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딴 걸 선거라고
바둑은 두는 것만큼 복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여론조사부터 투표용지 매수까지, 맞는 게 하나도 없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도대체 뭔 소리를 하며 살고 있나 복기하기 위해 남긴다.
오늘 오전부터 모 유튜브에 가서 여러가지 얘기를 했는데, 그 유튜브를 위스퍼X로 화자 분리 자막 추출해가지고 AI한테 내가 한 얘기만 내용 요약을 시켰더니 이렇게 뽑아왔다. 다소 거칠게 정리했고 중간에 그냥 넘어간 부분도 있어 보이지만 대체로 결은 맞는 거 같다.
김민하 평론가는 이번 선거 결과를 전체적으로는 민주당 및 집권 세력의 ‘대승’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서울, 부산 북구 갑, 평택 등 핵심 격전지에서 패배한 것을 두고 “시험은 다 잘 봤는데 국영수를 망친 격”이라며 뼈아픈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유권자들이 집권 세력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특정 지역에서는 보수 진영의 공세를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김민하 평론가가 제기한 세부적인 주장과 분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서울시장 선거 패배 원인 분석
서울은 본래 여론조사 추이 상 민주당에게 불리하고 오세훈 후보가 앞서가는 어려운 판이었습니다. 정원오 후보는 전통적인 민주당의 색채(세금 부과, 이념적 접근 등)를 지우고 ‘유능한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부각하는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 전략은 오세훈 시장을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는 ‘반(反)오세훈 전선’을 강하게 형성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도봉, 관악, 금천 등 민주당 전통 지지층의 투표율을 충분히 끌어올리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반면 오세훈 후보는 정원오 후보를 ‘제2의 박원순’으로 규정하는 프레이밍 전략을 썼고, 이것이 강남권 등 보수 유권자들에게 부동산 규제와 세금 폭탄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여 보수층의 높은 결집과 압도적인 투표율을 이끌어냈다고 지적합니다.
2. 20대 남성 및 보수 유권자의 심리 분석
20대 남성 일부가 보수화되거나 극우적 담론에 동조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지위 박탈에 대한 위협’과 ‘피해자성’으로 설명합니다. 이들은 실제로 자신의 지위가 하락하지 않았더라도, 한정된 자리를 두고 다른 불이익을 받던 존재(여성 등)들이 치고 올라와 자신이 도태될 수 있다는 공포를 느낍니다. 보수 진영은 재개발·재건축을 막는 세력을 ‘자유를 억압하는 좌파’로 이념화하여 이들의 공포와 불만을 성공적으로 포섭했다고 분석합니다.
3. 국민의힘 당내 권력 지형과 향후 전망
장동혁 체제는 선거 과정 내내 지역 거부 반응과 역효과를 낳았으므로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봅니다. 반면 한동훈 후보는 선거 막판 장동혁과의 거리를 두며 정권 견제론을 흡수하는 전략을 썼고, 당선 이후 영남과 부산 지역의 지분을 바탕으로 당내 영향력을 키울 것으로 전망합니다. 특히 서울시정에 묶여 운신 폭이 좁은 오세훈과 달리, 한동훈은 당 밖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하며 반(反)장동혁 전선 안에서 임시 동맹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4. 부산 북구 갑 및 평택 선거 실패 요인
부산 북구 갑의 하정우 후보에 대해서는 애초에 색깔이 옅은 후보를 내세워 중도 스윙보터층을 흡수하려던 전략이 한동훈의 영리한 캠페인에 막혀 실패했다고 분석합니다. 한동훈은 하정우를 지역 기반이 강한 전재수(시장 후보)와 철저히 분리시켜 하정우의 무능함을 부각했고,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이 ‘시장은 전재수, 국회의원은 한동훈’을 뽑는 교차 투표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평택 선거에서 벌어진 조국혁신당과 민주당의 갈등은 시기가 적절치 않았던 섣부른 합당 제안과 선거 연대 결렬이 낳은 ‘외통수’라고 비판합니다. 조국혁신당이 독자적인 제3당으로서의 비전을 증명하지 못한 채 민주당 지지층을 빼앗기 위해 네거티브 캠페인에 몰두하는 모순을 보였다고 지적합니다. 김민하 평론가는 정치인 조국이 이번 선거를 통해 이른바 ‘조국 사태’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긍정적으로 반전시키는 기회로 삼았어야 했으나, 오히려 과거의 부정적 인식을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아쉬운 결과를 낳았다고 꼬집습니다.
5. 선관위 논란 및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시각
투표 용지 부족 사태 등으로 불거진 선관위 부실 관리 문제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시스템 개편이 현실적으로 매우 꼬여있는 문제라고 진단합니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업무 감사를 거부하는 논리, 즉 민감한 정치 자금 및 후원금 내역이 집권 세력에게 넘어가 정치 탄압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를 무작정 무시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이 사안에 끼어들면서 합리적인 제도 개선 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오세훈 측의 ‘제2의 박원순’ 프레임 전략에 대해서는 선거 과정에서 좀 심각하다고 봤는데, 이 얘기를 글로도 썼었다. 아래 글이 5월 21일 입력으로 되어 있으니까 실제 쓴 거는 그 이틀 전이나 그럴 것이다. 물론 글로 쓰기 전에 이미 말로도 떠들었다.
‘정원오는 제2의 박원순’ 프레임의 최종 기착지는 부동산 문제다. 유권자가 보기에 두 후보는 부동산 대책 철학에서 큰 차이를 드러내는 것 같지는 않다. ‘착착개발’이냐 ‘신통기획’이냐 등의 레토릭, 공공과 민간의 역할 등 세부 정책 차이가 있을 뿐 세금으로 집값 잡는 데 반대하고, 공급 중심 대책을 앞세우며, 1주택자 세부담 완화를 주장하는 방향은 유사하다. 이러면 실행 의지나 실적이 쟁점이 되는 게 당연한데, 이 경우 현직 시장에 아무래도 불리한 논쟁 구도가 형성된다. 직전까지의 시정 평가 위주로 논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 후보가 “박원순 시장 시절 재개발 재건축 사업 구역 389군데를 해제했다” “박원순 전 시장 시절 부동산 시장이 완전히 빙하기에 접어들었다”고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은 이 구도를 뒤집기 위한 시도다. ‘오세훈 시정’에 대한 평가 구도를 ‘박원순 시정’ 평가로 뒤집어 자신의 위치를 ‘디펜딩 챔피언’(전 대회 우승자)이 아니라 ‘도전자’에 놓이도록 해서 ‘언더도그’(약자)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박원순=운동권=성추문=민주당=부동산 정책 실패’라는, 반대의 대상으로서 개념 사슬은 이를 위해 고안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슬이 ‘이재명=문재인 정권’ 프레임과 연결되면 오세훈식 포퓰리즘 동원 논리가 완성된다.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9356.html
이대남 얘기는, 또 이 얘기 하면 할 말들 많아 가지고 이 얘기 저 얘기 하겠지만, 얘기가 나와서 한 얘기니 그냥 넘어가시고, 피해자 정체성이 극우포퓰리즘의 연결 고리 중 하나가 된다는 얘기는 최근 한겨레에 실린 신진욱 교수의 글에도 나온 바 있다.
오스트리아 언어학자 루트 보다크(Ruth Wodak)에 따르면, 신극우 전략은 ‘도발-부인-피해자화-전치-주류화’의 패턴을 보인다. 계산된 모호성으로 도발적 메시지를 던지고, 비난에 처하면 의도성을 부인한다. 제재가 가해지면 ‘전체주의’, ‘파시즘’을 비난하며 자신을 억압받는 피해자로 만들고, 쟁점을 ‘표현의 자유’로 전치하여, 자신들의 도발을 사회가 관용하게 만든다.
이스라엘 인사가 쟁점을 전치하는 과정에 좌파 혹은 리버럴 이론을 왜곡해 갖다 쓰는 현상이 일어난 바 있는데, 그 피해자 중 하나가 심지어 지젝이었다는 점에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감정을 느끼게 된 바도 있었다.
충격적이게도 고프만은 정책 결정자를 위해 불법적 폭력을 대신 저지를 수 있다는 논리에 대한 지적 근거로 나를 꼽았다. 물론 비판 이론이 반동 세력에 의해 전유되는 현상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이스라엘군은 오랫동안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포스트구조주의 개념을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도시전 수행의 작전 이론에 활용해왔다. 디지털 신봉건주의의 설계자라고 할 수 있는 피터 틸은 르네 지라르를 왜곡하여 전유한다. 우파 포퓰리스트들 역시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좌파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혹시 내 이론 안에 고프만이 전유할 만한 요소가 있을까? 단호하게 말해 없다. 나의 작업은 현대 국가권력이 자신의 법질서를 위반해가며 불법적 폭력을 동원해 권력을 재생산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일이었다. 고프만은 이를 국가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뒤집어 권력이 법을 위반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전략으로 사용한다. 억압자가 자신과 같은 이들을 비판하는 이론을 왜곡하여 오히려 자신들의 범죄적 활동을 정교화한다는 점에서 놀라운 아이러니다.
놀랍게도 우리 역시 이러한 일을 이미 겪었는데, 그게 바로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 타령이다. 문재인을 반대하는 것이 곧 자유민주주의라는 타령을 하고 염병을 하더니 지가 사실상의 독재인 내란으로 달려갔다. 즉,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론으로 내란을 정당화 한 셈이다. 근데 이런 방식의 접근(커피를 선택할 자유 등)이 아직도 젊은이 일부에는 먹힌다. (먹히는 이유가 있는데 그 얘기는 많이 했으니 생략.)
한동훈 씨가 보수 재건을 한다는데 그 내용이 2022년 윤석열(상대를 반대하기만 하면 저절로 뭐가 된다는…)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오늘 어느 방송에서 2024년 윤석열 반대로만 보수 재건이 되지 않는다, 2022년 윤석열까지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이 얘기를 오늘 낸 글로도 썼다.
물론 대부분의 뉴스 콘텐츠 소비자들에게는 선거 진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찾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