분은 미래 투자와 주주 배당 등을 고려해야 하는 경영 판단 영역이다. 특히 반도체와 같은 치열한 기술 경쟁 산업에선 다음 기술 개발과 생산을 위해 이익 대부분을 재투자해야 한다. 대만의 TSMC 등 글로벌 경쟁사들에서 삼성전자 노조와 같은 행태는 있을 수 없다.

정부는 ‘이익 N% 성과급’ 파업이 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성과급 등도 노사 협상의 대상이 된 적이 있지만 지금처럼 상상을 벗어난 규모도 아니었고,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된 상황도 아니었다.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6/05/15/XCTY62FRFRBBBF743UMMRVPQHM/

이 녀석들이 언급하는 판결에 대해 나의 AI 법률비서관에게 이 사설을 보여주면서 취지를 찾아오라고 시켰다.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총통 각하, 확인해 보니 사설의 “2024년 삼성전자 OPI 소송”이라는 표현은 날짜가 부정확해 보입니다. 판례검색에서 해당 취지와 정확히 맞는 판결은 대법원 2026.1.29. 선고 2021다248299 퇴직금청구의소입니다. 조선일보/중앙일보 기사 맥락도 이 판결을 삼성전자 성과급 사건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판결의 실제 쟁점

퇴직자들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회사가 지급한 두 종류의 인센티브를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건입니다.

판결상 명칭은 익명화되어 있습니다.

• 목표 인센티브: 기사상 삼성전자 TAI에 해당
• 성과 인센티브: 기사상 삼성전자 OPI, 옛 PS에 해당

대법원은 둘을 나누어 판단했습니다.

2. 대법원의 결론

OPI / 성과 인센티브: 임금 아님

대법원은 성과 인센티브에 대해 다음 이유로 평균임금 산정 기초가 되는 임금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 각 사업부의 경제적 부가가치(EVA) 발생 여부와 규모에 따라 지급됨
• EVA는 근로자의 근로 제공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상황, 자본비용, 경영 판단 등 외부·경영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음
• EVA가 발생하지 않으면 아예 지급되지 않음
• 따라서 근로의 대가라기보다 경영성과의 사후적 분배, 사기 진작·근로복지 차원의 이익 공유에 가깝다고 판단

즉 사설이 말한 “OPI는 임금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 자체는 이 판결의 한 부분과 맞습니다.

TAI / 목표 인센티브: 임금 맞음

다만 중요한 점은, 대법원이 삼성전자 성과급 전체를 임금이 아니라고 본 것은 아닙니다. 목표 인센티브(TAI)는 임금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지급 규모가 사전에 어느 정도 확정된 고정적 금원
• 취업규칙상 지급기준이 있고, 기준 충족 시 회사의 지급의무가 인정됨
•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됨
• 경영성과의 사후 분배보다는 근로성과의 사후 정산에 가깝다고 평가

그래서 원심이 목표 인센티브까지 임금이 아니라고 본 것은 법리오해라고 하여 파기환송했습니다.

3. 사설의 인용에서 조심할 부분

사설은 “대법원이 성과급은 임금이 아니라고 판결했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는데, 실제 판결은 더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정확히는:

대법원은 삼성전자 사건에서 OPI 성격의 성과 인센티브는 임금이 아니나, TAI 성격의 목표 인센티브는 임금이라고 나누어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이 판결만으로 “영업이익 N% 성과급 요구를 이유로 한 파업은 당연히 위법”이라고 곧장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판결은 어디까지나 퇴직금 산정 평균임금 포함 여부를 다룬 민사사건이지, 그 요구가 단체교섭·쟁의행위 목적이 될 수 있는지 자체를 직접 판단한 사건은 아닙니다.

4. 관련 노동법상 연결점

현행 노동조합법상 노동쟁의는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등 근로조건의 결정뿐 아니라, 2026.3.10 시행 법 기준으로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도 포함됩니다. 다만 쟁의행위는 여전히 목적·방법·절차가 법령과 사회질서에 어긋나면 안 됩니다.

정리하면, 사설이 근거로 든 판결의 핵심은 “OPI는 평균임금 산정상 임금이 아니다”이지, “OPI 관련 교섭·파업은 언제나 위법하다”까지 직접 판시한 것은 아닙니다.

자, 일단 그렇다고 하고. 어쨌든지 간에 노동자가 받는 성과급을 갖고 협상을 하는데 그건 이미 협상의 대상도 아니라는둥 불법파업이라는둥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걸 비판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반드시 어떤 사람들은 그 얘길 할 것이다. 지금 이 삼성의 노동자들의 투쟁이 잘못됐다… 하청노동자들에게도 이익을 배분해야 한다… 왜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느냐… 연대의 정신이 없다 등등. 맞다, 맞는데, 그건 또 별개의 쟁점이다. 내가 인터넷 입씨름 거의 20년 넘게 하지만, 꼭 그렇게 모든 층위와 쟁점을 뒤섞어서 얘기를 하니 문제인 것이다. 1) 이번 기회에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키자! 라고 생각하며 그걸 실제로 시도하는 녀석들에 대한 비판, 2) 노조가 더 많은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또는 더 제대로 싸우기 위해 취해야 할 전략 전술에 대한 비판, 3) 반도체 산업으로부터 발생한 이익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이게 다 별개 쟁점이다. 근데 이걸 다 뒤섞어서 얘기하면 아무 논의를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데 이제 이건 주제별로 나누면 그런 거고, 이걸 목표의식을 갖고 일부러 뒤섞어서 주장하는 놈들이 있는데 그게 조선일보라는 거다. 분명히 이놈들이 처음에는 연대의식이 없다 그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노동 일반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이것이다. 그래서 맨 앞에 링크한, 오늘 낮에 쓴 글이 조선일보의 태도를 전반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임.

그런데 그 글에도 쓰지 않은 것이지만, 조선일보가 삼전노조 사람들이 연대의식이 없다며 주제넘은 비판을 할 때에, 그 기사에 보면 거든 사람이 있다. 한모씨라고… 조선일보 사이트로 안 가고 네이버 아웃링크로 일부러 링크를 한다면 이제 아래 기사인데, 5월 4일에 조선일보 톱이었다.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은 “대기업 성과는 세액공제 혜택, 전기 요금 인하 등 정부의 정책뿐 아니라 여러 협력사가 해당 산업의 생태계를 뒷받침해 만들어 낸 것”이라며 “독점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23/0003974476

그래 뭐, 조선일보에 글 쓰고 조선일보랑 기획도 하고 조선일보에 코멘트 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그럴 수도 있지 뭐. 아예 틀린 말도 아니고… 얘기 할 수 있는 거다. 이해할 수 있다. 그래. 요즘 누가 어디가서 무슨 말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근데 엊그제는 또 조선일보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은 “사측이 성과급 상한 폐지안을 받아들일 경우 다른 기업 노사관계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며 “긴급조정권 행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23/0003976350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부가 긴급조정권 행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 아니다. 말해봐야… 아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이상한가? 갑자기 전의를 상실하게 되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긴급조정권, 삼성전자

책 쓰는 이야기

2026년 4월 1일 by 이상한 모자

진보라는 사람들 일상을 봐도 진보적이지 않은 생활 태도는 어김없이 드러난다. ‘배우자 등처먹고 사는 활동가’라는 전형은 어떤가? 50대 남성 활동가가 사는 집에 가서 한 일주일 쯤 같이 지내봐라. 이런 사람이 무슨 진보를 논하나 싶은 장면이 여럿 나올 것이다. 비율로 따지면 일반인보다 낮기야 하겠지만.

그러나 현실 정치라는 건 어떤가? 이런 사람들이 진보적 정치를 지지하고 진보적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어찌됐건 세상은 진보적이 되어가고, 이런 존재조차도 변해가거나 도태되거나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1) 어떤 개인들이 얼만큼 진보적이다 2) 어떤 사람들이 진보정당에 투표한다 3) 어떤 사람들이 진보정치로 조직 혹은 동원된다… 라는 것은 같은 의미로 쓰일 수도 있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여러 번 얘기하지만 극우도 마찬가지다. 여러 말 할 것 없다. 서구를 봐라. 서구의 극우정치는 그렇게 잘 분석하는 분들이 자기나라 얘기는 왜 기본적인 ABC도 못 맞추나. 정치학자라는 분이 엊그제 신문에 쓴 글 보고 든 생각이다. 그 뿐만이 아니고 이런 류의 글을 잊을 만하면 어디든 간에 올려대는 일군의 사람들 때문에 피곤하다.

답답하니까 빨리 책을 내야한다 라는 생각을 하지만, 손을 안 대고 방치한 지가 오래되었다. 어찌어찌 정리하면서 구제책을 찾는 중인데, 오늘은 출판사 사장님을 만났다. 상반기에는 바쁘다고 하신다. 그래도 연내에는 될 것 같다. 어차피 선거 전에 안 된다면 천천히 가자. 안 팔리더라도 할 수 없다. 이외에 작년에 거든 다른 공저가 좀 있으면 아마 나온다. 나오나? 내가 듣기엔 그렇다. 진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원고를 넘긴지 열 달은 된 것 같은데, 이것도 참 기이한 일이다. 그리고… 좀 가벼운 걸 또 쓸 것이다. 뉴스 매일 보는 사람이 아닌,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 대의명분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뭔가 끊임없이 뭔가를 쓴 작업을 한 것 같은 사람이 된다. 성과를 장담하긴 어렵지만 뿌듯함이 있다.

최근 라클라우의 작업을 흝어 보았는데, 깜짝 놀랐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뭘 하듯, 난 몰랐는데 내가 하여간 포퓰리즘 얘기에 있어서는 이미 라클라우주의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분은 이걸 이미 20여년 전에 다 정리했다. 이 책이 올해 초에 번역된 이유가 다 있구나, 생각했다. 이 얘기를 접목하여 작년에 쓴 얘기를 손질하면 더 좋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판매량에 있어서는 늦어진 게 별로 좋지 않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오히려 늦어진 것이 전화위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느낀 것. 대가는 책을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구만. 물론 실제 아무렇게나 쓰지는 않았다.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러나 내가 만약에 책을 이렇게 쓰면 미친놈이라고 할 것이다. 저번에 편집자님이 얘기해 준 바, 내가 옛날에 쓴 책의 리뷰에 어떤 놈이 ‘못 배운 티가 난다’고 썼다고 한다. 난 신경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반응이지만, 그러나 자꾸 떠오른다. 배운 놈만 책 쓰라는 법이 있나? 그러면 평생 못 쓴다. 또, 배웠다면 어디까지 배워야 하나? 저자 되기에 자격은 뭐가 필요한가? 대학 졸업장? 석사? 박사? 네 주제에 맞는 얘기나 써라 이건가?

근데 라클라우 책에 보면 말이다. 자기들끼리도 못 배운 티가 나네 마네 싸우더라고. 지젝에 대한 반론이 끝에 나오던데, 쟁점은 이런 거지. 라클라우가 포스트막시스트다 이거잖아? 당신 개념대로 하면 최종심급이 경제가 아니고 계급갈등이 근본 모순도 아니지 않느냐! 라고 지젝이 그러는 건데, 거기에 대해 라클라우가 넌 내가 하는 얘기를 좌파연하느라 일부러 못 알아먹은 척 하고 있구나! 라면서 근데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진정한 투쟁’은 어디있냐? 화성인이라도 기다리는 거니? 라고 하는 뭐 그런 논쟁이다. 그러니까 ‘대가’들도 이런 논쟁이나 하고 있었던 거지.

뭐 이런 논쟁도 배부른 얘기이겠습니다만… AI와 주식투자와 유튜브의 시대에… 아무튼 그리하여 돌고돌아 올해는 또 어떤 방향이든 이런 쪽으로 힘을 내보기로 했다는 말씀. 밥 먹고 좀 있다가 일본 드라마 본 이야기도 남길 생각.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극우정치, 라클라우, 지젝,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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