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의 게임적 세계관
사석에서 이대남의 게임적 세계관이 1) 왜 집회에 나오지 않는지, 2) 그럼에도 왜 일부 오타쿠들이 집회에 나왔는지를 모두 설명해준다고 얘기했는데, 요즘 무슨 얘기를 해도 그렇지만 잘 전달이 안 되는 거 같았다. 내가 볼 때 이른바 이대남은 게임적 세계관을 전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도 설명도 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걸 다들 알고 공감하는 얘기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오프라인에서 말을 하면 상대방이 이해 내지는 동의를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
첫째, 게임적 세계관은 철저하게 모든 일이 사이버 세상에서 구현된다. 콘서트든 티켓팅이든 어떤 항의든 오프라인을 전제하는 K팝 소비자(응원봉!)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이들은 커뮤니티 등에서 윤석열이 나쁜 짓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집회 참가 의지랄까 그런 거는 상대적으로 잘 가질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집회에 나간다는 거는, 큰 결단이다.
이건 반대쪽에서도 마찬가진데, 만약에 그래도 윤석열이 계엄 선포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임적 세계관의 이대남 누군가가 태극기 집회 같은 데 나갔다 라고 하면, 이거 정말 큰 결심 한 거다. 부들부들 떨면서 나가는 것임. 대신 게임적 활동에 익숙한 이들의 온라인 활동은 매우 적극적이고 활발한데, 악플을 단다든가 도배를 한다든가 다른 사람인 척을 한다든가 뭐 그런 거는 일당백이지. 그래서 CIA 신고 같은 거 열심히 하고 그러는 게 다 이 맥락임.
둘째, 근데 일부 이대남 오타쿠들은 집회 왜 나온 거냐? 바로 이게 윤석열의 사악함이 MAX인 이유이다. 윤석열이 한 짓은 게임적 세계관에서 보면 최종보스나 하는 일이다. 심지어 최종보스가 나타났다면 용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다른 건 다른 핑계를 다 댈 수 있는데, 최종보스까지 나왔는데 가만히 있는 건 안 되잖아? 그래서 오타쿠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결단을 비로소 내리고 집회에 나간 것임.
자 이게 집회에 대한 얘기고…
게임적 세계관에 대해 좀 더 들어가보면. 이런 거지. 가령 공정성에 대한 희구 이런 거 말야. 이대남들이 세상 살면서 어디서 ‘노력하면 그에 걸맞는 보상이 주어진다’는 걸 체험을 해봤기에 그게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문제 제기를 투표로 할 정도에 이르렀느냔 말이다. 이건 단지 ‘내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정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고, 이게 정상이다’라는 체험이 있어야, ‘내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은 역시 부당하다’는 구체적이고 집단적 감각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나.
내가 볼 때는 이 ‘공정성’을 체험하는 장이 게임이다. 게임이 게임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저가 들인 노력만큼의 보상을 획득하게 설계할 수밖에 없다. 그게 경험치든, 돈이든, 뭐든 말이다. 그게 안 되면, 확률형 아이템 이슈 이런 것처럼 완전 개작살 나는 거지. 무조건 공정해야 돼. 이건 온라인 오프라인 상관없어. 게임은 공정하게 설계돼야 해.
또 하나. 게임적 세계관은 ‘능력치’이다. 하다못해 삼국지를 해도 누가 잘나고 누가 못났는지를 줄세울 수 있다. 관우랑 장비랑 누가 더 세냐? 삼국지 소설 읽으면, 그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유비가 관우랑 장비 어느 한 쪽을 빼고 천하를 논할 수가 있겠니?
근데 코에이 삼국지로 가면 결론을 낼 수 있지. 관우는 무력이 98이고 장비는 99여. 일기토 붙이면 장비가 이기지. 다만 아이템을 주면 청룡언월도와 장팔사모에 능력치 보정이 붙어서 서로 무력이 비슷해진단다. 여포는 무력 100인데 방천화극이 또 추가 능력치를 주고 거기다가 코에이 삼국지 전통으로 숨겨진 능력치가 더 붙어서 일기토에서는 무조건 여포가 짱이지! 그렇지만 유비로 플레이를 하려면 계략을 써야 하고 내정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장비만으로는 안 되고 지력과 정치가 중간은 가는 관우가 있어야 한단다… 뭐 이런 식이잖아. 이게 게임적 세계관 안에 있는 이대남이 사람을 평가하는 ‘능력치’의 관점이다.
여기서 게임적 세계관의 이대남은 ‘나’에게 주관적인 능력치를 항목별로 늘 매기는 거지. 삼국지로 따진다면(꼭 삼국지라는 법은 없음. 롤플레잉 게임 레벨이어도 되고…) 나는? 통솔은 그래도 한 70은 되고, 무력은 65정도… 지력은 80정도 아니려나? 정치는 좀 자신없어 55정도 되고, 매력은 역시 대인관계에 좀 자신이 없지만 타고 나길 못나진 않았으니(못나지 않은 게 중요) 80정도? … 그리고 이 능력치에 걸맞는 대우를 요구하는 거고. ‘나’보다 능력치가 낮은데(레벨이 낮은데) 나보다 나은 대우 받으면 못 참고… 이러는 것.
그리고 이 게임적 세계관이… 날이 가면 갈수록 여성의 신체를 자원화, 식민지화 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게 큰 문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이 원리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다 내면화 한 상태임. 특히 일본! 그리고 거기에 따라가는 한국, 중국.
이 얘기를 몇 군데서 했는데 다들 ‘?’ 이런 표정을 짓길래 굳이 메모를 남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