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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포퓰리즘

왜 대선판에 시대정신이 실종되었는가에 대한 방송 내용

2022년 1월 23일 by 이상한 모자

어제 방송 내용이다. 현상을 갖고 얘기했는데, 근본적으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냐에 대해선 신간을 잘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이다.

(양당 후보 똑같은 공약 내용 소개)

양 후보 공약 이렇게까지 똑같은 이유에 대한 한겨레의 보도 인용.

이런 ‘공약 수렴’ 현상은 두 후보의 공략 대상이 일치하는데서 비롯된다. 여야 모두 이번 대선의 최대 승부처가 서울·수도권과 2030 청년이라는 데는 이견을 보이진 않는다. 민주당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여야 모두 2030과 서울 민심을 주로 공약하다 보니 과녁에 화살이 꽂히는 데가 비슷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캠프마다 ‘눈치싸움’도 치열하다. 특히 상대 일정과 공약을 정확히 파악해 발표 시점을 조율하는 것이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상대 후보가 어디 행사에 간다 그러면 공약이 뭔지, 정보망을 최대한 가동해서 알아내 우리가 먼저 발표해버리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책 차별성이 없다보니 경쟁적으로 ‘수위’가 높아지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선대위 관계자는 “실컷 준비해놨는데 상대가 먼저 내보내면 힘 빠진다. 그러면 우리끼리 공약은 다 똑같아진다면서 위안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차별화하려고 50받고 100을 발표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러다 보니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른바 소확행 공약, 심쿵 공약 같은 이른바 생활밀착형 공약, 마이크로타겟팅도 유행인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에서 재미를 봤다고 해서 각광받고 있는 방식이다. 다만 이 역시 시대정신을 꿰뚫는 담론을 제시하기보다는 각자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겠다는 형식이어서 담대한 변화를 얘기하며 변화의 대상을 발굴한 오바마의 사례와는 달라 역시 시대정신의 실종을 보여준다.

이런 방식의 문제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걸 다 들어줄 수는 없다는 걸 간과한다는 거다. 재원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서로 상충하는 바도 있을 수 있다. 그럴 경우 목소리 큰 사람의 이익이 우선되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거대담론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선거 때 거대담론이라는 건 뭔가 크게 바꾸자는 경우가 많고 그 당위는 대의명분으로부터 온다. 대의명분을 내세운 정권이 유권자들을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그 다음 대선은 이익투표 흐름이 강화된다. 대의명분은 믿을 수 없으니 나의 이익이라도 보장해달라는 것인데 이게 각자도생이다. 그러니 시대정신은 실종되는 것이다.

그나마 참여정부 말기 이명박 후보는 토건개발공약 등으로 차별화 해 거대담론 부재를 극복했다. 그런데 이번 대선의 경우는 경제 상황이나 코로나19 등이 그것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이재명 후보가 슬로건에 ‘나를 위해’란 문구를 넣은 것은 정확히 이 개념을 따라가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의 공정과 상식도 마찬가지다. 진보를 내세운 정권의 내로남불 때문에 각자가 손해를 봤으니 이걸 되돌려야 한다는 개념인데, 그래서 국민을 약탈했다는 표현을 즐겨 쓴다. 이게 유권자 각각의 각자도생을 가능하게 해주겠다는 얘기다.

윤석열 후보의 단문 메시지 방식도 주목받고 있는데 여성가족부 폐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폐지하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할 거냐를 따져보면, 어차피 유사한 역할하는 부처 다시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문 메시지는 이 모든 논란이 될만한 대목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게 한다. 메시지의 빈 공간을 유권자 각자의 기대와 요구로 알아서 채우도록 해 동상이몽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 점으로 보면 이것도 각자도생의 요구에 호응하는 방식이다.

(이 부분부터 시간 관계상 방송이 안 됨)

시대와 선거구도의 한계가 있다지만, 최소한 후보들이 왜 자신에게 투표해야 하는지 이유를 제시하는 것에 성실해야 한다. 이재명 정권과 윤석열 정권을 유권자들이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정권이 공정과 상식을 제대로 구현해 내는 정권이라면 자기 주변과 자기가 속한 조직부터 엄정하게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이재명 후보는 이재명 리더십, 이재명 정치가 뭔지를 보여줘야 한다. 과단성 있게 행동하지만 상대가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유권자들은 이재명 정치가 뭔지 체감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상대가 호응하지 않는다고 일방처리해버리면 문재인 정권과 다를 게 뭐냐는 비판을 받게 된다. 때문에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절실함을 보여줘야 한다. 추경 재원 논의로 만나자는데, 집 앞에라도 찾아가야 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윤석열, 이재명, 포퓰리즘

이명박근혜와 문정권

2021년 7월 13일 by 이상한 모자

어떤 좌파가 썼다. 이 정권은 포퓰리즘이다. 발명된 적대를 정파적으로 활용하고 민주주의로 정당화 했다… 이 정권이 역사상 처음으로 그런 일을 한 것처럼 얘기한다. 여러분이 자칭 민주세력들과 교분이 있으셔서 그들의 행태가 남 일 같지 않게 여겨져 그렇지, 이명박근혜도 똑같이 했습니다. 그들은 총칼로 집권했나? 민주적으로 다 했어. 여러분이 태극기쓰와 교분이 있었다면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서 반복해서 얘기하는 게 이거다.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는 그 자체의 개념이 아니라 거꾸로 그게 고치려는 현상의 원인 진단이 뭔지를 물어야 한다. 윤석열은 자유민주주의라는 한도 내에서 진보와 보수가 공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자유민주주의가 포괄하지 않는, 그러니까 ‘밖’에 있는 건 무엇인가? 이걸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진다. ‘586운동권의 철학’, ‘민중민주주의’라고 답하면 이명박근혜 되는 것이다. 윤석열은 국가보안법에 찬성한다. 청문회 때 다 했다. 다만 최근 인터뷰에서 ‘철학’이 아니고 ‘끼리끼리’를 문제 삼았는데, 그건 차라리 낫다고 본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리하길 바란다.

아무튼, 내 얘기는 아무리 문정권이 미워도 이명박근혜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이런 얘기가 아니다. 포퓰리즘보단 차라리 엘리트주의 막 이러다가 독재가 아니고 민주주의… 또 이 얘기 하고 영원한 반복인데, 애초에 그게 다 하나라는 거다. 동전의 양면이예요. 그게 한 세트예요. 그거를 깨닫는 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엘리트주의, 자유민주주의, 포퓰리즘

책을 써야

2020년 11월 9일 by 이상한 모자

얼마 전에 출판사 사장님을 만나 일본 라면과 커피를 대접 받았다. 책을 내자는 얘기를 한 게 어언 2년, 사장님은 최후통첩을 했다. 더 이상은 어렵다…

사실 나도 쉬운 상황은 아니다. 책은 사실 좀 쓰다가 몇 번 엎었다. 집중할 시간을 벌기 위해 다른 글을 좀 쉬기도 했었는데, 번번이 좀 쓰다가 처음부터 다시 쓰자는 생각이 들어 어쩔 수 없었다. 최근에는 다행스럽게도 일이 많다. 일이라는 건 많을 때 많은 거고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니까, 계약금이라는 돈의 문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계약금을 돌려주고 기약없는 출판의 희망고문은 끝내는 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왠지 이걸 마무리 해야만 한다는 그런 생각이 있다. 어쨌든 해야 할 말이 있지 않는가. 두 괴물 중 반드시 하나를 편들고 하나를 적대해야만 한다는 이 환상을 깨야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지 않느냐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려는 본격적인 시도를 뭔가 해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라는 이상한 소명의식에 사로잡혀…

마침 적당한 때인지도 모른다. 워싱턴 주류정치가 싫어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미국은, 다시 트럼프라는 아웃사이더가 싫어서 워싱턴 주류의 상징 조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다. 이건 과거에 쓴 조커라는 영화의 감상문을 한 번 찾아보시라. 귀찮지요? 링크입니다.

[월요칼럼] ‘조커’가 드러낸 엘리트 권력의 민낯

어찌됐건 책을 쓰는 일에는 다시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될지 안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살이 같은 생활 속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오해의 근거로만 착실히 쌓여가는 현실 속에 뭔가 숨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숨쉴 공간! 그렇다! 나는 내가 뭘 쓰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어쨌든 가보겠다는 것이다. 주류가 싫어서 비주류를 지지해놓고는 다시 비주류의 구호에 속았다며 주류를 지지하다가 다시 예정된 실망을 하는 이런 한심한 태도가 왜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그게 현대민주주의 정치의 본질이라는… 이런 팔릴리도 없고 내가 쓸 필요도 없고 비웃음이나 살 주제의 책을 쓰는 게 무슨 의미인가 고민하다가도… 살기 위해서는 책을 써야만 한다. 냉소사회는 읽어봤니?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민주주의, 엘리트주의, 책,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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