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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포퓰리즘

깨알 통치의 시대

2023년 3월 9일 by 이상한 모자

대통령이 그랬다는 거야. 공영방송을 안 봐도 수신료를 꼭 다 내야 되는 거냐? 이게… 단순한 거 같지만 엄청난 질문이야. 엄청난 철학적 배경이 있는 거라고. 예를 들어 어떤 놈이 이랬다고 생각을 해봐. 난 복지제도 수혜를 하나도 안 보는데… 세금을 꼭 내야 되나? 이게 개소리 같지? 근데 어떤 사람한테는 이게 자유민주주의겠지. 이거는 엄청난 철학 그거라고. 수신료를 일반적으로 걷지 않으면 재원은 어떻게 해? 여기도 1사1렙? 자본의 개? 근데 그렇게 할 거면 MBC는 왜 이렇게 미워해…

아무튼, 그래서 지금 국민들 의견 수렴을 한대. 뭐 수신료 징수 방식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은 있지. 옛날 방식이잖아. 오죽하면 이상한 일본인들이 NHK 개박살내는 당을 만들어. 하세요. 하시라고. 근데 이 논의의 결말은 뻔하지. 이거 갖고 막 공영방송이란… 이런 얘기 하다가 막 반발하고 이러면 노조박살~~ 이거 한 번 더 시전하고 수신료 징수 방식 개혁을 위하여 이사회를 박살내고, 사장을 박살내고, 공영방송을 박살~~ 생각해보니 굿 아이디어다. 공영방송을 박살내면 수신료 얘기는 더 이상 안 해도 되겠지.

근데 그런 맥락을 다 떠나서, 대통령이 자다가 일어나서 어느날 “근데 수신료 꼭 내야 되나?” 이래가지고 막 뭐가 굴러가고, 그 굴러가는 상황이 정책과는 별 상관도 없고, 사람들이 이게 이상하다는 생각도 안 하는 그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해야 되냐? 대통령이 막 ‘건폭’ 유행어를 만들고 만족스러워 하고, 국토부 장관은 무슨 항공마일리지 얘기를 갖고 막 열내고, 건폭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고 막 그러고, 은행 통신… 이거 어떻게 봐야 되나?

지난 대선 잘 기억을 해보시면 심쿵공약 소확행공약이라고 있었음. 그게 그냥 선거 전략을 넘어서서 이슈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된 것임. 왜 이렇게 됐을까? 첫째, 큰 그림이 없어. 통치를 어떻게 해가지고 나라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생각이 없다고. 그냥 자유민주주의 타령이랑 레미제라블로 때우면 돼. ‘비정상의 정상화’ 이거 말하면서 쳇바퀴나 굴리면 된다고. 둘째, 그럼 큰 그림이 왜 없냐? 있어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지금 관료들이 큰 그림 작성할 능력이 모자라서 이런 거 같나? 하라고 그러면 쟈쟈잔 다 해내지. 근데 해봐야 소용없거든. 선거전략 뭐 큰그림 쟈쟈쟌 못해서 지난 대선이 그랬겠어? 그냥 소용이 없다고 보는 거지. 소용이 없어요.

셋째, 왜 소용이 없냐? 사람들이 큰 그림 자체를 믿지 못하게 여러분들이 만들어 놨어요… 봐봐. 전 정권은 뭐 마음에도 없으면서 거창한 큰 그림 여러 개 얘기했지. 전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큰 그림을 내놓고 실제로는 그 큰 그림 실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 큰 그림을 자기들도 안 믿어. 검찰개혁? 어떻게 됐냐! 전 정권은 이런 그림들 왜 내놨나. 보수정권에 대고 니덜끼리 해먹는다고 10년 가까이 욕하고… 탄핵을 한 이후에는 그게 또 사람들한테 먹혔거든. 그럼 지금 정권은 뭐냐, 큰 그림이란 어차피 다 사기다! 이런 여론에 편승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도 안 믿는 큰 그림 말하는 녀석들’과 ‘어차피 아무도 안 믿으니까 큰 그림은 얘기 안 하기로 한 녀석들’의 어차피 똑같은 정치인 거지. 이 얘기가 더 디테일하게 저의 그 저쪽이 싫은 책을 보시면 잘 나옵니다만… 아무튼 무슨 대통령하고 장관들이 커뮤니티 게시물 올리는 것처럼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게 다 이런 영향이다 이것임.

그니까… 사람들이 이제는 무슨 얘기를 하든 다 선동이라 그러고, 선동 안 듣겠다고 막 귀 두들기면서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막 이러는 거를 중립기어라고 그런다고. 이런 세상에 무슨 얘기를 더 하는가? 오늘은 왠지 그러네… 낮에 잠만 자서 그런가… 참 이상해. 나는 잠을 잔 것 뿐인데 왜 뒷목이 쑤시지? 아무런 의욕이 없다… 의욕이 없는데도 이런 거 쓸 정도면 내가 얼마나 지금 답답한지 알겠음?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수신료, 포퓰리즘

엘리트가 기득권 저항 운운하는 정치

2023년 1월 2일 by 이상한 모자

윤통이 자꾸 기득권의 저항 얘기를 하네. 자기는 개혁을 하려는데 기득권의 저항이 만만찮다는 거지. 여기에 노조에 대한 선전포고까지 곁들여 뒤섞으면 뭐가 되냐? 이것이 바로 극우포퓰리즘이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3037

가령 지난 대선에서, 어떤 운동권 단체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게 우선이라며 이재명=극우포퓰리즘 / 윤통=자유민주주의 이 도식을 주장하기도 한 것인데, 이제 어떠냐? 내가 그때도 그랬지? 자유민주주의 타령하지만 반공주의로 귀결된다… 내가 그 때도 여기다가 썼다고. 그 운동권 단체 일부 인사가 그런 주장도 했다대… 자유민주주의가 우선 구현돼야 좌파의 전략을 관철시킬 수 있다… 이게 무슨 스탈린주의 단계론의 속류적 변용인가? NLPDR? PDR?

하여간 윤통이 이 분들의 기대를 조금이라도 충족시키려면 적어도 엘리트 정권의 미덕이라도 보여줬어야지. 우리가 이끌테니 제발 따라주십시오라는 설득과 타협과 포용과 절충… 그런 거 있잖아. 근데 그게 아니고 이 쌔끼들 감히 나 윤-개혁의 앞을 가로막아? 혼 좀 나볼래? 이렇게 가면 이게 이제 뭐냐? 하여간…

여기서 우리가 아셔야 되는 거는, 역시 윤통은 극우포퓰리즘이고 더블민주당은 아니다 이런 게 아니고, 전 세계 민주주의가 그러한 길로 가는 어떤 조건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적인 어떤 증상이 아니고, 그냥 민주주의가 살아가는 과정일 뿐인 거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위기의 치유나 정상적 상태의 복구가 아니라 조건과 정세에 맞는 전략 전술의 실천이 중요한 것일 따름이지.

그런 점에서 올해 정치개혁 논의는 상당히 걱정되는 바인데, 결국 이것도 무슨 ‘개혁’이잖아. 각자 자기 유리한 거 말하면서 그게 ‘개혁’이라고 우기고, 사람들은 그 얘기 따라가다 지쳐서 널부러지고 그런 거거든. 늘 말하듯 정치개혁이든지 선거법개정이든지 대찬성이다. 대찬성! 그러나 그것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자타칭 진보들이 튼튼해야지 지금처럼 허약하면 될 것도 안 된다는 생각. 이러한 생각의 흐름을 좀 정제된 그러한 태도로 쓴 것이 위의 링크의 글이다 이 말이요.

엊그제 보니 누가 보수언론에 연금개혁 관련 고이즈미 얘기를 갖다 붙이던데, 고이즈미 얘기하면 또 할 말 많거든? 그건 나중에 함 해봅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극우주의, 정치개혁, 포퓰리즘

이준석에 대한 두 가지 생각

2022년 8월 14일 by 이상한 모자

이준석이 한 시간을 떠들었는데 사람들은 핵심 줄기엔 관심없고 그냥 누구를 어떻게 욕했다 정도만 기사를 쓰고 떠들고 그러고 있다. 뭐 거까진 그렇구나 싶은데 어떤 시사평론가가 썼다는 글을 보고는 한숨이 나왔다. 술 먹고 썼는지… 무슨 얘길 하는 건지 모르겠다. 평소 누구랑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이준석의 핵심 논리 요약하면 이런 거다. 석열왕이 음모론(부정선거)과 반공이데올로기 등으로 대표되는 구식 정치에 경도되고 있는데 당이 이걸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윤핵관들이 오직 사리사욕을 위해 대통령과 이준석 사이를 이간질하고 비대위 전환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럴 수 있는 이유는 전통적 보수층의 지지와 지역구도에 안주하면 정치적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당후사를 말하기 전에 최소한 서울 강북이나 수도권 열세지역에 출마를 해서 스윙보터를 잡아보시길 바라고, 그게 아니면 꺼져라… 언론 제목에 등장하는 자극적인 표현들은 다 이 논리 구조 안에 위치한다.

특징적인 것은… 기자회견 전문 잘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온다.

오로지 자유와 인권의 가치와 미래에 충실한 국민의 힘이 되어야 합니다. 보수정당은 민족주의와 전체주의, 계획경제 위주의 파시스트적 세계관을 버려야 합니다.

민족주의 전체주의 계획경제 파시스트는 이 분들이 원래 더블민주당에다가 갖다 붙이던 레떼르다. 이걸 통해 이준석 정치가 어디에 전선을 긋고 어떻게 자기 규정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자유와 인권이 고작 https 차단 해제 같은 걸로 귀결되는 게 이준석식 정치의 뭐 어떤 아기자기함인데, 그런 아귀자귀함 애귀재귀함은 차치하고 어쨌든 뭔가 나름의 가치지향적인 명분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태도는 아무 생각 없는 퇴행으로만 일관하는 상대쪽보다는 훨씬 낫다고 본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이준석 정치가 상징하는 것은 합리적 보수의 변질이기도 한 것이란 점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책에도 쓰고 글에도 쓰고 방송에서도 얘기한 바와 같이 원래 합리적 보수란 인간의 얼굴을 한 보수, 따뜻한 보수, 온건한 보수를 뜻하는 거였다. 한 얘기 또 하고 또 합니다만, 박근혜 때 유승민도 그랬고 영국의 데이빗 캐머런도 그랬다.

이준석대에 와서는 자유지상주의적인 급진화가 이 자리를 대신했다. 이럴 수 있었던 건 이준석이 대단한 정치철학자여서가 아니고, 그가 타깃팅하는 유권자층이 온건한 보수보다 급진화된 보수에 이끌리기 때문, 즉 장사가 더 잘 되기 때문이다. 그럼 그 유권자층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누차 지적하지만 제가 책에 쓴 반대의 정치가 작용하는 이들 세계관의 맥락에서 온건한 보수는 ‘유사-진보’에 지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합리적 보수’가 ‘옛날 보수’에 대한 반대의 의미로만 작용하고, ‘진정한 보수’가 ‘진보’를 명확히 반대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여지는 방식의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랄까 그런 결말인 셈이다. 진정한 포퓰리즘과 ‘나는 포퓰리즘이 아니다’라는 포퓰리즘의 대결… 이런 딜레마는 뭐만 나오면 검찰반대 과일논쟁으로만 접근하는 더블민주당에도, 양당정치를 비판한다지만 사실은 별 할 말도 없는 진보정치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여러분들이 적는 SNS 메시지와 댓글에도 이게 다 반영돼있다.

그런 난국 속에서… 타산지석이라고 했는데, 방식과 내용을 둘 다 보시라. 우리는 이준석 정치의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 그런데 만일 이준석과 똑같은 방식으로 어떤 진보가 승부를 걸고자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사실 과거에 좌파포퓰리즘 그런 얘기 할 때 그 비슷한 글을 여러 차례 쓴 일도 있다. 포퓰리즘적 시도는 대안적인 정치로 사람들을 이끄는 수단이 될 수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 뒤집어 말하면 대의명분이 분명한 포퓰리즘적 시도로부터 대안적인 정치로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현실적 접근은 가능하고 또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준석의 난은 이중적 감상을 갖게 하는 사건인 것이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이준석,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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