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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정치 사회 현안

기후만 얘기하는 기후위기?

2023년 6월 26일 by 이상한 모자

언젠가 여기다가도 ‘내일은 늦으리’ 그걸 언제까지 할 거냐, 그런 얘기를 쓴 일이 있다. 오늘 경향신문 지면에 ‘1.5도 너머 기후위기 적응을 말하다’란 기획이 실렸는데, 기사 내용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기획 자체는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https://www.khan.co.kr/series/articles/am039

내가 볼 때, 그러니까 과문해서인지는 모르나 언론 일반이 다루는 기후위기에 대한 톤은 여전히 “1.5도 상승을 막아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이상의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도, 하긴 하는데 주변적으로 다루거나 소극적으로 얘기할 따름이다.

대다수 일반 시민에게 기후위기는 ‘차카게 살자’ 이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조차 오직 ‘기후’만을 말하는 답답한 일이 일반적이다. 그냥 하던대로 하는 사람들이 많고, 언론보도도 이를 반영한다. 매너리즘이다. 그러한 일이 일반적이 되어 있으므로 기후위기에 별 관심없는 사람들도 이미 이 문제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를 말하면 어떤 전형적인 기후위기-스토리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상상하고 그걸 근거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돈룩업 같은 게 대표적이다(나는 이 영화가 양가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 유효한 질문은 “1.5도 상승을 막지 못했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1.5도 상승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목표가 달성될 가능성은 냉정하게 말해 크지 않다.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그 변화를 감당하는 비용은 약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그게 핵심인데, 지겨워서인지 어려워서인지 하여간 이런 얘기가 개연성있게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게 잘 안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김선생님이 경향신문에 이러한 글을 쓰기도 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2306142151005

뭔가 손에 잡히는 실천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 활동가들의 고민을 눈여겨 본 일도 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61214490001854

이제 기후위기가 더 이상 ‘기후’에 갇힐 수 없는 시대라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실에 발을 딛고 외면하지 말고 사방으로 뻗어 나가야 기후위기의 의미있는 정치세력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 것이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기후위기

과학 대 괴담?

2023년 6월 26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은 ‘먹방 정치’에 대해서 썼는데, 중간에 네이처 기사가 인용돼있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438

쓰고보니 네이처 기사가 ‘우려’에 포인트를 둔 걸로 오해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 ‘우려’에 대한 반론도 포함한 균형잡힌 내용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려’가 제기되면 반론하고 해명해나가는 게 중요한 건데 그걸 ‘괴담’이라고 하고 “마시겠다”고 하는 게 과연 과학적 태도이냐 하는 거다.

일전에도 썼지만 하나의 과학적 진실이 영원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과학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과학적 진실 역시 그렇게 믿기로 한 어떤 약속의 결과라는 거다. 과학이 내놓는 결과가 그럼에도 신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잘못됐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이것을 바로잡는 프로세스 자체가 과학이라는 개념 내에 내포돼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걸 부정하면 그건 더 이상 과학적 태도일 수 없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가령 P값 논쟁을 떠올려봐라. P<0.05 이걸 얼마나 많이 써먹느냔 말이다. 그런데 과학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P<0.05 여기에 매몰되지 마라, 아예 사회과학이나 생물의학 같은 데는 0.005로 해라, 이런 제안이 있었던 거 아니냐? P<0.05 이것도 절대적인 수치는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근데 그렇다고 P<0.05를 전제하고 이뤄진 연구를 모두 부정할거냐, 그건 아닌 거지. 그러나 어쨌든지간에 적어도 그것은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는 게 과학적 태도이다 이것이다. P값 논쟁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고.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id=285403&Board=news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그렇기에 과학 못 믿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P값을 어떻게 수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 자체가 과학적 체계 내에 있다는 게 중요하다. 과학이 하는 일이 본질적으로 무엇인지를 생각하라는 거다.

국가 정책이라는 거는 오늘의 과학적 진실에 근거할 수도 있고 추가적인 다른 고려를 할 수도 있다. 국가가 뭔가를 한다면 그건 그게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적어도 여러 불확실성 속에서 그 정책을 추진할 경우 잃는 것과 얻는 것 즉 비용-편익을 고려한 결과로서 이뤄지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잃는 것’이 있는 쪽에서 하는 얘기에 대해서는 신의성실해야 한다는 아주 상식적인 얘기다. 근데 거기다 대고 괴담 타령…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 거 하나만 합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P값, 과학, 괴담

과학은 겸손해야

2023년 6월 22일 by 이상한 모자

이번 주에 몇 개 남지도 않은 방송 프로에 나가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한 과학자들의 코멘트에 대해 계속해서 말한 바 있다. 과학은 겸손해야 한다… 근데 길게 말할 시간이 없어서 아마 코웃음 친 녀석들이 많을 거 같다.

이런 얘기다. 칼 포퍼 형님이라구 있다. 포퍼 형님이 그랬다. 과학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반증가능성이다… 반증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그래서 이 형님이 이 정권이 좋아하는 자유민주주의 뭐 그런 거예요. 열린사회와 그 적들 알지? 과학의 조건으로 반증가능성을 얘기하는 것도 마륵스주의를 까기 위한 목적이 있는 거지. 마륵스주의는 결정론이고 반증가능성을 열어놓지 않는다, 무조건 모든 걸 마륵스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이런 논리다.

과학과 반증가능성이라는 거는 뭐냐, 어떤 이론이 있다고 치자. 반증이 제출이 돼요. 이 이론으로 설명을 할 수 없는 게 등장해. 그러면 처음에는 이론을 조금 수정한다. 미봉적인 그러니까 ad hoc인 것이지. 그런데 이런 사례가 계속 쌓이고 쌓이면 더 이상 이 이론으로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됨. 그러면 더 설명력이 강한 이론으로 교체되는 것이지. 그래서 포퍼 형님이 볼 때는 과학이라는 거는 그러한 반증에 부딪치면서 계속해서 변화되어 나가는 것이거든. 그러면서 과학은 발전한다, 역사도 발전한다, 세상은 진보한다… 이게 포퍼 형님의 개념이야.

가령 방사능, 처음에 어땠냐? 마리 퀴리, 그러니까 퀴리부인이 라듐을 막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피폭이란 개념을 몰랐거든. 그때는 과학자들이 라듐 이거 안전하다고 그랬어. 나중에 어떻게 됐냐? 강이나 바다에다가 오폐수 막 버리던 시절도 있지? 지금 그렇게 합니까? 수은은 어떠냐? 석면은? 반증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통해서 과학이 발전하고 그게 사람의 생명과 안전에 도움을 주게 된 사례 아니겠나?

물론 포퍼 형님이 사실 과학자는 아니지. 그럼 여기서 과학자 출신이 한 얘길 보자고. 과학혁명의 구조 알지? 토마스 쿤? 이 형님은 전공이 물리학이다. 과학자다 이거디. 과학혁명의 구조란 책의 핵심은 과학 이론이 패러다임으로 이뤄져있다는 거다. 앞에 포퍼 개념으로 보면 A패러다임으로 현실을 설명하다가 여러 반증이 부딪쳐 한계에 도달하면 B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패러다임쉬프트가 일어난다는 거지. 근데 포퍼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뭐냐면, A패러다임과 B패러다임 사이엔 통약이 불가하다는 거다. 그러니까 가령 A패러다임이 반증주의적으로 발전한 버전이 B패러다임이라면, B패러다임이 A패러다임을 포괄하는 개념이어야 할 거고 그러면 양자는 통약가능해야겠지. 근데 그렇지 않다는 것. 과학의 발전이라는 게 그렇게 엄격한 반증주의 포퍼 모델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상대주의자냐는 비난도 많이 받고 했음. 포퍼와 쿤의 개념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한 여러 노력들도 있는데, 임레 라카토슈라든가, 근데 그 얘기 다 할 건 아니고…

하여간 핵심은 어제의 결과를 부정당할 각오와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은 과학다운 태도가 아니라는 것임. 가장 과학자다운 태도는 보통은 문제에 대해 ‘모른다’고 하는 거다. 과학자가 모른다고 해야 한다는 그게 무슨 말!? 이게 이해가 안되면 인기 유튜버 궤도 영상을 봐라.

교수라고 하는 분들 얘기하는 거 봐라. 지금 기준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안전하다, 이런 주장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10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마시겠다, 괴담이다… 이런 태도는 앞서의 설명에 비추자면 오만한 거 아니냐? 100년 후에 우리가 무엇을 새롭게 알게 될지를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오늘의 과학은 안전을 장담할 수 있지만, 국가의 통치라는 것은 그 100년 후의 변수까지 고려하면서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 후쿠시마 오염수 걱정은 당연한 거 아니냐? 바보 취급할 일이 전혀 아니다.

더군다나, 과학자라고 다 똑같은 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에 티머시 무쏘 이 분도 다녀갔잖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58444

강연의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탈핵신문에 나오는데, DDT의 사례도 예로 들고 있다.

https://www.nonukes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0449

난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니까 후쿠시마 오염수 안전하다 아니다 라는 식으로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국가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선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말할 수 있지. 그게 자유민주주의 아니냐? 반일죽창가 중국버전도 이제 그만 좀 하시고.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칼 포퍼, 토마스 쿤, 후쿠시마 오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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