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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극우정치

극우에 대해 모르면서 극우 딱지 붙이지 말라는 왕년의 진보

2026년 7월 28일 by 이상한 모자

마린 르펜. 21세기 극우 얘기하면 항상 예로 드는 인물이다. 사실 그 이전에도 극우는 자기가 극우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 누가 봐도 극우에 해당하는 주장을 당당하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마린 르펜부터는 전략이 다르다. 극우적 주장을 애매하게 한다. 일부러 전선을 교란한다. 포퓰리즘과 결합한 극우의 특징이다. 이 얘기를 글과 유튜브 등을 통해 수십차례는 한 거 같다. 그러나 포퓰리즘이 뭔지부터에서 갈피를 못 잡는다. 이제 챗GPT가 있어서 좋다. 챗GPT한테 꼭 물어보시오! 포퓰리즘이 뭔지! 최신의 학술적 정의로 설명해달라고 하세요.

아래는 한겨레 오늘자 지면에 실린 마린 르펜 이야기.

르펜의 정치 노선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로 요약된다. 그는 2016년 2월 국민전선 세미나에서 우파 공화당 탈당파 출신들을 향해 “나는 여러분이 몸담았던 우파를 잘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좌파는 물론 기존 우파 정당도 ‘기득권’으로 선 그으며, 자신은 이른바 ‘국민우선주의’를 펴겠다는 것이다. 부친 장마리 역시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사회적으로는 좌파, 경제적으로 우파, 국가적으로는 프랑스”라고 요약했는데 르펜은 이를 이어받는다.

르펜의 구상에서 국가는 긴축 없는 재정 집행과 서비스로 국민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수도·전기 등 공공요금은 낮추고 소상공인 세 부담을 줄여 서민들의 가용 소득을 높인다. 공적 연금의 재정 건전화를 위해 법정 정년을 늦추고 보험료 납입 기간을 늘리는 식의 연금 개혁에는 반대한다. 작은 정부와 시장 자유를 주장하는 기존 우파와는 다른 주장이다.

(…)

르펜은 아버지가 남긴 사상적 유산 중 집권에 걸림돌이 될 만한 반사회적인 노선은 제거하려 애써왔다. 당원들의 공개적인 유대인 혐오, 여성 혐오, 나치 추종 발언 등을 금지하며 ‘탈악마화’를 시도한 것이다. 2015년 87살의 아버지가 반유대주의 성향 매체 ‘리바롤’ 인터뷰에서 “(나치) 가스실은 전쟁의 한 세부사항이었을 뿐”, “북유럽과 백인 세계를 구하려면 러시아와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 등의 주장을 쏟아내자, 르펜은 아버지를 당에서 제명했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270235.html

이러한 마린 르펜은 극우인가? 극우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당연하게도 그렇다. 기사의 다음과 같은 부분 때문이다.

르펜은 옛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출신 무슬림 이민자를 향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26일 엑스에 “이슬람주의는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그 지배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전체주의 이념”이라고 못박았다.

그의 모든 여성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어쩌구 서사는 결국 무슬림을 쫓아내자는 극우적 목표 달성을 위해 작동한다. 세상을 일반 국민과 기득권으로 나눠 일반 국민을 동원하는 포퓰리즘적 논리가 극우와 결합한 것이다. 그래서 극우포퓰리즘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걸 제일 잘 아는 것이 조선일보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선우정씨 칼럼을 얘기한다. 리바이벌 하지 않고…

그런데 왕년의 진보라는 사람이 어제 조선일보에다가 이런 칼럼을 막 써놓은 것이었다.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극우’라는 유령이. 최근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검색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극우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난동으로 부쩍 늘었다가 잦아드는 듯싶더니, 스타벅스와 배재고 야구부의 ‘탱크 데이’ 및 조국 전 대표의 ‘무섭노’ 파동으로 다시 늘었다. 극우를 규정하는 글을 읽다 보면 극우가 마치 체계적인 이념을 갖춘 세력 아닌가 착각하게 된다. 국민을 죽이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노태우 극우 정권과 공산주의로 무장한 극좌 운동권이 격렬하게 대립하던 1980년대로 회귀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

좌·우 개념은 철학과 가치관에 근거해서 ‘사회를 어떻게 설계하고 실현할 것인가’라는 이념의 영역이고, 보수·진보는 ‘국가와 사회의 여러 현안을 어떤 순서와 속도로 개혁하고 유지할 것인가’라는 태도의 영역이다. 이렇게 좌·우와 보수·진보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는 ‘우파는 보수, 좌파는 진보’라는 도식이 통용되고 있다. 그 결과 좌·우와 보수·진보 개념이 뒤섞여 한국의 정치·사회적 좌표가 진보, 보수, 극우라는 세 진영만 존재하는 듯한 집단적 착시가 생긴다. 지금의 극우 담론은 그 도식에 어물쩍 묻어가고 있다.

(…)

극우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극우가 정치 좌표로 성립하려면 우·중도·좌·극좌가 동일한 선상에서 정렬되고 비교돼야 한다. 이념 좌표를 정렬하려면 평등과 자유, 국가와 시장, 분배와 성장, 민족과 세계 등을 둘러싼 가치관·정책·행동을 규정하고 분석해야 한다. 거기서 형성되는 기본 이념은 우·극우로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좌·극좌로서 사민주의와 공산주의 등이다. 거기에 또 여성·소수자·환경·이주노동자 등의 현대적 사안을 보태야 한다.

엄밀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프랑스 극우 국민전선의 전 대통령 후보 마린 르펜이 페미니스트이고, 우파 트럼프 정부의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성소수자이며, 탈원전 정책을 펼쳤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우파인 것처럼, 페미니즘이나 환경주의 등은 그 자체로 좌·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이념에 가깝다는 점이다.

결국 극우 담론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대한민국의 이념 좌표를 다시 정리하고 그 위에서 극우를 규정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는 그것이 없다. 혹시나 해서 논문과 책을 살폈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 본 것에 따르면, 한국의 극우 담론은 어떤 현상 또는 집단에 대한 낙인 말고는 없다.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6/07/27/W73POZMCLBGB7PZZXMSCZHQSTA/

이 칼럼은 여러 문제가 있다. 첫째, 무식한 소리다. 앞서 얘기했다. 요즘 극우의 트렌드는 포퓰리즘과의 결합이다. 포퓰리즘이야말로 좌도 우도 아니다. 챗GPT한테 물어봐라. ‘포퓰리즘은 중심이 얇은 이념이라는 데, 이게 무슨 뜻이야?’ 이렇게 물어보시라. 글로벌 극우가 모두 이 전략을 택하고 있는데 뭔 우 중도 좌 극좌가 동일 선상에서 정렬돼야 비로소 극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소릴 하고 있나? 그 논리로 얘기하면 이 세상에 극우는 없는 것이다. 트럼프도 극우가 아니고 마린 르펜도 극우가 아니다. 극우와 포퓰리즘의 결합은 이미 2천년대 초반에도 학자들이 논하고 있었다. 그 시절에 골방에서 문건 읽고 쓰던 전진 회원들이 세상물정을 몰랐어서 그렇지.

둘째, 좌 우 보수 진보 개념이 뒤섞였다고 하는데, 느낌이 온다. 진보 보수 개념이 좌우와 다르다면 진보적 우파, 보수적 좌파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그런 표현과 규정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얘기하는 건, 내가 몇몇 글에서 규정한 ‘반진보적 진보'(이념적 진보에 반대하는 것을 세상을  진보시키는 방식으로 진정으로 믿는 태도-가령 이준석 지지층의 그것-로 내가 볼 때는 결국 보수정치의 한 갈래)로 유권자가 조직되는 논리에 이 사람이 동조할 수 있다는 거다.

추가: 막 쓰다가 이 얘길 빠뜨렸네. 보통 마린 르펜이 페미니스트고 극우정당이 성소수자 대표를 뽑고… 이렇게 가면 일반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나? 아 이제 극우정치가 페미니즘과 성소수자까지 활용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잖아? 근데 이 사람은 반대로 생각을 한다. 마린 르펜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한다고? 아~ 페미니즘은 원래 좌우랑 상관이 없구나… 페미니즘, 기후환경, 성소수자 이런 거는 원래 좌우의 문제가 아니구나~ 아 미쳐버린다.

셋째, 결국 뭐냐? ‘스타벅스, 배재고, 사투리 논란은 86세대의 이대남 극우 딱지붙이기를 위해 동원된 수단’이라는 논리를 자기 식으로 반복한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사람이 이러고 있다는 거 자체가, 이 사람이 극우포퓰리즘으로 조직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면 또 막 코웃음 치면서 내가 극우라니… 내가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고 이런 생각도 하고 저런 생각도 이런 사람더러 극우라고 하는 이런 나쁜 자식 어쩌고 이럴텐데, 마린 르펜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 극우활동가인줄 아시나? 마린 르펜 지지율이 몇 퍼센트가 나오는지 함 찾아보쇼. 내가 계속 말하지? 극우정치에 조직되는 유권자가 있는 거지, 그 사람이 얼마나 극우인지 그거는 지금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라고.

이러니까 윤석열 정부에 참여를 하고… 내란을 일으킨 다음에 그것에 대한 평가나 반성도 불분명한 상태이고 한 것이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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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쉬와 포퓰리즘

2026년 6월 6일 by 이상한 모자

선관위 얘기로 난리인데,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층위가 3개다. 네이버 링크로 연결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980599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980605

인용된 주장이나 대자보 사진, 등장하는 단체 등을 보면 1) 윤어게인-부정선거류, 2) 자칭 합리적 보수류가 자기들 사이의 봉합이 안 되는 균열인 윤석열 문제를 일단 덮고 공동대응 하는 중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선관위 문제가 좋은 명분이 되고 있는 거다. 한동훈이 이준석처럼 ‘이게 부정선거인 건 아니다’라고 하지 않고 ‘부실선거 용서할 수 없다’하는 이유를 여기서 알 수 있다(또한, 여기서 이준석이 저기서도 비주류가 되었다는 게 다시 한 번 확실히 드러난다). 그 다음에 기사에 일부 등장하는 3) 진보 내지는 리버럴 계열의 선관위 비판이 고명처럼 얹혀 있는데, 여기는 결이 다르지만 하여튼 담론적으로 동원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참정권 훼손’이라는 텅 빈 기표를 통하여 나머지 요구가 등가 사슬로 구성되는 전형적 방식의 조직과 동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란 구호는 이 징후이다. 2019년 조국 사태가 광화문 100만, 200만, 300만… 집회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보수정치의 신화가 있었는데, 정의와 공정이 훼손된 것에 분노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그 본질은 박근혜 탄핵 이후 우위에 선 진보-리버럴 일반에 대한 백래쉬였다. 내로남불이니 뭐니 하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조롱-밈이 이 시기를 전후 해서 이미 다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그게 선관위 문제로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인데, 이미 밑바닥에 재료는 충분했다. 영포티 밈 같은 거 봐라. 기성세대 조롱이야 늘 있지만, 내용이 왜 그런가? 아이유한테 스타벅스 결제 하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뭔가? 내로남불이다 뭐 그거 하려는 거 아닌가?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키든 말든 유권자의 40% 이상은 그 당을 그대로 지지했다. 미국 가는 장동혁처럼 대의명분이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그냥 조용히 있지만, 이번처럼 대의명분이 분명하면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또 의사표현 하는 거다.

인정을 해야 된다. 여기는 이미 그런 나라다. 미국과 유럽을 보면서 저기는 극우정당이 저렇게 판을 치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 안 그래서 다행이다 어휴 가슴 쓸어 내리고… 그게 아니고, 이미 여기가 그렇다고. 이미 극우가 집권도 해봤어요. 코리안 트럼프! 그럼 분명히 누군가 이렇게 말하겠지? 민주당 반대하면 다 극우입니까! 누가 민주당 반대하면 극우랬냐? 민주당 반대하면서 진보하면 극우 아니지. 근데 민주당을 반대하면서 극우를 하잖아.

그냥 보수랑 극우를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 또 이러실텐데… 늘 말씀드린다. 그걸 사람 기준으로 보면 안 되고, 사람들의 불만을, 요구를, 누가 어떻게 동원하느냐를 봐야 한다고. 서구의 극우정당 지지자도 다 불만을 가진 멀쩡한 사람들이에요. 정치적으로 극우정치로 조직이 돼서 문제인 거지. 그래서 극우-포퓰리즘이라고 하잖여. 극우-주체를 제거하면 정상적 사회가 된다는 생각이 틀린 거고, 사람들의 불만과 요구가 극우적 정치로 조직이 되는 게 문제인 것임. 극우정치는 답을 갖고 있고, 너네랑 우리가 답을 갖고 있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요.

요즘에 선거 결과를 보니 서울시 이대남은 대구보다도 보수화됐다 막 이러는데, 그럴 수 있겠죠. 두 가지 차원이 있다고 본다. 첫째, 물려받을 자산의 문제가 지위 상실 불안과 그게 야기하는 불만으로 이어지는 측면이 있고. 둘째, 정치가 그걸 극우적 방식으로 조직 및 동원을 했느냐의 문제가 있다. 오세훈은? 했다. ‘정원오=운동권=성추문=내로남불=부동산 실패=세금폭탄=박원순’ 이거. 추경호는? 안 했다. 거기는 그걸 할 필요가 없거든.

자 이렇게 쓰면 또 오독을 하고 추경호가 네거티브를 안 했다니 막 이럴텐데, 네거티브를 안 했다는 게 아니고 극우-포퓰리즘적 조직 동원 솔루션을 안 썼다고요… 그리고 또 누가 이준석은 부정선거 주장을 안 하니 극우가 아니군 하는데, 터커 칼슨이 트럼프 부정하면 극우가 아닌감? 답답하다. 근데 만날 이런 얘기 여기다 쓰면 뭐합니까. 그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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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는 이야기

2026년 4월 1일 by 이상한 모자

진보라는 사람들 일상을 봐도 진보적이지 않은 생활 태도는 어김없이 드러난다. ‘배우자 등처먹고 사는 활동가’라는 전형은 어떤가? 50대 남성 활동가가 사는 집에 가서 한 일주일 쯤 같이 지내봐라. 이런 사람이 무슨 진보를 논하나 싶은 장면이 여럿 나올 것이다. 비율로 따지면 일반인보다 낮기야 하겠지만.

그러나 현실 정치라는 건 어떤가? 이런 사람들이 진보적 정치를 지지하고 진보적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어찌됐건 세상은 진보적이 되어가고, 이런 존재조차도 변해가거나 도태되거나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1) 어떤 개인들이 얼만큼 진보적이다 2) 어떤 사람들이 진보정당에 투표한다 3) 어떤 사람들이 진보정치로 조직 혹은 동원된다… 라는 것은 같은 의미로 쓰일 수도 있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여러 번 얘기하지만 극우도 마찬가지다. 여러 말 할 것 없다. 서구를 봐라. 서구의 극우정치는 그렇게 잘 분석하는 분들이 자기나라 얘기는 왜 기본적인 ABC도 못 맞추나. 정치학자라는 분이 엊그제 신문에 쓴 글 보고 든 생각이다. 그 뿐만이 아니고 이런 류의 글을 잊을 만하면 어디든 간에 올려대는 일군의 사람들 때문에 피곤하다.

답답하니까 빨리 책을 내야한다 라는 생각을 하지만, 손을 안 대고 방치한 지가 오래되었다. 어찌어찌 정리하면서 구제책을 찾는 중인데, 오늘은 출판사 사장님을 만났다. 상반기에는 바쁘다고 하신다. 그래도 연내에는 될 것 같다. 어차피 선거 전에 안 된다면 천천히 가자. 안 팔리더라도 할 수 없다. 이외에 작년에 거든 다른 공저가 좀 있으면 아마 나온다. 나오나? 내가 듣기엔 그렇다. 진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원고를 넘긴지 열 달은 된 것 같은데, 이것도 참 기이한 일이다. 그리고… 좀 가벼운 걸 또 쓸 것이다. 뉴스 매일 보는 사람이 아닌,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 대의명분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뭔가 끊임없이 뭔가를 쓴 작업을 한 것 같은 사람이 된다. 성과를 장담하긴 어렵지만 뿌듯함이 있다.

최근 라클라우의 작업을 흝어 보았는데, 깜짝 놀랐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뭘 하듯, 난 몰랐는데 내가 하여간 포퓰리즘 얘기에 있어서는 이미 라클라우주의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분은 이걸 이미 20여년 전에 다 정리했다. 이 책이 올해 초에 번역된 이유가 다 있구나, 생각했다. 이 얘기를 접목하여 작년에 쓴 얘기를 손질하면 더 좋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판매량에 있어서는 늦어진 게 별로 좋지 않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오히려 늦어진 것이 전화위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느낀 것. 대가는 책을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구만. 물론 실제 아무렇게나 쓰지는 않았다.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러나 내가 만약에 책을 이렇게 쓰면 미친놈이라고 할 것이다. 저번에 편집자님이 얘기해 준 바, 내가 옛날에 쓴 책의 리뷰에 어떤 놈이 ‘못 배운 티가 난다’고 썼다고 한다. 난 신경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반응이지만, 그러나 자꾸 떠오른다. 배운 놈만 책 쓰라는 법이 있나? 그러면 평생 못 쓴다. 또, 배웠다면 어디까지 배워야 하나? 저자 되기에 자격은 뭐가 필요한가? 대학 졸업장? 석사? 박사? 네 주제에 맞는 얘기나 써라 이건가?

근데 라클라우 책에 보면 말이다. 자기들끼리도 못 배운 티가 나네 마네 싸우더라고. 지젝에 대한 반론이 끝에 나오던데, 쟁점은 이런 거지. 라클라우가 포스트막시스트다 이거잖아? 당신 개념대로 하면 최종심급이 경제가 아니고 계급갈등이 근본 모순도 아니지 않느냐! 라고 지젝이 그러는 건데, 거기에 대해 라클라우가 넌 내가 하는 얘기를 좌파연하느라 일부러 못 알아먹은 척 하고 있구나! 라면서 근데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진정한 투쟁’은 어디있냐? 화성인이라도 기다리는 거니? 라고 하는 뭐 그런 논쟁이다. 그러니까 ‘대가’들도 이런 논쟁이나 하고 있었던 거지.

뭐 이런 논쟁도 배부른 얘기이겠습니다만… AI와 주식투자와 유튜브의 시대에… 아무튼 그리하여 돌고돌아 올해는 또 어떤 방향이든 이런 쪽으로 힘을 내보기로 했다는 말씀. 밥 먹고 좀 있다가 일본 드라마 본 이야기도 남길 생각.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극우정치, 라클라우, 지젝,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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