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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게임

게임적 세계관과 환원주의

2025년 4월 1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 보니까 어떤 분이 이대남과 게임적 세계관을 논하는 것은 환원주의라는 취지의 얘기를 했더라.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논의가 오히려 어떤 경우엔 편리한 논법이 될 수 있다는 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대남과 게임적 세계관: 오류와 인사이트

가령 저 같은 사람이 게임적 세계관을 언급한다면, 그건 ‘이대남은 게임을 해서 그렇게 된 거다!’라는 단순한 주장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저는 젊은 남성이 몰입하는 게임과 그들과 긴밀히 연결된 게임 담론(여성의 신체-이미지에 대한 식민지화 포함), 그리고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들의 ‘반대 동맹’, 다시 말하자면 ‘중국-북한-권위주의(전체주의)-진보-문재인-더불어민주당-페미니즘-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동맹에 결합하는 방식의 보수정치라는 하나의 모델을 얘기하는 거다. 그래서 지난 번에 게임을 금지시키자거나 게임 산업에 개입하자가 아닌, 게이머들이 게임 담론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얘기했다. 게임에 대한 얘기를 더 풍부하게 하고, 게임에 대한 비평을 더 살찌우자… 그런 얘기를 했더니 너처럼 잘난 게이머가 되라는 거냐 등 이상한 말씀들을 하셨지만…

이런 지적은 젊은 남성을 구성하는 유일한 요소가 게임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들을 특정한 영역으로 이끄는 많은 연결고리 중 하나가 게임적 세계관일 수 있다고 말하는 거다. 물론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여러가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그 얘길 또 다 같이 하면 된다.

내가 볼 때 오히려 문제는, 이대남이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며 뭘 느끼는지를 정확히 모르면서, 그들의 사고방식을 추적해보려는 일체의 시도를 기성세대가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든지, 이건 다 원래 기성새대의 책임이라든지, 2030은 괴물이 아니라든지 하는 이유를 들며 기피하려는 시도이다. 책임이 있기 때문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규명해야 하고 무슨 소리들을 하는지 들여다는 봐야 하는 것 아니겠나. 뭘 일단 알기는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냥 자기들이 익숙한 틀, 양극화와 경쟁사회와 등등(이런 얘기는 저도 많이 했다) 이런 걸로만 지금 상황이 설명이 되는가?

숏폼 동영상이 유행한지도 한참 됐지만, 요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으면 숏폼 자체보다 숏폼에 달려있는 댓글을 한 번 열독해보시라. 그만 살고 싶어질 것. 마찬가지로 게이머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한 번 심취해 보시라. 성향이 극단적인 곳일 수록 좋다. 그런 쓰레기 같은 글들을 보면서 이건 너무 극단적인 예라거나 이런 예외적인 것들을 갖고 일반화 하면 안 된다거나 하면, 그건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단의 사태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본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게임, 게임적 세계관, 이대남

이대남의 게임적 세계관

2024년 12월 25일 by 이상한 모자

사석에서 이대남의 게임적 세계관이 1) 왜 집회에 나오지 않는지, 2) 그럼에도 왜 일부 오타쿠들이 집회에 나왔는지를 모두 설명해준다고 얘기했는데, 요즘 무슨 얘기를 해도 그렇지만 잘 전달이 안 되는 거 같았다. 내가 볼 때 이른바 이대남은 게임적 세계관을 전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도 설명도 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걸 다들 알고 공감하는 얘기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오프라인에서 말을 하면 상대방이 이해 내지는 동의를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

첫째, 게임적 세계관은 철저하게 모든 일이 사이버 세상에서 구현된다. 콘서트든 티켓팅이든 어떤 항의든 오프라인을 전제하는 K팝 소비자(응원봉!)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이들은 커뮤니티 등에서 윤석열이 나쁜 짓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집회 참가 의지랄까 그런 거는 상대적으로 잘 가질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집회에 나간다는 거는, 큰 결단이다.

이건 반대쪽에서도 마찬가진데, 만약에 그래도 윤석열이 계엄 선포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임적 세계관의 이대남 누군가가 태극기 집회 같은 데 나갔다 라고 하면, 이거 정말 큰 결심 한 거다. 부들부들 떨면서 나가는 것임. 대신 게임적 활동에 익숙한 이들의 온라인 활동은 매우 적극적이고 활발한데, 악플을 단다든가 도배를 한다든가 다른 사람인 척을 한다든가 뭐 그런 거는 일당백이지. 그래서 CIA 신고 같은 거 열심히 하고 그러는 게 다 이 맥락임.

둘째, 근데 일부 이대남 오타쿠들은 집회 왜 나온 거냐? 바로 이게 윤석열의 사악함이 MAX인 이유이다. 윤석열이 한 짓은 게임적 세계관에서 보면 최종보스나 하는 일이다. 심지어 최종보스가 나타났다면 용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다른 건 다른 핑계를 다 댈 수 있는데, 최종보스까지 나왔는데 가만히 있는 건 안 되잖아? 그래서 오타쿠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결단을 비로소 내리고 집회에 나간 것임.

자 이게 집회에 대한 얘기고…

게임적 세계관에 대해 좀 더 들어가보면. 이런 거지. 가령 공정성에 대한 희구 이런 거 말야. 이대남들이 세상 살면서 어디서 ‘노력하면 그에 걸맞는 보상이 주어진다’는 걸 체험을 해봤기에 그게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문제 제기를 투표로 할 정도에 이르렀느냔 말이다. 이건 단지 ‘내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정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고, 이게 정상이다’라는 체험이 있어야, ‘내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은 역시 부당하다’는 구체적이고 집단적 감각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나.

내가 볼 때는 이 ‘공정성’을 체험하는 장이 게임이다. 게임이 게임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저가 들인 노력만큼의 보상을 획득하게 설계할 수밖에 없다. 그게 경험치든, 돈이든, 뭐든 말이다. 그게 안 되면, 확률형 아이템 이슈 이런 것처럼 완전 개작살 나는 거지. 무조건 공정해야 돼. 이건 온라인 오프라인 상관없어. 게임은 공정하게 설계돼야 해.

또 하나. 게임적 세계관은 ‘능력치’이다. 하다못해 삼국지를 해도 누가 잘나고 누가 못났는지를 줄세울 수 있다. 관우랑 장비랑 누가 더 세냐? 삼국지 소설 읽으면, 그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유비가 관우랑 장비 어느 한 쪽을 빼고 천하를 논할 수가 있겠니?

근데 코에이 삼국지로 가면 결론을 낼 수 있지. 관우는 무력이 98이고 장비는 99여. 일기토 붙이면 장비가 이기지. 다만 아이템을 주면 청룡언월도와 장팔사모에 능력치 보정이 붙어서 서로 무력이 비슷해진단다. 여포는 무력 100인데 방천화극이 또 추가 능력치를 주고 거기다가 코에이 삼국지 전통으로 숨겨진 능력치가 더 붙어서 일기토에서는 무조건 여포가 짱이지! 그렇지만 유비로 플레이를 하려면 계략을 써야 하고 내정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장비만으로는 안 되고 지력과 정치가 중간은 가는 관우가 있어야 한단다… 뭐 이런 식이잖아. 이게 게임적 세계관 안에 있는 이대남이 사람을 평가하는 ‘능력치’의 관점이다.

여기서 게임적 세계관의 이대남은 ‘나’에게 주관적인 능력치를 항목별로 늘 매기는 거지. 삼국지로 따진다면(꼭 삼국지라는 법은 없음. 롤플레잉 게임 레벨이어도 되고…) 나는? 통솔은 그래도 한 70은 되고, 무력은 65정도… 지력은 80정도 아니려나? 정치는 좀 자신없어 55정도 되고, 매력은 역시 대인관계에 좀 자신이 없지만 타고 나길 못나진 않았으니(못나지 않은 게 중요) 80정도? … 그리고 이 능력치에 걸맞는 대우를 요구하는 거고. ‘나’보다 능력치가 낮은데(레벨이 낮은데) 나보다 나은 대우 받으면 못 참고… 이러는 것.

그리고 이 게임적 세계관이… 날이 가면 갈수록 여성의 신체를 자원화, 식민지화 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게 큰 문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이 원리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다 내면화 한 상태임. 특히 일본! 그리고 거기에 따라가는 한국, 중국.

이 얘기를 몇 군데서 했는데 다들 ‘?’ 이런 표정을 짓길래 굳이 메모를 남겨봤다.

Posted in: 신변잡기, 잡감 Tagged: 게임, 세계관, 이대남

발더스 게이트 3로 코로나19와 AI를 연상한 글

2023년 12월 10일 by 이상한 모자

올해의 게임으로 뭘 꼽겠느냐 하시기에 팬텀 리버티 확장팩도 쳐주나요 했는데, 그럼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흠… 그런데 아무래도 발더스 게이트 3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나.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6754a89d-ed04-47aa-a31e-ac353b3b7a03

무릇 비평이라는 것은, 이게 얼마나 좋은 건지를 나열하기 보다는 작품을 통해 현실을 짚고 그 행위를 통해 다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역시 AI의 시대이기 때문에, 사이버펑크2077에 대해서도 언젠가 쓸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쪽은 ‘제거적 유물론’이 승리한 세상을 그리고 있다. 샘 올트먼이 쫓겨나는 과정을 굳이 일반인공지능을 둘러싼 갈등으로 보는 언론의 시각은 이미 완벽하게 제거론이 승리한 세상이다. 사이버펑크2077은 그 세상에서 우리가 우려하는 바가 어떻게 현실이 될 수 있는지, 어떤 시나리오가 가능한지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소재랄까?

어제는 모 라디오 프로그램의 송년회라는 자리가 있었는데, 잠시 게임에 대한 대화를 했다. 어릴 때부터 게임패드 조작이 매우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성별 편향과 그게 게임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잠시 얘기했는데, 뭐 그것은 나중에…

Posted in: 작품 감상, 잡감 Tagged: 게임, 발더스 게이트3, 사이버펑크2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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