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과학’의 주장을 못 믿는다는 게 아니다
이런 저런 생각하느라 잠을 못자고 그냥 신문 보고 했더니 일이 일찍 마무리가 되었다. 한 글자 적고 씻고 나갈 거다.
아무튼 방송에서 후쿠시마 얘기하면 거의 항상 “안전할 수 있습니다”, “큰 영향 없을 수 있습니다”, “IAEA 결론이 옳을 수 있습니다”로 말을 시작했다. 다만 오로지 그것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는 거고 ‘과학 대 괴담’ 구도로 몰아 붙이는 건 부작용이 더 크다는 논리였다.
그냥 갑자기 하는 얘기가 아니라 지난 주에 경향신문 글에다가도 이렇게 썼다고.
자꾸 ‘괴담’이라고 하니 분명히 말하건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방류된다고 해서 누가 죽거나 건강을 해칠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장기간의 오염수 방류가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 확실히 모르고, 만에 하나 부정적 영향이 있다면 방류 이후엔 되돌릴 수 없으니, 시간을 두고 남은 의문을 해소한 후에 결정하면 어떻겠느냐고 일본 정부에 말해보자는 거다. 오염수를 임시 저장할 부지도 아직 남아 있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오염수 방류 여부는 일본 정부가 최종 권한을 갖는 것이므로 ‘쇠귀에 경 읽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그런 태도로 접근해야 방류 이후에라도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공동으로 추적·감시·연구하자는 논리의 정당성이 강화되고,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규제와 관련한 쟁점에 있어서도 좀 더 편한 자리에 설 수 있는 게 아닌가?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7110300045
가령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정당화하는 쪽으로 정부 대응을 정했다면, “이러저러한 우려가 있지만 우리는 이러저러한 근거로 이렇게 하기로 결정했고, 일부 우려대로 이러저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러저러한 대응을 하겠으니 믿고 맡겨달라”는 논리로 설득하는 게 제대로 된 통치 방식 아닌가? ‘나만과학’들도(거듭 말씀드리는데 과학자들 얘기하는 거다) ‘괴담과학’들이 말하는 것을 “그런 주장도 있다. 그러나…”로 다루는 게 과학적 방식 아닌가? 전 정권에서 장관 지내신 분이고 하여 귀담아 듣지 않고 비웃기만 하는 분도 있겠으나, 하여간 전 장관님이 오늘 한겨레에다가 쓴 얘기도 한 번 보시라. 이런 저런 반박하고 싶은 얘기가 많겠지만 핵심은 이 대목이다.
과학자로서는 조금이라도 우려가 있으면 “100% 안전하다”는 말은 하지 말자. 안전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으면 “모든 조건을 만족한다면 안전하지만 그런 조건을 다 만족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자. “오염수가 함유한 핵종이 기준치 이하면 방류할 수 있다는 임의의 규정이 있다”고는 말할 수 있어도, 확실한 근거도 없이 “그런 오염수를 수십년 이상 방류해도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고, 그 바다에서 채취한 수산물은 먹어도 안전하다”고는 감히 말하지 말자. 물론 반대의 논리도 적용된다. 확실하지 않으면 “무조건 해롭다”고 하지 말자. “잘 모르지만 위험하거나 해로울 수 있으니 안전성이 어느 정도 확보될 때까지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래야 국민이 지금까지 보여준 과학에 대한 신뢰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제가 과학자도 아니면서 폼잡고 자꾸 과학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은 ‘과학 대 괴담’이라는 구도의 정치적 악의 때문이다. 그게 결국 정권이 정당성을 싣거나 추진하려고 하는 모든 일에 대한 비판과 우려와 문제제기를 ‘민주당’으로 몰아 ‘방어’하면서 동시에 ‘반격’하려는 의도가 실린 거 아닌가. ‘나만과학’의 대표선수 중 한 명이 일본 언론(산케이) 인터뷰에서 “정치적 이유만으로 방류를 늦춘다면, 오히려 (반대 세력의) 공격 본능을 자극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건 과학자의 언어인가 정치인의 언어인가? 집권세력이 이런 분들과 2대 1 패스 주고 받으면서 앞으로(지금까지도 그래왔듯) 뭘 얘기하든 “괴담이다”, “가짜뉴스다” 하겠다는 거 아닌가.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나만과학’은 틀렸고 ‘괴담과학’이 맞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과학계에서 알아서 하시라. 그런 게 아니라, 괴담 타령 하면서 “미국·캐나다·뉴질랜드·유럽연합에도 뛰어난 역량을 가진 보건학자들이 넘쳐난다. 알량한 수준에서 국제기구의 공식 보고서를 한 마디로 평가절하해버리는 모습이 애처로울 뿐이다”란 식으로 다른 학자를 비난하는 게 맞느냐는 거다.
제가 이 대목을 자꾸 왜 문제 삼냐면,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분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래는… 그래 뭐 띄워주는 인터뷰니까 감안해서 읽어보시라.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008220600045
이렇게 훌륭한 분이니까 말씀하시는 게 다 맞을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도 틀린 얘기 할 수 있는 게 과학이다. 당장 조선일보의 모 논설위원 등은 라돈침대 갖고 오바했다는 식의 스토리를 쓰고 있다. 그게 맞든 틀리든 간에, ‘과학 대 괴담’을 갖고 포퓰리즘의 방식으로 장난치는 얘기들은 과학적 논의의 한계를 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민주당 따위 조차도 아닌, 진보 일반에 대한 이념적 공격을 전제하고 있다는 거다. 자꾸 민주당 얘기하는데, 일전에도 밝혔듯 관심없다. 탈핵이니 뭐니는 애초에 민주당 이슈도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의 정치적 본질을 정확히 봐야 한다.