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경제공동체
몇 번에 걸쳐 말씀을 드렸으나, 여전히 유력 일간지에 ‘박근혜-최순실 경제공동체’ 이걸로 쓴 기사가 계속 나온다. 대표적으로 오늘 한국일보.
법조계에선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 사건에서 널리 알려졌던 경제공동체(함께 생계를 꾸려가는 사이) 개념이 문 전 대통령 사건에 적용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관련 경력이 없는 사위가 항공회사에 취업해 회사 대표보다 많은 급여를 받았는데, 검찰은 이 회사 실소유주인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준정부기관(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수장 임명의 대가로 문 전 대통령 측에 경제적 이득을 안겨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
사위의 월급을 어떻게 장인의 뇌물로 볼 수 있을까. 여기서 경제공동체 개념이 필요하다. 앞서 국정농단 재판에서 삼성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승마 지원을 놓고 특별검사 측이 제시했던 논리다. 당시 대법원은 공무원인 박 전 대통령과 민간인 최씨가 뇌물수수를 공모한 ‘공동정범’이라고 봤는데, 정유라씨의 말이 박근혜의 뇌물이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때처럼 검찰은 딸 부부의 이득이 곧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이라고 보는 셈이다.
만약에 이 기사가 단지 박근혜 뇌물죄 유죄에 대한 해설 기사였다면 경제공동체라는 말을 쓰든 말든 상관 안 했을 것이다. 왜냐면 ‘경제공동체’라고 하면서도 기사 내용에 대법원이 박근혜-최순실 관계를 뇌물죄에 있어서 공동정범으로 봤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경제공동체’라는 표현은 법률적으로 의미가 고정돼있는 표현은 아니므로, ‘박근혜 최순실을 공동정범으로 봤다’는 걸 ‘경제공동체로 봤다’고 굳이 표현한 거라고 주장한다면, 뭐 그것도 인정해줄 수 있는 얘기일 수 있어서다.
그런데, 이제 이걸 다른 사건에서의 ‘경제공동체’하고 묶어서 얘기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가령 누가 이렇게 말했다고 쳐봐라. “검새는 새다. 참새도 새다. 참새는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한다. 따라서 검새도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했느냐가 쟁점이다.” 이게 뭐다? 전형적인 범주 오류다….
여러차례 말씀드렸지만, 박근혜-최순실 사건에서는 두 사람 간에 ‘공동 가공의 의사와 이에 기초한 기능적 행위 지배를 통한 범죄의 실행’이 있었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기사 및 첨부된 표로 언급하고 있는 다른 사례, 즉 문재인-문다혜, 조국-조민, 곽상도-곽병채는 직계혈족으로 ‘경제적 의존관계’가 핵심이다. 문다혜(와 경제공동체인 서모씨), 조민, 곽병채가 받은 돈이 문재인, 조국, 곽상도에게 이익이 된 걸로 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거다.
이 기사에서도 마지막에 가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공직자가 청탁을 받고 그 대가는 다른 사람에게 제공토록 하는 ‘제3자 뇌물죄’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전 의원과 문 전 대통령 사이의 ‘부정한 청탁’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늘지만, 다혜씨 부부가 독립생계를 유지해 경제공동체가 아니라고 반박할 경우를 상정해 제3자 뇌물 혐의를 적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는 또 ‘경제공동체’가 공동정범이 인정된 게 아니라 경제적 의존관계가 증명된 케이스가 됐다. 나는 그래서, 이 기사는… 기자가 박근혜-최순실 케이스와 이 사건의 차이를 다 알면서도 ‘야마’를 잡기 위해 이걸 동렬로 다뤘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말 나온 김에. 이 기사가 정리한 또 하나의 포인트는 검찰의 수사 방향이다. 세 가지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앞서 인용한 제3자뇌물 얘기에 더해 아래 대목.
전주지검 수사팀은 이런 정황을 파악한 뒤, 문 전 대통령에게 부정행위 이후에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할 때 성립하는 ‘부정처사후수뢰’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 전 의원 이사장 임명을 뇌물 범죄 시작점으로 보는 것이다.
다만 검찰은 과거 화이트리스트 사건 판결 등을 고려해 부정처사후수뢰 외에 ‘직접 뇌물’ 혐의를 적용하는 것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후수뢰 적용을 위해선 이사장 임명에 문 전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청와대 업무 특성상 대통령이 인사에 직접 개입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
즉, 이런 거지. 1) 이상직 중진공 이사장 임명이 부당하다는 걸 입증할 수 있다면 부정처사후수뢰, 2) 이상직의 ‘부정한 청탁’ 등을 입증할 수 있으면 제3자 뇌물, 3) 1도 2도 안 되면 그냥 ‘경제공동체’ 이걸로 직접뇌물죄. 기사의 뉘앙스는, 전에도 썼지만 다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는 거다. 이건 길게 또 리바이벌 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